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2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2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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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2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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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529회 작성일 10-06-0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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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으로 부터 Joel Dopico 목사, 윤방현 선교팀장, 이영수 취재팀 재외동포신문, 김운영 한국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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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후예들의 이민 초기 에네켄 농사가 그들의 일터였다.
▲ 로렌소 리, 에네켄 잎을 자르고 있음, 1950


 
실버 미숀 팀의 쿠바 방문에는 멤버 한 사람 한사람 마다 깊은 신앙적인 결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할 만큼 우리들 마음의 준비는 단단했다.
09년 겨울 들어 혹한의 영하 23도까지 내려갔던 날 토론토를 떠나 7박 8일 예정으로 15명이 한 팀이 되어 쿠바(Cuba)에 다녀왔다.
얼핏 보면 골프를 치기 위한 여행쯤으로 여길 정도로 사람 숫자만큼이나 골프백이 쌓여있다. 쿠바 하면 골퍼 메니아들의 환상적인 나라다.
특히 Varadero란 지역은 그 대표적이다. 우리 일행이 가는 목적지도 Varadero다. 말하자면 쿠바지역 방문을 위한 베이스캠프이다. 이 중엔 골프를 아주 즐기는 사람으로부터 나 같이 골프엔 문외한인 사람도 있다.

이 팀의 특징은 15사람 중 몇 사람을 제외 하곤 여섯 쌍의 부부 모두 ‘실버’들이라는 것이다. 적게는 60대에서부터 많게는 80대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특별한 목적을 안고 쿠바를 찾아갔다. 골프백엔 골프채도 들어있었으나 그 속엔 그동안 수집해 놓은 각종 의류와 약품 기타 생필품으로 빈틈없이 가득채워졌다. 골프장비 만큼은 중량이 초과되어도 너그러운 쿠바 세관통과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셈이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하고 계획하며 최선을 다하여 모금도 하며 쿠바 미숀의 사명을 띈 목적이 우리들에겐 있다. 쿠바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공산 국가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 되지 않을지 현지 사정에 부딪히기 전엔 잘 알 수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Captain 윤방현 선생님은 철저히 사전답사와 현지 목회자 Dopico 목사님 사역 지와의 파트너 쉽 관계를 맺고 난 후의 행보였던 관계로 종교적인 충돌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갈등 없이 우리들의 활동 범위는 비교적 안전하고 자유로울 것이란 안심함이 있었다.

더욱이 캐나다와 쿠바는 퍽 우호적인 관계요 관광 수입이 나라 살림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관광 비자를 갖고 들어가는 관관광객들에게 대한 보호는 철저했다.
그러나 일반 관광객들이 그곳에서의 활동 범위는 많이 제한을 받고 있는 것만도 사실이다. 우린 전혀 허용 될 수 없는 지역에 까지 갈 수 있다는 특혜로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암울하고 슬픈 이야기로 노동 이민이 시작된 한인 후예들을 만난다는 가슴 설레임도 있다.

멕시코 이민은 1905년 영국인 마이어스가 멕시코 농장주들과 동양인 이민을 계약하고 중국과 일본인 이민모집에서 실패하자 한국의 대륙식산회사를 경영하든 오오시와 간이치와 결탁해 노동이민을 모집 인천 내리감리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1천 30여명이 멕시코 노동이민을 갔던 것이다.
형식상 계약노동이었으나 채무노예나 다름이 없었단다. 1909년 5월 4년간의 노동계약이 끝나 해방될 수 있었으나 멕시코 내란과 혁명의 와중에서 한인들의 생활은 몹시 궁핍했다. 1921년 멕시코 이민생활을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어 한인 288명은 재이민의 모험을 마다않고 쿠바로 흘러 들어갔다.
사탕수수 재배 농지로 집단 이주 했으나 국제 설탕값 폭락으로 재 이민을 결행했던 한인들은 Matanzas시 에네켄(선인장의 일종 용설란)) 재배 농장에 집단 노동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상식을 갖고 쿠바선교(Mission)의 길에 나선 팀 구성도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들의 뒤에는 캐나다실버선교 회장이신 큰빛 교회 이원흥 장로가 있었고 선교 국장 이동렬 선교사가 있었다.

현지 활동 팀엔 고문 목사에 정동석 그 비서격인 민헤기 그리고 지도 장로엔 강기웅 팀장엔 윤방현 총무에 황혜진 진행과 통역에 황순일 한인후예들을 위한 위문 프로그램 담당엔 윤봉림(부군 임태빈) 김진균 윤정숙 강진화 황해진 윤선옥 민헤기 박근실 등등 역할 분담을 철저히 준비 연습을 하며 위계질서 준수 훈련도 함께 받았다. 한인후예들과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싶었고 춤도 같이 추고 싶었다.
한국인의 후예들이란 공통분모 하나만이어도 서툰 춤이나 잘 부르지 못하는 노래나 함께 하다보면 그들과 정서적인 교감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바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몇 대에 걸쳐 살고 있는 한인 후예들에게 선물로 줄 열벌도 넘는 한복을 준비하고 북과 꽹가리 장고 우리 한국의 전통무용과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CD 복사본 까지 꼼꼼이 챙겨 짐 속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행여 이들의 궁핍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금일봉도 준비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일보사 김운영 사장은 쿠바 한인이민 역사탐방의 심층취재까지 맡아 주었으며 재외동포신문 이영수 윤선옥 발행인도 함께 하여 짧은 기간이나 미지의 세계 쿠바 한인후예들의 베일이 어느 정도 벗겨질 기대를 해도 될 만큼 취재 팀들에 대한 기대도 컸다.
따라서 나는 사실적인 한인후예들의 역사 탐방 쪽은 김운영 한국일보사 사장의 심층 취재 기획 르포를 통해 알게 될 거라 믿는다. 실상 이미 그 베일을 벗기는 작업을 1월 27일자 신문 첫 회분으로 내 보내기 시작 6회에 걸쳐 상세한 보도가 기획 르포 ‘쿠바의 코레아노.란 제목으로 이미 나갔다.
뿐만 아니라 재외동포 이영수 윤선옥 발행인의 현지 방문 보고가 기사화 되어 나갔다. 따라서 나의 글은 실버 미숀 선교여행기에 역점을 두고 몇 회에 걸쳐 쓰려고 한다.

민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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