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묵은 인삼의 비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221회 작성일 11-11-15 14:24
본문
지난 2월 1000여 년전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인삼이 공개되어 화제이다. 이 인삼 실체는 조선시대 연산군 때인 1502년에 만들어진 천성산 관음사 목조보살좌상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찰에서 불상을 조성할 때, 부처의 뱃속에 여러 가지 유물을 함께 넣어 봉안하는데, 이것을 복장 유물이라고 한다. 대개 오곡과 불경, 사리와 함께 인삼, 감초, 계심, 침향, 부자 같은 여러 가지 약재를 넣는다는 것이 불상을 짓는 『조상경(造像經)』에 규정되어 있다. 원래는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처로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오래된 문화재가 발견되는 경우, 타임캡슐처럼 과거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어 색다른 흥미를 유발시키곤 한다. 이번에 발견된 복장유물의 경우, 다른 무엇보다도 손상되기 쉬운 식물성 약재가 1000년 이상 부식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jpg)
.jpg)
역대 최고성가의 수출전략상품, 고려인삼
한반도에서 자생해온 고려삼의 뛰어난 약효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역대문헌기록에서 자타가 공인해 온 바이다. 중국인들은 『신농본초경』이래 그들의 상당삼(上黨蔘)이 최고의 품질이었다고 애써 고려삼을 낮추어보려고 하였지만 이미 唐宋시대 이전에 상담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영약인 이 고려삼도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아 대외무역의 주종을 이루었지만 늘 과도한 요구와 남채(濫採)로 남아나기 어려웠다.
오죽하였으면 일본의 장군, 요시무네[德川吉宗]는 조선삼을 이식 재배하는데 정권의 명운을 걸었을까? 조선통신사를 수행한 의관들은 의례히 인삼과 우황청심원 등속을 여장에 챙겨 넣었으며, 공공연한 무역상품으로 행세하였다. 또 조선통신사 의학문답류에 보면 그들은 인삼재배법에 관한 일본의관들과 관리들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여하간 요시무네 장군은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도쿄 근교의 어종인삼밭에서 인삼을 재배하는데 성공하지만 품질은 기대 이하였는지 조선산 인삼을 밀무역해가는 것은 여전하였다.
현금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 인삼이 화기삼이나 캐나다산에 비하여 몇 곱절 이상의 고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마음 놓고 수출할 물량조차 확보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지난 신종플루의 유행 때 방역체계에 불안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면역력을 자가 증진할 목적으로 전통의 인삼을 선택하여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그만큼 국내외에서 모두 수백 년을 이어온 대단한 인기품목인 것만은 확실하다.
부처님 덕분에 체면 살린 인삼종주국
오죽하였으면 일본의 장군, 요시무네[德川吉宗]는 조선삼을 이식 재배하는데 정권의 명운을 걸었을까? 조선통신사를 수행한 의관들은 의례히 인삼과 우황청심원 등속을 여장에 챙겨 넣었으며, 공공연한 무역상품으로 행세하였다. 또 조선통신사 의학문답류에 보면 그들은 인삼재배법에 관한 일본의관들과 관리들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여하간 요시무네 장군은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도쿄 근교의 어종인삼밭에서 인삼을 재배하는데 성공하지만 품질은 기대 이하였는지 조선산 인삼을 밀무역해가는 것은 여전하였다.
현금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 인삼이 화기삼이나 캐나다산에 비하여 몇 곱절 이상의 고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마음 놓고 수출할 물량조차 확보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지난 신종플루의 유행 때 방역체계에 불안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면역력을 자가 증진할 목적으로 전통의 인삼을 선택하여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그만큼 국내외에서 모두 수백 년을 이어온 대단한 인기품목인 것만은 확실하다.
부처님 덕분에 체면 살린 인삼종주국
이 유물은 각각 한지에 포장된 복장유물 가운데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탈수되어 바짝 오그라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인삼덩이를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1060±80년경으로 나타났다. 1000년 세월을 견뎌온 것이 믿기 어려운 나이지만 비밀은 한지로 포장하여 밀봉한 것이 비법이라고 하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지금도 귀한 인삼을 포장할 때 한지로 싸서 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향이 좋고 병충해에 강한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관습이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인삼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홍삼으로 만들어져 중국에 수출되었던 것이 지난해 싱가포르의 한 상인으로부터 한국인삼공사에 기증된 것이라고 하니 이 유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삼은 일본 나라에 있는 왕실 보물창고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신라시대 삼으로 역시 100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온 고려삼이다. 그간 국내에는 이런 오래된 실물이 전하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웠던 느낌을 이번 발견으로 떨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인삼은 곧 보살상 및 다른 복장유물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중요성이나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도 우리 민족 한의약의 상징적인 유물로써 그 가치를 연구하고 완벽하게 보존할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인삼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홍삼으로 만들어져 중국에 수출되었던 것이 지난해 싱가포르의 한 상인으로부터 한국인삼공사에 기증된 것이라고 하니 이 유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삼은 일본 나라에 있는 왕실 보물창고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신라시대 삼으로 역시 100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온 고려삼이다. 그간 국내에는 이런 오래된 실물이 전하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웠던 느낌을 이번 발견으로 떨어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인삼은 곧 보살상 및 다른 복장유물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중요성이나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도 우리 민족 한의약의 상징적인 유물로써 그 가치를 연구하고 완벽하게 보존할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고려인삼의 노하우는 홍삼紅蔘 제조비법
실물을 보지 않고 사진속의 외견만 보아서는 이것이 고려시대의 산삼으로 여겨지지 않는데, 실측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견해로는 인삼 특유의 향은 없지만 홍삼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찌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만드는 홍삼의 수분함량은 14% 이하로 돌처럼 딱딱해져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홍삼제법이나 인삼의 보관법에 우리만의 노하우가 있었으니 그럴 듯한 설명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홍삼 제조법이 있었을까? 더욱이 고려시대에 벌써 인삼을 재배하여 가공할 기술을 갖고 있었단 말인가? 그간의 생각이 바뀌는 새로운 사실로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문헌상으로는 『정조실록』에 ‘홍삼’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또 그간 인삼의 재배는 높게 잡아야 숙종 무렵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1123년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남긴 기행문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이미 ‘고려에는 생삼과 숙삼(熟蔘, 익힌 삼)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이 기록을 근거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미 홍삼이 제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의서에서 보이는 기록으로는 1749년 조정준이 지은『급유방(及幼方)』·본초발명(本草發明)의 인삼조에 숙삼의 약성을 논하고 있어 한의약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이번 인삼 유물이 고려시대의 홍삼으로 확인된다면 우리 홍삼 제조비법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삼 재배의 역사도 수백년 소급될 것으로 보여 고대유적의 발굴 못지않은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문헌상으로는 『정조실록』에 ‘홍삼’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또 그간 인삼의 재배는 높게 잡아야 숙종 무렵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1123년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남긴 기행문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이미 ‘고려에는 생삼과 숙삼(熟蔘, 익힌 삼)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이 기록을 근거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미 홍삼이 제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의서에서 보이는 기록으로는 1749년 조정준이 지은『급유방(及幼方)』·본초발명(本草發明)의 인삼조에 숙삼의 약성을 논하고 있어 한의약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이번 인삼 유물이 고려시대의 홍삼으로 확인된다면 우리 홍삼 제조비법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삼 재배의 역사도 수백년 소급될 것으로 보여 고대유적의 발굴 못지않은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