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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 프럼파티 : 권소희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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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162회 작성일 10-04-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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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럼파티


 


  LA의 오월.


  오월은 봄입니다. 음산한 땅을 디디고 서있는 봄은 눈이 부십니다. 이 꽃 저 꽃에 꽃가루를 옮겨다 묻히는 나비가 부러울 정도로 사랑을 하고 싶은 따사로움이 가득하지요. 그런데 LA의 오월은 화사함은 고사하고 여름인줄 착각할 정도로 뜨겁기만 합니다. 강렬한 태양 볕은 아침부터 파고들어 살갗을 태울 듯 하구요. 보드라울 거라는 봄날에 대한 느긋함은 사치스런 감정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아주 평화로운 마음으로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은 몹시 추웠거든요. 사막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지형적인 불이익이 안겨주는 건조함 때문만은 아니지요. 오랜 기다림, 하마터면 비껴날 뻔했던 안타까움이 행여나 풍선처럼 터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을 거예요.


  오늘은 파티가 있는 날이에요. 
  프럼 파티(Prom Party), 그건 고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졸업생을 위한 파티죠. 제 친구들은 몇 명이서 돈을 모아 리무진을 빌렸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틈에 어울려 최고급 차를 렌트해서 기분을 내고 싶었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는 제 파트너와 단둘이만 있고 싶었지요. 그래서 생각 끝에 오늘 하루 밤만 사용하기로 허락 받고 아빠 차를 빌렸어요.
 


  아침 일찍 서둘러 세차장도 다녀오고 차안에 장미꽃을 말려 만든 방향제를 살짝 뿌려놓았지요. 왁스를 듬뿍 칠했더니 낡은 자동차에서 광채가 나는군요. 비록 빌려 입긴 했지만 턱시도를 입으니 마치 신랑이 된 기분이에요. 파티에 참석하는 예비 졸업생들은 정장을 해야 하거든요. 남자는 턱시도를 입게 되고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참석을 합니다. 졸업한 선배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그날은 별의별 경험을 하게 되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때론 거침없이 내뿜는 성적 욕구 때문에 예기치 않는 사고가 생기기도 해서 부모님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되기도 한다나요. 정작 우리들은 신이 나서 밤새 춤추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파티장 안은 비트가 강한 록 리듬으로 고막이 터질 듯 하겠죠.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귓전에서 꽝꽝 울리는 드럼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은 풀어진 바람처럼 제멋대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출 텐데 저는 춤을 잘 못 추거든요. 아무튼 선배 말이 파티가 끝나도 학생들은 아쉬움에 쉽사리 그 자리를 뜨질 못 할 거래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는커녕 다른 장소로 옮겨 밤새도록 지칠 줄 모르고 파트너와 함께 어른이 되기 위한 의식에 용기를 내기도 한다더군요. 마치 자유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가슴까지 타 들어가는 갈증과 함께 몽롱해진 감각적인 본성은 흥분에 들떠 달빛아래서 흐느적거리겠지요. 적당히 끌러놓은 넥타이 사이에서 헐떡이는 목젖의 갈증은 촉촉한 입술과의 입맞춤이 끝나야 사라질 테죠. 선배들은 어설프고 풋내 나는 추억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틴에이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프럼 파티는 기억의 언저리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은 이끼 낀 유물로 남게 될 거라더군요. 어차피 첫 경험이 영원할 수 없다는 통념은 맞는 거라며 충동에 의한 체험으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거라나 선배는 웃으며 어깨를 툭 건드렸죠.


  저기, 제 파트너가 드디어 제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군요. 와우, 저기 매력적인 모습을 보세요. 
  찰랑거리는 기다란 머리카락, 온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연 하늘색의 하늘거리는 실크 드레스, 한 줌이 될까 말까한 자그마한 어깨에 실선으로 매달려있는 구슬 박힌 가는 어깨 끈, 목선이 깊게 파여 볼륨 있는 가슴 계곡선이 보일락 말락한 농염한 옷차림에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어요.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은 발로 바람의 운명을 헤치듯 팔랑거리며 걸어오는 그녀는 바로 제가 10살 때부터 무지하게 좋아했던 여자 친구예요.


  10살 때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앞니 빠진 이빨의 엉성함처럼 정갈하지 못한 꼬마의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때는 방학이어서 부모님 모두 일 나가시고 형과 나는 집에 남겨졌었지요. 학교도 가지 않아 하루 종일 시간을 때우기가 쉽지 않았어요. 갈 곳도 없고 놀이할 만한 도구도 없어 무지 심심했지요. 아파트 복도 끝을 왔다 갔다 하던 차에 마침 아파트 주차장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어요. 심심하던 터라 멀뚱하게 차에서 내리는 이삿짐을 쳐다보았지요. 내 또래의 여자 애를 손에 잡고 차에서 내리던 낯선 아줌마는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며 말을 건넸습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니” “몇 살이니” “부모님은 지금 집에 계시니?”


