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1908~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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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LM 댓글 0건 조회 1,629회 작성일 12-07-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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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어쨌든 그는 최고의 악단을 30년 이상 이끌어오면서 높은 완성도의 음반들을 양산해 고전음악의 저변이 확대된 결과를 낳았고, 그의 연주중에는 함부로 ‘싸구려’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명연들이 역시 즐비하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어쨌든 푸르트벵글러-토스카니니의 시대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역시 신동으로 각광받은 그는 빈 국립음악원에서 프란츠 샬크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1927년, 19세의 나이로 울름 시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나 5년 만에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카라얀은 1933년 나치 입당의 길을 선택했고,34년 아헨 오페라극장의 지휘자, 35년 음악총감독으로 임명되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1937년과 38년에 빈 국립오페라극장과 베를린 필·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무대를 차례로 밟으
여러 가지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 되어 1955년 베를린 필에 입성한 그는
그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세련된 다듬기’와 ‘지겨운 레가토’로 특징지워진다. 그래서 고전 레퍼토리보다는 낭만 이후의 레퍼토리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음반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가 가장 큰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마지막 녹음이 된 브루크너 교향곡 7번(DG)도 명연 중에 하나. 그리고 말러 교향곡 9번(DG), 브람스 교향곡 1번(DG)도 대표적 명반이다. 더 이상 그의 명반을 꼽기는 힘들다. 그의 음반 타이틀 (영상물포함)은 모두 1천에 달하고 전세계적으로 약 1억 2천만장이나 팔렸다. 대중음악시장에서는 흔히 ‘많이 팔리면 뜬다’고 한다. 같은 논리라면 카라얀의 음반들 중 상당수가 ‘뜬 명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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