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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 알렉산드리아의 여자들 : 아미라 L. S. 리(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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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073회 작성일 10-04-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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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마케도니아의 청년황제 알렉산더는 바다 건너 고국과 가장 빠르게 연결될 수 있고 통치하기 수월한 위치에 정복국 이집트의 수도를 둘 것을 희망했다. 그는 친히 지중해변을 따라 가로형으로 가늘고 긴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어촌을 지목하고 도시건설의 장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알렉산더가 세상을 떠나고 그리스계의 왕조가 이집트에 들어선 이후로도 이 프로젝트는 근 2세기가량이나 지속되어 일개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알렉산드리아는 마침내 완성된 수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그 최초의 건설자이자 정복자였던 이의 이름을 딴 이 도시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근 2천여 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집트 북단의 지중해변의 휴양도시이면서 두 개의 항구를 가지고 있는 이 도시는 오늘날 이집트 산업 및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여자들


 


 


1
나는 이렇게 메모를 적어 그의 앞으로 밀어냈다.
“우리 아이는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몰라요.”
그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
노 프라블럼
이런 일에 대단히 익숙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경험은 적지 않다는 얘기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얼마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그를 소개해준 사람이 입에 물어준 대로 나는 대답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그건 예전 가격이고 지금은 조금 더 인상이 되었다고 했다. 이것도 다른 무수한 것들처럼 내가 외국인이기에 지불해야만 하는 과외비(extra fee)일테지. 그렇다면 나 역시 노 프라블럼.
마취과 닥터의 개인클리닉으로 옮겨야 한다길래 나와 아이는 그를 따라나섰다. 그의 차는 상당히 낡은 빨간색 푸조였다. 그의 아이들 것으로 보이는 장난감들이 꽉 들어찬,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빡빡한, 안  그래도 가슴이 꽉 막혀서 심란한데 이런 상황까지야. 차 좀 바꾸지, 돈 벌어 뭐해, 이런 일하고 받는 돈이 적지 않을 텐데, 싶다가 문득 그가 일하는–우리가 인터뷰 했고 막 떠나온–병원의 리셉션이며, 산부인과 간호사들이며, 앞으로 만나게 될 마취과 닥터까지, 그가 쿠키를 물려주어야할 입들이 참 많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카톨릭과 이슬람에서는 낙태를 금하고 있다. 나라의 근간인 종교가 그러하니 나라법도 그에 맞춰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한반도의 다섯 배씩이나 되는 땅덩어리 가운데에 고작해야 3퍼센트 정도의 땅에서만이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이 나라에서, 남북한을 훌쩍 넘어서는 총인구가 해마다 그 수를 보탠다고 쳤을 때, 집도 없고 잡도 없는 사람들이 과연 잉태되는 대로 아이들을 낳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기에도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그걸 해주는 클리닉이 있을 거야, 숨어서라도 하는 닥터가 틀림없이 있을 거야. 아무리 고급 직종이라 해도 그 많은 이 나라의 닥터들이 하나같이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일’을 해줄 닥터들을 찾았다. 전화 몇 통화, 꼬박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처음 전화로 상대가 외국인임을 확인한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환영을 하는 분위기. 곧장 수술일자를 예약 받으려 들었다. 남편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나이는 몇이죠? 현재 자녀수는요? 아, 그럼 당신을 이해합니다. 또다시 아이를 낳기에는 건강에 무리가 있죠, 정도였다. 예의상 아니었을까.
엄마 금방 끝나?
응, 한 두 시간쯤? 수술 마치고 잠에서 깨어나려면 그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그동안 난 뭐해?
여기서 엄마 지키구 짐 지켜야지


그 어떤 과목의 닥터도, 이 나라에서는 절대로 여자 혼자서는 만나지 않는다. 남편이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오빠, 동생, 그도 아니면 나처럼 아들이라도 동반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남들로부터 혹은 담당 닥터로부터도–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마취과 닥터는 인상이 좋았다. 빨간 푸조 닥터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설마 스승은 아닐 것이고–뭐 좋은 일이라고 제자와 결탁해 이런 짓을 하겠는 가–선배쯤이려니 짐작해보았다. 그는 될수록 환자를 –혹은 고객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려 애썼다. 마취과로는 이 일대에서 꽤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아무렇든지 실력만 있으면 돼. 나를 다시 깨어나게만 해줄 수 있으면.’
이름이 뭐죠?
파티마 장입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출신인가요?
한국입니다. 남쪽.


