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수필] 승패(勝敗)없는 경주 (김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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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496회 작성일 10-06-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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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라 하면 상대가 있고 반듯이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까지 내 삶의 반을 이민자로서 살아오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뛰었다고 생각 했지만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내 지나온 뒤안길은 희미하기만 하다.
내 삶의 경주 상대는 누구였으며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민자 중에는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다 잡았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온 자체만을 감사할 뿐 이다. 이민 초창기에 내 어머님은 나에게 충고도 많이 해 주셨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높은 곳만 볼 것이 아니고 낮은 곳도 보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민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멀고 먼 이민 길을 떠나게 하신 후 그에게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한길만 바라보고 살아오기도 너무나 힘이 들어 다른 곳을 바라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조기 은퇴를 했으니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 여행도 하고 내가 좋아 하는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리고 읽고 싶었던 여러 책들도 읽고 싶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밀려온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오기에 또 다른 이유를 붙이면서 미루어 가고 있는 것이 지금 나의 실정이다. 직장에서 일 할 때 자원 봉사자 들에게 많이 고마워했고 나도 은퇴 후에 자원 봉사를 하리라고 생각 했으나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지난 세월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보건소에서 쉴 새 없이 하던 일들을 이제는 젊은이 들에게 넘겼으니 나도 여생을 웃으면서 그리고 즐겁게 살고 싶어진다.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이제부터는 남 생각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택하라”고 하는 권고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나는 젊은 날 한국에서부터 목회자의 아내로 공직생활을 하면서 부딪친 어려운 일들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친구이자 반려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늘 감사한다.
나는 자주 “내 사랑 친구여” 라는 시를 즐겨 읊는다.
“세월 속에/ 덧입힌 친구여/ 저 석양의 해를 바라보는/ 허전한 마음을/ 노을로 물들여 주는/ 그대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네. 젊은 날엔/ 정열이 불타고/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던/ 사랑의 용암은 식어/ 화석처럼 엉켰어도/ 그대의 사랑 그림자 되어/ 내 곁에 붙어 있네. 나의 친구여/ 영원한 사랑이여/ 우리들의 뒤안길에는/ 세월의 먼지가 쌓였어도/ 그대 내 곁에 있어/ 나는 외롭지 않고/ 내일을 향해 함께 가리라.” 지금 늦은 감도 있으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남편과 함께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친구들이나 아들은 지금 우리 나이에 골프가 적절한 운동이라고 권하지만 목회자로서 은퇴 후에나 시작 하시겠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동감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 테니스는 어떨까 싶어 우리 집 주위에 있는 공원 테니스장을 가서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 때문에 무릎에 손상이 온다고 아들이 말린다. 그다음 생각해 낸 것이 탁구를 둘이 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 했다.
우리 교회가 자체 교회를 마련한 후부터 교회에서 탁구 대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남편은 신학생 때 폐 수술을 한 후에 힘이 드는 운동은 할 수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가끔 교회에서 부부 복식 시합이 있을 때면 할 수 없이 출전은 해야 하지만 항상 꼴찌는 우리 차지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대표 선수는 못되었어도 우리 반에서는 잘 하는 편에 속했다. 나는 조기 은퇴를 했으나 정식 은퇴를 몇 달 남겨 둔 남편과 똑딱 똑딱 탁구를 치면서 우리는 많이 웃는다. 나는 선생이고 남편은 학생인데 학생이 실력이 날로 늘어나는데 선생은 무엇하고 있느냐면서 웃고, 요리치고 저리 쳐서 약 올린다고 웃고, 바둑에서 말하는 꼼수 탁구 친다고 웃고, 탁구 라켓에 구멍 뚫렸다고 웃으면서 어쩌다 한번이라도 정확하게 때려 놓고 백만 불짜리 공이라면서 좋아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경기든지 이겨야만 승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경기는 승부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다만 공을 열심히 때리고 치고 깎아서 상대방에게 넘겨주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다. 이제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와 같이 나도 선생 자리를 내 놓아야 하겠지만 아직도 조금 남은 미련 때문에 잘 맞지도 않는 공을 때리면서 큰 소리로 기압을 넣고 같이 웃곤 한다. 승부도 없는 내 지난 삶의 경주를 생각해 보면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는 말씀이 우리 부부의 간증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똑딱똑딱/ 마음 문 두드리면서/ 오가는 핑퐁 공은/ 매 맞으면서도/ 좋아라 동당 이는 모습/ 너는 모가 없어 좋아라”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나서 또 혼자 웃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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