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폭 우 : 신정순(미국) > 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민문학


 

소설 소설 : 폭 우 : 신정순(미국)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96회 작성일 10-04-30 21:21

본문

몸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수술실 입구에는 ‘수술 중’이라는 네온사인이 붉은 야광 색을 띤 벌레처럼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웬만한 무거운 것도 두 손으로 번쩍 들곤 하던 싼체스가 이토록 맥없이 수술대에 누워있게 되다니……. 거리로 넘쳐난 빗물을 퍼내는 야간작업을 하면 이번 겨울에는 꼭 멕시코로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며 즐겁게 휘파람을 불며 집을 나갔던 싼체스였는데…….
문득 대기실 구석에서 히터가 쉬익 쉬익,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몰래 남을 숨어 엿보고 있는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공기 청정기, 필라멘트를 타고 흐르는 전등 안에 고인 전기 등 평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조용한 것들이 그동안 얼마나 우리 생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소동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우우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텔레비전 리모컨의 작동 단추를 눌렀다. 천장 가까이 달려 있는 텔레비전은 주파수가 잘 안 맞는지 바늘을 부수어 놓은 것 같은 자잘한 직선의 무늬들을 그리며 프라이팬에 전 부치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파란 눈의 백인 여자 아나운서의 얼굴이 나왔다. 밤 열한 시 뉴스에서는 싼체스가 당한 사고를 제법 상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 아홉 시 경, 구십사 번 하이웨이 튜이 길 출구 가까이에서 생긴 사고로 피해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이번 사고는 싼체스 마카오 씨 차를 뒤따라가던 승용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마카오 씨의 차가 서너 번 들이받으면서 생긴 사고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마카오 씨의 차가 여러 번에 걸쳐 받힌 점과 사고 직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뺑소니를 친 점으로 미루어 이번 사고가 혹 고의적 살인 시도가 아니었나 의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다각적으로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범인은 아직 체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구십사 번 하이웨이에서 튜이 길로 빠지는 곳은 사고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봉쇄되었으니…….”
여자 아나운서의 얼굴은 지지지, 수많은 바늘비 속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다.
“실례합니다.”
소리 나는 입구 쪽을 돌아보니 경찰복을 입은 거구의 백인 남자가 서있었다. 머리카락과 어깨 부분은 비에 젖어 있었고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상심이 크겠지만 몇 가지 질문에 아시는 대로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혹 고의적 살인 사건이 아닌가 해서요.”
“아, 네…….”
“남편께서 주위에 원한을 살만한 친구나 이웃이 없었는지 생각나는 대로 자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은 싼체스의 직장 생활과 그의 친구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싼체스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본 적이 없고 그들이 초대하는 날에도 싼체스만 갔지 내가 동행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에게 가까운 친척이 있는지 그가 몇 달 전 새로 옮긴 직장은 이름만 알 뿐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싼체스와 그래도 부부로 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에 대해 이토록 아는 것이 없다니.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고 그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부부? 그냥 같이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가 부부라면 그와 나는 분명 부부다.
“뺑소니 차 사고임에는 틀림없지만 좀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목격자 증언이 있었어요.”
“목격자 증언이요?”
“사건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이 경찰서로 제보 전화를 해줬습니다. 혹시 주위에 까만 색 쉐비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없나요? 폭우 때문에 운전자의 정확한 인상착의는 확실하진 않지만 멕시코 청년인 것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멕시코 청년 중에 까만 색…….”
“없는데요.”
나는 단호한 음성으로 경찰의 말을 잘랐다. 이마에선 갑자기 진땀이 송글 배어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까만 색 쉐비… 까만 색 쉐비… 미국에서 가장 흔한 차가 까만 색 쉐비가 아닌가. 몇 천 대, 아니 몇 만대, 몇 십 만대가 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멕시코 청년. 이 나라, 아니 이 동네만 하더라도 멕시코 청년이 얼마나 많은가…….
며칠 전 마크를 데리러 온 요즘 만나기 시작했다는 멕시코 친구.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고 근육이 두드러진 팔에 문신이 새겨져 있는 그 친구가 까만 쉐비 차를 타고 왔다가 마크를 데리고 나간 적이 있었다. 퇴근길에 주차장에서 그 청년과 마크가 같이 차를 타는 걸 우연히 보게 된 싼체스는 평소와는 달리 눈살을 몹시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걘 누구야?”
