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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구원, 그 영원한 딜레마”- 바그너의 <탄호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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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374회 작성일 11-10-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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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구원, 그 영원한 딜레마”- 바그너의 <탄호이저>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보는 이 사람이 사는 법, 오늘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통해 인간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그너의 대표적인 오페라 탄호이저는 두가지 질문을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구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가? 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영원한 의문이라고도 할 사랑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탄호이저는 사랑의 한 측면인 열정과 쾌락을 상징하는 비너스 여신과 한동안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열정이고 가장 쉽게 싫증나는 것이 쾌락인지라 탄호이저는 여신을 떠나고자 합니다.
비너스가 그런 자신을 협박하자 그는 성모마리아를 부르고 결국 여신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본능인 탐욕과 열정을 이기는 것은 결국 영성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계곡을 떠나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그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는 엘리자베트와 그런 그녀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감추는 기사 볼프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날 노래대회가 열리고 사람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노래를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적 아름다움, 순결, 정조에 관해 노래하자 탄호이저는 그들을 비웃으며 사랑이란 열정과 쾌락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그가 비너스버그에 있었던 것을 알게된 사람들, 특히 엘리자베트는 너무나 놀랍니다.괴로워하는 그녀를 보자 비로소 탄호이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온갖 고행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팡이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지 않
으면 소용없다는 말에 끝내 자포자기한 그는 다시 쾌락을 찾으려 하고 볼프람은 그런 그를 만류합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떠나려 하는 그를 가로막고 그에게 그토록 원하던
사면을 주고 지팡이에서 푸른 잎이 나게한 것은 엘리자베트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찌르찌르와 미찌르의 파랑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나지만 진짜 파랑새는 바로 자기 집에서 기르던 새였지요. 그것처럼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멀리 순례나 금욕의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화답하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의 기적도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주위에서 나의 도움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 도움을 주는 것일 테구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 이 세상에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것으로 우리 존재 의미는 족하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탄호이저가 엘리자베트의 지고지순한 아가페적인 사랑의 귀중함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행복한 결말로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고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아이러니겠지요.
또 하나의 질문,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작품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 특히 남녀간의 사랑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합니다. 우선 불타오르는 열정과 육체적 쾌락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그 빛을 잃는 것이 흠입니다.
결국 변화하는 인간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은 자기 사랑에 대한 약속과 책임감, 그것을 행하려는 의지입니다.바로 엘리자베트가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감행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것을 꿈꾸는 지도 모릅니다. 어느 예술작품에도 그런 사랑이 등장하는 것 역시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고향이며 희망이고 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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