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탈을 벗는 여자 : 중국/김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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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755회 작성일 10-04-3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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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김성옥] 탈을 벗는 여자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연거푸 숨가쁜 듯 요란하게 울렸지만, 성실이는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앉아 맞은 켠 벽에 걸린 그림을 쏘아보며 까딱 않고 있었다. 망망한 푸른 바다에 흰 돛배 몇 척이 뜬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쩌면 그러실 수가
성실이는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실망을 느꼈으며, 그 실망 뒤엔 누구에게라 할 것 없는 무명의 분노가 가슴속에서 집채같이 일었다.
아까 전화로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다시 머리 속에 메아리친다.
수술한 게 이제사 한 달 나마 된 니 남펜(남편)을 두구 가문 남들 뭐이라겠니?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어머니의 말은 이날 따라 억양이 더 거세게 들렸다.
뭐이라구 하든 말든 걱정할 게 뭠까. 남들 위해 사는 것두 아닌데. 그리구 남들이 제 삶을 살아주는 것두 아니잖슴까.
남들 뿐 아니다. 난 사둔댁 앞에서 얼굴 체들지 못한다.
그럼 바꿔서 제가 앓아 눕구, 애 아버지가 출국한다문 어쩌겠슴까?
그 게사 남잔깐 할 수 없는 게지. 어쨌건 니 앨 난 죽어두 못 봐주네라.
좋슴다. 앤 제가 방법 댈 템다. 이젠 우리가 죽든 살든 걱정 마쇼.
말을 마친 성실이는 전화기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두 줄기의 굵직한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성실이는 전화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은 채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발끈 쥐고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화벨이 오래 울렸지만 그녀는 받을 염을 않고 그렇게 오열을 토하다가, 사지가 뻣뻣하게 마비되어서야 맥을 풀면서 의자에 무너져 내려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 후 그 옆의 소파에 자리를 옮긴 그녀는 맞은 켠 벽에 걸린 바다 그림을 퀭하니 바라보았다. 날이 밝았는데도 커튼을 열어 젖히지 않은 방안은 어둠침침했고 난방이 잘 들지 않아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제 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지난밤에 세찬 바다 파도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꿈을 꾸었다. 웬일인지 성실이는 거의 비슷한 악몽을 자주 꾼다. 바다를 좋아했지만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녀는 몇 년 전에 거리에 나갔다가 한 폭의 커다란 바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싸구려로 사왔다. 그런데 낮 배경인 그림과는 달리 그녀의 꿈속에 찾아드는 바다는 언제나 밤 배경의 시커먼 바다로서 흉흉한 파도가 그녀를 삼켜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애걸복걸했는데도 어쩌면.
또다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굼실거린다. 남자면 어쩌고 여자면 어쩌고 하던 말이 생각나자 누그러드는 것 같던 화가 다시 번져 누우며 타올랐다. 다시는 친정에로 발걸음을 돌리고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태어난 한국에도 가고싶지 않아졌다. 아니, 어머니는 이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각 성실이의 마음엔 이북이나 이남이나 삼팔선을 경계로 빨간색 푸른 색 하고 가릴 것 없는 똑같은 무색()의 지대였다. 전공 때문이 아니라면 일본이나 미국 같은데 유학 가지 그까짓 한국에 가선 뭘 하나. 그러나 그녀는 한국에 가보려는 욕망을 더욱 뜨겁게 느꼈다.
남편이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 딸넨들 중 하나는 제 에미 팔자를 담는다구 하더니, 젊은 나이에 어쩌문. 라고 하시면서 낙루를 하시던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겐 젊었을 때 빛나는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토지개혁 때 입당을 하고 후에 국영회사에 취직한 어머니는 길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다시 돌아볼 정도로 인물 또한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환자인 아버지의 병시중 때문에 성실이가 두 돌이 차기 전에 사직한 어머니는, 성실이의 기억에 가난과 세파에 부대껴 언제나 기를 펴지 못하는 초라한 아줌마의 모습으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어머니 덕에 살아났다고 하는 아버지가 그 끈질긴 투병정신과 맞먹는 비례로 어머니와 지칠 줄 모르고 말다툼을 하는 것이다.
잠에서 깬 딸애 청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기 앞으로 쭈르르 달려가는 걸 보자 성실이는 빽 소리질렀다.
누가 널 받으랬어. 가만 놔둬.
마마(엄마), 쩌머라(왜 그래)?
딸애는 와뜰 놀라면서 전화기로 가던 손을 주춤 멈추고 눈이 똥그래서 돌아보았다.
친정어머니가 딸애를 조선말은 모르고 중국말만 해서 귀엽지 않다고 하더니, 성실이도 오늘따라 그 중국말이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듯 아무 말도 않고 눈알을 한번 크게 굴리며 흘겨보았다.
그 서슬에 딸애는 그냥 울리는 전화기와 성실이 쪽을 한번씩 흘끔흘끔 번갈아 보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섰다가, 반은 주눅이 들고 반은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침실로 되돌아갔다.
그런 딸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실이는 마음이 측은한 한편 산란해 났다.
그저께 아침에 딸애와 함께 친정을 떠난 성실이는, 구정 휴가가 끝나는 때라 숨막히게 붐 비는 객차 안에서 10여 시간이나 시달리고 저녁에야 집에 들어섰다. 친정 어머니가 딸애를 싫다고 하든 말든 억지로 떠맡기고 내빼려 했지만 딸애가 춘성()보다 시골인 용정()으로 전학하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하기에, 떼어버리려던 혹을 도로 단 것 같은 텁텁한 심정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딸애는 그녀와 끝까지 맞서보려는 양으로 보모는 싫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모셔오라고 강짜를 부렸다. 갑자기 보모를 구하기가 어려운데다가, 성실이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정 부모를 모셔오면 딸애에 대해 시름 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도 절약하고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유학 가는 걸 극구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한다는 건 산길을 재촉하던 사람이 절벽에 이르러 어쩔 바를 몰라 하듯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 때문에 어제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궁리한 끝에, 오늘 새벽 역전에 나가서 내일 저녁 북경 가는 차표를 끊고 돌아오자 바람으로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미 각오한 첨예한 설전이 몇 분도 안 걸려 그녀의 참패로 끝이 날줄은 몰랐다.
다시 들어온 딸애가 무슨 말을 할 듯 말듯 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니?
성실이는 방금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얼굴로 확 바꾸면서 물었다.
엄마, 배고프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하는 딸애의 조선말은 아무래도 어설프다. 존대 말을 가르쳐 주어도 그냥 고치지 못한다. 친정에서 몰아주는 바람에 이제부터 집에서는 조선말을 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그제야 벽에 걸린 수정 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계바늘이 어느새 일곱 시 반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 내 정신 봐라.
놀란 듯이 말하면서도 자기는 조금도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사두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욱 귀찮아졌다. 그녀는 소파에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천근무게 들어올리듯 일으켰다. 옷걸이에서 인조털외투를 벗겨 맥없이 두 팔을 꿰면서 처지는 소리로 뒤돌아보지 않은 채 딸애에게 물었다.
뭘 먹겠니? 나가서 사올 테니.
유툐우(: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을 소금으로 간을 한 후 길쭉한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긴 중국 음식)를 먹을래.