“몰라. 요즘 사귄 친구 같아.”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놈이야.”
“당신이 어떻게 알아?”
“멕시코 애니까.”
하긴, 그건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끼리는 한 눈에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아까 그 놈은 눈빛에 살기가 들어 있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어떤 짓이라도 할 놈이지. 기회 봐서 마크에게 얘기 해 줘. 깊게 사귀진 말라고 해.”
“내가 놀지 말란다고 안노나, 뭐? 지가 정신을 차려야지. 요즘 내 말 안 들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좀체 마크의 친구들에 대해선 이러쿵저러쿵 평을 하지 않던 싼체스의 말이라 마음에 새겨듣긴 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넌지시 얘길 해 줘야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크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진 못 했다.
마크에게 전에는 한국 친구가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마크와는 달리 사 학년이나 되어서야 한국에서 이민을 와 영어가 서툴렀던 제이슨은 늘 마크에게 숙제 도움을 받곤 했다. 하지만 제이슨 아버지가 주식투자에 성공을 하고 제이슨이 과외 공부를 다니고 성적이 좋아지면서 마크는 제이슨과 부쩍 사이가 멀어졌다. 제이슨과 만나지 않는 마크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멕시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경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자세히 질문한다고 기분 상하셨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보험회사 측에서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보험회사요?”
“혹시 모르셨나요? 오늘이 백만 불을 타는 보험 약정 기간 마지막 날인데…….”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박동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듯하였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어버리고 있었다.
경찰은 윗도리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경찰은 기록을 마쳤는지 수첩을 다시 집어넣었다.
“물론 부인께 혐의가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사고 시간에 집에 계셨더군요.”
“어떻게 아셨나요?”
“그 시간, 아드님과 전화 통화를 했더군요. 보험회사에서 형사 사건 쪽으로도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전화 통화를 조사해 봤습니다. 아드님은 바텐더로 일하는 식당에서 막 퇴근을 하면서 전화를 했던 거구요.”
“아, 네…….”
“아드님은 차가 없다는 게 확실한가요?”
나도 모르게 음성이 높아졌다.
“아, 아, 그렇죠. 아직 못 사줬어요. 직장에 갈 때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지요.”
그래. 마크에겐 아직 차를 못 사줬지. 중고차라도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는데 월부금이 부담스러워 야단만 쳤다. 기껏 사 준 게 제법 속도를 낼 수 있는 고급 모터사이클이었다.
경찰은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손으로 턱을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물었다.
“아직 질문이 더 남았나요?”
“아, 아닙니다.”
경찰의 주머니에서 부르릉, 전화 진동 울림소리가 났다. 경찰은 문자를 들여다보았다.
“아드님도 곧 도착할 겁니다. 그 쪽에서도 조사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군요.”
“아, 그렇군요.”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를 보는 게 두렵기도 했다.


오 년 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마크도 싼체스를 도와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크가 오븐의 조리 시간을 너무 길게 조절해놓는 바람에 고기에 불꽃이 붙고 화재탐지기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 보험회사 직원이 들어왔다.
싼체스는 의자 위로 올라가 잔뜩 손을 뻗쳐 부엌 천장 한복판에 달린 화재경보기를 뗐다. 경보기는 아쉬운 듯 삑삑 두어 번 더 소리를 내고는 잠잠해졌다.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고기 탄 냄새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신도 이리 와 싸인 하지?”
싼체스는 내게 펜을 내밀었다.
“사람 일을 알 수 없잖아. 내가 죽거나 당신이 죽으면 각각 십만 불 씩 나와. 지난 번 친구 장례식엘 갔는데 갑자기 떠나니까 그 부인이 장례식 치룰 비용이 없어서 쩔쩔 맸다는 소릴 듣고 결정한 거야.”
서류를 내밀던 보험회사 직원이 내가 싸인 해야 할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오 년 내로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배우자 위로금이라는 특별보험금, 백만 불을 받게 됩니다.”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백만 불요?”
나는 웃음이 기어 나오는 것을 입으로 가리며 싼체스를 쳐다보았다.
“올해 가입자들에게 주는 특별혜택이래. 확률이 없으니까 회사에서도 손해 볼 건 없고 가입자들 기분 좋게 해주자는 거겠지.”