  아줌마는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한국말을 잘하는 걸 보니 너도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구나.”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글학교에서 해마다 글짓기 상을 탄 내 실력을 무시하는 질문이었어요. 평소에 한국말을 잊으면 안 된다고 읽고 쓰는 게으름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 아빠 덕분이었죠. 내가 한국에서 방금 도착한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하게 느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그래서 한국말과 영어 다 잘 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그제 서야 아까부터 아줌마 손만 잡고 서 있던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앞으로 우리 아이에게 영어도 좀 가르쳐 주고 서로 사이좋은 친구가 되라고 하시더군요.


  그 애는 깔끔한 까만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그 아이의 눈을 마주친 순간 갑자기 맥박이 빠르게 움직이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어요. 나도 모르게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와 버렸지요. 제 몰골이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웠어요. 학교도 안가니까 아침에 일어나도 세수도 하질 않거든요. 신발로 밟고 다니는 복도 카펫트가 더럽기는커녕 심심하니까 누워 뒹굴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옷도 뒤집어 입고 다녔거든요. 누군가에게 잘 보일만한 사람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 애를 본 순간 내 몸을 두르고 있는 더러움이 갑자기 각질처럼 두껍게 느껴졌어요. 왜 거북이 등껍질 같은 딱딱한 이질감을 느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아무튼 그 여자 애를 처음 본 순간 창피라는 감정에 꽁무니가 보이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달아났어요.


  민지, 내가 사는 바로 위층으로 이사 온 여자 애의 이름이죠. 저녁에 직장에서 돌아 온 부모님께 아파트에 한국에서 새로 이사 온 가정이 있노라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엄마는 이사 온 집이 몇 호냐고 물으셨어요.


  “응, 바로 우리 집 위층이야, 엄마.”


  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는 제 손을 이끌고 민지네 방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어요. 민지부모님은 종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물건을 꺼내 차곡차곡 정리를 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래층에 산다고 자신을 소개를 하시며 필요한 것이 없냐고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그게 다 홈 쳐치(Home Church)에 한 사람이라도 참석하게 하려는 친절인 걸 알지만 정말 엄마는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를 즐겨하시지요.


  우리 부모님은 홈 쳐치를 하시고 계세요. 홈 쳐치가 뭐냐 면요. 우리 아빠는 목사님이세요. 아직 교회를 얻을 형편은 못되어서 집에서 목회를 하시는 거지요. 집이 곧 교회가 되는 셈이지요. 일요일이면 목사님이신 우리 아빠가 교인들을 모아 놓고 집에서 설교를 하시지요. 교인이라야 고작 엄마, 외할머니, 형 그리고 나와 또 강 집사님 식구들이 전부지만요. 강 집사님 가정은 지난 번 아빠가 부 목사로 있었던 교회에서 독립해서 나올 때 같이 나오신 분들이에요.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아빠가 부목사로서 능력이 없다나 그래서 쫓겨났다는 거예요.


  연말이면 부목사인 저의 집에도 선물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박스 채 리빙 룸 구석에 푸짐하게 쌓여졌죠. 그렇지만 선물 상자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에요. 그 물건들을 저희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거든요. 이혼한 가정이라든지 일자리가 없어 경제적으로 곤란한 가정들을 방문할 때 하나씩 가지고 나가셨죠. 그런데 엄마가 세심하게 선물을 살폈어야 하는데 그 포장된 선물 안에 부목사인 아빠에게 보내는 카드가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로 다른 분에게 전해지게 되었던가 봐요. ‘부 목사가 준 선물 속에 이미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카드가 들어있었다’ 라는 소문은 우연찮게 흘러나와 금방 전 교인에게 옮겨졌지요.


  ‘어떻게 남에게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또 전해주지?’


  ‘그건 선물을 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행동이고 목회자로서 자질이 없는 거야.’


  사소한 사건이라도 오해로 비약되거나 비웃을 수 있는 말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부목사의 능력까지 들추며 교회에서 몰아내기로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내용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덩달아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소문을 전하기에 바빴지요. 그렇게 해서 아빠는 그 교회에서 쫓겨나게 됐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강 집사님 가정만 아빠를 따라 나섰지요. 저는 엄마가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의로 남에게 주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한번도 부모님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어요.


