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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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518회 작성일 10-08-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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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은 ‘쉘부르 우산’에 비해 훨씬 비장하다. 주인공인 일본 여성 쵸쵸상은 사랑하는 미국 해군장교 핑카튼과 달콤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후 남편이 미국으로 떠나자 ‘그 어떤 개인 날’ 그가 돌아오면 모든 고생이 영광으로 바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핑카튼이 남겨준 아이와 함께 힙겹게 살아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일본을 다시 찾아온 남편 핑카튼을 만나지만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쵸쵸상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단도로 자결한다.
기다림은 항상 불확실성이라는 삶의 조건으로 인해 무너지게 마련이다. 인간이 배신 당하거나 배신을 하는 이유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쥬느뷔에브가 3개월만 더 기다렸다면, 핑카튼이 쵸쵸상과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면 두 연인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쥬느뷔에브는 쵸쵸상이 되기를 거부했고, 핑카튼은 자신을 기다리지 않을지도 모를 쵸쵸상에 대해 믿음을 갖지 않았다.
금전적으로만 보면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공기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텃밭을 가꾸며, 와인과 골프를 가까이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같이 등산복을 입고 전국의 산을 찾아가는 한가로운 것도 아니다. 은퇴란 한마디로 월급날이 돼도 내 통장에 돈(급여)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은퇴는 현실이다. 내 눈 앞에 닥친 일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은퇴준비에 실패할까. 가장 큰 이유는 노후준비가 중요한지는 알지만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미루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돈은 시간과 함께 불어난다는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원칙을 간과하기 때문에 실패하기 마련이다. 성공한 사람의 달력에는 ‘오늘’이라는 달력이 적혀있고, 실패한 사람의 달력에는 ‘내일’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고 한다.
은퇴는 전적으로 돈과 관련된 문제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에는 ‘최소한 10억원 이상 모아야 늙어서 험한 꼴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회사의 ‘공갈마케팅’도 일조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어느 유명한 은퇴전문가는 고객과 은퇴설계를 할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1)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습니까?
(2) 가족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3) 돈이 고객님께 소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돈 외에 고객님께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5) 20년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고객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 검토를 시작한다. 이 은퇴전문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스스로 그리게 한 다음, 그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정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임무다. 고객의 재정적 상황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은퇴설계의 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나를 찾는 것’이다. 자신의 비전을 그려보고 그 비전을 이룩하기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검토하고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재정적 측면에서 보면 은퇴 이후를 위해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하느냐(Stock 개념)에서 은퇴 이후에 돈이 고정적으로 얼마가 나오고 또 일을 통해서 얼마나 나올 수 있느냐(Flow 개념)로 변해야 한다. 노후를 위한 자금이 이처럼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개념에서 얼마가 나온다는 개념으로 바뀔 때만이 ‘허망한’ 미래를 위해 귀중한 현재를 희생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더 나은 오늘을 살도록 돕는 것이 바로 은퇴설계의 진정한 목적이다. 구체적으로 ‘인생의 지도(Life Map)’부터 그려야 한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꿈, 나의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 바로 은퇴설계의 핵심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가 생긴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고, 그 계획을 실천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노후자금에 대해서도 은퇴문제와 마찬가지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노후자금은 먼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금규모를 계산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노후자금의 규모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은퇴 이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추가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돈을 준비하기 위해 저축과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실천을 위한 위대한 첫걸음이다.
저축이나 투자를 할 수 있는 돈이 적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찍 저축이나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돈의 양이 부족하면 시간을 늘리면 된다. 돈은 복리로 늘어난다. 만일 은퇴시점인 63세에 1억 1000만원을 마련하려면 43세의 경우 매월 16만원(연 10% 수익률)을 저축하면 되지만, 53세라면 매월 58만원을 저축해야 한다. 16만원은 크게 부담스러운 돈이 아니지만 58만원은 다소 버겁다. 10년이라는 기간이 매월 16만원과 58만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복리는 바로 시간을 사는 것이다. 노후준비를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 이외에는 정답이 없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 교수가 말한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s As A Free Lunch)’는 명언 중 명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뉴저지의 러트거스대를 고학으로 다닌 그는 끼니를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이나 사회가 공짜로는 아무것도 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설사 공짜인 것처럼 보여도 훗날 감춰진 비용이 발생한다. 노후준비 역시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인생의 지도’를 그려놓고, 하나씩 채워간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은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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