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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샤 하이페츠 러시아 바이올린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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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885회 작성일 10-04-2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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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샤 하이페츠
러시아 출신 20세기 바이올린의 전설
86년 생애중 83년간 연주
완벽한 기교·영롱한 음색 조화
청중엔 감동 동료엔 절망 안겨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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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와 사라사테가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은 이제 이들 같은 천재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1년 또 한 명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태어났으니 바로 야샤 하이페츠(1901~1987·사진)이다.

86년의 생애에 무려 83년간 바이올린연주하면서 '신이 빚은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의 전설' 등의 격찬을 받은 하이페츠는 청중들에게는 경악과 감동을 안겨준 반면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좌절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동년배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하이페츠의 천재성에 상처를 받고는 연주자의 길을 떠나 다른 인생을 살기도 했다.

바이올린 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한 하이페츠는 여섯 살에 이미 데뷔 무대를 가진다. 성공적인 데뷔 덕분에 신동으로 소문난 그는 아홉 살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 평생의 스승이 된 러시아 악파의 대부 레오폴드 아우어의 지도를 받는다. 그리고 이듬해 어린 신동은 베를린 필과 협연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열여섯 살에 카네기 홀에서 미국 데뷔무대를 가진 하이페츠는 초인적인 기교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단숨에 미국 음악계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데뷔 첫 해에 뉴욕에서만 30여 회의 독주회를 가질 정도로 유명해진 그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 혁명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안정된 삶을 찾는다.

유럽에서 망명한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을 환대하던 미국의 정책 덕분에 하이페츠는 활발한 녹음과 연주활동을 통해 커다란 부와 영광을 누렸고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여 신기의 테크닉을 보여준다. 사십대에 이르러서는 캘리포니아의 베벌리힐즈에 자택을 구해 여생을 마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른다.

하이페츠는 한때 루빈스타인, 포이어만과 더불어 이른바 '백만 불의 트리오'를 결성해 실내악 활동도 하였다. 그러나 하이페츠의 강한 자존심과 독불장군 같은 면 때문에 기대 이상의 큰 활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십대까지 절정의 연주를 들려준 그는 육십대에 접어들면서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인다.

워낙 유명한 탓에 일화도 많은데 루마니아 공연 때는 너무나 많은 관중이 모인 탓에 정작 하이페츠가 입장하지 못해 연주회가 취소될 뻔했다. 또 런던 공연에서는 하이페츠의 연주에 반한 영국 국왕 부처에게 답례의 미소를 보냈다가 왕비와의 스캔들로 번질 뻔 한 일도 있었으니 당시 그의 인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연주는 너무나도 완벽한 기교와 정확한 음정을 자랑하였으며 이것만으로도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꼿꼿이 선 채로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고 거의 무표정한 상태로 냉정하게 연주하기 때문에 종종 음악이 차갑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그는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 자신의 감정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음악가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서정적인 표현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았다.

하이페츠는 연습벌레에 지독하게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유일한 결점은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정감이 가지 않는 것이다. 힘이 넘치면서도 맑고 아름다운 음색과 깊은 감정표현 그리고 정확한 기교구사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경우는 드물다. 철저한 테크닉으로 악보 속의 모든 음표를 하나 빠뜨림 없이 영롱하게 그려내는 하이페츠를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칼 플레쉬는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라고 극찬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지만 예술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하이페츠는 그의 연주를 통해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수놓으며 역사 속에 찬연하게 빛나는 별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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