  부 목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교회에서 주던 일정액의 급료도 받지 못하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 엄마는 봉제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을 하시게 되었어요. 아빠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무실이 많이 모여 있는 윌셔  가에서 사무실을 오가며 서류를 전달해주는 택배 일을 하시지요. 언젠가는 교회를 임대해서 정식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가정의 꿈 이예요. 그런데 사실 아빠는 그런 큰 교회를 갖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가 봐요.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온 후에도 형편이 어려운 가정만 찾아 다니셨지요. 강 집사님도 예전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한 마약 중독자였는데 날마다 찾아가 위로해주어서 지금은 마약도 끊게 되셨어요. 부모님은 일이 끝나고 집에 오셔도 저녁 식사 후 다시 집집마다 방문하시는 바쁜 생활 때문에 형과 저는 점심 굶기가 일수지요. 엄마가 점심을 챙겨놓고 가셔야 하는데 교인들 방문하느라 바빠서 다음 날 그냥 일터로 나가실 때가 많아요. 학교에 가는 날은 학교에서 점심을 사서 먹을 수 있지만 방학 때는 밥이 없으면 하는 수 없이 라면을 끓여서 대충 배고픔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엄마에게 투정한 적은 없어요. 사내는 그런 것쯤은 참아야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었거든요.


  민지 엄마는 정리를 하다말고 식탁 위를 손으로 주섬주섬 정리하며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했습니다. 엄마는 마지못한 듯 의자에 앉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 말을 사실 기다리고 있었죠. 엄마 옆자리에 앉은 나는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민지 방만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죠. 그런 제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민지 엄마가 민지를 부르더니 나와 같이 놀라고 말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내심 속으로 기다렸던 차라 벌떡 일어났는데 식탁 테이블이 흔들려 그만 엄마의 커피 잔이 엎어지게 되었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민지 앞에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이번엔 창피해도 달아날 수도 없었어요.


  “아휴, 이를 어째. 얘가 예쁜 친구가 생기니까 정신이 없나보네.”


  엄마도 참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내뱉으면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얼굴이 속에서 달아올랐어요. 휴지로 식탁을 연신 닦아대며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에 무안해진 내 마음은 정말 어쩔 줄을 몰랐지요. 말끔하게 치워진 방안은 민지 얼굴처럼 깨끗했어요. 그 순간 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은 옷가지며 책들이 널브러져 있는 내 침대가 떠올랐어요. 형하고 방을 같이 쓰는 제 방은 치우질 않아 늘 어수선하거든요. 민지가 우리 집에 놀러 오기 전에 가서 빨리 치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만 조급해졌지요.


  그날 밤, 방안을 치운다고 휴지통을 비우고 침대 밑에 쑤셔 박아놓은 양말짝이며, 게임기를 꺼내느라 생쥐처럼 왔다갔다 수선을 떨었죠. 잠도 안 자고 무슨 짓이냐고 형이 소리를 질러대도 저는 들은 척하지도 않았어요. 아무튼 민지가 이사를 오고 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세수를 했고 옷도 매일 갈아입었죠. 혹시 더러우면 민지가 저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지요. 방학이 끝나고 민지는 다행히 저랑 같은 반이 되었어요. 우리 반에는 한국인이 저 밖에 없는 까닭에 민지는 제 짝이 되었어요. 저는 통역관이 되어 숙제도 챙겨주고 영어를 못 알아듣는 민지에게 선생님 설명을 한국말로 전해주었어요. 그때까지 민지에게는 영어 이름이 없었는데 저보고 선생님이 영어 이름을 하나 지어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엉겁결에 민지의 영어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어요.


  수잔 김, 그때부터 민지의 영어 이름이 되었죠.


  학교생활은 정말 즐거웠어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어요. 점점 학교생활은 민지를 돌보는 책임감으로 진지해졌죠.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는 일도, 도서실에 책을 반납하는 일도 민지보다 앞서서 챙겼어요. 민지가 질문을 해오면 어물거리지 않고 설명해주기 위해 저도 열심히 책을 읽었어요.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 때는 졸업생 대표로 교장 상을 받기도 했어요.


