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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꽁트] 갈무리: 황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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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167회 작성일 10-06-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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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환갑을 3년 전에 넘긴 강수동 씨는 새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아내를 잃은 슬픔도 차츰 이겨내고 있다. 아침 이슬 같은, 인생의 허무함에서 탈출구를 찾은 것 같은 요즘이다.

그는 50세가 넘으면서부터 아내에게 “당신보다 먼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홀아비로 사는 친구들의 몰골이 영 측은하고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덜컥 달포 전 아내가 자궁암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수동 씨는 아내가 자신의 ‘희망사항’을 무시하고 먼 세상으로 간 것도 서운하지만, 자궁암 치료를 자신의  흐지부지한 성격으로 때를 놓친 것 같아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수동 씨보다 세살 어린 아내가 1년 반 전쯤 “다시 멘스를 시작했어요”라며 처녀처럼 낯을 붉힐 때 그가 “당신, 회춘하는 모양이구려”라고 이죽거렸던 것이 후회막급이다. 그때 서둘러 전문의에게 정밀 검진을 받았더라면 자궁은 들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은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내의 뜻이었지만, 화장(火葬)을 해 몬탁 해변가에 뿌린 것도 잘한 일 같지 않다. 아내는 의사가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을 다하라”고 뭔가를 암시하자 남편에게 눈물어린 애정 표시를 하기 보단, 암세포가 퍼지지 않은 안구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한다는 동의서에 서명부터 했다. 아내가 숨을 거두자마자 의사들은 장기(臟器)가 손상되면 안 된다며 빚쟁이처럼 뜯어들 갔다.  
        
사실, 수동 씨는 아내가 장기를 기증한다고 했을 때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두번 죽이고 싶지 않았다. 말하기조차 힘들어진 아내는 남편을 곁으로 오게 한 뒤 귀에다 쉬엄쉬엄 속삭였다.
    
“여보! 저의 육체는 물론 혼까지도 주님이 주신 거예요. 영혼은 제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육체만큼은 애타게 장기를 기다리는 힘든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요. 지금껏 제가 좋은 일에 쓰려고 장기들을 ‘갈무리’해 두었던 셈이죠. 또한 제가 기독교인이었음을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징표이기도 하구요.”
        
그때 아내의 유언 비슷한 것을 들으며 수동 씨 얼굴에 주책없이 미소가 잠시 스쳤다. 아내가 물건을 잘 정돈하여 간수한다는 의미의 ‘갈무리’란 단어를 또 썼기 때문이다. 아내는 ‘갈무리’를 자주 입에 올렸다. 수동 씨가 교회에 안 간다고 고집을 부려도 신경질을 부린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다만 혼잣말처럼 “인생을 제대로 ‘갈무리’할 수 있고, 그 방법을 알려 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리곤 했다. 아내의 그 ‘갈무리’가 수동 씨의 가슴 깊은 곳을 갈쿠리처럼 파헤쳐 사랑의 샘물을 진동시킬 줄은 그때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시집 간 외동딸이 엄마가 별세한 뒤 며칠간 수동 씨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었지만, 남편과 자식들이 기다리는 것이 뻔해 더 붙잡을 수가 없었다.  수동 씨는 4 베드룸에 화장실 2개인 집이 너무 버거웠다. 가격을 시세보다 훨씬 낮게 부동산 중개인에게 내놓자 금방 팔렸다. 1주일에 두세번 맨해튼에 나가 조카에게 맡겨 놓은 가방 도매가게를 돌보면 되기에 베이사이드에서 스토니브룩의 1 베드룸 아파트로 이사가 결정났다.
        
짐을 엄청 줄여야 했다. 아내는 ‘짠순이’어서 도통 버릴 줄 몰랐다. 한 예로 끊어진 전구알을 버릴라치면 “‘갈무리’해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어요”라며  보관했다가 양말 터진 곳을 꿰맬 때 속에 넣고 요긴하게 쓰곤 했다.
        
아내의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곤 모두 버리기로 했다. 옮겨가는 곳이 비좁기도 했지만, 아내의 체취가 풍겨 나는 물건, 옷가지, 화장품, 하다  못해 칫솔도 보는 순간 숨이 확 막힐 정도로 그리움이 다가와 배겨날 수가 없었다.

35년을 함께 사는 동안 아내가 얼굴을 붉힌 적은 단 한번이었지 싶다. 아내의 대학동창회에서 보낸 연말파티 안내장을 편지로 여기지 않고 뜯어보았는데, “남의 편지와 일기장은 절대로 허락 없이 열어 보면 안되죠”라고 열을 냈다. 허나 잠시 뒤 큰소리를 내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후 수동 씨는 아내의 편지와 일기장처럼 생긴 노트 근처에는 얼씬도 않했다.
        
수백 권이 넘는 아내의 책들은 교회 도서실에 기증하기 위해 묶어 놓았고, 옷가지는 구세군에 연락하자 득달같이 가져갔다. 이젠 아내 이름으로 된 은행서류와 몇 년 치 일기장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한 인간의 흔적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가, 허망했다. 수동 씨는 아내의 은행 잔고를 확인하려던 손을 겨우 억제한 뒤 먼저 최근의 일기장을  열었다. 겉 표지를 넘기자 다음과 같은 글귀가 그를 맞았다.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해 애태우는 마음 졸임을 잉크로,
        
주일 아침마다의 허전함을 펜 삼아 적는다. 성희’
        
수동 씨는 아내 이름을 오랜만에 대하자 연애시절 부르던 애칭, ‘써니’(Sunny)가 정말 태양처럼 그의 가슴을 달구어 놓았다. 잠시 눈을 감아 진정한 뒤 다음 장으로 넘겼다. 평일 보단 일요일 위주로 쓰여져 있었다.
        