싼체스는 두 어깨를 으쓱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직원은 서류를 챙겨 가방 속에 넣고 싼체스에게 먼저, 그리고 내게도 악수를 건네고는 문을 나섰다. 그때 등 뒤 쪽에서 쿵 소리가 났다. 마크가 오븐에 들어있던 숯검정이 된 고기 덩어리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있었다.


‘수술 중’이라는 네온사인의 불이 꺼졌다. 초록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대기실에서 나와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안경을 벗으며 피곤한 듯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회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많이 다치고도 아직까지 숨을 쉰다는 게 기적에 가깝습니다. 재수술을 하면 성공 가능성은 5퍼센트 정도인데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중증 장애인이 될 겁니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지금이라도 당장 생명을 잃게 될 텐데 어떡하시겠어요? 부인이 원하시면 언제든 산소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기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싼체스의 아내로서 그의 재수술에 동의하느냐 마느냐, 의사를 표시하는 서류였다. 재수술을 안 한다면 산소 호흡기를 언제 뗄 것인지, 시간 표시도 정확하게 시, 분, 초까지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재수술 동의 난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였다. 5퍼센트, 아니 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그를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0.1퍼센트의 성공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 그래, 포기할 수 없어……. 한숨이 흘러 나왔다.
간호사는 내게 하얀 색의 위생용 가운을 내밀었다.
“환자분을 중환자 입원실로 옮겼어요. 가운을 꼭 착용하신 후 들어가셔야 합니다. 친 가족 외에는 아무도 병실로 출입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아셨죠?”
친 가족? 싼체스에게 핏줄을 나눈 친 가족이 있는가? 마크도 싼체스의 친 가족은 아니다…….
가운을 걸친 후 싼체스가 누워있는 입원실의 문을 밀었다. 이제까지 밀어 본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문이었다.


싼체스는 나의 두 번째 남자였다. 첫 번째 남자는 당시 시카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유학생이었다. 그를 만난 곳은 내가 웨이츄레스로 일하고 있던 한국 식당, <고향집>이었다. 자기 이름이 장우현이라고 소개한 그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채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과부였던 엄마는 미국에서 내내 불법체류자로 살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열네 살에 고아가 되어 버린 나는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우현은 어느 날 내게 반지를 내밀었다. 반지를 받는 대신 나는 그동안 열심히 부어온 적금 통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우현과 살림을 차린 후로 몸은 더 피곤해졌다. 가정을 꾸리기 위한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적금 통장에 넣어둔 돈은 일 년도 못 버티고 바닥이 났다. 일 년에 사만 불이나 되는 우현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얼마나 일을 많이 해야 했던가. 동거 전에는 그냥 <고향집>에서만 일해도 되었는데 이젠 새벽부터 이십사 시간 문을 여는 도넛 가게나 편의점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가면 빨래나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하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그땐 꿈이 있었다. 나도 곧, 그의 부인이 된다는.
그렇게 삼 년 반이 지났다. 어느 날 우현은 내게 이상한 말을 던졌다.
“당신, 몽유병 환잔 줄 몰랐어.”
“몽유병 환자? 몽유병?”
나는 웃었다. 그러다 금세 웃음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어젯밤 무슨 일 했는지 기억 안 나?”
나는 공격을 당한 어린 짐승처럼 발끝이 절로 오므라졌다.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다가갔더니 빈 도마 위에 헛 칼질만 하더라고. 도마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내가 말을 시켜도 눈길 한 번 안 주고 계속 칼질만 계속하더군. 한 이십 분, 삼십 분? 그러더니 그냥 침대로 들어가 자더라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초조했다. 만성빈혈 때문에 종종 어지럼증을 일으킬 때는 있었지만 내게 그런 병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당신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어.”
우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들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나는 자기 전에 꼭 칼을 손이 잘 닿지 않는 가장 높은 찬장에 올려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혹 도마를 꺼내거나 칼질을 한 흔적이 있나 면밀히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마침 식당이 쉬는 날이어서 낮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우현이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를 챙겨 택시로 운반하고 있었다.
“당신 뭐하는 거야?”
“한국으로 떠나.”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언제 돌아오는데?”
“안 돌아와.”
“뭐라고?”
그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젯밤에도 당신 또 식칼 들고 혼자서 빈 도마에서 칼질을 하더라고. 언제 내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과 상담부터 받아보는 게 어때?”
