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8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8)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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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8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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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628회 작성일 10-06-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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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한인후예 3세 목사 데이빗 리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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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구를 선물로 받은 송애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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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나 한인 후예들과 함께
 
바라데로에서 두 시간 거리가 되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가기위해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아바나 거주 한인 후예들을 만나고 아바나 시 관광 스케줄로 꽉 차있다. 그리고 쿠바 주재 상사 엠펠로스 그룹 총수 김동호 회장의 저녁 초대도 받은 상태였다. 
카리브해 해변가를 달리는 차창 밖 쿠바의 풍경이 아름답다.  발전소도 보이고  곳곳에 높이 솟은 굴뚝에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2004년 12월 쿠바 피텔 카스트로 대통령은 쿠바 북부 연안에서 최고 1억 배럴의 원유를 매장하고 있는 유전이 발견 되었다 했다. 그 이후 유전 개발은 쉴 사이 없이 이우러지면서  방아깨비 모양의 자동 기름 시추기가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다. 쿠바의 석유자원 개발은 이들 생명줄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겠지.
  
12시 반에 아바나 코레아노를 만나게 되어 있어 아직 두 시간 정도는 시내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가는 곳곳 마다 ‘50’이란 숫자가 클로즈 업 되어 들어온다. 알고 보니 금년이 바로 쿠바혁명 만 50주년이 된다는 것이다. 카스트로의 사진보다 고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더 많이 걸려있다. 미국은 이미 1961년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적성 국가로 규정해 놓았다.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쿠바 역사가 이어지는 한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끊임없을 것이다.
 
구 하바나 시에 들어오자 유독 눈에 띠는 것은 고색이 창연한 대 성당들이고 백악관을 꼭 닮게 지어놓은 박물관이다. 거리엔 관광객들로 넘쳐흐르고 있다. 1월이면 이곳은 겨울이라 하나 여름날 씨 같다는 정보만 믿고 가볍게 차려입은 옷 속으로 차가운 바람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볼 것이 너무 많다. 두 시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자유롭게 어디든지 찾아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공산국가란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거리엔 60년대에나 볼 수 있는 미제 차량, 캐나다 같으면 이미 폐차해버렸을 차들이 거리의 교통수단으로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였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쿠바 방문 마지막 회에서 듣기로 하자.
 
아바나 코레아노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바나제일 장로교회는 낮 12시 반 정각에 도착했다. 교회 들어가는 입구에 삼각형의 깃발들이 한 줄에 죽 매어 펄럭이고 있다. ‘Bienvenidos Hermanos Coreanos’라 쓰여졌다. 무슨 뜻이냐 물었다. 한국인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이란다. 이들은 점심을 이미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어선가. 차림새가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80이 넘었다는데 고은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이교회는 쿠바의 개신교회로서는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로 그 역사가 102년이 되었다한다. 이 날 모인 한인 후예들이 모두 이 교회에 출석하는지는 확인 못했으나 교회 중직을 맡은 여자도 있고 우리 팀과 함께 도피코 목사를 도와 동행했던 마르타 임씨 남매들이 이곳에도 여러분 있었다.
마르타 임씨는 한국정부로부터 국민 훈장을 받은 임천택 선생의 9남매 중 여섯 번째 딸이다. 또한 쿠바정부에서 차관을 지낸 헤러니모 임(임은조)씨는 3년 전에 작고했다고 부인은 말하면서 우리들에게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9남매 중 3명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말도 귀 뜸해 주었다.  마르타 임 씨의 남동생도 만났다. 깊이 패진 주름살 골 사이사이 애수에 어린 그 얼굴모습 속에서 이곳 생활이 그리 편지만도 않은가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도 한국의 민요 배우기 한국의 전통 결혼 모습이 담긴 CD와 금일 봉 그리고 한복과 약품을 선물로 주었다. 춤도 보여주고 노래도 함께 했다.
 
특기할 사항은 이 도시에 3대에 걸쳐 목회 하고 있는 데이빗 리 목사와의 만남이었다. 하바나 제일 장로교회 방문 후 우리는 이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선 이목사의 가족을 비롯 몇 분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년 전 노령으로 세상을 떠난 로자 장(장천희) 할머니의 아버지로서 평신도 목회자인 엔젤 장(장영기)이 한국말로 예배를 인도 했다. 이 신앙의 맥은 이어져서 할머니의 큰 아들인 데이벳 리 1세 목사가 개혁장로교회 교단장으로 쿠바의 임마누엘 교회에 시무하다 2008년 6월에 은퇴하고 그의 아들 데이빗 2세에게 뒤를 잇게 했다는 것이다. 이목사에게 우리는 한복 한 벌과 전통악기 중 장구를 선물로 남겨주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이목사의 조카 벌 되는 송애리양은 장구에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장구 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자연히 우리가 가지고 간 장구는 송애리양 차지가 되었다. 한국말도 잘하는 애리양은 한글학교가 있을 때 열심히 한국말을 배웠다며 우리와 충분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두둥 당 두둥 장구 치는 애리양의 솜씨가 바라건데 다시 한글학교가 열려 한복차림으로 한인후예들의 모임기회에 선보일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한다.
현재 한인 후예로 등록된 944명 중 약 3분의 2가 비신자란다. 비록 천여 명 미만의 ‘쿠바노 코리아노’들이지만 우리가 상상 했던 공산 치하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개신교나 천주교 할 것 없이 교회 생활은 자유스러워 보였고 쿠바에 가정교회가 3천개가 넘고 교회 수는 날로 증가 하고 있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을 만큼 교회 건물이 눈에 띠었다. 믿음과 사랑과 평화와 봉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회 교육이 언젠가는 쿠바인들에게도 우리 한인 후예들에게도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게 하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수박 것 핡기지만 쿠바의 종교를 배우고 특히 개신교 교회들이 한인 후예들을 만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주고 우리와 내내 함께 하면서 서로의 우호를 돈독히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신학교 부학장이며 교회협의회 사무처장 과 3선 국회의원으로 있는 오덴 마리챨 교수와 세계협의회(WCC) 중남미 회장 오펠리아 오르테가 목사와의 만남들은 귀한 쿠바와의 인맥을 만들어내는 게기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종일관 우리의 안내자 역할을 했던 도피코 목사와의 인연은 한인 후예들과 북미에 살고 있는 동포들과 만남의 첫 단추 역할을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분들은 캐나다의 실버 팀들과 계속적인 교류가 있기를 원하고 있다. 뿌린 씨가 어떻게 자라고 열매를 맺을 것인가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해주시기를 기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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