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행복의 조건: 전 성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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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4,701회 작성일 11-03-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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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따라 이 고장에는 눈이 유난히도 많이 왔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온 천지가 하얀 옷으로 단장해 가는 모습이 상쾌하고 보기에 좋다. 집 주위에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은 금새 눈꽃송이를 달고 얌전히 서 있다. 제법 아담한 단독 주택에 살다가 이 "타운 하우스"로 옮긴 지도 10년이 가까워 온다. 우리가 이 오막살이로 옮긴 건 아이들이 모두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구하여 타지방으로 옮겨가 단 둘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장과 같이 조용한 이 연립주택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지난 3년 동안 미네소타는 이상 기후로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금년에는 12월에 들어서자 계속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엄습해서 이곳의 정상적인 겨울로 되돌아 왔다고들 했다. 미네소타의 특징은 아무래도 매서운 추위다. 이 추위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겨울만 되면 투덜거린다.
성탄절 전후를 캘리포니아에 사는 큰아이의 주선으로 온 가족이 함께 지내는 기회를 가졌다. 화창한 햇빛이 눈부신 바닷가에서 우리는 미네소타를 잠시 잊고 별천지의 맛을 보았다. 그 곳을 떠나던 날 샌프란시스코 일간지에 "자기가 사는 곳이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설문 조사가 나와 있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흥미있게 읽어 보았다. 행복감의 척도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과의 관계, 수입, 정치적인 풍토, 빈부의 차이 등 다양하였다. 통계적인 차이가 두드러진 건 아니지만 미네소타를 포함한 중서부가 2위를 차지했고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중남부에 이어서 5위에 머물렀다. 1위는 동남부였다. 그 곳 사람들은 아마도 나름대로 끈끈한 인정을 나누며 사는 까닭에 행복감을 더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기사에 지구촌의 행복도도 나와 있었다. 비교적 작은 나라들인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상위권을 차지했고 미국은 5위에 그쳤다. 날씨가 따뜻한 포르투갈, 그리고 그리스가 하위권에 속해 있음이 눈에 띄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나는 날씨가 행복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어차피 추운 미네소타로 돌아가서 살아야 할 몸이니까 기후가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애폴리스 비행장에 내리니 예상대로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 있었고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빙판 길을 달려 오두막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창밖을 내다보니 떠나기 전에 쌓였던 언덕 위의 눈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돈이 우리에게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 주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게 하지만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다.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중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삶에 기쁨을 더해주는 행복은 외적 상황에 좌우되는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성취한 일이나 돈의 많고 적음, 자연 환경의 변화 등에 매이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소유할 때 우리는 어떤 삶도 보람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한문 구절이 떠오른다. 가난을 평안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도를 즐긴다는 뜻이다. 성경에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한계를 알고 자기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사는 것도 마음이 가난한 자의 자세이리라.
나는 춘하추동 사철이 분명한 이곳이 좋다.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캘리포니아의 포근한 날씨와 빛나는 태양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이 고장에서 사는 것을 섭리로 받아들이며 이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이곳에서 나는 신대륙에서의 삶의 터전을 닦았고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눈이 오면 눈을 즐기고 추위가 오면 봄을 기다리며 견디고 무더운 여름의 호숫가와 단풍이 덮인 가을의 산책길을 즐기며 살아왔다. 자기가 사는 고장에 정을 붙이고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살든지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춥고 매서운 겨울이 몸서리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느덧 이 고장에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미네소타란 이름을 글장난이긴 하지만 한문으로 지어보았다. "민애소다(民愛笑多)"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웃음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서로 도우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사는 사회, 서로를 알뜰히 사랑하며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웃음은 우리 삶의 활력소다. 스트레스가 많은 미국사회에서 유머가 발달한 이유는 그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발산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무력함을 알고 겸손히 꿇어 엎드려 하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사랑의 나눔, 그리고 가까운 몇몇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실없는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즐거움, 이 모든 것이 나를 이 고장에 묶어버려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가 힘들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고장에 뼈를 묻게 될 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왜 춥겠는가, 서로 손을 잡고 살라고 추운 것이지" 라고 한 어느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아직도 이 고장에는 겨울이 남아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화창한 봄볕이 저 눈동산을 푸르게 할 것을 믿기에 나는 겨울나무에 핀 눈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창 밖에는 흰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네소타는 이상 기후로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금년에는 12월에 들어서자 계속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엄습해서 이곳의 정상적인 겨울로 되돌아 왔다고들 했다. 미네소타의 특징은 아무래도 매서운 추위다. 이 추위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겨울만 되면 투덜거린다.
