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하는 인간의 비극-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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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463회 작성일 11-10-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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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환상교향곡>과 더불어 로맨티즘을 대표하는 이 극적인 이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감격해서 베를리오즈 자신이 직접 썻다고 합니다.
괴테의 원작에는 없지만, 늙은 파우스트가 헝가리의 평원에 서 잇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합창을 들으며 잃어버린 청춘을 한탄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다가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려고 합니다.
이때 악마 메티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그를 유혹하는 이야기는 구노의 파우스트와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잇다면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르가레테를 구워나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파우스트 자신도 구원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불행해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언젠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체장애자가 자신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장면을 보며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일이 잇습니다.
그로서는 부자유스로운 모습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햇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은 좀더 많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가난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소유하고도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그 소유 자체가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언제나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만족이 없으니 끊임없이 갈증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파우스트 역시 마찬가지입다. 학문과 명예를 다 가졋지만 그는 불행합니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 잃어버린 젊음을 탐하느라 자기에게 잇는 것을 보지 못하는 탓입니다.
악마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약점을 이용해 그를 파멸시키려는 자입니다. 그런 악마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파우스트의 공허함을 알고 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그에게 넘어가는 파우스트, 그 과정에서 그동안 파우스트가 쌓아올린 학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오히려 그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네가 가장 자랑하는 것이 죄악의 씨가 된다'고 햇던가요?
아무튼 악마에게 넘어가는 것은 고매한 학자이든, 한낱 범부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학문이든 명예든 부이든 더 많이 가졋을수록 더 쉽게 넘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짐으로써 마르가레테가 구원받는다는 것 역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요.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을 모르고 불행해 하니, 덜 가진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알라는 깨달음.
이 작품에서 그것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기에 이릅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무엇을 얻는가, 우리 존재의 한없는 하찮음이 아니던가요? 내가 인생의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신의 은혜로 구원받는 , 단순한 피조물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환상교향곡>과 더불어 로맨티즘을 대표하는 이 극적인 이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감격해서 베를리오즈 자신이 직접 썻다고 합니다.
괴테의 원작에는 없지만, 늙은 파우스트가 헝가리의 평원에 서 잇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합창을 들으며 잃어버린 청춘을 한탄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다가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려고 합니다.
이때 악마 메티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그를 유혹하는 이야기는 구노의 파우스트와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잇다면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마르가레테를 구워나기 위해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파우스트 자신도 구원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불행해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언젠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체장애자가 자신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장면을 보며 행복해 하는 것을 본 일이 잇습니다.
그로서는 부자유스로운 모습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햇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은 좀더 많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가난하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소유하고도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그 소유 자체가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언제나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만족이 없으니 끊임없이 갈증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파우스트 역시 마찬가지입다. 학문과 명예를 다 가졋지만 그는 불행합니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 잃어버린 젊음을 탐하느라 자기에게 잇는 것을 보지 못하는 탓입니다.
악마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약점을 이용해 그를 파멸시키려는 자입니다. 그런 악마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파우스트의 공허함을 알고 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그에게 넘어가는 파우스트, 그 과정에서 그동안 파우스트가 쌓아올린 학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오히려 그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네가 가장 자랑하는 것이 죄악의 씨가 된다'고 햇던가요?
아무튼 악마에게 넘어가는 것은 고매한 학자이든, 한낱 범부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학문이든 명예든 부이든 더 많이 가졋을수록 더 쉽게 넘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짐으로써 마르가레테가 구원받는다는 것 역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요.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을 모르고 불행해 하니, 덜 가진 사람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알라는 깨달음.
이 작품에서 그것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기에 이릅니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무엇을 얻는가, 우리 존재의 한없는 하찮음이 아니던가요? 내가 인생의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신의 은혜로 구원받는 , 단순한 피조물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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