  근데 딱 한번 제가 교장실에 불려 가야 했던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굳이 따져보자면 그 일은 불미스런 것이 아니라 자랑 스런 일임에 틀림없었지요. 우리 반 아이 중에 유난히 민지를 못 살게 구는 알매니안 녀석이 있었어요. 영어를 못 알아듣는 그녀에게 영어로 나쁜 욕을 해대며 히죽거렸지요. 민지는 영어에 서툴러 자신을 놀려대는 녀석에게 반박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전 그 자식이 민지를 괴롭힐 때마다 그 녀석을 학교 뒷담으로 끌고 가 흠씬 패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폭력 비슷한 행동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학교 법칙 때문에 저는 그 못된 친구를 혼내줄 기회만 틈틈이 노리고 있었죠.


  체육시간에 공 던지기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혼내줄 양으로 냅다 그 못된 녀석 얼굴에 공을 던져 버렸어요. 그 친구는 울면서 양호실에 달려갔고 저는 교장실에 불려가게 되었어요. 교장 선생님은 일부러 공을 던졌냐고 물으셨지만 끝까지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했지요. 증거가 없이 심증만 갖고 있는 교장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저보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체육시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민지는 제가 그 알매니안 친구를 혼내준 것을 눈치를 챘는지 저에게 고맙다고 하더군요.


  민지와 같이 수업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신나는 일이었어요. 이제는 예전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안 계신 빈방에서 허전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어요. 오히려 부모님이 늦게 오셨으면 했지요. 민지네 집에서 숙제를 같이하게 되었거든요. 민지엄마는 내가 민지와 같이 공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영어로 된 숙제를 읽고 답을 가르쳐 주다가 마법을 깨는 시계처럼 어둠이 깔리면 은근히 민지 엄마가 저녁 먹고 가라는 말을 기다렸어요. 민지 엄마의 음식솜씨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엄마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냉장고 안에서 차갑게 굳어진 우리 집 반찬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그런 저녁상을 마다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어요. 그러나 사내대장부가 덥석 권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안 먹어도 괜찮다고 가방을 챙겨 들지요. 하지만 다정한 민지 엄마는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잡아끌어 기어이 식탁에 앉힙니다. 왕성한 식욕은 기다렸다는 듯이 씹을 사이도 없이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치우곤 했죠. 그렇지만 그런 포만감도 잠시뿐이지요. 민지부모님 모두 우리부모님처럼 일자리를 얻어야 했거든요.


  “민지 아빠가 일자리를 구한다는데 당신 좀 할 만 한 일을 알아봤어요?”


  “그러잖아도 내 친구 녀석이 하는 리쿼 스토아(Liquor Store)에 사람을 구한다고 하던데 그거라도 알려줄까 봐.”


  “아, 그거면 어때요. 그 가게 장소가 우범지대라 조금 염려가 되긴 하지만 이곳에서야 한국에서처럼 생각하고 일자리를 찾으면 안 돼지요.”


  “그런데다가 요새 한국 경제가 어려워가지고 미국으로 오는 한국인이 부쩍 늘어나서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흔하지 않은가봐.”


  어른들 이야기를 나눌 때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민지아빠는 한국에 아이엠에프라나 외환위기가 어쩌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고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미국에라도 가서 아무 거라도 하면 되지 않겠나 싶어 관광비자로 무작정 입국을 했다고 했다는데 엄마는 그 말끝에 몇 번을 혀를 찼어요. 이곳에서 사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이죠. 그렇지만 몸 사리지 않고 부지런만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민지 엄마에게 말해주었지요. 리쿼 스토아 일은 물건에 찍힌 가격대로 돈만 받고 거슬러주면 되기 때문에 영어가 서툰 민지 아빠에겐 제격이었지요. 민지 엄마는 우리 엄마가 일하는 봉제공장에 재봉사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민지 엄마가 만들어 주는 간식을 더 이상 얻어먹을 수 없는 게 아쉬웠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는 민지네 식구들을 보니 저도 마음이 놓였어요. 민지 네는 새 차도 구입했어요. 민지 언어 실력도 많이 늘어 이젠 대화도 영어로 주고받을 정도가 됐어요.