태운 기름에 튀겨낸 거라고 몸에 해롭다고 해도 뭘 먹겠는가고 물으면 언제나 귀신 맛에 홀린 것처럼 유툐우다.
밖에 나서니 새벽보다 많이 푸근했다.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러워진 눈길이 시각을 흐리는데도 군데군데의 손상되지 않은 백설에 어우러져, 부서지며 내려앉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설 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상기시키려는 듯 폭죽 터진 종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길옆 상가들의 유리문에 붙인 붉은 색 그림종이들은 열기 찬 사람들의 숨결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멀리서 보아도 새해에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기를 기원하는, 붉은 색 그림종이의 중간에 거꾸로 쓴 복() 자가 한눈에 알렸다.
약동하는 거리의 기상에 성실이의 마음은 오히려 아파 났고, 자기의 설움을 알아주지 못하고 무심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냉혹해 보였다.
뒷골목에 이르니, 삼면을 둘러막은 포장과 그 안에서 유툐우를 파는 게 보였다. 앞쪽에 큰 기름 가마를 마주하고 유툐우 튀기는 남자와 그 옆에 도마용으로 쓰이는 긴 밥상을 마주하고 시중드는 여자가 서서 일하고 있고, 그 뒤의 안쪽에 놓인 커다란 낡은 밥상 앞에 손님 두 명이 앉아 유툐우를 먹고 있었다. 시중 드는 여자는 밥상 위에 밀어붙인 밀가루반죽을 손바닥보다 더 큰 너비로 길게 베어낸 다음 다시 손가락만큼 굵게 칼로 세로 썰고 있었다. 연후에 그것들을 두 개 씩 겹쳐서 눌러 붙이고 두 손으로 양끝을 쥐고 쭉 잡아당기면서 그 중간을 밥상에 대고 몇 번 탁탁 쳐서 30센티미터 정도로 늘인 후 천천히 기름가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것이 요술을 부리기나 하듯이 뿌지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부풀어오르는 걸, 남자가 긴 참대 젓가락으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었다. 잠시 후 흰색이 황색으로 변하자 밥상 한 쪽에 놓인 커다란 소쿠리에 하나씩 건져냈다.
저렇게 자꾸 태운 기름을 이튿날에 새 기름과 섞어 또 쓰겠지.
큰 가마에 절반 나마 되는 기름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성실이는 자기도 모르게 이맛살이 찡그려졌다. 그래도 바삭바삭하면서도 찔깃찔깃한 유툐우의 고소한 그 맛에, 또 콩국에 말아먹으면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은 그 멋에 홀려, 중국 사람들은 아침 식사에 유툐우를 먹기 제일 좋아한다.
하나에 35전씩 하는 유툐우를 세 개 사면 1원이기에, 성실이는 방금 가마에서 나온 유툐우 세 개와 한 사발에 50전씩 하는 콩국 두 사발을 달라고 하여 돈을 치렀다. 늦은 아침인데도 유툐우 사러 오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 걸 보면 돈벌이가 잘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성실이의 눈에는, 겨울의 찬 기운 속에서 얼굴에 홍조를 피여 올리며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고 있는 수수하고 건장한 한족 부부가 전에 없이 빛나고 멋있어 보였다. 찰나, 나도 공부고 뭐고 꿈꾸지 말고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난 장사할 체질이나 기질이 아니야.하고 어두운 마음에 순간의 빛처럼 찾아든 생각을 털어 버리며, 유툐우와 콩국을 담은 비닐봉지를 두 손에 각각 든 채 어깨가 더욱 처져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자전거 방울 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 성실이의 어깨를 툭 쳤다.
김동무, 아직 아침을 안 먹었어?
성실이가 놀라면서 돌아다보니 키 크고 뚱뚱한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자전거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말을 걸었다.
아, 한주임, 난 또 누구라구. 출근 길이야요?
역시 중국말로 대답하는 그녀는 말의 뒤꼬리를 길게 빼다가, 중국어에는 존대, 하대의 구분이 없지 하는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남편이 좀 나았어?
누가 보아도 꾸밈없어 보이는 관심 어린 어조와 눈빛이다.
예. 괜찮아요.
언제부터 나올래? 도서관에서는 정돈바람에 끓어 번지는데.
좀 더 지내보고요.
응. 그렇게 해. 남편 병구완을 잘하고 나와. 나 갈게.
그 여자는 다시 자전거에 훌쩍 올라앉더니 저 앞의 큰 길 쪽으로 태연하게 자전거를 달렸다. 육중한 몸체에 눌린 자전거 바퀴가 눈길 위에서 굴러가며 빠드득 빠드득 하고 내는 소리가 멀리 갈 때까지 들렸다.
능구렁이 같은 여자, 속으로는 얼마나 고소해할까.
성실이는 자신의 신세가 서러운 것보다, 그 불행한 처지를 겉으로 동정하는 것처럼 하면서도(물론 털끝만큼의 동정도 없다는 건 아니다) 속으로는 자신들의 경사로운 일 못지 않게 기뻐할 인간들의 비뚤어진 심리를 그려볼 때 더 서러웠고 화가 났으며, 그럴수록 어떻게 하나 신세를 고쳐 너희들에게 보여주마 하는 배심이 불쑥 솟군 하였다.
전임 대학교 총장의 조카라는 든든한 빽이 있는 그 한주임이라는 한족 여자는 성실이와 함께 대학교 도서관의 한 부서에서 일했고, 성실이의 직접 상급으로서 서로 못마땅해하는 사이였다.
아직도 반달 청가()가 남았는데, 빨리 출근하기를 바라는 모양인가. 아니면 쫓겨날 거라고 예언해주는 것인가. 흥, 지레 좋아하지 말어. 며칠 후 사직서를 제출하여 놀라 자빠지는 걸 봐야겠어.
성실이는 또 이를 악물며 날이 선 생각을 했다.
아침을 먹자 바람으로 성실이는 한 시내에 사는 조선족 친구 네댓 명에게 돌려가며 전화했다. 남편의 수술 때에도 경험했지만 돈을 꾸어달라는 말을 꺼낸다는 건 죽기보다 더 괴로운 노릇이었다. 워낙 한국 갈 돈이 없어서 친정의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가 야단을 치는 바람에 오빠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여동생이 어머니 몰래 챙겨주는 돈 만원(당시 한국 돈으로 130만원 정도에 해당)밖에 갖고 오지 못했다. 그래서 눈을 딱 감고 친구들에게 다문 이삼천 원씩이라도 꾸어달라고 말해볼 잡도리였다. 그런데 말도 붙이기 전에 상대측에서 먼저 눈치를 챈 건지 우는소리가 나오는 판에 기분만 잡쳐졌다. 먼저 전화를 건 친구 넷은 유학 간다는 말에 좀 놀라는 듯 하다가 속은 어떻든지 축하한다고 한결같이 말했지만, 마감에 통화한 친구는 아예 처음부터 아니, 그럼 남편은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해도 될까?하고 제 쪽에서 언성이 높아지며 분개하는 듯 하기에, 성실이는 별 못난 것, 네가 무슨 상관이기에? 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느라고 전화기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는 대학교 동창생이자 제일 친한 친구인 B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돈을 잘 벌어 잘사는 B가 오늘 오전에 돈 만원을 갖고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아무거나 잡으려고 덤비는 격으로 B에게 하나를 더 꾸어달라고 매어 달려보려고 했다. 이제는 자기의 운명이 B에게 달렸다고 생각하니 B를 기다리는 마음도 절박해졌다.