 


 


 


2
소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엊그제도 경찰이 다녀갔다. 이번 일로 모임이 해체될까 그것이 제일 우려되었다. 모임 창단 멤버 중에서 아직까지도 알렉산드리아에 남아있는 건 소하가 유일했다. 그들의 모임은 이미 단순한 <5세 미만 어린 아이를 둔> 외국인엄마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이 나라로 시집온 외국여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랑방이며, 주저 없이 하소연을 토해낼 수 있는 고해성사의  장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회원 모두에게 –그리고 앞으로 회원이 될 사람들에게까지도–이 모임은 더더욱 소중하고 이곳에 사는 동안이라도 지켜내고 싶은 존재였다. 소하가 셀리나의 전화를 받은 건 일주일 전이었다. 다급했고 위험스러운 목소리였다. 통화하는 내내 소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셀리나는 이미 미국대사관 안에 들어와 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기어이.
정말 결심한 거니?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면
너도 알잖아. 더 이상 다른 길은 없어.
내가 뭘 해주면 되겠니?
그냥,… 나를 모른다고 해줘
분명히 떨리고는 있었지만 친구에 대한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한다고 소하는 생각했다. 모임의 멤버 중에서 소하와 같은 국적에다가 가장 친한 사이인줄 모두가 아는 데 그런 거짓말이 과연 통할까, 경찰이 믿어줄까 스스로도 반신반의 하긴 했지만 힘껏 낭랑하게 음성을 매만졌다.
내 걱정은 하지 말아. 내가 알아서 할께. 그보다 제발 몸조심해, 응?
니가 보고 싶을 거야, 소하. 도착해도 한동안은 연락 못할 거야
그래, 알아. 잘 가 셀리나. 잘 살아
제발 잘 살아라, 두 번 다시는 그런 사람 만나지 말고, 귀여운 너의 세 딸들과 함께 제발 잘 살아라, 친구야. 앞으로는 앞만 보고 살아라, 너를 위해서 살아라. 소리 없이, 가슴이 답답할 때면 늘 그러했듯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위험스러운 시도’를 하려는 구나. 둘도 없는 친구였던 만큼 셀리나만은 무사히 뜻을 이기를 바라며, 소하는 차례로 몸을 씻었다. 손, 입 안, 코끝, 얼굴, 팔, 머리, 귀 그리고 발. 친구를 위해 기도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소하, 나 무서워, 어떡해?
한밤중에 걸려온 하난의 전화를 소하의 남편이 받았다. 다짜고짜 울먹임이 건너오니 소하의 남편은 의아해하며 돌아보았다. ‘당신친구 하난이야. 무슨 사고라도 난거지?’ 그의 눈빛은 이미 단정을 짓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하난은 얼마나 놀랬는지 소하가 아무리 달래어도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여자인 셀리나가 현지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자기나라로 도주했다는 소식은, 굳이 클럽의 장인 소하의 입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한 주일 내내 폴란드인인 하난을 시작으로 줄줄이 멤버들이 경찰의 호출을 받았다. 덩달아 이집트로 시집온 외국여자들에 대한 시각이 의혹으로 바뀌었고, 남편들이나 시댁으로부터 쏟아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을 저항 없이 받아내야 했다. 남편 하나 믿고 이국땅으로 건너온 여자들에게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었다. 오직 시간만이 해결책이 되어줄수 있을 뿐.
이집트로 시집온 어떤 여자들은 국적문제를 상당히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들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당신들이 어쩔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 있어서는 문제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어떤 이집션 아이도 아버지의 허가 없이 자국을 벗어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따라 국적을 바꾼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대개의 외국여자들은 자국과 이집트 두개의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둘 중 하나를 포기하도록 자국의 대사관으로부터 종용받기는 한다.
셀리나의 경우는 미국 국적을 보유한 상태로 살면서–셀리나는 이집트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자기 아이들에게 미국여권을 만들어준 케이스였다. 이집트인들은 미국 국적을 상당히 선호하므로 미국여자, 미국여권 따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미국인에게 대단히 우호적인 편이었다. 정치적인 이슈를 떠들 때와는 정반대의 태도이다.
수개월에 걸친 치밀한 준비 끝에 결국 셀리나는 하교 길의 아이들을 직접 픽업해서 그대로, 쉬지도 않고 무려 네 시간을 차를 몰아 카이로의 미국대사관으로 피신을 했고 도움을 청했다.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국은 상당히 자국민 보호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의 시민들’인 셀리나와 그녀의 아이들은 안전한 보호 속에서 미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도주 당일에 이를 눈치 챈 남편으로부터, 이집트정부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긴 했지만 누구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골리앗의 결정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대신 평소 셀리나가 출입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외국인여성모임과 멤버들이 ‘고스란히’ 그들로부터의 괴롭힘을 떠안아야했다. 그 후로도 아주아주 오랜 동안을.


