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1 신 ) - 아..! 봄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 AMERICA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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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1 신 ) - 아..! 봄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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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232회 작성일 14-10-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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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하였지? 오늘 길은 온통 넓적한 돌이 깔린 옛 로마길이다. 이 석재가 이 지방에서는 나오지 않는 돌이라네. 채석과 운반, 가공과 시공등 그 시절 타민족 포로들의 고생이 애절하구나. 오늘 날 순례길은 과거의 로마길 - 완만한 우마차 길 - 을 근간으로하되 좀 더 짧게 걸으려는 peregrino들이 밟아 다진 지름길이 더 많다. 그런 까닭에 남의 포도원, 과수원, 목장안을 통과하는 구간도 많았는데, 수시로 지나는 순례자로 인해 동물이 나가지 못하게 목장문이 자동으로 닫히도록 고안한 주인들의 고심이 눈에 보입디다.

한 양목장을 유럽인 몇명과 통과하는데 무리속에서 뿔이 멋진, 덩치 큰 양( 실제론 Ram )이 갑자기 상체를 우뚝 세우는가 싶더니 내게 돌진해 오지 않는가! 스틱으로 땅을 때리며 일행속으로 숨어들자 이놈이 다른 이들은 외면하며 사팔뜨기 눈으로 나만 찾아 공격하는데 한동안 당황과 웃음판이 벌어젔지.

여러 사람이 함께 대항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슬며시 뒷걸음치는데 말을 탄 관리인이 와서 하는말이, 지금이 교미기인데 나를 경쟁자로 생각한 것 같다는 말에 폭소가 터젔지요. 알프스산록의 스키장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오스트리아인은 이미 30여명으로 불어난 사람들을 향해 여자들을조심시키라고 농담을 던지는 바람에 또한번 폭소쇼를 펼첬다오. 나 참, 양무리 속의 치한이 되다니! 
 
저녁에 투숙한 Albergue는 큰 규모인데도 아직은 본격적 시즌이 닥치지 않아 방을 두개만 열어 몹시 법석인다. 다행스레 침대 아래칸을 잡긴 했는데, 샤워를 끝내고 돌아오니 육중한 체격의 독일여성이 바로 위 침대에 짐을 풀다 살작 웃음으로 인사한다. 압사할가 두렵구나. 밖에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들어오니 이미 이층의 여인이 누워있는데 그 체중으로 침대가 너무 쳐저 아래 칸으로 찾아 눕기가 몹시 불편하네. 이것도 여난이라 말할 수 있겠지? 어제 ‘파라돌’궁전의 밤과 이 밤이 너무도 극명하게 대조가 되네.

아침에 그 녀와 같은 식탁에 앉게되어, 슾과빵 뿐인  알베르게식사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 자기가 현역 배구선수란다. “어제 밤 불편했죠?” 하고 웃는 모습이 꽤 매력스럽다. 보통은 여자들 스스로 한 쪽 구역의 침대를 차지하는데 어제는 구획을 정할 수도 없게 복잡하였다. 뒤늦게 식탁에 합류한 두 남자가 흥분된 어조의 독어로 한동안 대화가 이어지더니 한사람이 내게 관심을 돌리며, 그 녀가 국가대표선수 - national team - 라 하네.  영광스러운 압사를 할 뻔 했구나!

어둑한 아침에 자욱한 안개속의 가로등 불빛이 신비하고 묘한 느낌을 일으킨다. 걷는 길마저 돌을 깐 길이라 마치 중세의 어느 순간에 와있는 느낌이 들더라. 

또 우리세대의 먼 옛날 보았던 영화 '애수'가 떠오른다. 여주인공이 짙은 안개속의 다리를 초점을 잃은 눈으로 걸어가다 비운으로 끝나던 그 모습이 연상되네. 사치스런 생각을 털고 오늘 일정이나 고민하자. 오늘은 야고보님의 무덤으로 가는 길의 가장 높은 봉( Puerta Irago)  1505m 를 넘어야 한다. 얼었던 대지가 봄의 화신을 면사포로 감싸 맞이하려나, 보통의 안개가 아니다. 스틱끝의 금속성이 아니면 앞 사람을 쫓을 수 없네. 랜턴을 팔둑에 감아 뒤에 오는 사람들이나마 편하게 따라오게끔 선행을 베풀었지. 4시간여의 오르막 길을 거의 탈진상태로 꼭지점에 다다르니, 기대하던 철십자가와 그 멋진 '돈퀴호테' 밑 '산초' 의 철 조각작품이 더욱 짙은 안개속에서 희미한 영상만을 보여줘 몹시 아쉽더군.

젊은 무리가 모닥불을 피워서 자연스레 불주위에 둥글게 에워싸 점심을 먹는데, 그 수가 40명이 넘더라. 어림해보니 남녀가 반 반 정도되어 무슨 여성단체가 왔는가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더군. 생각이 바뀌면서 이 고달픈 길을 가는 여성들에 대한 존경심과 역시 여성이 신앙에 빠르게 물들고 젖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디다. 기독교를 처음 공인한 로마황제도, 그 왕비가 먼저 받아들였다 하지? 여기 고행길에도 처처에 세운 중세의 멋진 다리나 병원이름은 왕비나 여성들의 공덕을 기리는 곳들이 많더라.

고개를 오를때는 내려갈 때의 희망이 솟는데 여기 순례길은 언제나 실망을 안겨준다.

밟아 닳은 돌가루가 하산 길을 몹시 미끄럽게 만들고, 더욱 이곳 높은 봉우리들이 몇 억겁전에 바다의 뻘이 융기된 층층의 얇은 흑색 판바위로 형성 되었다가 유구한 풍상에 조각으로 흩어져 걷는길을 아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상체는 스틱에 의존하고 모로 걸어서 내려오는 길이 너무 긴장되고, 발바닥엔 평소 훈련이 안된 방향으로 체중이 가해지니 영락없이 물집이 생기더군.

인간은 지혜롭다. 그동안 보아온 모든 지붕색은 오렌지와 주황색 뿐이더니 이 고개를 넘으면서 판이하게 바뀌었네. 모든 지붕이 흑회색의 슬레이트로 덮여있다. 자연을 참 잘도 이용한다.  해발 600여 미터의 저지대에 다다르니  좌우로 즐비한 나무에 핀 흰색꽃들이 안개속에서도 유난히 희다. 

아..!  봄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봄이!  봄은 서쪽에서 오나보다. 이래서 피레네산맥 이쪽과 저쪽이 진리가 다르다  했나?
숙소에 다달으니 너 나 없이 소금에 절인 배추꼴이다. 피곤하여 침대위에 축축 늘어저있다. 웃음도 말소리도 없다.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피로를 푸는대 까닭없이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내 고행에 대한 나의 동정인가 싶다. 마음이 약해진 탓일가?  아니면  순수해졌나?  감동도, 슬픔도 아닌 눈물이 샤워물과 함께 흘러 내리내.  먼 옛날 혜초스님도 고행의 구도길에 눈물을 뿌렸을가?

이제 어려운 고비는 많이 넘겼겠지싶은 여유와 어서 끝내려는 조바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 험난한 길에서 나폴레옹이 지녔던 최종병기 '희망'을 공감하며 밤을 맞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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