초조한 마음으로 B를 기다리는 성실이는 일각 여삼추라는 말의 뜻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았으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그녀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침실과 객실 겸용으로 쓰이는 좁은 방에서 앉았다 섰다, 왔다 갔다 맴돌며 쉴새없이 시계만 쳐다보았다. 시간은 각 일각 흘러가고, 11시가 되어도 B는 종적이 묘연한 사람처럼 눈앞에 나타나 주지 않았다.
혹시 마음에 동요가 생긴 건 아닐까. 아니, 그럴 수 없어. 제 쪽에서 먼저 한 말인데.
갑작스레 B를 의심하는 마음이 회오리바람같이 몰려왔으나,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 것으로 애써 물리쳤다.
성실이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B만은 믿었다. 남편의 심장병이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댁에서는 심드렁해 하는데 B가 먼저 돈 만원을 갖고 찾아와서 빨리 수술하라고 권고하였다. 반년 후 남편은 심장에 생긴 혈전 때문에 뇌출혈을 했고, 다시 반년이 지나서 남편은 후유증이 남은 불편한 몸으로 뒤늦은 수술대에 올랐다. 남편이 불구로 된 다음 남편의 친구들이 거지반 발길을 끊었고 성실의 친구들도 어딘가 소원해지는 느낌이었지만 B는 하루가 멀다하게 병 문안을 다녔다. 남편의 수술 후 부조로 들어온 돈으로 얼마 전에 B의 빚을 먼저 갚았는데, B는 어제 성실이의 전화를 받고 한국에 유학 가게 되었다는 말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고 그 돌려준 돈 만원을 오늘 도로 가져갈 테니 바쁜 대목에 쓰라고 하였다.
성실이는 몇 번인가, B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빚을 내려는 쪽에서 재촉하는 것 같은 느낌에 그만두었다. 또 혹시 노크 소리가 난 걸 듣지 못했나 해서 제 정신 없이 달려나가 문을 열어보았으나 텅 빈 복도에는 B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12시가 지날 때까지도 집요하게 남아있던 강한 미련이 1시가 가까워오자 점점 실망으로 번져갔다. 이때 문소리가 나면서 청이가 마마(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성실이는 거의 스러져가던 마음에 불길이 확 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주저앉았던 소파에서 펄쩍 일어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엄마, 배고프다.
누가 왔다고 부르는 줄로 알았던 딸애는 헐떡이며 혼자 들어와 법석을 떨었다. 눈 위에서 뒹굴었는지 아니면 다른 애들과 눈싸움을 했는지 겨울옷과 바지에 눈 묻은 자리가 지도를 그렸다. 딸애가 바깥에 나가 여태껏 놀고 있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절망과 함께 딸애를 노려보는 성실이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누가 널 나가 놀라던? 야, 그 옷 봐라. 어머니가 금방 빤 건데. 야-아, 넌 어머니가 맥 빠져 죽는 걸 보지 못해 몸살이구나
어느 사이 딸애의 빨갛게 언 볼에 찰싹하고 손이 올라간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손으로 볼을 움켜쥔 딸애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걸 보고서야 속이 철썩 내려앉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 풍덩 앉아버리고 말았다. 딸애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귀를 때려보았다. 따귀뿐만 아니라 화가 날 때면 아무 데나 때리고 싶다가도 손이 떨려서 때리지 못했고, 간혹 남편이 아이에게 손대면 제 살이 아파 나는 것 같아서 앞에 나서서 막아 주군 하던 딸애였다.
성실이는 멍하니 앉아서 딸애를 바라보다가 급기야 마루를 두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너까지 애 말리면 어머니가 어떻게 사니, 흑. 공부는 꼴찌만 하고 놀음에만 탐하면 어떻허니, 흐윽. 내가 무얼 보고 사나, 무슨 재미에 사나, 흐-윽.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흑. 아이구, 어머니 난 못 살겠소. 흑흑흑
딸애가 다가와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함께 울면서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엄마), 죽지 마, 내가 잘못 했어, 다시는 나가 놀지 않을래. 공부도 잘하고 말이야. 엄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래. 흐-응응.
그 말에 성실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눈물을 닦으며 딸애의 손목을 잡고 일어났다.
너 배고프다고 했지? 내 돈을 줄 테니 사발 라면이나 사다 먹어라. 나머지 돈도 네 마음대로 먹고 싶은 걸 사거라.
성실이가 준 돈 10원을 받은 딸애는 언제 울었더냐 싶게 기분이 말끔해서 밖으로 나갔다.
자기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방구석에 있는 차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2인용 침대를 지나서 소파 쪽으로 걸어가 쓰러지듯이 드러누웠다. 눈을 감은 그녀의 머리 속은 온통 창백하게 비어있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청이가 들어와서 털외투를 끌어다가 덮어주는 걸 그녀는 모르는 척 하고 누워있었다. 청이가 다시 베개를 가져와 마마(엄마) 하고 나직이 부르며 머리 밑에 밀어 넣을 때에야 그녀는 물기 어린 눈을 떠서 딸애를 치어다 보면서 물었다.
라면을 다 먹었니?
응. 마마, 어디 아파?
아이는 조선말이 나가지 않는지 그냥 중국말을 했다.
아니, 아프지 않아.
그녀는 조그마한 딸애의 얼굴에 그늘이 진 걸 보고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웃음이 나가지 않았다.
너 방학숙제 다했다고 했지?
응.
분명 중국어로 녜 하고 대답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조선말의 응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럼, 밖에 나가 놀거라.
성실이는 딸애가 아까 밖에서 들어온 옷차림새 그대로인 것을 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가 놀고 들어와서 그 옷들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어라.
진짜 나가 놀아도 괜찮아?
어딘가 주저하는 듯 하면서 반신반의하는 딸애의 물음이다.
응.
그녀가 누운 채 고개를 힘있게 끄떡여 보이자, 그제야 딸애의 눈은 반짝 하고 빛났다.
그럼, 난 나갈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춤추듯 기뻐하며 내닫는 딸애의 뒷모습을 본 성실이는 자기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애는 공부하라고 하면 끄떡끄떡 졸다가도, 놀음이라면 정신을 번쩍 추는 성미다. 남편이 앓기 전에 짬만 있으면 붙들고 배워주었고, 남편이 앓아 누운 다음에는 자기가 각별히 신경을 써서 가르쳤지만 딸애의 학습성적은 언제나 고만고만하게 학급에서 마감 줄에 들었다. 그런 딸애 때문에 속태우면 친정 어머니는 언제나 여자애들은 공부 잘못해도 일없네라, 좋은 신랑 얻으면 대학 가기보다 낫네라 라는 말을 그 무슨 명언을 외우듯이 되풀이하군 했다.
그녀 혼자 남은 조용한 집안은 이상스럽게 괴괴해 보였다. 마음이 괴로워서인지 텅 빈속이 메슥메슥해 나면서 불편했고, 집안에 서린 냉기에 전신이 얼어드는 것 같아 몸을 잔뜩 옹송그리며 밖으로 나온 발을 짧은 외투 속으로 밀어 넣느라고 애썼다. 그러다가 머리를 드니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커튼을 드리운 방안의 묽은 어둠 속에 그림 속의 푸른 바다가 검푸르게 보이고 바다 위에 뜬 흰 돛배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 괴물이 다시 자기로 변하여 B와 친구들이 자기를 보고 피하는 환영에 그녀는 다시 눈을 딱 감아버렸다. 그녀는 마음이 쓰라려 났고 당장 죽어버리고 싶었다.