  그런데 민지 네가 적응이 되는 흘러가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어요. 학년이 높아지니 단순히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고 해야 할 일들도 덩달아 많아졌지요. 마음으로 분주해지고 걱정거리도 생겨났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 당황했어요. 내가 변한 것은 잘 못 느끼겠는데 다른 친구들은 키도 갑자기 커지고 얼굴 모양도 개기름이 줄줄 흐르며 거인처럼 변해가고 있었지요. 특히 민지가 예전 같지 않았어요. 7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예 저를 피하는 눈치였어요. 갑자기 변한 민지의 태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민지가 저한테 그럴만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는 없을 거라는 짐작이 들더군요. 6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체육시간에 실수로 민지의 가슴팍을 밀었거든요. 그때 제 손 끝에 전해지는 것은 말캉한 민지의 가슴이었어요. 언제 그렇게 봉긋하게 솟아져있었던 것인지 뜻밖의 감촉에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기만 했죠. 저도 당황됐지만 얼굴이 달아오른 민지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어요. 그때부터 민지는 저에게 화가 났나 봐요. 그렇게 7학년으로 올라가고 나니 자꾸 어색해지는 것 같아 어떻게 하든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7학년부터는 한 교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목별로 이 반에서 저 반으로 옮겨 다녀야 했지요. 타임 스케줄이 달라 민지와도 쉽게 만날 수도 없었어요. 가끔 학교 식당인 카페테리아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그녀는 늘 친구들과 어울려 있어 따로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지요. 일부러 가슴을 만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불쑥 꺼내기도 쑥스러워 저도 그냥 모른 척 지나쳤죠. 이상하게 예전처럼 민지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갑자기 굵어진 목소리로 민지 이름을 부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지요. 민지는 내게 더 이상 관심조차 두질 않는 것 같아 보였어요. 내가 민지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그렇게 쌀쌀맞게 나를 피하다니 무척 서운했지요.


  민지네 식구만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어요. 드디어 저의 아빠도 일요일에 3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 교회 건물을 임대하게 되었어요. 이젠 홈 쳐치가 아닌 버젓한 교회건물에서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교인들은 집에서 드리던 그 인원 그대로였어요. 아빠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책을 읽고 성경보시며 설교 준비를 하셨어요. 주일이면 머리에 무스까지 바른 말끔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가 설교를 하셨죠. 참 멋진 설교였어요. 전 설교 잘 하시는 아빠가 자랑스러웠어요. 우리 아빠는 아침이면 제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를 해주셨어요. 주로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지요.


  “너는 무슨 기도를 드렸니?”


  하루는 기도가 끝나고 아빠가 저에게 물으시더군요.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꿰뚫어 보시는 듯한 갑작스런 질문에 저는 둘러댔죠.


  “훌륭한 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솔직히 그때 무슨 기도를 했냐면 민지가 제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거든요. 부모님의 기대는 제가 명문 대학을 졸업해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게 소원이었겠지만 내게는 민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더 컸어요.


  꿈이 너무 시시하다고요?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남자는 말이죠. 마음에 드는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것 때문에 돈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거구요. 동화책에도 나오잖아요. 예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사나운 짐승을 물리쳐 공주도 구하고 나라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 말이죠. 그건 어린 아이가 읽는 동화에만 있는 이야기만은 아니죠. 난 민지를 얻기 위해 늘 기도를 했던 거구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순전히 허풍이었지요. 진실이 아닌 거짓이었단 말입니다. 민지네 가정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 세상에 어떤 남자보다도 멋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졸랑 맞고 꼴 보기 싫게 될 줄은 몰랐어요.


  민지 아빠가 흑인 강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는 너무도 당황했어요. 부랴부랴 달려가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었어요. 이미 시체는 옮겨진 상태지만 군데군데 흘린 핏자국과 진상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에서 행복이 이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내용물 빠진 나무 궤짝 같이 여겨졌어요. 리쿼 스토어(Liquor Store)는 현금이 가게 안에 늘 있어서 강도들이 탐내는 곳 중에 하나였어요.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흑인이 들어와 권총으로 민지 아빠를 쏘고 현찰을 훔쳐 달아났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민지 아빠의 숨이 끊어진 상태였지요. 경찰의 설명을 듣는 민지 엄마의 오열과 엄마를 달래는 민지의 모습은 애처로워 더는 볼 수 없었어요.


  졸지에 의지할 남편이자 아빠를 잃은 민지네 식구는 예전의 밝고 깨끗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웃을 수가 없었겠지요. 슬픔보다 살아 갈 걱정이 더 급했을 테니까 말이죠. 민지네는 안타깝게도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민지네 식구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방세가 조금 싼 코리아타운에 있는 원 베드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민지네 식구가 코리아 타운으로 이사 가고 난 후 왕래하던 소식도 뜸해졌습니다. 저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바빠져서 민지가 보고 싶은 것에만 신경을 쓸 수가 없었어요. 새벽이면 날마다 기도해주시며 저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제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학교 성적은 물론이고 SAT점수도 좋아야 했기 때문이어서 다른 것에 눈 돌릴 틈이 없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여러 민족이 섞여 있는데 주로 라틴계 사람들이 많아요. 우연히 라틴계 친구인 호세로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비밀리에 조직된 갱단의 일원이었어요. 팔뚝에 용무늬 문신을 한 양 팔을 건들거리며 제 앞에 섰습니다.


