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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좌우하는 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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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wha 댓글 0건 조회 1,375회 작성일 11-03-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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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장맛이 좋은 집에 복이 든다’고 했습니다. <증보산림경제>에도 “장(醬)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은 장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이처럼 주부는 물론 집안의 어른인 가장까지 정성을 쏟던 장 담그기가 어느덧 옛일로 잊혀가고 있습니다. 번거로워서, 혹은 맛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마음을 바꿔보세요. 직접 해보니 이처럼 싱거운 일도 없습니다. 담근 뒤에 얻는 그 뿌듯한 만족감을 여러분도 경험해보세요.

요즘 내 주변 사람을 보면 장을 직접 담가 먹는 이가 드물다. 나 역시 작년까지는 장 담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장 담그는 모습을 봐왔고, 음식 공부를 하며 수차례 배웠으며, 우리 음식을 만드는 데 조선간장과 된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입에 꼭 맞는 장을 ‘제대로’ 담그는 분을 알고 있고, 그분께 가져다 먹기 때문에 별로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참 전부터 장이 담그고 싶어졌다. 우리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사명감도 들고, 또 내가 담근 장맛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장을 정월에 담가야 하는 이유 어른들은 항상 “장은 정월 말날 (午日: 말의 날)에 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담가야 부정을 타지 않고, 맛있는 장이 된다고 믿었다. 음력 정월에 담가야 하는 이유는 계절적으로 그때 담가야 장이 쉬 상하지 않고 잘 발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수확한 농작물과 농기구 등의 갈무리가 끝난 즈음, 그러니까 음력 10월부터 12월 사이에나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 짬이 났을 것이다. 게다가 메주는 오랜 기간 서서히 발효시켜야 하기 때문에 벌레가 없고 쌀쌀한 날씨에 만들어야 제격이다. 이때 빚은 메주가 알맞게 뜨는 시점이 바로 정월 즈음이다. 또 설날 명절을 보내고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되는 음력 2월전은 농촌이 가장 한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력 정월이 장을 담그기에 가장 알맞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말날을 고집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본래 장을 담그기 좋은 날이 말의 날, 소의 날과 같이 털이 있는 짐승의 날인 유모일 有毛日로 꼽혔다. 그중 피가 가장 붉고 진한 말날에 담가야 장도 진하고 맛도 깊게 완성된다고 생각했단다. 또 소와 말이 콩깍지를 즐겨 먹기때문에 장맛이 좋다는 주술적 관념도 한몫했다. 그뿐인가, 세시 풍속 자료를 보면 우리 선조들은 신중하게 날을 잡아 장을 담근 것은 물론, 장을 담그기 사흘 전부터 외출을 삼갔으며 장 담그는 여인의 입을 창호지로 봉했고, 장을 담근 후 삼칠일 동안은 상갓집에도 가지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장 담그기에 온 정성을 쏟았다.

예로부터 전해온 이러한 풍습과 생각을 미신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의미로 여긴다. ‘장맛이 좋으면 복이 깃든다’는 말 역시 장맛이 좋아 가족이 맛있게, 즐겁게 식사하면 그만큼 건강해질 것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족의 건강만큼 큰 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좌충우돌 장 담그기 경험담 선조들처럼 정성을 쏟지는 못하지만 직접 장을 담근 다음 그 기록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독자들이 책을 읽고 장을 담그는 시점이 음력 정월이 되도록 한 달 먼저 장을 담가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인 메주 구입부터 걱정이 앞섰다. 메주를 띄울 시간도 없지만, 도시에서 메주를 잘 띄우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메주가 안 뜨면 장을 망칠 수 있는데, 정월이 한 달 이상 남았는데, 잘 띄운 메주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던 무렵, 전남 담양에서 죽염으로 장을 담그는 기순도 선생 댁에 메주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화로 주문한 메주는 지푸라기에 매달린 채 박스에 담겨 도착했다. 메주는 보통 ‘말’ 단위로 판다. 콩 한 말로 메주를 만들면 보통 네 덩어리가 나오는데, 기순도 선생의 메주는 총 세 덩어리로 한 말보다 약간 적은 양인 ‘한 동’이라고 했다. 도착한 메주는 흐르는 맑은 물에 솔로 박박 문질러가며 겉면에 붙은 곰팡이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리고 채반에 담은 뒤 하루 정도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서 꾸덕꾸덕하게 물기를 말렸다.

그런 다음 항아리를 소독했다. 주위 어른에게 여쭤보니 물로 씻어 말린 다음, 소주를 부어 한 번 더 닦아내고 달군 숯을 넣고 꿀이나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연기가 나면서 완벽하게 소독된다고 하셨다. 그대로 했더니 아파트라면 화재경보기가 작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연기가 피어올랐다(베란다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뚜껑을 덮고 한참 두면 연기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불이 꺼진다. 그때 숯을 꺼낸 뒤 장을 담그면 된다.

장 담그기에 꼭 필요한 재료는 메주와 소금물뿐이다. 우선 알맞은 염도의 소금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수돗물보다는 지하수나 생수, 정수한 물이 좋을 듯해 시판하는 생수를 준비했다. 그다음 3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의 무게를 쟀다. 장을 담글 때 기본적인 물과 소금의 비율은 메주 한 말에 물 20L 그리고 소금 2.8kg 정도다. 일단 커다란 양푼에 면포를 깐 체를 올리고 계량한 소금을 담은 뒤 그 위에 물을 부어가며 소금을 조금씩 녹였다. 이렇게 해야 소금을 고루 녹일 수 있을뿐더러 소금의 불순물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을 모두 녹인 후에는 달걀과 염도계로 소금물의 염도를 측정했다. 소금물에 달걀을 띄워 공기 중으로 나온 달걀의 표면이 100원짜리 동전만 하면 정월 장으로 적당한 염도다. 조금 늦게 담그거나 장이 상할까 염려되는 사람은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떠오를 정도, 그러니까 좀 더 짜게 담는 것이 안전하다. 염도계로는 18.5~20보메 baum'e(염도 측정 단위) 정도가 적당하다. 내가 만든 소금물의 염도는 약 18.5보메로 측정되었다. 소금물이 완성되면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를 넣은 뒤 소금물을 붓고 마른 고추와 대추, 불을 지핀 숯을 넣고 웃소금을 약간 뿌리면 끝이다(마른 고추와 대추, 숯은 장맛을 좋게도 하지만 액을 물리친다 는 의미가 더욱 크기 때문에 없으면 생략해도 된다). 이제 공기가 통하는 유리 뚜껑을 덮어 햇볕만 쬐어주면 맛있는 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를 더하고자 창호지를 버선 모양으로 오려 거꾸로 붙였다. 옛 어른들은 벌레가 올라오면 발로 밟아버리겠다는 일종의 위협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이렇게 담은 장을 한 달쯤 지난 뒤에 메주는 건지고 남은 물을 걸러 냄비에 팔팔 끓이면 그 물이 조선간장이요, 건진 메주가 된장이 된다.

말로 길게 설명했지만 막상 해보니 이건 일도 아니었다. 항아리, 메주, 소금만 있으면 가능한 데다 많이 담을수록 장맛이 좋다고는 하지만 도시의 소가족이라면 작은 항아리에 메주 한 덩어리씩만 담가도 1년은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그래도 걱정이 앞선다면 한 달 뒤 내가 담은 장의 맛을 소개해드릴 테니 그때라도 시기를 놓치지 말고 실천해보시길. 가족에게 직접 담근 장으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그 추억이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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