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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 스팅키 : 박혜자(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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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72회 작성일 10-04-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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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키


우수상│박혜자(미국)


스팅키는 어딜 갔을까? 난 얼마 전 하이웨이 287 east를 달리다 까만  개 한마리가 하이웨이 가장자리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 개는 다리를 포개고 옆으로 드러누운 자세인데다 얼굴은 하이웨이 반대편 쪽으로 향해있어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새벽이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그 죽은 개는 분명 까만색 레버도르(labrador)종류였다. 스팅키가 사라지고 난 뒤 2주쯤 지난 뒤라 난 그 죽은 개가 스팅키인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날 새벽, 나는 가게에 가는 중이었으므로 돌아오는 길에 저 죽어있는 개가 스팅키인지 확인하리라 마음먹고 그냥 지나쳤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대편 하이웨이선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개를 나는 다시 보았다. 개는 분명 까만색이었으며 크기도 스팅키와 비슷해보였고 한 눈에도 윤기 없는 털이 늙은 개 같아 보였다. 이번에도 나는 하이웨이여서 정차를 못한다는 핑계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유리창을 통해 죽은 개를 확인했을 뿐이다. 그런 탓에 그 개의 얼굴과 다리의 종기는 볼 수가 없었다.



스팅키는 우리가 뉴왁이라는 컨추리 지역으로 이사 오고 나서 우연히 우리와 함께 같이 살게 된 개의 이름이다. 이사 오고 나서 여름이 바로 시작되었다. 이사를 5월에 했으니 텍사스날씨로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그해 7월 어느 날 해질 무렵 스팅키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의 탈진한 모습으로 우리 집 창고가 있는 곳에 와 쓰러졌다. 그때 제차 청소를 하고 있던 앤드류가 스팅키를 보더니 안 된 마음에 물을 한 그릇 떠다줬는데 이튿날 아침이 되어 밖에 나가보니 이개는 여전히 어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제 앤드류 말로는 다리 쪽에 큰 종기가 몇 군데 보이고 양쪽 눈에 누런 눈곱이 잔뜩 끼어 있는 게 병들어서 누가 버린 개 같다고 했다. 나는 앞마당에 잡초를 뽑으면서 짐짓 저한테는 관심도 없는 양 그 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걸 아는지 스팅키는 남편 주위만 어슬렁거리며 따라다녔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그 개는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고 얼마나 떠돌이생활을 했는지 냄새가 역하게 났다. 눈에는 누런 눈곱이 잔뜩 끼어 있는 게 어디가 아픈 개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보다 못한 내가 오늘 당장 내쫓더라도 목욕은 시켜서 쫒아야겠다고 물 호스를 가지고 그 개 옆으로 갔다. 개는 목욕을 시키려하자 물을 사방대로 털며 자꾸 도망을 가려 했다. 그때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건너편집 스펜서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우리집 쪽으로 걸어왔다. 이사 오고 나서 서로 먼발치에서 손을 흔들고 인사는 했지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부부보다 한 십년은 젊어 보이는 이 스펜서 부부는 한눈에도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애견애호가들 같았다. 이집에는 개를 세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오후가 되면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개들과 놀고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날 스펜서는 강아지용 샴푸를 들고 와서는 사실 며칠 전부터 이 개를 이 동네에서 봤노라고 했다. 어제도 자기 집 뒷마당 쪽으로 이 개가 들어오려고 했었는데 자기 집은 펜스가 높아서 못 들어오고 우리 집 쪽으로 걸어가는 걸 봤는데 한눈에도 아픈 개 같았노라고 하면서 개를 자세히 보더니 다리에 종양이 커 보이는 게 암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보기에 종자는 좋아 보이는 개인데 늙고 병드니 주인이 안락사 시키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해서 다소 시내와 떨어진 이곳에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은 시내에서 개를 키우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거나 개가 병에 걸리면 시골 동네에 개들을 버리고 가서 이런 개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날 스펜서는 개한테 필요한 걸 이것저것 가져다주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기한테 부탁하라고 하면서 관심을 많이 보였다. 사실 그날 나는 개보다는 이 이웃들에게 조금 놀랐다. 왜냐면 평소엔 그렇게 서로 말붙일 일들이 별로 없고 관심들이 없다가 이 개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는 스펜서네도 그렇거니와 그 옆집인 타미네에서도 부쩍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 와서 간단히 인사는 했지만 이 두 이웃과 우리는 별로 왕래 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우리가 개를 한 마리 키움으로서 이웃들과 뭔가 공통의 분모가 생긴 것이다. 사실 남편이나 나나 미국에서 산지는 거의 20년이 되가는 데도 우리는 아직도 이웃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 후로 이 떠돌이 개는 우리 집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또한 우리부부는 본의 아니게 병에 걸린 늙은 개를 거둬서 키우는 인정이 넘치는 동양인 이웃으로 소문이 났다.