  “헤이! 스쿨 보이(School Boy). 오늘 저녁 모임이 있는데 한번 구경 오지 않을 래? 얼마 전에 한국여자애가 들어왔는데 우리 보스 애인이야.”


  호세가 속해있는 갱단은 라틴계와 중국계 그리고 한국인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두목은 멕시코 사람이었어요. 호세는 은근히 한국인을 멸시하는 마음이 숨어있어 저를 약 올리려는 의도로 모임에 같이 가자고 꺼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여자애가 들어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동족애로 관심이 쏠렸어요.


  “한국 여자 애? 그 여자의 이름이 뭔데?”


  “수잔 김이래. 어, 얼굴 표정이 왜……그래 혹시 너 아는 여자 애니?”


  하마터면 제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할 뻔했어요.


  수잔 김, 내가 지어 준 민지의 영어이름이었어요. 뜻밖의 장소에서 민지의 이름을 듣게 돼 너무도 놀라 나는 대뜸 오늘 모임에 나가고 싶다고 말을 했죠. 호세는 의외의 내 태도에 정말 갈 거냐고 반문하며 너 같은 스쿨 보이는 올 데가 못된다고 오히려 말리더군요. 스쿨 보이는 모범생이라고 비꼬는 말이지만 그 말을 꼬투리 잡고 따질 기분이 아니었지요. 설마하니…, 민지가 갱 두목의 애인이라니, 사실인지 아닌지 이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10달라가 있더군요. 호세에게 오늘 저녁 그곳으로 꼭 데려가 달라며 그 돈을 건넸어요. 호세는 예상하지 못했던 내 태도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10달러를 힙합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이따 저녁 8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자며 사라졌어요.


  ‘아니야 절대 민지가 그런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고 보니 민지의 소식이 끊긴지 꽤나 오래 되었더군요. 아닐 거라고 부인하면서도 그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점점 애가 탔어요. 어둠이 약속시간 위에 걸쳐질 때까지 초조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호세와 만나기로 장소로 나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엄마가 전화기를 들었고 나는 막 문을 열려고 현관 앞에 섰습니다.


  “뭐라고요? 민지가요? 이를 어째, 아무튼 제가 갈 테니 기다리세요.”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에 저는 신을 신다말고 엄마를 쳐다보았습니다.


  “지금 민지가 병원에 있단다. 민지 아빠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빠와 엄마는 제가 따라 오는 것을 만류했지만 저는 굳이 부모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차안에서 아빠와 엄마는 상황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나름대로 추측하며 걱정을 하셨지만 일단 눈으로 보기 전에는 속 시원한 결론이 없었습니다.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던 민지 엄마는 저의 부모님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민지 엄마.”


  “이게 다 제 잘못이에요. 늦게까지 일하느라 민지가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둘 수가 없었어요.”


  “민지는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많이 다쳤나요?


  민지 엄마는 재봉 일이 끝난 다음에 또 식당에서 새벽까지 웨이츄레스 일을 하셨어요. 새벽녘에나 집으로 돌아오던 민지 엄마는 민지가 돌보지 못한 불찰이 크다며 울먹거리며 어깨를 들썩이셨습니다. 경찰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 이해 못하는 부모님과 민지 엄마를 대신해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습니다.


  민지는 라틴계 갱들과 함께 차를 타고 달리던 중이었고 마침 고속도로에는 경찰이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음주단속 중이었습니다. 이미 일정치 이상의 알코올을 마신 민지 일행들은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리지 않으려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급하게 서두른 나머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다른 차와 충돌해서야 멈춰 서게 되었다는군요.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차가 충돌할 때 민지가 하혈을 하게 되었는데 검사를 해보니 임신 2개월이었다고 전했어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민지 엄마는 통곡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양쪽 차 사망자는 없었고 사고로 인한 중상자는 민지 외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운전자만 음주운전에 대한 책임을 물게 되어 운전면허 취소에 벌금 내는 것으로 해결이 났지요. 음주운전으로 감옥에 갈 수도 있었지만 미성년자에다 초범이었기에 그 정도로 해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민지는 그 사고로 임신중절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학교에 벌써 소문이 파다해서 민지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지요. 민지가 갱들과 어울리다니. 더군다나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이까지 가졌다는 믿지 못할 사실은 저를 혼란과 분노 속으로 처박았어요. 민지가 어떻게 해서 갱 두목의 애인이 되었는지 그 과정은 알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가난한 교회를 이끄는 아빠가 한심하게 여겨졌습니다. 우리 집이 잘 살았다면 민지가 코리아 타운에 이사 가지 않아도 되게끔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거라는 원망을 했지요. 이게 다 민지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한인 타운으로 이사 간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지를 그 지경으로 만든 갱 두목을 찾아가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민지조차 미워지기까지 했어요. 그러면서도 힘든 것은 그럴수록 이상하게 민지가 보고 싶은 거예요.