그 말을 한 후, 우현은 떠났다. 미련을 둘 만한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가 떠난 지 한 달 쯤 되었을까? 그의 이름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누런 봉투가 배달되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박사 학위증서가 들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박사 과정이 끝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우현의 공부는 늘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문득 천장에서 한 가닥 거미줄을 타고 거미가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내 숨소리에 위협을 느꼈는지 하강을 멈추었다. 거미는 거미줄에 매달린 채 대롱거렸다. 나는 가까이 놓여있던 학위 증서로 놈을 힘껏 내리쳤다. 누런 진물이 증서 위에 길게 묻어났다. 거미는 박제가 되어 납작하게 눌러져 붙어 있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증서를 아무렇게나 구겨 쓰레기 봉지에 처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알게 되었다. 내 뱃속에서 우현의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해 볼까. 생각도 해봤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나와 그를 연결해 줄만한 아무런 끈이 없다는 것을. 나는 왜 그의 가족, 친척, 친구의 전화번호 하나 갖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는 왜 내게 자기 주위 사람을 단 한 명도 소개해 주지 않았을까……. 지옥 불구덩이 한 가운데 맨발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싼체스를 처음 만난 날은 유난히 해가 눈부시게 빛났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내가 좀 더 싼 아파트를 찾아 멕시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햇볕에 잔뜩 그을린 그와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쳤다. 나는 배가 많이 불러 있었고 양 손에 이삿짐을 가득 들고 있었다. 나의 짐 보따리에 허벅지가 스쳤던 그는 반대편으로 가다 말고 다시 뒤돌아섰다.
“한국 사람이시죠? 이리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제법 유창한 한국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어깨는 옷걸이처럼 딱 벌어졌지만 짙은 눈썹 아래에는 물기가 많아 보이는 맑은 눈이 빛나고 있어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한국 가게에서 일하세요?”
한국 가게에서 일하는 멕시코 사람 중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
“아뇨. 우리 엄마가 한국 사람이에요.”
그러고 보니 입술 선이 전형적인 멕시코 사람과는 달리 가늘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는 입술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김치찌개와 야채 튀김이 놓인 식탁에 앉았다.
“김치찌개 먹을 줄 알아요?”
“알다마다요. 아주 좋아해요.”
그가 막 첫 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는 숟가락을 한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어느 병원이에요? 제가 데려다 줄게요.”
아파트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그만 차 뒷좌석에서 양수를 터뜨렸다. 그리고 병원 침대에 눕자마자 아기가 나왔다.
아기의 첫 울음 소리가 들릴 때 백인 간호사가 말했다.
“아들입니다. 안아보세요.”
간호사는 내가 얼마나 기운이 없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아기를 떨어뜨릴까 봐 손을 내저었다.
“나, 나중에…….”
간호사는 아이를 초록 색 위생용 가운을 입고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싼체스였다.
“아직 안 갔어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는 겸연쩍다는 듯이 웃으며 팔에 안겨있던 아기의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려주었다. 한 눈에는 쌍꺼풀이 있고 다른 한 쪽 눈은 길쭉하고 가늘었다. 아기의 눈이 우현처럼 짝짜기인 것 같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간호사가 출생신고서 서류를 내밀었다. 아기 이름 난이 비어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이름 칸에 마크라고 적고 성을 적는 난에는 내 성을 따서 ‘안’이라고 기입했다. 마크는 싼체스의 영세 명이자 중간 이름이었다.
마크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다. 나는 그날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마크의 학교 소풍에 따라갔다. 버스는 시카고 다운타운 고층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꼬마들이 삐뚤삐뚤 줄을 지으며 걸어갔고 학부형들이 교사의 지령에 따라 서너 명씩 아이들을 인솔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다!”
소리치는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고층 건물에는 높이를 알 수 없는 건물 꼭대기에서부터 동아줄로 만든 그네가 양 갈래로 늘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네모 판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유리창 외부를 닦는 중이었다.
“엄마, 싼체스야!”
마크가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마크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마크가 직접 라이온 킹 그림을 그려 준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싼체스의 모습이 보였다. 싼체스는 스펀지가 달린 막대기를 움직이며 열심히 유리를 닦고 있었다. 한 층을 다 닦았는지 그네가 출렁하고 한 칸 아래로 내려왔다.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서도 햇빛은 비명을 지르며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았다. 문 근처에만 가도 늘 도미니카 커피의 진한 향기가 났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야생세계>는 그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위험하지 않아요?”
“뭐가요?”
“유리창 닦는 거. 몰랐어요. 그냥 청소만 하는 줄 알았지.”
