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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 한 잔 속에 피어나는 엘도라도 : 유금란(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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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21회 작성일 10-04-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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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속에 피어나는 엘도라도


가작│유금란(호주)


한국에서 장기 출장 중인 남편이 이번 휴가 때는 한 잔하자고 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인가 긴하게 할 말이 있다는 표현이다. 언젠가 한잔하자며 잔뜩 분위기 잡고 꺼낸 말이 주식으로 재산을 축냈다는 고백이었다. 인터넷 전화와 채팅으로 매일 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잔하면서까지 해야 할 그 무엇인가에 신경이 곧추선다. 가족을 해외에 두고 강남 중심가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혼자 기거하고 있는 중년의 사업가……. 나의 사고는 한국드라마가 고질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파행적인 부부관계에서 자유로워지지가 않는다.


스무 살 나던 해 가을, 남편으로부터 커피 한 잔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만남은 결실을 맺었다. 다방문화에서 카페문화가 들어설 즈음이었다. 그 당시 ‘커피 한 잔…’은 데이트를 하자는 의미였고 ‘술 한 잔…’은 좀 더 발전된 관계를 원하는 우회적 표현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우정 어린 충고나 은밀한 유혹 또한 으레 한 잔에서 출발했다. 한 잔은 모든 관계형성의 시발점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낯섦이란 강물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였다. 커피 한 잔, 술 한 잔을 핑계 삼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는 인색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미처 말로 다하지 못한 속내까지 헤아리는 너그러움이 생겼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에게 길들여졌고 일방적이 아닌 주고받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언론자유화로 날마다 새로 생기던 언론사들 덕분에 나도 한때 기자란 타이틀을 가지고 잡지사 물을 먹은 적이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던 사이비 기자들 때문에 명함 내놓기가 민망하던 시절이었다. 일류는 아니더라도 사이비는 되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여의도가 좁고, 충무로는 답답하다고 여기며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러나 대가로 받은 월급은 겨우 용돈이나 충당할 정도… 가끔씩 나오는 촌지를 보너스라고 합리화하면서 받아 들고는 삼류라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 알량한 촌지를 받은 날이면 우리는 용산 삼각지에 있는 원조대구탕 집으로 몰려갔다. 화덕에서 끓고 있는 대구탕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삼류처럼 여겨지던 인생의 허무한 감정들은 부글부글 끓는 냄비 속으로 그냥 녹아 들어갔다. 상사로부터 쓴 소리를 들은 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자리를 펼쳤다. 할 소리, 못할 소리 모두 한 잔에 쓸어 담아 목으로 넘기면 그 뿐, 더 이상의 위로가 필요치 않았다. 동료애는 일하는 현장에서보다 뒤풀이 자리에서 주고받던 그 한 잔에서 싹트고 자랐다. 그래서였는지 열 명 남짓 되던 직원들은 편집회의 때마다 날을 세우며 신경전을 벌였어도 서로 미워하거나 밟고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술을 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기꺼이 그 분위기를 함께 마시며 어울릴 정도로 그 자리는 따듯했다.
이민사회, 큰물에서 놀겠다고 왔지만 한국에서보다 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답답할 때가 많다. 인터넷을 통해 들여다보는 나의 조국 또한 나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해 황망히 들어갔던 길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하게 된다.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젖어서인지, 사고가 이민 오던 당시에 머물러 있어서인지, 급변하고 있는 고국의 행보를 따라잡기가 나에겐 많이 버겁다. 이곳에서 나의 한국이름 석 자 들먹일 만한 곳은 교회와 문학회 모임뿐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겪는 일들이 나에겐 사회의 전부이고 온 우주인 셈이다.
일전에 두 모임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소모전을 하는 가운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할퀴고 뜯고 하는 사이에 영혼은 피폐해지고 여기저기에서 피 흘리는 소리가 낭자했다.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했다면 쉽게 풀릴 일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를 통한 대화는 오히려 오해와 불신의 벽을 더 두텁게 했다. 한 잔의 위력이 간절했다.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술은 금단의 열매가 되는 모임인지라 그저 상한 상처만 바라보아야 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닐 바에야 해물탕 한 냄비 앞에 놓고 한잔 부딪히다 보면 일그러진 자존심쯤이야 분명히 못이기는 척 슬쩍 내려놓았을 터인데…….