  ‘민지가 다른 남자의 아기까지 가졌었는데 이제 와서 만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머리 속의 생각을 털어내려 했지만 그건 미워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어요. 학교가 끝난 후 무작정 나섰습니다.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LA로 향했어요. 순전히 이브가 건네준 사과를 받아든 아담에게서 유전된 남자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변명하며 버스를 탔습니다.


  민지가 사는 아파트 문 앞에서 벨을 눌렀더니 후 이즈 잇, 민지의 목소리가 났어요. 긴장한 탓인지 제 목에 뭐가 걸린 것 마냥 헛기침이 나더군요.


  “어……, 어쩐 일이야?”


  갑자기 찾아든 나를 보며 민지가 물었지만 저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민지를 찾아오게 된 이유를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용기 있게 설명할 수 없었으니 말이죠. 건강이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 왔노라고 둘러대고 싶었지만 거짓말도 선뜻 나오지 않더군요. 그녀의 어깨를 세워 막 다그치고 싶었어요. 모질게 후벼 파듯 따지고 싶었죠.


  ‘결국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갱 단원의 일원이 되는 거였니? 어쩌면 너 힘든 것만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고생하시는 네 엄마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속이 좁은 놈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할수록 분하고 눈물이 나서 이 말은 꼭 짚고 싶었어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의 아일 가질 수 있어?’


  막상 민지의 작은 어깨를 바라보니 한 마디 말도 꺼낼 수가 없었어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민지가 어색하게만 느껴졌죠. 그 동안의 엄청난 변화는 전혀 가보지 못한 낯선 문명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여겨졌어요. 처음 민지를 만났던 기억 속의 10살 때로 돌아만 가고 싶었어요. 이제 와서 따져도 소용없는 말들을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히려 민지를 만나러 갈 때보다 더 힘이 빠져버렸고 한없이 무력감에 빠져 그대로 땅에 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민지를 평생 돌보아 주겠다던 책임감으로 마음 뿌듯하던 일들이 보잘것없는 허풍에 불과했다는 수치감에 모든 일이 흥미가 없어졌어요. 새벽이면 일어나 아빠와 손을 맞잡고 기도하던 시간도 일부러 깊은 잠을 자는 척 흔들어도 깨질 않았어요. 사랑의 상처라고 말하기도 우스웠지만 민지 일은 제게도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이고 아픔이었지요. 스스로 고립되길 자처했고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늘 화가 난 듯 눈자위가 불그스름해졌지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뭉쳐진 울분이었어요. 그리고 일부러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시간을 소비했어요. 혼자 남아 있는 공백의 시간들은 정말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자연히 조용히 책을 본다든지 하는 일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요. 가난한 목사님이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랑거리란 내가 줄곧 받아 온 상장이었지요. 근데 성적이 떨어져 점점 바닥을 치고 있으니 부모님의 조바심이란 따로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매일저녁 민지네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딸의 사고로 인해 민지 엄마는 충격이 너무 커서 일을 나가지 못할 지경이 되었지요. 남편이 흑인강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나, 달랑 남아있는 딸마저 어린 나이에 임신까지 하게 되었으니 가장으로서 겪어야 할 고충은 둘째 치고 아마 살아갈 희망조차 상실해서였을 겁니다. 주일이면 아빠는 민지엄마와 민지를 데리러 가셨어요. 민지네 식구들은 주일날 저의 아빠가 인도하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보게 되었어요. 아빠는 자동차 열쇠를 제게 건네주셨어요.


   “앞으로 주일이면 민지네 집에 가서 민지 엄마와 민지를 교회로 픽업하도록 하거 라.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다시 모셔다 드려야 한다.”


  제가 민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아빠는 일방적으로 명령하셨지요. 민지네 가정에 일어난 불행 때문에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냐 안 계시냐를 따져 묻던 차에 그런 심부름까지 해야 하다니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럽더군요. 그전 같았으면 민지와 함께 지낼 생각에 몹시도 신나야 할 일이었지만 민지만 보면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묘한 감정 때문에 얼굴이 굳어졌지요.