성탄절 전후를 캘리포니아에 사는 큰아이의 주선으로 온 가족이 함께 지내는 기회를 가졌다. 화창한 햇빛이 눈부신 바닷가에서 우리는 미네소타를 잠시 잊고 별천지의 맛을 보았다. 그 곳을 떠나던 날 샌프란시스코 일간지에 "자기가 사는 곳이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설문 조사가 나와 있어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흥미있게 읽어 보았다. 행복감의 척도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과의 관계, 수입, 정치적인 풍토, 빈부의 차이 등 다양하였다. 통계적인 차이가 두드러진 건 아니지만 미네소타를 포함한 중서부가 2위를 차지했고 캘리포니아는 동부와 중남부에 이어서 5위에 머물렀다. 1위는 동남부였다. 그 곳 사람들은 아마도 나름대로 끈끈한 인정을 나누며 사는 까닭에 행복감을 더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기사에 지구촌의 행복도도 나와 있었다. 비교적 작은 나라들인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상위권을 차지했고 미국은 5위에 그쳤다. 날씨가 따뜻한 포르투갈, 그리고 그리스가 하위권에 속해 있음이 눈에 띄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나는 날씨가 행복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어차피 추운 미네소타로 돌아가서 살아야 할 몸이니까 기후가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애폴리스 비행장에 내리니 예상대로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 있었고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빙판 길을 달려 오두막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창밖을 내다보니 떠나기 전에 쌓였던 언덕 위의 눈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돈이 우리에게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 주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게 하지만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다.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중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삶에 기쁨을 더해주는 행복은 외적 상황에 좌우되는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성취한 일이나 돈의 많고 적음, 자연 환경의 변화 등에 매이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소유할 때 우리는 어떤 삶도 보람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한문 구절이 떠오른다. 가난을 평안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도를 즐긴다는 뜻이다. 성경에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한계를 알고 자기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사는 것도 마음이 가난한 자의 자세이리라.
나는 춘하추동 사철이 분명한 이곳이 좋다. 눈보라가 치는 날에는 캘리포니아의 포근한 날씨와 빛나는 태양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이 고장에서 사는 것을 섭리로 받아들이며 이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이곳에서 나는 신대륙에서의 삶의 터전을 닦았고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눈이 오면 눈을 즐기고 추위가 오면 봄을 기다리며 견디고 무더운 여름의 호숫가와 단풍이 덮인 가을의 산책길을 즐기며 살아왔다. 자기가 사는 고장에 정을 붙이고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살든지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춥고 매서운 겨울이 몸서리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느덧 이 고장에 정이 들어버린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미네소타란 이름을 글장난이긴 하지만 한문으로 지어보았다. "민애소다(民愛笑多)"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웃음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서로 도우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사는 사회, 서로를 알뜰히 사랑하며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웃음은 우리 삶의 활력소다. 스트레스가 많은 미국사회에서 유머가 발달한 이유는 그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발산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무력함을 알고 겸손히 꿇어 엎드려 하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사랑의 나눔, 그리고 가까운 몇몇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실없는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즐거움, 이 모든 것이 나를 이 고장에 묶어버려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가 힘들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고장에 뼈를 묻게 될 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왜 춥겠는가, 서로 손을 잡고 살라고 추운 것이지" 라고 한 어느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아직도 이 고장에는 겨울이 남아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화창한 봄볕이 저 눈동산을 푸르게 할 것을 믿기에 나는 겨울나무에 핀 눈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창 밖에는 흰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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