 


 


 


 


3
현지인 수준 이상으로는 줄 수 없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굵은 안경알 너머로 미안함이 엿보였다. 진심인 것 같았다. 리요는 상체와 함께 고개를 구부렸다. 미안하게 해서 외려 미안하다는 표시였다. 같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인을 이집트인으로 취급해야하는 어려움이, 난처함이, 혹은 마음의 불편함이, 교장의 현재 기분 상태일 것이었다. 고용이 확정된 순간의 안도감도 마음껏, 그런 교장 앞에서는 차마 내 보일 수 없었다.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마사오상이 힘들 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수락할참이었다. 현지인 초보교사와 같은 수준의 월급도, 그것도 달러도 아니고 이집트 파운드화라 할지라도, 수학 영어 일어 세과목을 담당해야하는 막중한 업무도 이미 고려의 대상은 아니었다. 필요한 건 돈이었으니까.



아이들은 엄마 힘으로 사는 거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들려주곤 하던 말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엄마의 본분이며, 아이들이 기가 살고 죽고는 오직 엄마의 능력–경제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라고.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체험하여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늘 아버지 몰래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물전, 스시집, 슈퍼, 만화가게, 미용실... 어머니가 거치지 않은 상점이란 그 동네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곧잘 리요의 작은 손에 당시 그 또래들의 유행이던 이쁜 팬시용품이나 아니면 적은 액수나마 용돈을 쥐어주곤 했다. 친구들한테 무시당하지 말라고, 유행에 뒤처지지 말라고. 물론 리요, 아버지에겐 비밀!을 잊지 않으며.
이집트 현지인들에게 ‘평범한 일본여자’는 없었다. 일본에서라면 지극히 평범한 일본인 중의 하나였을 리요가, 역시 평범한 이집트 남자인 지금의 남편에게로 시집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한 일본여자’가 아니었다. 오로지 ‘일본여자’였다.
당연히 부자여야 하고, 당연히 기만불이나 하는 스포팅클럽 평생 멤버쉽도 취득해야 하고, 당연히 아가미(* 저자주: 알렉산드리아 근교의, 지중해의 휴양지)에 별장도 구입해야 하고, 자가용도 당연히 도요타 코롤라 이상의 것이어야 하고, 아이들은 당연히 국제학교에 넣어야 하고, 당연히 영화 ‘오싱’처럼 남편에게 순종적이어야 하고, 당연히 시동생들 자립하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해주어야 하고, 당연히 시댁의 사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수년 내에 거뜬히 일으켜주어서 동네의 자랑을 삼아야 하고, 만일 직장을 갖는다면 당연히 월급이 수천불은 거뜬히 넘는 뽀대나는 잡이어야 하고, 당연히 그 월급은 남편명의의 은행계좌로 다달이 전액 불입되어야 하고, 또 당연히, 빌어먹을.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부모 밑에서, 능력 이상의 것이나 운명 이상의 것을 누려 본적도 탐내어 본적도 없는 리요는 이런 시선들에 목이 졸렸다. 당황했고 난처했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평범한 일본여자’였을 때, ‘평범한 일본여자인 애인’으로 만났던 남편조차도 현실을 넘어선 ‘기대’를 품고 있다는 눈치를 챘을 때에는 정신이 다 아득했다.