‘....부활절에 혼자 교회로 향하는 마음이 보통 주일보다 더 착잡하다. 언제쯤 ‘교회 과부’를 면할 수 있을까?
        
남편은 그 흔한 골프가 아니라 바둑에  빠져 있다. 나는 남편이 임금과  말 탄 기수, 졸병이 정해져 있는 장기(將棋)보단 돌 하나 하나가 똑같은 직책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서로 연결되어야만 힘을 쓰는 바둑에 심취돼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긴다.
        
주님!, 바둑판을 이어 가던 바둑돌이 남편의 교회 초석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이루어 주세요…’
        
수동 씨는 자신의 취미까지도 인정해 주는 아내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일 것을 지나쳐 다음 주일 것으로 넘겨 갔다.
        
‘....나는 제니퍼 아빠를 존경한다. 그분은 교회 의자에 앉자마자 주무시지만, 아내를 위해 성가대 연습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다. 아내를 아끼는 마음을 잘 갈무리하셨기 때문이리라. 우리 남편은? 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니 그나마 고마울 뿐이다…
        
...의사들의 날 대하는 표정으로 보면 주님이 부르실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남편에게 교회에 가자고 큰소리도 치고, 강짜를 부리지 않은 것은 그를 편하게 해준다는 것으로 미화시킨 ‘무관심’은 아니었을까. ‘때늦은 후회란…’ 유행가 가사가 왜 가슴속을 아리게 하는 걸까…’
        
수동 씨는 더 읽지 못하고 가슴을 친다. 자기로 인한 마음 고생이 아내의 몹쓸 병을 키웠다는 자책감으로 바둑돌 같은 눈물을 주룩 주룩 흘린다. 그는 곧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다. 남편과 예배실에 나란히 앉는 소박한 꿈을 들어주지 않은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자신을 학대했다.
        
수동 씨가 딱 한번 교회 문턱을 넘은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아내가 LA에서 훌륭한 여자 부흥사가 왔는데 ‘은혜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재미도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른단다’며 그를 설득했다. 수동 씨는 재미 쪽에 관심이 끌려 따라갔다. 소문 때문인지 예배실은 관중들로 꽉 차 있었다. 부흥연사는 40대 초반이었는데, 화장을 요란하게 해 수동 씨는 처음부터 밥맛이 없었다. 얘기(분명 설교는 아니다) 중간쯤 해서 ‘그 여자’는 주일에 교회에 안 가면 하나님이 큰 벌을 내린다며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코리아타운에서 갑부 중의 한사람이 주일을 빼 먹고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는데 교통사고로 온 가족 4명이 몰사했어요.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뒈지니랜드’가 된 것이죠.”
        
수동 씨는 이쯤에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허리를 움칠거렸다. 아내가 지그시 허리띠를 잡아 눌러 앉혔다. 흥미를 잃으니 잠이 몰려 왔다. 초저녁잠이 많은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번엔 그녀가 조는 관중들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그것도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께.
        
“나이 들었다는 것은 곧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게 됐다는 뜻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연습’(조는 것을 비유한 듯)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엔 아내가 수동 씨보다 앞서 조용히 일어났다. 차안에서 아내는 “본교회 목사 설교는 저렇지 않아요”라고 죄인처럼 변명을 했지만, 남편의 “저런 엉터리 여편네를 검증도 안 해보고 초대한 목사도 같은 부류”라는 맹공을 받아 혼쭐났다. 이 일 이후 수동 씨는 교회라면 더 두터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됐다.
        
다시 현실로 돌아 온 수동 씨는 아직 흐르고 있는 눈물을 훔치며 최근의 일기로 시선을 모았다.
        
‘성경은 그다지 큰 부피는 아니지만, 우주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고 있다. 한마디로 <소중현대>(小中現大: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다 들어 있다)다. 나는 확신한다. 남편이, 성경 한 구절 속에 바둑책 몇 권 보다 더한 보배가 숨겨져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주님 곁으로 먼저 갔을 때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성경과 교회뿐이란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수동 씨는 더 이상 일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자괴감과 소중한 아내를 잃은 고통이 엄습해 왔다. 그는 얼른 도서실에 보내기 위해 묶어 놓은 꾸러미로 달려가 아내의 손때 묻은 성경을 구해 냈다. 안경알을 잘 닦았다.
        
구약에선 시편, 신약에선 로마서에 가장 많은 밑줄이 쳐져 있었다. 시편 중에선 116편, 로마서 중에선 8장, 그 가운데서도 시편 116편 8절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와, 로마서 8장 21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는 읽기 힘들 정도로 각종 색연필이 난무했다.
        
수동 씨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표정으로 이번엔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교회주보를 찾아냈다. 목사관 번호를 확인한 뒤 수화기를 집어 번호를 눌렀다. 발신음을 들으며 수동 씨는 아내가 받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과 희열이 그를 감싼 것은 바로 그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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