친구들이 성실에게 돈을 꾸어주지 않는데는 원인이 있었다. 남편의 심장수술 때문에 남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과 친척들에게 진 빚이 4만원이나 되는데, 대학교 병원에서 수술비 8만원에서 70%는 환불한다고 했지만 이제 겨우 20%밖에 환불받지 못했고, 나머지는 돈이 없어 언제 환불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판에 돈을 벌러 간다면 몰라도 돈을 밀어 넣으며 공부하러 가는 그녀에게 누가 돈을 꾸어주기를 원하겠는가. 요즘은 돈을 꾼 사람이 배를 내밀고, 돈을 꾸어준 사람이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하여 빚진 사람에게 무릎 꿇고 비는 세월이다. 이러한 것을 성실이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인생의 절벽에 섰다고 생각하는 처지에 남들의 난처한 입장을 보아가며 손을 내밀 계제가 못되었다. 지금 한국 갈 돈을 구할 수 없는 그녀는 세 식구가 쓰고 사는 집이라도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 집도 학교의 것이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대로 누워 있다가는 천장이 내려앉아 깔려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저쪽 구석에 놓인 컴퓨터 앞으로 갔다. 맏시형의 회사를 정리하면서 처리한 낡은 컴퓨터였다. 그거라도 팔아서 한국 갈 때 보태 쓰려고 하였더니 몇 백원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본지도 오래 되었다. 그녀는 거의 습관적으로 뒤쪽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가 놓고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생각나는 대로 타이핑했다.
푸른 바다, 흰 돛배. 푸른 바다가 푸른 하늘로 변한다. 가없이 푸른 하늘 위에 흰 구름덩이가 몇 송이 떠가고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소녀가 그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저 뒤에 내 님이 계실 거야, 언제면 내 님이 저 구름 뒤에서 얼굴을 내밀까 하고 생각한다. 구름이 멀리멀리 떠가고 푸른 하늘도 소녀도 보이지 않았다.
성실이의 꿈은 워낙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뒤늦게 시로 등단하였고 시와 수필을 좀 발표하였을 뿐 소설은 아직 발표해보지 못했다. 워낙 꿈이 커서인지 그녀는 쓸수록 자기의 글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배운 조선어가 짧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어릴 때 조선말부터 배웠고 조선족 학교에 다녔으며 대학교에서 조선어문을 전공한 그녀는 중국어는 더욱 한족 작가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그녀의 창작무대는 협소한 조선족 문단이었고 그 문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안타까움에 밤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민했다. 더구나 최근년간에 한다 하는 조선족 작가들이 한국에 들락날락하면서 더욱 인기를 모으고 돈도 버는 판에 자기는 갈수록 심산이라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솟았다. 그녀가 이 시각에 무얼 어떻게 써내겠다는 것보다도 울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는 것, 피 마르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필요했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 분풀이라도 하듯이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연속 두드려댔다.
이전에 한 가난한 집에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인형처럼 예쁜 여자애가 있었다. 어른들이 여자애에게 어머니가 얼마만큼 좋은가고 물으면 여자애는 언제나 하늘만큼 좋다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말이 재미있다고 어른들은 여자애를 보기만 하면 그 말을 곱씹어 물었다. 여자애는 크면서 세속의 비바람에 밉게 번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 어진 딸애를 두고 어머니는 남에게 피해를 입을까봐 언제나 조바심을 쳤고, 딸애가 크자 총명하고 착한 사위 감을 고르기에 신경을 썼다. 딸애도 어머니의 하늘을 떠나서 새 하늘을 찾고 싶었다. 드디어 딸애는 결혼하였다. 결혼한 딸은 얼굴이 다시 이쁘게 피어났고 남편은 헝겊 인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남들은 화목하고 서로 어울려 보이는 이 한 쌍의 부부를 부러워하였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먹장구름이 그들의 가정에 드리웠다. 언제나 흐려 있는 젊은 아내의 얼굴은 다시 미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구멍 뚫린 하늘에서 우레 치고 번개가 번쩍이고 소나기가 퍼붓더니 남편은 쓰러지고 말았다.
예까지 타이핑한 성실이는 눈을 꼭 감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실었다.
반년 전의 악몽 같은 그날 밤을 생각만 해도 그녀는 몸서리가 쳤다. 하루밤 사이에 남편은 언어능력을 잃고 반신불수로 되었다. 남편을 붙들고 병원에서 눈물을 비오듯이 쏟던 어느 날, 한국에 유학 간 대학교 동창생으로부터 문안 편지가 날아왔다. 한 글자 한 글자 눈물로 얼룩진 답장을 써보냈더니 동창생은 다시 편지를 보내와, 우애로 넘치는 글월로 그녀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와 다시 소생할 힘을 주었다. 동병 상련이라고 몇 년 전에 과부로 된 동창생은 성실이의 아픔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동창생은 유학 오는 일은 자기가 꼭 도와줄 것이니 걱정 말고 남편의 병구완에 전력을 다하라고 격려하였다. 다시 일어설 것 같지 못하던, 시시각각 생명이 위태롭던 남편은 서서히 병마를 이겨내고 반년 후 끝내 수술까지 마쳤다. 그와 동시에 성실이는 한국에서 날아온 입학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더욱 기쁜 것은 석사학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면 춘성에서 유일한 본교의 한국어학과와 조선문 잡지사에서 다 그녀를 받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렵게 만들어진 출국 유학의 기회는 돈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한국의 동창생은 자기는 반년 후에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기에 더는 도울 수 없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전화에서 거듭 어조에 힘을 주었고, 한달 후에 갚아주기로 하고 불법체류하고 있는 친척에게서 꾼 돈으로 대신 입금한 등록금은 공부를 포기할 경우 반환한다 해도 벌금이 부가될 거라고 조급해했다. 그렇지만 돈을 꿀 길이 막혔는데, 그녀인들 무슨 날고 뛰는 재간이 있으랴.
몸이 오스스 떨려 난 그녀는 소파 위의 털외투를 가져다 걸치고 또다시 컴퓨터 앞에 가 앉았다.
눈앞에 엷은 안개에 잇달아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늘이 새까매졌다. 갑자기 검은 파도가 길길이 치솟는 바다가 나타나고, 그 파도 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허우적거리는 게 보였다. 그 낯익은 그림자가 어쩐지 어머니 같았다. 다시 보려고 눈을 크게 뜨며 다가가는데 어느 사이 파도가 덮쳐와 그녀를 삼켜버렸다. 소름이 끼치는 컴컴한 바다 속에 곤두박질해 들어가 바닷물을 몇 모금 삼킨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안간힘을 다하여 위로 솟구쳤다. 겨우 바다 위에 머리를 내민 그녀는 어릴 때 배운 서투른 수영동작을 해가며 멀리멀리 해안을 향하여 헤어 나오려고 애썼다. 앞에 몇 겹의 거센 파도가 또 덮쳐오는 걸 보고 질겁하여 사람 살려요하고 아우성치다가 어쩔 사이 없이 밀려온 파도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한국에 가지 못할 경우의 일을 생각하면 성실이는 아득한 심연에 빠지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컴퓨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인원을 축소한다는 말이 떠돌았는데, 그렇게 되면 최근 년간에 줄곧 결근이 잦은 그녀가 먼저 밀려나기 마련이다. 쫓겨나기 전에 발뺌을 하려고 한다기보다 10여 년의 도서관 직원 생활에서 신물이 날대로 난 그녀는 도서관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지 오래다. 다만 그 어떤 마땅한 구실을 찾아서 보기 좋게 나오려고 했을 뿐이다.
