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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원조 공처가 - 박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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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5,338회 작성일 10-06-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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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공처가 (元祖 功妻家)
      
며칠 전 신문에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일이 있었다.  <전업 主夫>(主婦가 아닌)라는 제 하의 글이었는데 내용인즉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준비를 하던 중 IMF가 터져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40대 중반의 남자 이야기였다.  복직을 하는 일도 불가능했었나 보다.  아내는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자기 자신이 크고 작은 집안 일을 도맡아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는 일로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 등 부산한 그의 하루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식사도 스스로 처리해야 함은 물론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이제까지 아내가 도맡아 하던 집안 일들을 스스로 해 나가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부부의 역할이 서로 뒤바꿔 진 것이 꽤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직장에서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돌아온 아내를 위해 남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는 남편의 모습.  한국적인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부엌의 개수대 앞에서 물에 손을 적시고 있는 한국 남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기대했었다고도 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그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란 ‘고루한 가장(家長) 의식에 의한 것인 듯도 싶은데 이젠 그런 의식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남녀의 고정된 역할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가족 구성원 각자가 그때 그때의 여건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집안에서의 살림이라는 것도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고도 한다.  여자들 즉 가정의 아내들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됐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나는 이분에 대한 글을 읽으며 현재의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분이 현재의 이 모습으로 역할이 바꿔서 살아온 것은 8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유별난 남성적 정체성을 극복하는데도 3년이나 걸렸다고 말하는 걸 보면 처음에는 피치 못해 그 역할을 억지로 담당해 온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감당해야 했다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환경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또는 누구의 부탁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고 있는 나와는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 역할, 이를테면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히는 정도의 일은 결혼을 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나의 부엌 출입은 결혼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도 계속되어 왔다.  중 고등 학교 때나 대학을 다닐 때도 그랬었고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러니 나의 이러한 역할을 해온 것이 4-50년은  족히 되는 셈이다.  이는 역할분담 즉 남자로서의 할 일이나 여자로서의 할 일에 대한 구분 같은 개념에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역할의 분담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것 같지가 않다.  구태여 분담이란 말을 써야 한대도 그 분담을 하게 된 동기나 이유 또는 별다른 환경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다.  당연시했었다고나 할까.  그냥 ‘네 일’, ‘내일’을 가리지 않고 각자가 어떤 상황에서 필요를 느끼면 머뭇거림 없이 나서고 있을 따름이다.  
  
집안의 내력이었을까.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이나 큰 형님도 그랬었고 70이 넘은 두 형님과 하와이에 있는 오십대 후반의 동생도 부엌일 같은 데는 머뭇거림이 없다.  나에게는 삼십대 초반과 이십대 후반의 두 아들이 있다.  아직 미혼인 이들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이따금씩 자기 나름의 ‘레서피’로 바비큐를 굽고 자기가 만든 특유의 소스를 내놓기도 한다.  작은 녀석은 가끔 직장 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요리학원에 들려 배워온 메뉴의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안 남자들의 음식 솜씨는 내세울 만큼 뛰어난 것은 없지만 ‘먹을만하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아내들이 만들어 낸 음식에 식상할 때는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에 들어서는 게 이 집안 남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다 보니 느는 것은 요리 솜씨이다.  솜씨라고는 하지만 이따금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와, 맛있다.  이거 아빠가 만든 거지?”라는 말이 나오면 기분이 약간  으쓱해질 정도에 불과하다.  맛이 있다며 아빠가 만든 것이냐고 묻는다는 것은 내 음식 솜씨가 아내보다 좋다는 의미로도 들리니 한번쯤 뻐겨 볼만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그 동안 모아둔 레서피가 거의 300여 종류에 달한다.  이웃이나 친지들의 집에서 맛본 특이한 음식에 대한 조리 방법이나 신문, 잡지 또는 TV에서 소개하는 메뉴를 모아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것들인데 쿡 북(Cook Book)이라도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다.        
  
아내는 틈만 있으면 TV의 음식채널을 노트에 메모까지 해가며 열심히 시청을 해 온 것이 몇 년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레서피로 만들어낸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다.  아내에게 “만들지도 않을 걸 뭣 하러  그렇게 적기가지 하면서 열심인지 모르겠다”면 “언젠가는 한번쯤 해 볼 것”이란다.  그 언제쯤이라는 것이 얼마나 길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나도 틈이 있을 때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어쩌면 아내보다도 내가 먼저 손을 써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해야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서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함께 처리해 나간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꼭 역할  분담이라는 구분 같은 것을 두지 않고라도 필요에 따라 나서는 것은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이고 또는 누가 해야 할 것인지를 구분할 일이 아니다.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아내는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한다.  십 년 가까이 재택(在宅)  근무를 하고 있는 나는 동부와 서부 사이에 세 시간이라는 시간차로 인하여 나도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아내보다는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있는 셈이다.  새벽바람을 쏘이며 출근을 하는 아내에게 따끈한 한잔의 커피나 생강차를 끓여주는 일, 입맛에 맞는 저녁상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 부엌으로 들어설 때는 즐거운 마음이기도 하다.  요새는 아내가 퇴근을 할 시간에 맞추어 전기 밥솥의 스위치를 눌러놓고 창문을 통하여 드라이브 웨이를 힐끔거리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기분 나쁠 일이 아닐 것 같다.  밥을 지을 때 물 대중을 잘못하여 밥이 질다거나 뒤뜰에서 뜯어 무친 씀바귀 나물이 너무 짜다고 잔소리를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공처가(恐妻家)라는 말이 있다.  아내에게 사랑과 정을 쏟고있는 남편들을 마치 아내에게 눌려지내고 있기라도 하는 남편을 빗대어 하는 말인 것 같다.  느낌대로 말하자면 글자 그대로 공처가(恐妻家), 좋게 말하면 애처가(愛妻家)라고도 풀이된다.  그럼 나는 어떤 종류의 남편일까.  恐妻家라도 좋고 愛妻家 라도 상관은 없겠지만 恐妻家라는 말 대신에 功妻家라면 어떨까.  아내에게 공을 드리고 싶은 남편으로서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 같은 이름이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 앞에 원조(元祖)라는 말을 붙인다면 또 어떨까.  <元祖 功妻家>, 그럴법한 이름이다.  지금 내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스타일을 구기고 있다는 책망을 들을지도 모를 일 이지만 누가 나더러 功妻家, 그것도 元祖 功妻家라고 불러 준다면 기분이 나쁠 것 같지가 않다.
  
“미국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지”라든가 “이민생활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말들을 자주  듣게된다.  마치 피할 수가 없어 남자로서 또는 남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할 수 없이 환경과 조건에 이끌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이런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그 <전업 主夫>가 된 남편께서는 ‘정상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 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적인 생활에의 ‘복구’가 아니라 ‘발견’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다독여 주는 집안의 모습은 아름다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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