  이곳 LA만 하더라도 크고 작은 한인 교회가 일천 오백 개가 훨씬 넘어요. 그 많은 교회가 왠지 다 무력해 보였고 그 틈에서 몇 명뿐인 교인을 놓고 설교하는 아버지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어요. 신앙에 대한 회의가 설 곳이 없을 정도로 제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어요.


  교회에 입당한 지 일주년이 되는 주일이었습니다. 기념 예배 준비 때문에 모두들 분주했습니다. 예배 후 먹을 점심식사를 위해 싣고 온 떡이며 과일들을 차에서 꺼내 교회식당으로 날랐습니다. 입당 일 주년을 기념한다는 일에도 심드렁했던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민지네가 저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었겠냐는 원망의 마음 때문이었어요. 제가 가장 소중하게 아끼던 민지네 가정이 그렇게 몰락해버렸는데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불편하게 남의 교회를 서너 시간 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일년이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아버지는 종일 뿌듯한 미소를 감출 줄을 모르시더군요.


  제한됐던 서러움이 무색할 정도로 태양 볕은 사그러들 줄을 모르고 뜨거웠어요. 실내 냉방기마저 고장이 나서 더는 안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니 아까부터 더듬거리며 민지를 찾고 있었지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밖으로 나왔어요. 교회 건물 뒤편에 자리 잡은 주차장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민지가 주차장 가운데 놓여 있는 나무아래 앉아 있더군요.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마 몸을 숨겼을 텐데 민지가 먼저 나를 발견했고 눈을 마주친 나도 피할 길 없이 멋쩍게 그녀 곁으로 걸어갔습니다. 내가 민지 곁에 가까이 다가서자 미동도 없던 민지가 허공에 말하듯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은 아니었어. 늘 늦게 오시는 엄마를 마중 나가려 아파트 문 밖에 섰었어. 경찰들의 치안이 유난히 소홀히 한 우범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늘 주위의 라틴계 범죄인들의 표적대상이 되었었나봐. 무시무시한 갱들이 날 에워쌌지. 그게 계획적이었을 거라는 짐작은 틀리지 않을 거야. 강제로 끌려 간 그날 이후 난 어쩔 도리 없이 갱 단원이 되었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해야만 했어.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 네가 우리 아파트에 왔다 가던 날,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는지 알아. 날 많이 미워한다 해도 할 수 없고 날 이해해 달라고 말 또한 하고 싶지 않아. 우린 각자의 갈 길이 있는 거야. 나로 인해 네 갈 길에 흔들림이 있다면 그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너로부터 시작된 선택의 문제 일거야. 넌 내가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싶겠지. 변명 같지만 한때는 나도 아버지나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었었지.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경찰학교에 들어 갈 거야.”


  나무 그늘은 그녀의 표정을 가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단호한 그녀의 음성에서 굵은 선으로 지나 간 상처 위에 다져진 진지함이 느껴졌습니다. 경찰이 되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소수민족의 편에 서서 언어를 대신해주고 정의를 보여주려는 그녀의 의지에서 비롯됐겠지요.


  부끄럽게도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저였어요. 아버지를 잃고 또 멕시칸 갱에게 희생양이 되었던 민지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유리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돌보아 주지도 못했으면서 깨어져 버렸다고 투정만 한 꼴이 되었으니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죠. 사실 민지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어요. 미국에 살고 있는 빈민층에 속하는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한인들과의 갈등은 불가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배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민지네 가정이 억울하게 휘말려 들었을 뿐이지요.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저는 다시 아빠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그리고 또 속으로 기도했죠. 민지는 제가 평생을 책임지겠다고 말이죠. 기도가 끝나자 아빠가 말씀하시더군요.


  “졸업 파티에 민지를 파트너로 데리고 가는 게 어떻겠니?”


  어떻게 제 속을 그리도 잘 파악을 하고 계시는지 아빠가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가 착각할 정도였지요. 저는 마지막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벌써 원서를 보낸 동부에 있는 명문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아 놓은 상태였어요. 물론 장학금도 포함해서지요.


  드레스를 입은 민지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인지 아무튼 침착하게 진정할 수가 없군요. 어렵게 이끌고 온 시간을 맞이하는 이 순간에 촌스럽게 자동차 문을 여는 손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떨려 가지고서야 이따가 파티가 끝난 후 용기를 내어 가슴팍으로 그녀를 세차게 끌어안으며 사랑한다는 고백이나 할 수 있을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색의 물방울이 자연이 들추어내는 햇빛아래 일곱 색의 화려함으로 변신한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지금, 내미는 제 손은 이 세상에 다시없을 사랑스러운 그녀가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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