성실이는 처음에 도서관 직업을 아주 이상적인 직업으로 알았다.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중학교 교사로 배치 받은 것을 마다하고 도서관으로 기껍게 들어갔다. 그녀가 도서관 직업을 이상적이라고 여긴 것은 일이 문명해 보일 뿐만 아니라, 보고 또 보아도 끝이 없을 그 많은 도서들을 마음껏 열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은 빗나갔다. 조선어, 일본어와 관련된 도서 구입과 도서자료의 대외 교환 업무를 맡은 그녀는 하루종일 독서와는 상관없는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작업에 열중해야 했다.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머리가 굳어진 한주임은 반날에 할 수 있는 일도 고무줄 잡아당기듯이 질질 끌어서 하루를 하는 건 관계치 않았으나 출근시간에 독서는 절대 금지한다고 했다. 성실이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불만을 터뜨리다가도 앞에서는 입에 발라 맞추는 말만 하기에 자기도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몇 년을 꾹 참고 지내다가 어느 날 부서의 사업토의 회의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한주임에게 자기의 생각을 내비치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중급 직함 평의 때 한주임이 뒤에서 성실이를 자본주의 자유화를 선양했다고 물고 늘어졌다. 다행히 도서관의 당위서기(: 공산당 조직의 주요책임자)가 그녀를 찾아 담화한 후에 두둔해주었기에 그녀는 안전하게 직함 승진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명예손상을 받지 않았다.
이제 도서관을 나오면 세 식구의 가정 생활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언어기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남편은 다시 대학교 교단에 오를 가망이 보이지 않았고, 이제 남편의 봉급이 끊어지면 성실이가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살기 힘든 판이다.
문득 유툐우 파는 한족 부부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났다.
나도 무슨 장사를 해본다? 근데 장사할 능력이 없다는 게, 또 어디 가서 밑질 거라는 게 얼굴에 그려져 있는데, 내가 무슨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 있을까? 아니다. 누구는 날 때부터 장사꾼이라는 도장이 얼굴에 찍혔나. 옳지, 김치 장사를 하면 될 것이다.
성실이는 도서관에서 봄 놀이를 가거나 새해 맞이 파티를 할 때 배추김치나 도라지무침 등을 해 가면 동료들이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들던 일이 생각났다. 듣는 말에 의하면 길거리나 시장 안에서 김치 장사를 하는 조선족 아줌마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그러나 장사를 하는 게 겁나는 것보다 아는 사람을 보기가 더 두려울 것 같았다. 그러자 아침에 친정 어머니보고 남들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닌데 남의 눈을 의식할 게 뭐냐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순전히 주체적 자아의 의지대로 살 때가 과연 얼마나 되랴 싶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자기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고, 죽는 것 또한 자기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다.
향후 어떻게 살아갈까.
마마, 와하하 잉양빠보우쭤우(: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죽을 쑤어 만든 식품)를 사왔어. 같이 저녁 먹자. 배고프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청이가 성실이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 바람에 그녀는 바닷물을 한 모금 꿀꺽 삼킨 듯한 느낌을 받으며 돌아다보았다.
창 밖과 방안이 다 어두웠다. 딸애가 켰는지 취사장의 불빛이 열어놓은 방문으로 흘러 들어왔다. 딸애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그녀의 마음을 두 줄기 섬광처럼 비추는 것 같았다. 또 저녁이 늦어졌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벽시계를 쳐다보는데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그 소리에 놀라서 성실이는 몸을 움쭉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이 보름날이던가?
아니야. 엄마가 한국 간 다음 보름을 쇠게 될 거라고 하잖았어?
오, 그렇지.
성실이는 그제야 어제 달력을 보며 3월 2일에 동그라미를 긋던 일이 생각났다.
오늘 저녁엔 네가 좋아하는 왠쇼우(: 정월 대보름날 먹는, 소가 들어 있는 새알심 모양의 식품)나 먹자.
내가 와하하를 사왔다는 데두.
두 가지를 같이 먹으면 더 좋잖아.
그 말에 딸애는 갑자기 신이 난 듯 손뼉을 쳤다.
그럼 내 다시 나가 사올게 엄만 계속 타이핑해.
그녀는 달려나가는 딸애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청아, 엄마 돈지갑 갖고 가라.
싫어. 내게도 돈이 많아.
연변에서 음력설에 받은 세배 돈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제 돈에 손을 대게도 못하던 딸애였다. 성실이는 딸애가 숙성해간다고 생각하니 콧마루가 찡해 나는 한편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성실이는 정작 저녁을 하자니 귀찮아져서 왠쇼우만 기름에 튀기고 감자 채라도 볶으려던 생각을 접어두었다.
두 식구가 왠쇼우와 와하하, 그리고 김치 세 가지만 댕그라니 놓인 밥상을 마주하고 앉으니, 성실이는 외로운 느낌이 들며 마음이 쓸쓸해 났다.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와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해에는 누가 왠쇼우를 더 많이 먹나 하고 청이와 내기를 하더니.
시댁에 두고 온 남편의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왠쇼우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무슨 맛인지 모르고 억지로 씹는 성실이의 눈앞에는 이별할 때의 남편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은 성한 왼 손으로 가슴을 붙잡은 채 반쯤 열린 시댁의 산 속 별장 유리문에 잠깐 기대어 섰다가 돌연히 머리 돌리며 들어갔다. 남편은 아마 눈물을 머금으며 돌아섰을 것이다. 남편이 가지 말라고 한 마디만 했더라면, 아니, 그 순간 남편의 눈에 어린 눈물을 보았더라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출국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실이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떠나는 그녀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눈물을 삼키며 딸애의 손목을 잡고 이미 대기한 택시에 올랐다.
엄마, 빠바(아버지)도 지금 저녁을 먹을까?
청이도 아빠 생각이 나는지 왠쇼우를 먹다말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딸애의 눈과 마주치면 눈물이 터지고 말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말했다.
모르겠어. 전화로 물어보려무나.
응. 그럼 내 전화를 걸겠어.
딸애가 일어서려는 걸 그녀는 눌러 앉히는 손시늉을 하며 말했다.
저녁이나 먹고 걸어라. 아빠도 지금 식사중일 거야.
저녁 후에 청이는 시댁에 전화를 거느라고 한식경이나 씩씩하다가 저쪽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울상을 했다. 식당으로 쓰는 별장이어서 손님들이 전화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에게서 걸려온 줄로 아는지 청이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 동작에 감염되어, 성실이도 방바닥을 닦던 손을 멈추고 신경이 곤두서서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녀에게 딸애가 입을 비죽이 내밀고 누군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이며 전화를 넘겼다.
전화기에서 톤이 높고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임자가 도대체 누구이던지 언뜻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이 아직도 많이 아파해요?