‘에이, 그래두 명색이 일본여잔데, 나 모르는 뭔가를 꿍쳐두고 있을거야. 언젠가는 스스로 내 앞에 내놓을 거야. 거기다 외동딸이잖아. 부모 유산이 다 어디로 가겠어.’
하는 기대를 감히, 그이까지도 품고 있었다니. 사랑 하나 달랑 믿고 쭐레쭐레 이역만리까지 따라온 자신의 행실이 너무나 기가 찼다. 울고불고 쓰러지기까지 한 어머니를 보면서도 ‘이 사람 없으면 저 죽을 래요.’라며 그 가슴에 못을 박은 그녀였다.
‘연애할 때 <결혼하면 그렇게 변할 사람>인줄 어떻게 아느냔 말이지, 세상 어떤 여자가 그걸 알 수 있단 말이야. 그리구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 어디 한번 생각해 보자구. 심성이 우선 착하고 잘 생겼잖아. 나에 대한 그런 ‘기대’는 내가 외국인이라 갖는, 다른 이집션들과 똑같은 감정상태일거야. 그 사람도 이집션이잖아. 내가 쥐뿔도 없다는 진실을 저도 곧 알게 될 거야. 그럼 이내 그 어쭙잖은 기대 따윌랑 포기할 테지. 근데 시동생들까지 나한테 기대하는 건 좀 그러네. 나더러 시아버지 사업 빚까지 처분해줬으면 하는 저 태도는 또 뭐야? 그것두 좀 그렇다. 가만. 생각해보니 역시 잘한 결혼이 아닌 거 같네. 어휴 바보. 애가 둘인데 이제 와서 뭘 어쩔 수 있단 말야.’
그 후로 리요는,
‘언젠가는 자살을 하거나 질식사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일거야, 그게 내 미래일거야.’
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버거운 시선들에 떠밀려 없는 체하지도 있는 체하지도 않을 거야. 내식대로 살 거야. 남편의 수입만을 가지고, 거기에 매달려 살 거야. 규모 있게 쓰고 아끼고 모으고 그렇게 살 거야. 실망들 하라지. 기대하다 지치면 절로 나가떨어질 테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제풀에 나가떨어진 건, 그러나 그녀 자신이었다.
매일아침 버석거리는 호밀 빵에 기름에 절은 따메이야 (*콩완자 튀김)를 먹고, 오후 4, 5시나 되어서야 양이 과한 점심을–그것도 역시 기름에 절은 튀김이나 오븐구이들로만 가득한–먹게 하고, 밤11시나 되어서야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는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 그녀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말라갔다. 아이들의 체질이 워낙 외탁을 한 탓에 가뜩이나 입들도 짧은데 허구헌 날 기름진 것을 먹이려드니 자연 식사량은 줄어들고 식욕은 떨어진 모양이었다.
먹을거리도 이 모양인데 장을 볼 때에도 간단한 쇼핑을 갈 때에도 남편이 동반을 하고 직불을 했다. 리요는 돈을 만져볼 사이도 없었다. 이렇게 지폐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조차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결국,
‘내가 벌어야해’
결심하기에 이른 리요였다. 이제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 스스로 살려줘야겠다는 결심, 누구를 만나도–특히 일본인들을–꿀리지 않겠다는 결심,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처지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 앞으로는 이렇게 살 거야’ 리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이 굳게 쥐어진 것도 같았다.


다음 주 일요일부터 출근하세요.
(*저자 주석–이집트는 일요일부터 한 주의 업무가 시작됩니다.)
리요의 상념을 깨며 굵은 안경알이 말했다.