“아, 그거요. 유리 닦다가 샌드위치도 먹고 플라스틱 병에 오줌도 싸고 하는데요, 뭐.”
그가 넓적하고 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높은 데서?”
“높지 않아요.”
“높지 않다고요?”
“아래를 안 내려다 보거든요. 유리창만 보거든요. 일 층 유리창이나 백 층 유리창이나 똑같잖아요. 그거 알아요?”
“…….”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 확률보다 고층 유리창 닦다가 죽은 사람 확률이 더 적다는 거요.”
“왜 그렇죠?”
“유리창 닦는 사람들은 대부분 밀입국해 들어온 사람들이에요.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지요. 밤에 총소리를 들으며 국경을 넘어본 사람들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춤을 추라 해도 무섭지 않아요. 뒤에서 총 겨누는 사람이 없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
엄마? 느닷없이 엄마 얘기는 왜? 나는 싼체스를 처음 만나던 날, 자기 엄마가 한국 여자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했다.
“국경을 넘어오다가 돌아가셨어요. 밀입국 할 때요. 그믐밤이었지요. 캄캄한 들판을 기어가는데 뒤에서 총소리가 났어요. 미국 경찰들이 쏘아대는 무차별 사격이었어요. 총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바로 뒤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났어요. 들켰구나. 직감적으로 알겠더라고요. 내 옆에서 기어가던 엄마가 갑자기 내 등 위로 올라탔어요. 총알이 엄마의 등을 뚫었어요. 난 그 덕에 살아났지요.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잘 살아라. 죽어서도 널 지켜주마.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텔레비전에서는 작살을 맞은 상어가 더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장면이 계속 되고 있었다. 석양빛에 물든 바다는 어디가 상어의 상처에서 나온 붉은 물이고 어느 부분이 석양빛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어지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가 새로 끓인 커피를 내게 내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몽유병 앓고 있는 사람 본 적 있어요?”
싼체스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마크 아빠가 그랬어요. 내가 몽유병 환자라고. 칼을 들고 자기에게 언제 덤빌지 모른다고 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날 떠났고요.”
그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수면제가 거기 묻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잠으로 가는 길이 거기서 시작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마크가 워싱턴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나는 싼체스의 아파트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려 하니 뭔가 팔을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다. 끈이었다. 싼체스의 팔과 내 팔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 너무 단단하게 묶여 있어 이빨을 사용하여 끈의 매듭을 풀어야 했다.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 번 터진 웃음은 계속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아주 크게 웃었다.
언제부턴가 서로의 팔에 끈을 묶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부엌 정리를 하지 못 하고 먼저 잠이 든 다음날 아침이면 전날 밤 과일을 깎아먹느라 사용했던 칼이며 포크가 그냥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싼체스는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이라 해서 따로 높은 곳에 숨겨두거나 하지 않았다. 혹, 우현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일었다.
마크가 중학생이 되던 해, 싼체스는 나와 결혼을 했다. 마크도 늘 자기에게 친절한 싼체스 아저씨가 아빠가 되었다며 좋아했다. 결혼식을 특별히 올린 건 아니었다. 둘이 함께 시청에 가서 결혼신고 서류를 작성했고 나는 금반지를 그의 손에 끼어주었다. 싼체스는 내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목걸이 가운데는 레이스 장식이 달린 수건을 머리에 덮어 쓴 성 마리아를 닮은 여인이 새겨져 있었다.
“꽐라루페에요.”
“꽐라루페?”
“멕시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성모상이에요. 엄마가 늘 몸에 지니고 있던 목걸이에요.”
나는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그가 등 뒤로 와서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싼체스의 머리 부분은 온통 붕대로 감겨있었고 얼굴부분도 산소호흡기로 덮여 있었다.
마크는 무얼 하는 걸까? 취조가 끝났다면서. 왜 아직 오질 않는 걸까? 며칠 전 느닷없이 마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싼체스를 사랑해?”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물어보면 안 돼?”
“글쎄…….”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안 살겠지.”
“그래? 의외네.”
마크는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가죽 장갑을 낀 후 탁탁 손바닥을 두들기더니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아래층에서 오토바이 엔진 거는 소리가 부르릉 들려왔다. 나는 후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가? 조금이라도 그를 사랑했다면 왜 그가 그렇게 아기를 기다리는데도 몰래 피임약을 먹어왔던가.