그제야 한 병실에 있던 환자의 가족이라는 걸 알았다. 그 여자는 환자인 자기 남편과 쩍하면 다투었고 남편이 화를 내면 울기도 잘했다. 말이 많은 그 여자의 덕분에 성실이가 모범아내라는 소문이 병동에 쫙 퍼졌고 다른 병동의 사람들까지 성실이의 얼굴을 보러 찾아왔다. 이제는 너무 귀아프게 들어 인사치레인지 진심의 말인지 분간하기 힘든 칭찬을 전화에서 또 곱씹고 나서, 그 여자는 방금 병실에서 연세가 제일 많던 환자에게도 전화했는데 그 노인이 성실이를 천하제일이라고 치하하면서 그녀에게 조선족 처녀를 며느리 감으로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하더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성실이는 남편이 입원한 동안에도 자기가 출국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계속했다고 하면 이 여자가 무어라고 할까 하는 생각에 희어졌다 붉어졌다 하는 자기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지겨운 그 여자의 수다에 응수하느라고 신경을 써서 목과 팔이 다 뻣뻣했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낮에는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더니, 저녁엔 연달아 폭죽 터지는 것처럼 웬일이야.
수화기를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한 B의 푸념이 들렸다.
아이구, 너의 집에 한번 전화를 거는 게 별나라에 전화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야. 하루종일 전화했는데두 어디 통화할 수가 있어야지.
그럼 그렇겠지.
성실이는 하늘의 구름이 걷히는 것 같은 환희와 감동을 느꼈다.
아, 그랬어. 아이 참, 미안해. 전화기를 잘못 놓은 걸 모르고 있은 모양이야.
오전에 돈을 갖다 주려고 집 문을 나와 층계를 내려서다가 이전에 상한 적 있는 발을 삐어 오지 못했다고 말한 B는 그녀보고 내일 돈 가지러 오라고 하였다. 성실이가 걱정할까봐 그러는지 괜찮다고 했지만, 남편이 출국 중이고 아들애밖에 없다고 하는데다가 자기 때문에 상한 것이므로 B의 집에 가보는 게 마땅한 도리였다. 그보다도 내일 B의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돈을 가져오는 것이 좋을 것이고, 눈치를 보아가며 만 원을 더 꾸어달라고 말하기도 편리할 것 같았다.
성실이는 자기를 따라나서는 딸애를 앞세우고 시내버스에 앉아 B의 집으로 갔다. 다행히 B가 크게 상하지 않아 시름이 놓였고 돈 만원도 감사하다고 거듭 말하면서 받았다. 하지만 정작 B의 얼굴을 맞대고 보니 열 번도 더 벼른, 돈 만원을 더 꾸어 달라는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돈을 꾸지 못하면 서로 난감할 것이고, 설사 돈을 꾼다고 해도 언제 갚겠다고 확답을 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B가 돈 만원을 내놓은 데다가 유학 가는 데 경제 담보를 서준 것만 해도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는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B의 부어오른 발만 내려다보다가 일어섰다.
그들 모녀는 아홉 시 반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 딸애는 그때까지도 잊지 않은 모양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라고 졸랐다.
이젠 너무 늦어서 주무실 것 같은데.
성실이도 연변에서 돌아온 다음 남편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데다가 남편이 걱정스러워 어쩔까 하고 망설이면서도, B의 집에 갈 때와는 달리 비 맞은 때처럼 정서가 후줄근해져서 전화를 걸 기분이 나지 않았다.
아니야, 빠바(아버지)는 자지 않을 거야. TV를 보고 계실 거야.
앓기 전에 언제나 밤중까지 TV를 보던 남편인지라, 딸애는 자기가 잘 안다는 듯이 방 복판에 버티고 선 채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럼, 전화해볼까.
그녀는 남편에 대한 무관심을 딸애에게 들킨 듯한 언짢음에 마지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저쪽에서 시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목소리를 낮추어 남편이 안정제 주사를 맞고 방금 잠들었다고 했다. 또 진통이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끔해서 하나님, 제발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아파하기에 맏시형이 시내에 내려가 의사를 모셔다가 보였더니 수술자리가 아물고 심장기능이 회복되느라고 그렇다고 하더라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남편이 병원에서 퇴원하자 맏시형이 데리러 와서 온 집 식구는 침대차로 연변에 있는 시댁에 가서 구정을 보냈다. 구정 이튿날에 시형은 이제부터 남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식당영업을 하는 시댁의 그 산 속 별장에서 요양시킬 테니, 남편 걱정은 아예 말고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라고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말들을 했다. 입학통지서를 받고 그때까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성실이는 이때다 싶어 한국 유학의 의향을 내비치었다. 그러자 맏시형은 얼굴이 어딘가 흐려지며 아무 말도 없는데, 시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좋은 일인데 가야지 하고 선뜻 허락하자 다른 식구들의 침묵도 순탄하게 동감의 뜻으로 전달되었다. 평소에 성실이와 알력이 있던 시어머니는 결국 그 아들, 즉 남편의 어머니였으며, 그 시어머니의 위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아빠가 안정제를 맞고 주무신다는 말에 청이는 왜 그러느냐, 얼마나 아파하느냐 하고 꼬치꼬치 캐어물으면서 앳된 얼굴에 노숙한 시름이 어려 자기 침실로 갈 염을 하지 않았다. 성실이는 큰 침대에서 혼자 자기 싫던 차라 오늘 저녁엔 함께 자자고 하면서 딸애의 침구를 가져다 폈다.
이윽고 옆에서 딸애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는 컴컴한 방안의 어둠 속에서 불안하기만 한 성실이의 마음에 한시나마 안정을 찾아주는 듯 했다. 남편이 없을 때면 딸애의 숨소리가 동무하여준 지도 벌써 8, 9년이 된다. 그 동안 딸애는 그녀 곁을 떠나본 적이 없었고, 그러한 딸애를 떼어놓고 남에게 맡긴다는 건 그녀의 살점을 도려내는 것처럼 마음 아픈 일이었다. 딸애를 보아줄 보모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걸 상기하자 또다시 마음이 갑갑해 나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았다.
성실이는 내일 북경 행에 대해서도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B에게서 돈 만원을 가져오기는 하였으나, 빈 털털이나 다름없는 처지인 그녀가 북경 가서 비자 받고 비행기표 끊고 한국 가서 쓸 물건들을 사고 나면 겨우 등록금만큼 갖추어진 돈이 또 헐릴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한두 달 생활비는 갖고 가야 한국에 가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데, 그러자면 아직도 만 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월에 어디 가서 돈 만원을 무 뽑듯 쉽게 꾸어오랴.
또다시 눈앞이 캄캄해 났다. 앞쪽 벽의 바다 그림은 꿈속에서 본대로 시커먼 바다로 되어 이제 눈만 감으면 그녀를 삼켜버리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집이 아니라 무덤 속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성실이는 남편이 뇌출혈을 했을 때와 같은, 아니 그보다도 곱절 되는 절망과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일어나서 소파 위의 털외투를 걸치고 컴퓨터 앞으로 갔다. 이대로 있다간 질식하여 죽고 말 것 같았다. 갑갑하다 못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건 지금 이 컴퓨터밖에 없었다. 불현듯 향후 김치 장사를 하든 길거리에서 밥을 구걸하든 자기는 창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글을 쓰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자. 소문난 작가가 되어서 돈도 벌자.