 


 


 


4
파티마가 종이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잔뜩 가져왔다. 모임의 멤버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고 있었다.
‐ 니가 만든 거니?
아유브는 시큰둥한 음성으로 물었다. 생활지 같은 신문으로 두 쪽으로 되어있었다.
신문이름 옆에 편집자로 파티마 장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발간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듯 수기로 작성해 깨끗하지 않았다. 영문이었고, 아이들 작품코너, 칼럼, 격언, 생활정보, 각국의 요리, 외국의 소식 등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저애는 도대체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걸까?’ 분위기를 훑어보니 신참멤버 몇은 관심을 두는 눈치였다.
‘다들 아직 어려서 그래. 여기가 어딘지 도통 의식하지 못하고들 있군.’
아유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도 알렉산드리아에 십 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라면 그 실체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텐데. 쯧.


‘니가 얘기해줘’
슬쩍 소하를 보며 눈치를 줬다.
‘그래도 소하와 친한 멤버가 데려온 신입이니까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소하가 말해주는 게 낫지’
이윽고 ‘소하와 친한 멤버’가 파티마를 발코니 쪽으로 불러내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유브는 거실에 남아있는 신참멤버들에게 <사상을 주도한다고 의심을 살만한 신문 잡지 등의 발간에 대한 이집트정부의 강력한 대응 및 발행인과 독자들이 처해질 가능성이 있는 불이익>에 대하여 장장한 연설을 해주었다. 신입멤버들은 하나같이 과도하게 긴장을 했다.
‘너무 심했나, 아니지, 셀리나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있는데 우리 모임이 더 이상 경찰의 주목을 받아선 곤란해.’
이윽고 파티마가 거실로 돌아오자 그녀를 대하는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냉랭하게 돌변했다. 파티마도 자초지종을 들은 듯 상황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앞으로는 가져오지 않을게.
너무 풀을 죽여 놨나 싶어 아유브는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대었다.
너를 위해서 하는 충고야 ,파티마. 그 신문발간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 거야.
하지만 충고를 받은 대로 그러겠다는 건지 생각해보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계속 밀고나갈 생각이라는 건지, 이 코리언은 도통 반응이 없었다.


‘알아서 하라지. 요즘은 아시안들이 더 활동적이야’
화제는 자연스럽게 클럽의 고참 중 하나인 아유브에게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선배들로부터 ‘이집트 적응하기’를 배우려는 신참들이 많다보니 대개는 듣고자 하는 눈치들이었다. 아유브는 이집션 닥터와 결혼했고 이집트에서는 꽤 부유한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물론 시댁의 위치가 그 정도인 줄은 그녀도 결혼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층짜리 빌라가 고스란히 외아들인 남편에게로 떨어졌다. 아유브의 남편은 ‘표면상의 개업의’일뿐 현역에서 활동하지는 않았다. 닥터의 수입으로는 빌라의 유지비도 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시댁의 가업을 잇고 있었다. 큼직한 빌라에 어울리게 아유브는 무려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아서 가득 채웠다. 내부가 얼마나 큰지 여덟 명의 아이들이 흩어지면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남편은 이집트까지 와서, 이집트의 풍습–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거부 없이 낳는–대로 아이를 낳아준 아유브가 대단히 고마운 눈치였다. 아유브는 모임의 멤버들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시댁과 남편으로부터의 존경과 사랑’에 대해서 종종 열강을 하곤 했다. 친정으로부터의 대우와 반응은 슬그머니 감춰둔 채로.
베트맨 ~ 베트맨 ~
지난여름 검은 히잡을 둘러쓰고 검은 망토를 걸친 그녀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거리의 십대들은 그녀를 뒤따라오며 놀려대었다. 부모와 형제들도 ‘영국인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선택을 한’ 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단지 아유브의 아이들에게만 사랑을 표시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감지덕지라고 아유브는 생각하고 있었다. 친정을 방문할 때에는 언제나 남편을 동반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나라와 그 안의 사람들, 그녀의 가족들까지도 온몸으로 품고 있는 ‘종족 내지 국적우월감’ 때문이었다. 남편이 아무리 이러한 상황을 이해한다고는 해도 아이들 방학 때마다 친정을 방문하는 아유브로서는 여간 미안한 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꼭 한번. 17년 전에 아유브는 이집트에서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영국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여대생이었고 친구 몇과 어울려 이집트 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보름 안에 돌아오기로 예정된 딸이 뜬금없이 남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이 그것도 이집트인 남편을 동반하고, 이름마저 아랍식으로 바꾸어버린 상태로. 아버지는 노발대발했고, 어머니는 현관문조차 열어주지 않았고, 형제들은 대꾸하지도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날의 그 기억이 아유브의 남편에게는 온몸으로 비로소 느낀 ‘이집트인에게 가지는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굳어졌다.
이후 아유브는 줄기차게 ‘자신이 얼마나 풍요로운 집으로 시집와서 행복하게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는 지.’ 요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장성한 딸들에게 한결같이 바라는 그 사실을 꾸준히 친정에 알렸다. 그녀의 노력이 효력을 보았는지 어느 날 런던으로부터 카드 한 장이 도착했다. 어머니로부터였는데, 아유브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셋째는 런던에서 낳아도 좋다’
아유브는 울었고, 이후부터는 ‘남편 없이’ 아이들을 낳았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자신의 부모와 형제 곁에서.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다들 한결같이 느끼고 있을 텐데 뭘.’
아유브는 신참멤버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모두들 그녀가 부러운 빛들이 역력했다. 아유브는 한껏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의 모임은 그럭저럭 즐겁게 끝이 났고, 다음 주 개최지로 자신의 집을 제공할 멤버를 정한 후에야 헤어졌다. 아유브에게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화원의 여인