 


나는 사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 관심도 없고 키우는 방법도 잘 모르고 동물과 잘 지내는 방법은 더더구나 잘 모른다. 그런데도 이 개가 거의 여름이 지나갈 무렵까지 우리 집에 머물게 된 것은 사람을 귀찮게 하는 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내가 집에서 쉬는 날이어서 유심히 보니 이 개는 집안에 누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다가 누군가 인기척이 나면 그때야 기상을 해서 어슬렁거리며 다녔다. 특히 앤드류와 남편을 잘 따랐는데 앤드류는 자고나면 스팅키의 눈에 낀 누런 눈곱을 제 손으로 떼어주곤 했다. 난 보기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 그 누런 액체를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닦아 내는 게 참 내 아들이지만 대견하기도 하고 비위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어쨌거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사랑하는 법을 그 애는 엄마인 나보다도 더 잘 아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애 에릭은 그 개가 우리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안했지만 그렇다고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개의 이름을 스팅키로 지은 것도 에릭이었다. 첫날 개를 한번 쓱 보더니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주저 없이 스팅키로 불렀다. 그 뒤 우리 온 식구도 그 개를 스팅키로 불렀다. 스팅키가 영어로는 냄새가 난다는 뜻의 형용사인데 우리는 그 이름이 재미있기도 하고 특이하기도해서 그 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다들 좋아했다. 남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일 끝나고 귀가하면 아이들에게 스팅키는 잘 있었냐고 물어보며 은근히 스팅키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었다. 스팅키는 주로 뒷마당 포우치에서 자고 먹고 했는데 스팅키가 오고 난 뒤 포우치는 빈공간이 없게 되었다. 이사 온 뒤 우리는 야외용 식탁과 의자 여섯 개를 포우치에 들여놨었다. 여름날 저녁 무렵이면 지는 텍사스의 석양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요요마의 첼로연주를 포우치에 설치해놓은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듣고는 했다. 그런데 스팅키가 오고 난 뒤 포우치는 스팅키의 살림살이들로 점점 발 디딜 틈이 없게 되고 점점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나날이 사는데 필요한 게 참 많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스팅킨 늙어서 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밥도 마른개밥이 아닌 부드러운 통조림 밥이 필요 했고 늘 털이 한 움큼씩 빠져서 온 마당에 날라 다니기 때문에 그 부석부석해 보이는 털을 정리하기위해서 촘촘한 빗도 필요했다. 그리고 저녁에 산책을 나갈 때 목에 두르는 끈도 필요했다. 사실 스팅키는 기력이 떨어진 탓인지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개들처럼 저한테 놀자고 공을 던져주어도 별 반응이 없었다. 스팅키는 너무 늙고 병들어서 우리 집엘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스팅키도 한때는 주인집의 기쁨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짐작을 하며 우리는 그 개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그저 쉼터를 제공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집에 아무도 없고 저와 나만 있으면 나를 지키는 양 꼭 식탁이 보이는 유리창 앞에 앉아있거나,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우리 집 주변을 맴돌며 집 점검을 하는 시늉을 하는 것은 그래도 제 딴엔 밥값을 한다는 뜻 같기도 해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여름이 다가고 애들이 각자 학교기숙사로 돌아갔다. 동시에 남편은 오후근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집에는 나와 스팅키만 남기 시작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주에 나는 이런 저런 일로 바쁜 일이 생겨서 집엘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해질 무렵 집에 들어가면 스팅키는 차 엔진소리를 듣고 걸어 나오는 것인지 뒷마당에서 차고 쪽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와서 나를 맞이하곤 했다. 한 번은 집에 와서 보니 뒷마당에 스팅키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뒷마당과 통해있는 식탁 쪽 문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식탁주변과 키친 아일랜드주변에 식빵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뭔가 한바탕 소란을 떤듯 부엌이 잔뜩 어질러있었다. 난 순간 도둑이 들어왔나 하고 놀라서 이 방 저 방을 점검해봤는데 별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누가 이랬지?” 