나에겐 한 잔으로 시작된 소중한 인연들이 많다. 그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인연은 스리랑카 할아버지 테드와의 만남이다. 이민 초창기, 구세군교회에서 개설한 이민자를 위한 영어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테드는 그룹지도를 담당했던 선생님이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그와 나는 프로그램 중간에 있는 티타임에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정통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품위 있는 노신사로, 동서남북도 분간 못하던 나에게 첫 만남에서 티타임에 대한 설명부터 하던 티타임 마니아이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는 티타임. 시키코 엘름부륵 교회 사모였던 질 브리스코는 영국식 티타임은 그들에게 유산의 일부가 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어느 글에선가 회고한 적이 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매일 밤 폭격으로 인해 반공호에 웅크리고 앉아 공포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때 어머니는 그녀와 언니를 위해 위로의 차를 끓였고 그들은 땅굴 속에서 그것을 나누며 무서운 시간을 극복했다고 한다. 한 잔의 차는 그들에게 교제의 시간을 음미하게 했으며 무엇인가를 채워 주었고, 할 일을 주었던 특별한 선물이 된 것이다. 그녀는 영국식 티타임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시간’을 주는 옛 전통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죽었거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지 한 잔의 티를 마시며 시간을 나누어 주어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 되는 것.
테드는 영국식 티타임을 즐겼다. 곧잘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차를 나누어주곤 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티타임을 갖는 동안 나는 이방 나라의 문화를 조금씩 알아갔고 언어도 조금씩 늘려갔다. 정갈하게 머리를 땋아 올린 그의 아내가 만들어 주었던 티는 유난히 향기가 좋았다. 그녀가 끓여주는 차를 마시는 동안에는 낯선 땅에서의 공허함을 무엇인가로 채울 수 있었다. 그들과 가졌던 티타임은 이민 초기의 불안했던 나의 마음을 위로하던 의식이었으며, 그와 나누었던 한 잔의 차는 이민자로서 겪는 애환을 녹이는 관심과 사랑이었다. 까만 피부로 인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더 돋보이던 테드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워낙 고령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노신사의 품위를 잃지 않고 열성을 다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감사와 미안하다는 말이 숙제처럼 남아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할 뿐이다.


나의 일터인 파라마타 쇼핑센터 후드코트의 아침은 하얗다. 테드가 좋아하던 영국식 티타임을 즐기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들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들의 테이블엔 여지없이 한 잔의 차와 한 조각의 샌드위치가 놓여있다. 찻잔을 쥘 힘조차도 없어 보이는 그들이지만 차를 앞에 두고 나누는 눈빛과 담소는 정겹기만 하다. 사그라져가는 세월을 차향에 실어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해 한다. 이들에게 한 잔의 티는 함께 나누는 시간이고 관심이고 사랑의 접촉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 관계가 서먹해지면 대화로 풀려고 하지 않고 메일을 보내 해결하고 있는 나를 본다. 상대방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의 의중에 더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은행이나 우체국에 가서 내던 공과금이나 카드결제조차도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있다. 사람을 마주대하고 대화하는 일은 이래저래 점점 드물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모임의 공지사항 또한 메일로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이 나라 문화야 워낙 레터로 일을 처리하는 곳이니 이곳에서의 대화매체는 메일이나 우편이 단연 우선이다. 증거가 남고 불필요한 감정이 실리지 않아 합리적이어서 좋긴 한데 상대방의 속내까지 읽으면서 하던 깊은 대화의 맛을 느낄 수 없어 많이 아쉽다.


상대방의 눈빛을 바라보지 못하는 관계는 허허로울 수밖에 없다. 차 한 잔, 술 한 잔 기울이며 얼굴을 바라보며 나누던 대화, 조금의 실수쯤이야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 날리면 눈 녹듯 사라졌던, 그런 관계들이 그립다.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져 간 사람들이 떠올려 본다. 시간을 나누어 주기가 아까워 슬그머니 놓아버린 관계들……. 인터넷과 메일이 생활의 주요 대화 수단이 되면서 얼굴 보기가 요원해진 사람들…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 미안해서 더더욱 연락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렇잖아도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이 세상이다. 아마존 유역 어디엔가 존재 했다던 황금의 고향인 엘도라도를 찾아왔지만 어디에도 엘도라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엘로라도를 꿈꾸느라 늘 상대적인 외로움에 허덕이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끊임없이 새로운 황금 향을 찾아 떠나는 이민자와 같은 것일 텐데… 내 감정과 나의 생활에 몰두하느라 너를 잊고 지내면서 내 안에 있는 진짜 엘도라도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잠시 분주한 일상을 멈추고 잊었던 사람들을 응시한다. 내가 먼저 차  한 잔을 청하고 말문을 열어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 안에 바로 진정한 엘도라도가 있음을 상기하면서.


시드니에 봄바람이 분다.
이번 봄은 한국에 있는 가을을 만끽하며 보내고 싶다.
이미 소식이 끊겨 찾을 길 없는 친구들도 수소문해 차 한 잔 앞에 놓고 케케묵은 옛 이야기를 들추며 사람 사는 냄새를 기억하련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남몰래 고달파하는 유난히 자존심 강한 남편과도 한잔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하리라. 누군가 한 잔하자고 다정한 목소리로 청한다면 이 또한 기꺼이 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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