어느 날 노오랗고 동그란 얼굴의 여자가 찾아왔다. 살짝 열린 대문 안으로 고개를 빠끔히 들이밀고 있었다. 여자는 한 손은 아주 작고 하얗고 몹시 가벼워 보이는 어린 아이의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마담 야스민은 때마침 정원 깊숙이 들어앉은 그녀의 오두막집 창가에 서있었다. 볕이 따스한 오후였다.
계세요? 아무도 안계세요?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한 발을 대문 안으로 들여놓으며 영어로 소리쳤다. 워낙 정원이 커서 이쪽은 보이지도 않을 터였다. 여자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쥐고 있던 아이 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여자는 마담의 지척이다. 자세히 보니 눈은 상당히 작고 옆으로 가늘게 찢어져있었다. 아주 오래 전 고향인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꼭 한 번 이런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아주아주 머언 나라의 사람들이었다고 마담 야스민은 기억했다.
아무도 없나봐. 실례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보구 가자.
여자는 어린 아이에게 영어로 말했다. 영어가 그들 사이의 주 언어인 것 같았다. 마담은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문으로 다가갔다. 몸의 움직임이 날이 갈수록 둔해지고 있었다. 마담의 눈에 넋을 잃은 듯 정원의 나무들 한가운데에 서있는 여자가 들어왔다. 아이는 여자에게 잡힌 한 손을 빼내려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잠깐만, 잠깐만. 주인이 아이들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아. 조금만 있다가 가자.
마담은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심성은 착한 여자인가보군.’
창가에서 움직여 문을 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어느새 여자와 아이는 정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막 원래 서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여자는 울창한 나무들에게서 좀체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덩달아 아이도 물끄러미 나무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미!!
제일 먼저 마담 야스민과 눈이 마주친 것은 어린 아이였다. 머리숱이 별루 없어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여자아이였다. 마담을 보자마자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서 여자를 불렀다. 엄마였나 보다. 동그란 얼굴의 여자가 이윽고 마담을 발견하더니 활짝 웃으며 뛰다시피 다가왔다. 그녀는 거의 직각으로 과도하게 상체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담. 죄송해요, 그냥 들어왔어요.
괜찮아요.
담장 밑을 지나가는 데 키 큰 나무들이 잔뜩 보이지 뭐예요. 정말 이렇게 아름답고 울창한 나무들이 이 동네에도 있을 줄은 몰랐어요..
너무나 나무가 그리워서 이 기후에, 이 공해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며, 주인 허락 없이 무례하게 들어왔던 것을 용서해주겠느냐고, 여자는 숨도 안 쉬고 진지하게 사과부터 했다. 친근감이 가는 명랑한 여자였다. 마치 귀여운 손녀라도 된양 여자는 마담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정원을 안내해달라는 애교 같았다. 마담 야스민은 여자와 아이를 우선 자신의 오두막집 안으로 초대했다. 여자는 자신의 이름은 파티마 장이며, 코리언이라고 소개했다. ‘코리아, 코리아…….’ 마담은 나직이 이 이름을 외워보았다.
오두막집까지 지으시구 참 대단하셔요. 마담두 외국인이시죠?
난 오스트리안 이란다. 이 집에서 벌써 오십 년을 살고 있지. 내 나이가 몇 인줄 아니?
아니요. 몇이신데요?
올해로 아흔이 넘었단다.
파티마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고향에 가고 싶진 않으세요?
난 열 아홉에 고향을 떠났지. 그리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이집트에 정착한 세월이 내 인생의 절반을 넘으니 이곳이 바로 내 고향이지.