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안방 문을 여니 스팅키가 천연덕스럽게 침대발치 카펫에 앉아있었다. 마치 그자리가 예전부터 제자리였던 것처럼 스팅키는 내가 방에 들어갔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간, 나는 스팅키가 전주인집에서는 집안에서 키운 개였음이 짐작이 갔다. 왜냐면 방 한쪽에 앉아있는 스팅키의 모습이 참으로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현관 앞 화단에 물을 주다가보니 건너 편 스펜서 집에 웬 노부부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스펜서는 그 노부부와 잠깐 애기를 하더니 손으로 우리 집을 가리켰다. 나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노부부가 잃어버린 개나 고양이를 찾으러 다니나 보다 생각하고 계속 물을 주고 있었는데, 그 노부부가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노부부는 대뜸 나에게 자기들은 개 베이비시터라고 하면서 이집에 개 베이비시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들은 하루에 두 번씩 와서 개밥이랑 물도 주고 주인이 늦게 들어오는 집은 밖에 불도 미리 켜준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여행을 가면 모를까 지금은 필요치 않다고 애기를 했다. 그러자 그 부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네가 알기로는 이 집은 개 베이비시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고개를 저으며 돌아갔다. 나는 순간 스펜서가 전화를 해서 저 사람들이 이곳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동네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저 집이 뭐가 필요한지를 어떻게 알고 찾아올 것인가? 더구나 미국에 별별 세일즈가 다 있지만 개 베이비시터를 해준다고 특정 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던 터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집에 늦게 들어올 때마다 우리 집 쪽을 쳐다보고 있던 스펜서의 얼굴이 생각났다. 하루는 스팅키가 그 집을 향해 가려하기에 우리 스팅키가 내가 없을 때 너를 귀찮게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사람 좋은 것처럼 보이는 백인 남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는데 며칠 사이에 우리가 개만 혼자 집에 방치해둔다고 개 베이비시터한테 전화를 걸다니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웃이었다. 제가 그렇게 우리 개가 걱정이 되면 우리에게 직접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꼭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게 미국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나미가 떨어졌다. 내가 한국에서 살 때 어떤 교수가 일본인에 대해 쓴 책에 속마음과 겉이 다른 일본인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미국 살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 사람들, 특히 백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것은 가히 일본인들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특히 장사를 백인동네에서 해본 사람들은 겉으로는 절대로 싫은 내색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단골집을 바꾸어버리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소송을 하는 손님들도 대부분 백인들임을 안다. 반면 흑인들이나 멕시칸들은 그 자리에서 투덜대거나 말싸움을 해도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찾아온다. 사실 기질적으로 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비즈니스를 하는 많은 한인교포들은 위험한 면도 있지만 흑인이나 멕시칸동네에서 장사하는 게 속은 더 편하다고도 한다. 아마도 저 스펜서 같은 백인들한테 느낀 감정이리라. 뭐든 사람과 사람끼리 직접 부딪치지 않고 제삼자나 공공기관을 통해서만 일을 해결하려 하며, 이런 방법이 더 합리적이고 서로 감정 다치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집 나간 부모는 찾지 않으면서 집 나간 애완견은 현상금을 걸고 찾는 애완견 왕국에서 어찌 보면 우리 부부의 개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우리는 개를 돌봐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일찍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스펜서에게 우리부부는 밖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아서 저 개를 잘 돌볼 수 없으니 이 동네에 개를 갖다 줄 수 있는 쉘터나 저 개를 키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스펜서에게 이 부탁을 한 것은 어쨌든 스팅키가 우리 집에 온 뒤에 이런저런 도움을 줬기에 스팅키를 떠나보내더라도 