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으로 호박범벅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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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27회 작성일 11-04-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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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신세진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할 겸 시골 할머니 댁에서 받아온 늙은 호박으로 호박범벅을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다.
늙은 호박은 갈라서 씨를 빼고 큰 토막으로 잘라 찜통에 찐다. 호박은 꼭지, 씨, 잎, 껍질 부위별로 각각의 효능이 뛰어나서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호박 껍질과 씨는 따로 모아 끓여 육수로 활용해보았다.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우러난다. 쪄진 호박살과 호박물, 팥, 밤, 강낭콩, 설탕을 넣어 끓이고 남은 찹쌀가루를 물에 풀어 넣고 저으면서 걸쭉하게 익히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완성되면 찹쌀 경단을 올려 먹으면 된다.
호박은 늙은 호박, 단호박, 애호박, 주키니 호박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호박의 효능은 대체로 비슷한데, 약용 가치는 늙은 호박이 제일 높다.
늙은 호박의 당분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아주 좋고, 식이섬유가 많아 열량은 적은 반면 포만감을 느낄 수 있으며 지방 함량과 나트륨 함량이 낮아서 당뇨나 고혈압 환자의 식용으로 매우 적합하다. 호박의 칼륨은 체내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특히 산후 붓기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방에서는 남과(南瓜)라고 하며 비ㆍ위장을 보하고 염증을 제거하고 통증을 그치게 하면서 해독, 살충하는 효능이 있다. 비위가 허해서 오는 식욕부진, 만성 설사, 늑간 신경통, 이질 병증 등을 치료하고 짓찧어서 붙이면 화상과 하지부 궤양을 치료한다. 외용약으로서의 호박의 효과는 소설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데, 빨치산들이 총상이나 파편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늙은 호박 속을 찧어 붙였더니 신기하게도 낫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호박씨(南瓜子)는 질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비롯해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며 예전에는 부작용 없는 구충제로서 많이 쓰였다. 산후 손발이 붓는 경우나 젖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에도 쓰는데, 하루에 30~60g 정도씩 까서 간식으로 먹으면 된다.
늙은 호박은 약용 뿐 아니라 양식(糧食) 대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호박죽, 떡, 엿, 김치, 정과, 부침, 나물, 장아찌 등의 전통음식뿐만 아니라 양갱, 케이크, 팬케이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늙은 호박은 가을에 수확한 뒤 보관만 잘 하면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어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의 공급원이 되었다. 특히 호박단지와 호박범벅은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못 했던 시절 겨울철 아이들의 좋은 건강식이자 간식이었다.
이렇게 맛과 효능이 뛰어난 호박이지만 기가 소통되지 않고 맺혀서 체내의 습기가 원활히 배설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사람, 배에 가스가 차 있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늙은 호박 반개로 호박범벅을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 10그릇 정도가 나왔다. 그런데 연세 드신 한 분은 옛날에 먹던 호박범벅은 이처럼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간, 호박죽에 가까운 호박범벅이 아니라 밀가루를 넣은 호박풀떼기에 가까운 맛이었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래 '범벅'이란 곡식가루에 감자·옥수수·호박 등을 섞어서 풀처럼 되게 쑨 죽을 말한다. 1700년대에 나온〈음식보飮食譜>에 "범벅같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봐서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요즘의 호박범벅과 달리 예전의 호박범벅은 가난을 상징하는 거친 음식이었나 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호박범벅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옛 이야기와 정이 오가면서 맛은 한층 더해진다. 어머니의 손맛, 장모님의 사위사랑, 어려웠던 집안 형편, 늙은 호박 하나로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눠먹는 동네범벅이었던 추억들까지.
꼭지부터 씨까지 버릴 것이 없는, 아낌없이 주는 늙은 호박으로 차려진 풍성하고 넉넉한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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