‘저는’
마담 야스민은 파티마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에 그녀가 느꼈던 두려움, 번민, 혼동 그리고 자신감 상실 같은 것들을. 이 나라에 계속 안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마담 야스민은 파티마와 그녀의 어린 딸에게 의자를 권했다. 좁은 거실에 생전 켜지 않는 티븨 한 대,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일인용 소파 하나씩이 가구의 전부였다.
자녀분들은 저 빌딩에 사나요?
정원을 지나 오두막집 뒤로 보이는 3층짜리 빌딩을 보며 파티마가 물었다. 마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층마다 아이들이 살고 있지. 일층에는 막내아들의 가족들이, 이층에는 둘째네, 삼층에는 맏이네가 산단다. 다들 바빠.
외롭지 않으세요?
내 아이들은 이집트인들이야. 나의 정원이 풍기는 눅눅함을 질색하지. 하지만 난 이게 편하다.
마담 야스민은 파티마와의 사이 작은 테이블 위로 한 손을 얹었다. 알이 작은 돋보기와, 제법 묵직한 코란이 놓여있는. 한 장을 펼쳐 파티마에게 보여주었다. 한쪽에는 독일어로 다른 쪽에는 아랍어로 쓰여 진 코란이었다. 파티마는 감탄을 했다.
독일어 코란은 처음 봐요.
남편이 죽고 나서는 유일한 나의 벗 이란다
오스트리아에는 한 번도 안 가셔요? 휴가에라도?
마담 야스민은 깊게, 미소를 머금었다.
내 나이가 되면 비행기를 타는 것이 두렵단다, 아가. 그래서 늘 나는 마음으로만 고향엘 간단다.
마담이 한창일 때에는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짬이 없었고,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몸이 쇠약해진 것도 깨닫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니 이제는 정말 오도 가도 못하는 마음 반, 장거리여행이 주는 두려움에 포기하는 마음 반으로, 마담 야스민은 이집트를 떠나 어디론가 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욕심을 접어두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나를 붙든 자부심이 있단다.
일인용 쇼파에 푹 파묻혔던 등을 곧추 세우며, 마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내 남편을 몹시 사랑했단다. 그를 존경하고 믿으며 사랑하며, 평생을 꼿꼿하게 살아왔다.
그것이 내가 그를 앞서 보내고도, 이 건조한 나라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받침이 되어준 이유였단다.
파티마는 어느새 빨려 들어가듯이 마담의 인생담을 경청하고 있었다. 열린 창밖으로 어느새 쫓아나가 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에필로그


사람들은 항상 ‘그 순간의 올바른 일’을 한다. 적어도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에 만큼은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그리고 그것이 그 외에는 대안이 없는 최선책이었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후회란 있을 수 없다, 더 이상의 길은 없었다, 라며 때로는 호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짧게는 한두 주일, 길게는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때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은 이렇게 늘 우리들의 능력 밖으로 우리를 내몬다. 우리에게는 아주 조금의, 성취감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우리는 희망을 삼는다. 이방인으로서든 현지인으로서든 고국에서든 그 어느 나라에서든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습으로.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여자들처럼 고뇌하며 살아가는 숱한 시간들의 의지를 삼는다. 우리들의 입에 희망을 물려주는 것이 아무래도 세상이 거기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오늘도 알렉산드리아의 여자들은 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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