잠시 후 방안에 희미한 빛을 던지는 컴퓨터의 형광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성실이는 소설 속의 주인공을 어떻게 형상화하겠는가를 궁리했다. 남편과 자기를 모델로 잡으려고 하였지만 평소에 단순해 보이고 익숙하던 자기들의 신변생활이 갑자기 복잡해지고 생소해지는 느낌에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형식으로 썼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소설을 쓰자니 인칭부터 문제였다. 1인칭으로 쓰자면 발표될 경우 남들에게 이건 우리 부부생활을 쓴 거다 하고 자백하는 것 같아 싫었고, 3인칭으로 쓰자니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있던 남편인데도 그 심리활동을 파악할 수 없어서 걱정이었다.
인물들의 갈등구조를 어떻게 설정하겠는가는 더욱 큰 난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어머니를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을 다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실 결혼 후 그들 부부 싸움의 도화선은 대개가 시어머니와 관련된 것이었다. 맏동서의 말에 의하면 시어머니는 젊었을 때 시조모의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 시어머니가 늘그막에 며느리에 대한 구설은 시조모를 초월한다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말끝마다 아들이 공부할 때 섬긴 돈을 열거하면서 성실이를 빚진 사람처럼 굴었고, 며느리가 일할 줄 모르고 남편의 공대를 잘하지 못하여 아들이 말랐다고 늘 불만스러워했다. 그러나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남편의 풍습성 심장병은 어릴 때 감기에 걸린 걸 등한히 하여 온 것일 가능성이 많고, 발견할 때까지는 잠복기에 있었을 뿐이며, 그래서 몸이 늘 허약한 상태라고 했다.
성실이는 타이핑을 하려던 손을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자기 대신 남편을 돌보는 시어머니의 허물만을 확대하여 쓴다는 것이 어딘가 잔혹해 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옛날부터 보편적인 주제인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다는 건 소설의 신선한 멋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문소리가 나는 것 같기에 성실이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들었다. 하지만 멀리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아마 다른 집에서 나는 문소리를 잘못 들은 모양이다.
금방 결혼했을 때, 그녀가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줄 아는 남편이 외출할 때면 다시 돌아와서 문을 잘 잠그라고 재삼 당부했고, 출장 가서는 자기가 없는 집에서 그녀가 혼자 굶어죽을 것 같아 안절부절 못 한다고 말하던 생각이 났다. 그러자 그녀는 이름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찌르며 지나가는 걸 느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성실이는 시어머니와의 갈등보다도 사랑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게 더 의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지금까지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했지만 아직도 답안을 찾지 못한 그녀는 남편과의 사랑을 소설에서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 지 몰라 또 오리무중에 빠졌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할 부부의 사랑,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도대체 얼마더냐. 성실이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비바람에도 지탱할 것 같지 못한 약한 몸집에 실망했다. 어머니의 품을 대신할 수 있는 바위처럼 든든한 믿음을 주는 체격이 아니라는 데서였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공부하는 사람이 돼서 약하다.고 남편 쪽으로 기우는 태도를 보였고 모두들 남편을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좋게 평가하였다. 그 바람에 뜨뜻미지근하게 시작한 연애가 결혼한 후에 그녀의 열애로 치달을 줄은 자신도 몰랐다. 성실이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빛나 보였고, 심지어 발가락 하나를 보아도 멋있어 보여 남편의 몸에서 눈길을 뗄 줄을 몰랐다. 남편도 그의 적은 봉급에 철철이 고급 옷을 사주기는 힘들었지만 외출하거나 손에 돈만 좀 만져지면 잊지 않고 그녀에게 신식 옷을 사주었다. 그런데 어질고 고지식한 그들 부부는 한번 다투기만 하면 앙숙이 진 사람처럼 서로 못 본 척 하고 며칠이고 말을 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부부간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그들에게 맞지 않은 듯 했다. 처음에는 그 지루한 침묵을 참을 수 없어서 그녀가 먼저 말을 걸다가, 나중에 그녀가 지쳐버리자 이번에는 언제나 오기에 차던 남편 쪽에서 점차 누그러들며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 추세로 나갔다. 그 전환점은 남편과 크게 다툰 후 두 달 동안의 뼈와 살을 삭이는 것 같은 답답한 침묵 끝에 그녀가 자신의 고뇌와 화해를 호소하는 글월을 만장 같이 써서 외출하는 남편의 가방에 집어넣었더니 남편이 돌아와서 아무 말도 없이 그 편지를 그녀 앞에 내동댕이친 사건과 미구에 남편의 심장병이 발견되는 것과 거의 동일한 시간이었다. 그후부터 성실이는 대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설쳤고 나중에는 창작에 열을 올렸다.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날 밤에, 남편은 그녀를 품에 그러안고 자기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고 뜻밖에 자기의 열렬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였고, 그녀는 경이와 감동으로 온몸의 피가 끓어오름을 순간적으로 느끼고는 남편보고 먼저 주무시라고 덤덤히 말하면서 글을 쓰려고 오늘처럼 컴퓨터 앞에 마주앉았다.
새벽 두 시, 그날도 바로 이 시각이다. 우레가 하늘을 진동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른다.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남편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순간, 컴퓨터의 흰 형광판이 그녀의 사색을 표백하듯이 지워버렸다. 눈을 꼭 감았다 나면, 컴퓨터 형광판의 글자를 지우듯이 그날의 몸서리치는 경력을 지워버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모두가 다 그 돈 때문이다. 그래, 무엇보다도 돈에 초점을 맞추는 게 옳을 것이다. 시어머니하고도 처음에 돈 때문에 사이가 벌어진 거고, 남편의 불구의 몸과 현재 나의 불행도 그 돈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더냐.
성실이는 지워지고 헝클어진 사색을 더듬어 다시 정리하려고 애썼다.
마마, 가지 마. 한국에 가지 마.
갑자기 청이가 일어나 소리치는 바람에, 성실이는 침대에 달려가 아이를 꼭 껴안고 누우며 달랬다.
엄마가 여기 있어. 엄마는 가지 않는단다. 영원히 네 곁에 있을란다.
방금 꿈을 꾼 모양인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그녀는 아이를 다독이며 자장가 부르듯이 혼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엄마는 말이야, 아빠하고 너하고 함께 저 멀리 산 속에 들어가서 초가집 짓고 밭 갈고 씨뿌리고 농사지으며 걱정 없이 살고 싶단다. 낮에는 일하면서 저 나무그늘아래서 고운 색동저고리 입은 네가 그네 타는 걸 보고 싶고, 밤에는 창문으로 달빛이 흘러드는 집안에 앉아 아빠와 함께 너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말이다.
다시 달콤하게 잠든 딸애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눈물이 스며 나와 눈가를 적시는 걸 감촉했다.
돈만 있었으면. 돈만 있으면 남편도 저렇게 드러눕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직장 때문에 머리를 앓지 않고 집에서 남편과 아이를 돌보고 하면 오죽 좋으랴.
