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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어머니의 가발 [미국/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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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75회 작성일 10-04-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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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오정자] 어머니의 가발

긴 겨울을 견뎌낸 수목들이 수런거리고 있었다.
봄아, 어서 오라! 겨울나무 아래를 거닐면 봄이 급하다 라고 봄을 노래한 상허 이태준 선생의 무서록에 나오는 문구를 주절거리기라도 하듯이.
사월 초순임에도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가랑비가 봄을 재촉하고 있을 뿐, 닿지 않는 곳에 군데군데 잔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백인 일색인 우리 동네는 해마다 봄이면 집집마다 정원에 수국, 튤립, 목련, 개나리꽃들이 피어나 꽃동네로 변하곤 한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리워지는 오월에 친정 어머니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셨다. 오래전부터 계획했으나, 지병인 고혈압과 합병증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혼자가 아닌 작은 남동생 부부와 동해하셨다. 미시간 주립대학(Northern Michihan University)을 졸업하는 큰 남동생의 졸업식이 있어 겸사겸사 딸자식이 고국 땅을 떠난지 13년 만에, 그렇게도 두려워하시던 비행기를 큰 마음먹고 타셨던 것이다.
다행이도 날씨가 좋았던 덕에 요동이 심하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었다고 흡족해 하셨다. 어머니와 자은 남동생 부부는 큰 남동생의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짐을 챙겨 자동차로 미시간에서 이곳 매사추세츠까지 두 남동생들이 교대로 운전을 하여 내려오시게 되었다. 오는 도중에 뉴욕 주의 버팔로를 들러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셨다고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침식작용으로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으로 양분되는, 나이아가라 강 가운데 위치한 북아메리카 제1의 폭포이다.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내뿜는 불가항력적인 물줄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폭포의 장관을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어머니와 동생 가족은 땅거미가 어슴푸레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도착하였다.
몇 해 만에 본 어머니의 모습은 여독 때문인지 예전보다 더욱 수척해 보였다. 병색이 짙어 보이는 얼굴과 눈가엔 논바닥처럼 갈라진 굵은 주름이 얽혀 있어 복받쳐 오는 감정을 추스리느라 한참을 눈을 맞출 수가 앖었다. 그리움으로 보낸 시간만큼, 세월을 닮아간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집에 머무르시는 동안 멀리 여행하지 않고, 비교적 가까운(왕복 300마일) 거리에 있는 뉴욕의 명소들과 내가 살고 있는 피츠휠드 시 근교를 구경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피츠휠드 시는 인구 5만의 소도시로 산과 호수가 잘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전원도시이다. 느릿느릿 오는 봄은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의 합창으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고,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엔 탱글우드(Tanglewood)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어,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의 명연주를 감상하며 한여름 밤의 더위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을엔 설악산의 선홍빛 단풍에 버금가는 뉴잉글랜드의 불타는 단풍 절겨에 취해 살아, 어느 누구라도 한번쯤은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오색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인근 산의 멋진 설경이 주는 감동에 넋을 잃기도 하는데, 강원도의 어느 한 도시를 연상케 하는 곳이 바로 피츠휠드 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공기 좋은 집 근처를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운동삼아 산책하는 것도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양옆 길가에 늘어선 단풍나무들은 오월이면 풍성한 잎사귀들로 녹음을 만들어 준다. 나무 아래를 거니노라면 숲속에 온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산자락에 걸린 뭉게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산을 빽빽이 채운 나무들이 한폭의 풍경화로 펼져지고 있다. 맑은 하늘 아래 날아다니는 새들도 우리 모녀의 만남을 기뻐하듯 온종일 지저귀고, 재회한 모녀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동네 산책로를 오롯이 걷고 있었다. 잘 깎인 잔디 사이로 싱그러운 풀냄새가 후각을 자극해 왔다.
얼마만큼 걷고 있을 때, 어머니는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짐을 느끼셨던지 손이 저절로 머리로 올라갔다. 순간 당황하시며 야야, 내 가발이 없어졌구나!

네? 가발이요?
바람 한점 없는 맑은 봄날이어서 바람이 벗기지는 않았을 테고, 땅에 떨어졌나 싶어 찾아보았으나 가발은 온데 간데 없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오던 길로 되돌아 가보니, 사람 키 정도가 다닐 만큼 낮게 뻗은 가지에 까아만 가발이 달랑 매달려 있었다. 장난기 심한 사내아이처럼 빈 가지가 살짝 벗긴 것이다.

가발을 다시 찾은 기쁨에 우리 모녀는 박장대소를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웃고 있었지만, 웃음 뒤엔 왠지 모를 서글픔이 세월의 강 위에 일렁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꽤 미인이셨다. 전형적인 한국미가 풍기는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훤칠하셔서 미인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를 지니셨다. 모임에 외출이라도 하시는 날엔 한시간이나 걸려 꼼꼼히 화장을 하시고, 옷입은 감각도 뛰어나 그리 비싸지 않은 옷으로 최고급의 옷인 양 연출해 내는 패션 감각도 지니고 계셨다.

지금도 곱게 화장을 한 후 가발을 쓰고 외출하시면 당신 나이로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골다공증으로 등이 휘고, 비단결같던 검은 머리가 퍼석한 흰머리로, 그나마 별로 남지 않아 훤한 두상을 가발로 가려야 하는 지금의 어머니의 모습은 적잖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목소리만은 세월도 비껴갔는지 젊었을 때의 음성 그대로 꾀꼬리 소리이다.

세월 앞에 인간은 평등한 것 같다. 부자도 권력가도 모두 세월 따라 젊음은 퇴색되고, 석양에 지는 노을빛을 바라보아야 하는 노년으로 채색되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사남매 중 장녀인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다고 한다. 유아기에 홍역을 앓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살아났으니 어찌 부모에게 있어 애틋한 자식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 후, 화초처럼 키우다 보니 한여름 날 달리는 시내버스의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들이마시기만 해도 감기에 걸리곤 했었다.
옛말에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 했던가. 아들을 선호하던 우리네 선조들은 첫딸을 낳은 섭섭함을 그렇게 위로했던 것 같다. 늘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맏딸이 당신 곁을 떠나던 순간부터 강한 어머니의 감서응 자시능 지탱하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딸 떠난 빈자리에 쓸쓸함과 우울함만이 채워져 떠남의 현실을 쉽게 덜쳐버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 그리움의 세월을 사신 것이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 혈압이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식 사랑이 각별한 한국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먼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딸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리움과 걱정으로 숱한 날들을 보내셨으니 건강한 사람인들 어찌 병이 나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어머니는 고혈압이 지병이 되어 합병증과 함께 지금껏 고생하며, 나이만큼 빠른 속도로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절 가듯 우리의 삶 그렇게 변하는가 보다.
연둣빛 새순이 움트는 봄에 태어나 신록의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내고 노을빛이 물드는 황혼의 노년기에 접어들면, 비우고 떠나야 함을 준비하며 얼어붙은 겨울 강으로 떠나는 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풀내음 싱그러운 어느 봄날, 빈 가지가 벗긴 어머니의 가발사건은 지금도 뒷이야기로 남아 가끔 떠올리며 웃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나의 가슴엔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남아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리워지는 오월이면, 금방이라도 이름을 부르며 내게로 달려올 것만 같은 어머니에게로, 가보고 싶은 향수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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