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6 신 ) - 발바닥이 쓰리고 아프다. 네 곳의 물집이 터져서 속살이 드러났네. > 아메리카 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아메리카 이민문학


 

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6 신 ) - 발바닥이 쓰리고 아프다. 네 곳의 물집이 터져서 속살이 드러났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246회 작성일 14-10-06 07:34

본문

이른 아침(?) - 스페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영국보다도 해가 늦게 뜨는 땅인데도 표준시간을 독일, 프랑스와 함께 쓰고 있어서 시간에 견주어 늦게까지 어둡더군. 샤워를 하려니 발바닥이 쓰리고 아프다.  왼쪽은 네 곳의 물집이 군웅할거중이고 오른쪽은 이미 터져서 속살이 드러났네.

강행군을 했다가는 상처가 커질 것 같아 고민끝에 오늘은 하루 쉬고 발 처치를 해야겠다. 순례자숙소는 아침 8시까지는 비워줘야 한다. 처량한 마음으로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서니 소리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구나. 길을 못 떠나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 가벼워지더군.
불편한 발을 끌고 광장으로 나서니, 이곳 Pamplona가 바로 작가 헤밍웨이가 나름의 뜻을 품고 스페인 내전 때 공화군쪽에 가담하였다가 패퇴하여 여기 고원지대에 웅거하면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한 곳 아니던가. 고원이라 하지만  눈을 덮어 쓴 피레네산맥에 둘러쌓인 거대한 밭농사 구릉지로 물산이 풍성하니 일찌기 문화가 창달하였으리라.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성당과 박물관, 갤러리와 투우장이 있고, 우리에게도 낯익은 그 투우용 숫소들을 화를 돋구어 질주시키고 도망다니는 길( Estafate Calle) 도 여기 있지 않은가!  좁은 골목길을 아픈 발로 힘들게 걸어 보았지요.

나도 영감을 얻을까 싶어, Hemingway가 먹고 마시고 글쓰던 까페( Cafe Iruna in Plaza del Castillo ) 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가 크게 써있는 차양천막 밑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그리운 이들에게 post cards를 쓰고 있자니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영감을 죄다 좇아 버리고 시끄럽다. 고개를 들어 광장 건너편을 바라보니, 아 거기에는 유태속담의 글귀 – 태양은 당신이 없어도 뜨고 진다 - 가 적힌 커다란 차양막이 익살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왕당파측 사람이 연 곳일까..? 여유로운 모습이다.  갑자기 옆 테이블에 두 여인이 자리를 잡더니 내게 작가냐고 묻는다.  글 쓰던 것들이 많이 눈에 뜨여선지 아니면 내 인상이 고뇌(?)하는 모습이었던가?  배짱으로 그렇다 하니, 일본작가 “누구 ”를 아느냐 묻는데 발음이 이상하여 되물으니 자기들끼리 서로 교정해 주며 시끄러운 수다를 떤다. 이럴 때는 화장실이 최고다. 내 짐을 그 여인들에게 봐달라 부탁하고, 뇨기도 없는데 화장실로 들어가 셀폰으로 검색을 하고는 돌아와서 정확한 일본 발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냐고 거명을 하니 크게 탄성을 지른다.

오래 끌면 봉변 당하겠다 싶어 이별장(계산서)을 달라고 고개를 돌리니 남자직원이 재빠르게 갖고 와서, 여인들 테이블을 몸으로 막고선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I kept watching your belongings”라고 말하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 안좋은 이웃이었구나!  ‘그래, 신을 믿으라, 하지만 네 낙타는 꼭 묶어두도록’.  후우..!

병원을 찾아 발을 내보이니 상처보다는 적혀있는 내 나이를 묻곤 또 되물으며 놀랜 표정이다. 스페인어로 말하니 뜻을 알 길 없지만, 이 길 가기에는 너무 늙었다 였거나 나이 답지 않게 젊어보인다 아니겠나. 째진 곳을 깨끗하게 소독하고 적외선 자외선 모두 쐬이고는 연고에 붕대도 감아주면서 20유로만 청구하더군. 순례자의 특별대접이라고 생각했지.

고맙소, 스페인 친구들이여!

오늘 저녁은 숙소를 2인1실의 호스텔로 격상하고, 모든 무게를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지. 우선 배낭의 필요없는 끈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겉옷을 위아래 3개씩만 챙기고 혁대도 길이를 구멍 두개만 사용가능한 길이로 자르고, 긴 칫솔도 3/4으로 줄이고 치약 반은 짜버렸지. 아끼던 스위스제 칼은 분해하여 스푼 / 포크 / 칼 기능 3쪽만 남기고. 이렇게 쥐어짜니 약 2kg 이 줄더군.  그 포기한 물품을 우체국에서 서울로 소포발송하는데 순간 나도 함께  보내고 싶습디다 .  아련한 서울쪽 하늘을 바라보며 젖어드는 눈을 한참 참았구만. 

다음날 먹을 물과 쥬스, 과일 한개, 견과류 약간, 그리고 점심용 빵과 얇은 생선 통조림 한통을 사넣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녘을 맞이했지요. 

이들 자잘한 서술은, 혹시 다음에 순례길을 걸으려는 초심자에게 처음부터 인색하게 떠나라는 도움말을 드리려고. 본인처럼 탈이 난 후에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

그래도 오늘은 얻은 것이 아주 많았던 날이었지. 하루 종일  비에서 진눈개비로 오락가락 변덕부리는 날씨에 얼마나 고생했을까 자위가 되누나. 

‘새옹지마’라 하였지? 발의 탈 때문에 오히려 건질것이 많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네. 내처 걸어간 그 얼굴들 위에 연민의 정이 겹처지더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