이렇게 생각하다가 성실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사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한국으로 달리는 자신의 마음을 이제는 누구도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5년 전에 도서관을 떠나기 위하여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려고 할 때, 남편은 당신이 이제 뭘 하겠다고 시험을 치는가고 반대했고, 자기는 학식 많은 여자를 바라지 않노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가끔 그녀가 아는 게 너무 적다고 비꼬았고, 그녀는 내가 남자라면 큰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고충과 꿈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했다. 그녀는 도서관에 나가서 그 많은 책을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하여 미칠 것 같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무 일에 지쳐 펜을 들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혼자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생각던 끝에 그녀는 해마다 두 달씩 청가 맡고 본교의 경제학 석사과정에 두 번 응시했지만 두 번 다 낙방하였다. 두 번의 시험에서 그녀는 감감 모르고 지내던 많은 경제지식에 눈을 뜨는 동시에 30대 초반이 되는 그녀의 나이에 전공을 바꾸려는 생각이 가당치 않다는 것과 문학 전공에 대한 애착이 날 따라 짙어 감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시험공부를 하는 과정에 엉뚱하게도 그 동안 어쩔 수 없이 잠재우던 창작 충동을 더는 억제하지 못하여 습작을 하기 시작하였고 조선문 잡지에 첫 시를 발표하였다. 그녀의 처녀작을 본 남편은 그녀에게 그런 총명과 재능이 있는 줄을 몰랐다고 놀라워하면서 문학 방면으로 발전하라고 격려해주었다. 남 모르는 큰 꿈을 간직한 그녀는 이때부터 최선을 다하여 한국 행을 시도했다. 남편이 앓기 전에, 남편의 소개로 알게 된 한 한국 사람이 도와서 한국의 어떤 연구원에 대학원 과정 초청 장학생 지원을 했지만 아쉽게도 후보로 나왔다. 그후 북경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하여 모국수학생 선발에 지원하여 합격통지서를 받게 되었는데, 며칠 후 남편이 뇌출혈로 입원하게 되어 출국 계획이 무산하고 말았다.
따르릉. 따르릉.
어느새 잠들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성실이는 자지러지는 듯한 전화벨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창 밖은 아직 어두운 대로 있었다. 그대로 켜져 있는 컴퓨터의 미미한 불빛을 빌어 벽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좀 지났다.
이 새벽에 누가, 혹시 남편이.
비틀거리며 책상 앞에 달려간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드는데, 뜻밖에 아버지의 노여움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환 왜 받지 않구 그 모양이니? 어제 하루 내내 걸어는데두 말이다. 맴이 고렇게 좁게 생겨 먹구서야 원.
평소의 차분한 성격의 아버지답지 않게, 성실이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단숨에 노여움을 내뿜은 아버지는 숨도 돌리지 않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니 어마이가 엊저녁 차로 떠났네라. 길을 찾지 못해 헤매지 말게스리 빨리 역전에 마중 나가라.
녜? 뭐람까? 어머니가 여기루 오신단 말씀임까?
성실이는 내가 언제 오시라고 했더냐 싶게 소스라치듯 놀라며 물었다.
응, 그렇잖으문 네 걱정 땜에 어디 겐디더니. 나두 함께 떠날려구 하다가 요즘 멤(몸)이 좀 말째길래, 먹던 중약이나 마저 먹구 가기루 했네라. 외지 가서 앓아누우문 큰일 아니니.
성실이는 눈가가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속으로 내가 못난 년이야, 못난 년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너 내말 듣고 있는 게니. 빨리 어마이 마중을 나가라.
녜."
성실이는 자기 목소리 같지 않게 목이 멘 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시간 반 후 역전에서 성실이를 만난 친정어머니는 첫 마디에 밉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니 성미가 어떻다는 걸, 다른 사람은 알 배 없어두 어시(부모)인 내사 잘 알지비. 이번에 내가 오지 않으문 한펭생(한평생) 원이 된다는 것두 다 아네라.
어머니는 성실이가 두 살 때 젖을 떼려고 젖꼭지에 잉크를 발랐더니 빽 돌아눕던 것이 그 후 다신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이전에도 여러 번 한 적 있는 이야기를 또 했다.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어머니는 허리에 찬 주머니를 끄르더니 종이에 싼 두툼한 돈 다발을 꺼냈다.
옛다. 2만원이다. 우리가 주머니를 다 털구 두루 변통해서 가져온 게다. 절반은 오빠 돈이다. 오빤 회사(한국 사람이 꾸린 회사)가 문닫아 이젠 봉급두 끊어진 헹펜(형편)이멘서두 이 돈을 갚을 걱정은 말구 공부만 잘하라구 그러더라. 어쨌든 니 오빠 같은 사람은 없네라. 우리 가문에 여자 장원()이 하나 나올려는데 도와야지 어쩌겠는가구 하멘서 오히레 날 설복(설득)하지 않겠니. 나두 이젠 니 오빠 보기 무색하다. 딸넨들은 대학교 다닌답시구 호강시키구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 동생들 시발(시중)에 고생만 시켔으니 말이다. 그래두 니들 신세가 뭐이 있니. 니는 시집가니 또 남펜이 앓아서 애 태워 주구, 거기다가 이 나이에 뭐 또 공부한다구 난시(난리)를 치니. 그래치 않아두 니 오빠는 니 남펜이 앓을 때 돈이라두 변통해서 수술 좀 빨리 시켰더라문, 니 팔자 이렇지 않았겠는 걸 하멘서 니 헹님(형님: 올케를 가리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란다.
손으로 눈가를 누르는 어머니를 성실이는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다급히 머리를 숙이며 말머리를 돌렸다.
아버진 많이 편찮슴까?
뭐 벨일 없을 게다. 워낙 앓음 자랑 잘하는 영감인 걸 모르니. 아부진 니가 공부하자문 돈이 많이 들 텐데, 정 어레워(어려워) 하문 집이라도 팔아서 셈기자구 하더라. 그러는 걸 내가 집은 아들한테 넘겨야 한다구 딱 잡아뗐네라.
표정을 보아선 자랑인지 푸념인지 모를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성실이는 또 목이 메어오는 걸 느꼈다.
어머니와 다투기만 하는 아버지, 언제나 어머니 편에 서서 미워했던 아버지, 그러나 그 아버지는 어머니의 하늘에 가리운 또 하나의 하늘이었다.
그날 저녁에 성실이는 북경으로 떠났고, 그 다음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에 흉하게 벗겨진 반쪽 얼굴을 하고 집에 들어섰다. 어제 영사관에서 장사진을 이룬 대열에 끼어 온 하루 줄을 서서 기다리고, 3월1일에 개학이기에 모레 꼭 한국에 가야 한다고 사정사정하여 저녁에야 겨우 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 다음 역전으로 향하다가 맥이 진한 다리를 헛디뎌 길바닥에서 허망 나가 뒹굴었다는 것이다.
성실이는 열이 몹시 나는 몸으로 저녁까지 물건을 사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저녁을 먹을 때, 어머니가 그녀보고 청이가 외할머니 집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니가 떠나게 되니 집이 스산해서 말을 듣는 모양이다. 나두 중국말두 잘 모르지, 한족들만 사는 데서 어떻게 지내겠는가구 아득해 했더니 잘 됐다.
마마, 로우로우(외할머니)가 그러는데 용정엔 여기보다 함께 놀 친구가 더 많대. 그 친구들이 조선말도 배워주고 해서 좋을 거래. 그리고 외할머닌 나를 조선족 춤과 노래 배우러 다니게 하겠대.
성실의 얼굴은 딸애가 친정 가겠다는 말에 대번에 활짝 밝아졌으나, 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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