병실이 춥게 느껴졌다. 실내온도 조절계의 눈금 바늘을 조금 올렸다. 바늘은 변화를 감당하는 게 힘들다는 듯이 파르르 떨었다. 싼체스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답답했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퍼붓고 있었다. 번쩍, 번갯불이 비쳤다. 땅에서 꺾인 나무의 뿌리가 뒤집혀진 채로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 제단에 바칠 제물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키고 하늘 이 편에서 저 편까지 달리고 있었다. 하늘이 쪼개지고 있었다.
커튼을 다시 닫는 순간, 귀에서 윙 소리가 나면서 천장이 빙글 돌기 시작했다. 현관 바닥이 쑤욱 올라오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더니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또 빈혈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거의 기다시피하며 싼체스의 침대 머리맡에 달려있는 비상벨을 향해 다가갔다. 벨에 손을 뻗는 순간, 머리 위로 압력기 같은 것이 내리꽂히면서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의 실이 잔뜩 헝클어져 있는 공간 안에는 나도 그도 아무도 없었다.


깨어나니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마크가 옆에 서 있었다.
“엄마, 이제 깨어난 거야? 바로 오려 했는데 그러질 못 했어. 모터사이클이 고장 났나 봐. 엔진에 물이 들어갔는지 시동조차 안 걸렸어. 택시도 안 오겠다고 그러고. 장난이 아니었어. 한 치 앞도 안 보였거든. 그렇게 억수로 퍼붓는 비는 처음 봤어. 그래서 늦었어. 미안해. 싼체스 마지막 순간을 못 봤어.”
마, 지, 막, 순, 간?
다시 한 번 빙글, 천장이 돌았다.
그가 죽었다.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마크는 커피 한 잔을 내게 내밀었다. 커피는 따스했지만 너무 쓰게 느껴져 마실 수가 없었다.
“커튼 걷어줄까?”
마크가 물었다.
“마음대로 해.”
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벽을 향하여 모로 돌아누웠다.
“엄마. 잘 했어. 싼체스도 엄마가 잘했다고 할 거야. 싼체스가 엄마에게 살아서 줄 수 없었던 돈, 주고 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돼.”
“무슨 얘기야?”
나는 몸을 다시 돌려 마크를 쳐다보았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려져 숨이 가빠졌다.
“엄마, 혹시……. 기억 안 나? 어젯밤 일?”
“아니. 아무 것도…….”
“엄마, 새벽녘에 간호사한테 그랬다며? 싼체스 산소호흡기 떼어 달라고. 보험회사 직원한테도 알려달라고 했다며? 의사한테는 직접 전화까지 했다며? 재수술 안 할 테니 지금 당장 사망신고서 떼 달라고. 기억, 안 나? 야근하던 간호사 둘 다 같이 들었다고 하던데…….”
숨이 콱 막혀왔다. 그래, 그런 꿈을 꾸었었다. 꿈인 줄 알고 꾸었었다. 분명 꿈이었다. 꿈이어야만 했다. 내가 싼체스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5퍼센트 아니라 1퍼센트, 아니 0.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수술을 해보아야 했다.
눈을 감았는데 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그가 걸어주었던 목걸이가 손에 잡혔다. 목걸이의 가운데에 달린 꽐라루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문득 눈앞에 어떤 여인이 떠올랐다. 모습의 윤곽은 있는데 무게감이 없는 듯한 얼굴. 멕시코 복장을 한 한국 여인이었다. 가난 때문에 멕시코 농장까지 흘러 들어와 멕시코 남자와 결혼을 하여 싼체스를 낳았던 여인. 국경을 넘다 아들의 몸을 덮고 아들 대신 죽어갔던 여인. 싼체스가 자기 인생의 중심이었던 여인……. 얘기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왜 이토록 또렷이 떠오르는 걸까. 여자의 얼굴은 잠시 꽐라루페의 얼굴과도 겹쳐졌다. 여자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을 잃어 아무 생각을 하지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노을빛이 바다에 잠겨든 듯한 그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마크가 문을 열자 검은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생명보험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기 시작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문가에서 마크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듯하더니 악수를 나누곤 나갔다. 마크가 내 한 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엄마. 잘 할게.”
아들의 목소리에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던 사람이 오랜만에 쉴 때의 안심 같은 것이 묻어났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이 꺼끌꺼끌 했다. 물만 마셨는데도 모래가 잔뜩 씹히는 듯 했다. 눈꺼풀이 주체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