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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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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306회 작성일 15-07-07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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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욕심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어느 날 농부 파흠은 하루 동안 제 발로 걸어 돌아온 만큼의 땅을 1000루블에 사기로 했다. 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에 다시 도착하지 못하면 돈을 모두 잃게 되는 조건이었다. 농부는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농부는 가까스로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에 돌아왔다. 도착지 표식인 모자에 농부의 손이 닿았을 때 상대방은 “진짜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라고 비웃듯 말한다. 지칠 대로 지친 파흠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무리한 탓이다. 농부는 바로 그 자리에서 6척의 구덩이 속에 파묻혔다.


 사업이나 직장은 불안하고 수명은 길어지니 모아둔 돈이 적은 인생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은 곧 에너지다. 에너지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잘못된 수단에 있다. 가난한 서민들은 부족한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니 그렇다손 쳐도, 재벌 총수, 정치인 등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게걸스럽다. 마치 불길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보인다. 
 돈에 대한 집착은 어찌 보면 빈 콜라병 속에 떼 지어 들어가는 개미들 같다. 콜라병 속에 남아있는 끈끈한 단물을 좇아 들어가는 개미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죽음을 맞는다. 어느 정신과 전문의는 “생명체는 에너지를 구하는 공격성과 자기를 복제하는 성욕의 2가지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원시 공격성에서 벗어나지 못할수록 돈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10억원을 모아야 근심 걱정 없는 노후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덧 10억원이라는 돈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10억원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자녀 학비대고 생활비 쓰다보면 10억 원을 모으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예금 대신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주식과 부동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부동산은 과거처럼 크게 오르기 어려운 상품이 되었고, 주식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성이 크다. 증시 활황기에는 웬일인지 내가 갖고 있는 주식만 제자리이고, 증시침체기에는 유독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다. 투자를 한다고 해도 원금만 까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10억원 만들기’ 열기에 편승하기 전에 먼저 부자가 된다면 과연 어떻게 살 것인지, 진정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로부터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함과 근검절약하는 정신을 배워야지 얄팍한 횡재만을 노리면 곤란하다.


 돈이 없는 꿈이, 꿈이 없는 돈보다 훨씬 낫다. 10억 원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10억 원짜리 꿈을 목표로 하는 것이 사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땅에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평범한 아빠가 대부분이다.


 돈은 써야 내 돈이다. 아무리 내가 벌어놓은 돈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쓰지 않으면 결국 남의 돈일 수 밖에 없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책에서 ‘돈이 다 떨어지면 최후에는 길에 쓰러져 죽을 각오’로 마음 편히 돈을 쓰라고 조언한다. 노인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식이나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최후로 의지가 되는 것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나오지만, 그 정도로 비참한 경우를 당하게 되면 돈이 있더라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소노 아야코는 갖고 있는 재산에 손도 대지 않고 궁핍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고 지적한다. 차라리 실컷 돈을 쓰고 무일푼이 되었을 때 ‘최후의 행진’을 하고 세상을 떠나라고 권유한다.


 미국의 재무설계사인 스티븐 폴란과 마크 레빈은 공동저서에서 한술 더 뜬다. 저자들은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라는 책에서 죽기 전에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다 쓰라고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얘기다. 평균수명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다 쓰고 죽으라니...’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왜 쓰지도 못할 돈을 쌓아두는가. 내가 죽은 다음에 돈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식에게 거액을 상속한다고 자식의 삶이 행복할까. 저자들은 “경제적인 욕심 때문에 가족관계가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며 “상속은 후손들의 삶을 망치는 매우 비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질타한다.


 그러면 어떻게 돈을 쓰라는 말인가. 저자들은 젊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현명한 상속은 25세의 자녀가 아파트 전세를 얻는 대신 집을 한 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재산을 쌓아놓기보다 벌어들인 재산과 수입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관심을 갖는 게 훨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지혜롭게 돈을 써서 부와 삶의 행복을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장의사에게 지불할 돈만 남겨두고 다 써버려라”고 강조한다. 

  투자전문가인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에서 재테크의 세 가지 기준을 설명한다.


 첫째,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부자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남이 얼마를 가졌던 상관없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목표(부의 총량)를 먼저 정하지 않으면 평생 돈의 노예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둘째,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산가치를 높여라. 사람들은 재테크라고 하면 화폐로 교환이 가능한 것들을 모으는 데만 집착한다. 그러나 자산은 통장의 예금이나 부동산 같은 고정자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능하면 안정적이고, 오래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과 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여서 부자가 되는 것이 재테크로 부자가 되려는 것보다 훨씬 윗길이다.


 셋째, 은퇴 후 노후자금은 투자수익률을 올리는 비율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자산가치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비율의 개념으로 은퇴 후 노후자금에 접근하라는 조언이다.


 은퇴준비는 무조건 돈만 모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가지고 얻으려는 금전적인 자유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선결조건이다. 돈의 본질적 가치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기에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금전적 자유를 얻기 위해 젊을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지급하고 그 대가로 돈을 얻는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비애는 역설적으로 돈을 충분히 갖고 은퇴했을 때 찾아올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면 결국 열정이 없는 무의미한 삶이 될 수 있다.


 이제 자산관리를 돈의 관점보다는 삶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언제나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개인이나 가정이라면 반드시 부자가 아니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은퇴에 대비해 10억 원 모으기에 연연하다 보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돈 문제로 귀결되기 쉽다. 사람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에는 으레 돈의 지출이 따르니 사람 만나는 일을 기피하기도 한다. 자칫 부모형제도 멀어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사소한 이해타산에 얽매여 멀어지기 쉽다. 눈앞의 돈 보다 자기 삶의 비전과 목표에 부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참다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남을 돕는 것은 곧 자신을 돕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기부를 하면 쾌감을 느끼는 본능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오감(五感)의 만족, 예상의 적중(퀴즈를 풀었을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 기부, 신뢰관계 형성, 칭찬 받을 때 기쁨을 느낀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아일랜드 격언이 있다. 미국 최대의 경쟁력은 부자들의 자선행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나 위대한 투자가 워렌 버핏 등은 자발적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산을 기부했다. 그들이라도 돈이 아깝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지나친 부의 상속은 결국 자신과 자식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뜻을 위해 기부를 하는 것이다.  
 다음은 록펠러 이야기.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 하고 환자의 어머니는 울면서 애원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아무도 모르게 병원비를 지불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는지 그의 자서전에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그 때 그는 나눔의 삶을 결심한다. 신기하게 록펠러의 병도 사라졌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다. 나중에 그는 회고한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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