알리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과 우리가 우리식대로 개를 혼자 놔두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또 다른 개 베이비시터사건과 같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나의 우려가 다소 오버됐다고 해도 나는 이웃이 내 생활을 간섭하는 일 따위는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은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에 집에 오니 그 스팅키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집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스팅키는 보이지 않았다. 그 절룩거리는 다리로 절대 스스로 나가지는 않았을 텐데……. 나중에 스펜서에게 오늘 우리 스팅키를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침에 잠깐 보았다고 짧게 대답하더니 얼른 자기 집 뒷마당으로 휑하니 걸어가 버렸다. 난 그날 스펜서의 태도가 평소와는 다른, 뭔가 우리에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스팅키와 이별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스펜서에게 스팅키가 있을 곳을 부탁한 그 다음날 스팅키는 사라졌다. 뒷마당에 있는 스팅키의 물과 밥이 그대로 인 것으로 보아 스팅키는 그날 오전 중에 누가 데려간 게 분명 했다. 나는 지금도 스팅키가 제 발로 걸어 나갔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저를 떠나보낼 생각을 했더라도 그 개는 스스로 집을 나갈 개가 아니었다. 저나 우리나 서로 떠나보낼 준비도 안 됐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이 편치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우리가 저의 주인이 되었지만 주인이 자기 집 개의 행방을 모르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시내 살 때 같으면 이웃들이 많으므로 그 중에 반드시 본 사람들이 있을 텐데 생각할수록 모를 일이었다. 이곳에 살면서 느낀 것은 미국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살아보면 이 사람들처럼 은근히 남 일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도 드물다. 집집마다 유리창을 브라인더로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브라인더 저편으로 이웃들이 뭘 하고 있는 지 다 내다보고 있음을 나는 안다. 스팅키가 사라진 날은 토요일인데 우리 집 앞 두 집은 쉬는 날이었다. 그 날도 우리가 집에 왔을 때 그 두 집은 스펜서네 뒷마당에 같이 있었다. 두 집이 같이 공모를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스팅키 거취문제를 부탁했었는데 만일 스펜서가 애니멀쉘터를 불렀다면 우리에게 속일 이유란 또 뭐란 말인가?



내가 저에게 우리 몰래 스팅키를 어떻게 처리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생각할수록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날 아침 우리 부부가 집에 없어서 자기들끼리 스팅키를 애니멀셀터에 보냈다고 해도 오후에 우리에게 설명을 하면 되는 일을 이렇게 모른 대니, 정말 그들이 모른 대니, 모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남편도 그들이 뭣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스팅키는 제 발로 나갔다고 쉽게 단정을 했다. 무슨 문제든 남편에게 오면 이렇게 간단하다. 그러나 나는 남편처럼 그렇게 쉽게 사실이 인정되지가 않았다. 스팅키가 사라진 사실만 인정할 뿐 사라진 경위에 대해선 아직도 쉽게 수긍이 가질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는 부분은 나도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스팅키를 떠나보낼 생각을 맨 먼저 한 사람은 나이므로, 그리고 떠나보낼 마음이 있다는 메시지를 스펜서에게 흘린 사람도 나이므로 스팅키의 행방에 대해서 나도 분명 일련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내심 스팅키의 사라짐에 대한 책임을 저 이웃들에게 돌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떠나보내기 적당한 때는 언제인가? 만일 스펜서가 나에게 이야기를 먼저하고 스팅키를 보냈다면 내 마음은 홀가분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상념들이 두고두고 꼬리를 물고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 나는 하이웨이에서 까만 개의 시체를 본 것이다. 그 개가 스팅키였던 아니었던 미국에서만이 겪을 수 있는 이 상황이 이십 여 년의 나의 이민생활에 또 다른 수수께끼를 남기고 간 셈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보지 않은 혹성에 사는 외계인들하고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게 아니다. 같은 지구에서 같은 해와 같은 달을 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지구인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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