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16 특별전13: 뭉크와 표현주의, 누에 갤러리, 뉴욕 Munch and Expressionism, Neue 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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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710회 작성일 16-05-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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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16 특별전14 뭉크와 표현주의 Munch and Expressionism Neue Galerie, NYC 4/21/16
Edvard Munch The Scream 1895
뭉크전이 누에 갤러리에서 6/13/ 2016까지 열린다. 19세기 말 과학의 발달과 시각문화로 인해 유럽인은 풍요로운 아름다운 시기(벨 에포크, Belle Epoque, 1871-1914)를 누렸다. 하지만 세기말 적 증후군(펜드시에클 Fin de siecle)도 동시에 나타났다. 아프리카의 식민지 구축, 계급의 출현, 빈부의 양극화 및 슬럼이 형성되었다. 또한 소외감을 느끼는 도시인들은 밤문화로 몰렸던 decadent 및 degenerated 시기로도 본다. 이러한 문제점이 누적되어 1930년대에 파시즘이 출현했다고도 한다. 뭉크가 그린 scream은 펜드시에클의 대표적 작품이다. 개인이 느끼는 고립 alienation이 나타난다.
에드바트 뭉크의 그림에는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독일 표현주의 등 동시대와의 교감(dialogue)이 보인다. 뭉크와 동시대를 산 고호와 고갱은 후기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작가이다. 더 이상 재현 미술이 아니라, 선과 색에 상징적 모티프를 부여하여, 표현 미술 expressionism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20세기 초반에 칸딘스키, 청기사파, 키쉬너, 뭉크가 나타나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당시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등은 아름다운 시기의 이면에는 데카당스 시대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고 말했다.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 존재는 이성적 사고로 가능하지 않으므로 무조건 믿는 사람은 속는 것이며, 진정한 믿음은 의심하는 것이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동정심이 있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소수이다. 동장심이란 욕망을 채우려는 내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종교와 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관조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dvard Munch, Morning 1884
뭉크는 초기에는 스승에게 배운대로 밝은 그림을 그렸다.
Edvard Munch, Spring 1889
뭉크는 파리에서 유럽 화가들의 아방가르드에 접한다. 르느와르, 모네의 헐렁한 붓 터치에 영감을 받는다. 풍경화를 많이 그린 인상파들과는 달리 뭉크는 실내에서 작업을 한다. 어려서 엄마와 누나를 여윈 작가는 평생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일관된 주제는 죽음이며, 그림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Edvard Munch, Spring Day on Karl Johan Street 1889
뭉크는 신인상파 쉐라처럼 점을 찍어 그리는 시도도 했다.
George Se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alnd of Grande Jatte 1984-86
쉐라의 점묘법 pointillism 이다. 점으로 캔버스를 메꾸는 과도한 작업으로 인해 쉐라는 일찍 죽는다.
Paul Gaugain, Vision after the Sermon 1888
뭉크는 고갱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고갱은 땅을 빨강으로 칠하여 색을 해방시켰고, 사람들의 환영을 그려서 추상적 개념을 도입했다. 성서 내용을 축소하고 사람을 강조하여 당시 종교의 흔들림을 나타냈다.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1899
고호는 정신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자신의 느낌을 그렸다. 세기 말이 되니 눈에 보이는 대상에서 자유로와진다.
Edward Munch, Spring Evening 1892
유럽의 19세기 말 세기말적 증후군을 뭉크는 의식하고 있었다. 데카당스 시대에 주체성 없이 사는 해골같은 모습이다.
Ernst Ludwig Kirchner, Street Dresden 1908
벨 에포크( 프로이센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일차 대전 전 1914년 사이 유럽의 전성기)시대, 아름다운 시기임에도 유럽인은 소외되 보인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 키쉬너는 거리를 분홍색으로 칠했다. 이러한 상징주의적 발상은 고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dward Munch, The Dance of Life 1899
뭉크는 평생 여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여자는 이해가 안되는 공포스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일관된 주제는 고립, 우울, 죽음이다.
Edward Munch, The Child and the Death 1899
어머니 죽음에 대한 뭉크의 심정이 표현된 자화상이다.
Edward Munch, Woman in Three Stage
뭉크에게 여자는 유혹, 질투, 광기, 공포의 존재로 표현된다. 예술가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동일 인물인 경우가 많다. 뭉크 역시 보헤미안 아티스트 사이에 '뮤즈'였던 소설가 친구의 부인을 좋아했다.
Edward Munch, Weeping Woman 1907
뭉크의 조각 작품은 드물다. 뭉크를 짝사랑하던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총알이 뭉크를 스쳐간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뭉크는 1905년에 정신병원에 갔다.
Edward Munch, Portrait of Dr. Jacobson 1909
정신 병원에서 나올 무렵, 뭉크는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의 초상화를 그렸다.
Edward Munch, The Sun 1911-16
정신병이 치유되니 그의 그림은 밝아졌지만, 걸작은 이전의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Edward Munch, Workers Returning Home 1915
노년의 뭉크는 미술 세계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공공 프로젝트 및 노동자에게 눈을 돌린다. 독일 표현주의와 비슷한 풍이다. 하지만 1915년 경 뭉크는 이제 옛날 화가가 되어갔다. 피카소, 뒤샹이 아방가르드 작가로 부상되던 시기이다.
Edward Munch, Disturbed Vision 1930
말년에 시력이 손상된 뭉크는 흐릿하게 형체를 표현한다. 80세에 죽은 뭉크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2019년에 뭉크 뮤지엄이 확장되어 개관될 예정이다.
Edward Munch, Self Portrait between Clocks and Bed 1940-43
죽기 일년 전, 뭉크는 삶을 정리하는 그림을 그린다. 시계와 침대보 사이에 서 있는 자화상이다. 후발세대 작가 자스퍼 존스는 뭉크의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
Jasper Johnes, Cicada (ULAE 204), 1979
1960년대에 자스퍼 존스는 뭉크의 그림의 침대보를 보고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미술사적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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