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푸드>영양학자 김갑영의 우리 음식 이야기-누룽지와 숭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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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028회 작성일 15-07-0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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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음료 중 가장 서민적인 토속음료는 숭늉이다. 숭늉은 아궁이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아궁이에 고정시킨 솥에다가 밥을 지었다. 밥을 퍼내고 나면 누룽지가 남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푹 끓여서 만든 것이 바로 구수한 맛의 숭늉이다.
한국인이 숭늉을 마신 역사는 12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고려 사람들이 숭늉그릇을 갖고 다니면서 마신다며 신기하게 여겼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고려시대의 관리나 귀족들은 언제나 시중드는 사람을 시켜 숭늉그릇을 들고 따라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김창업이 청나라를 방문한 뒤 쓴 연행일기에서 식사 후 숭늉을 구해 마시고 속이 편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의 곡물조리 발달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곡물을 구워 먹었다. 그 후 토기에 곡물과 물을 넣고 가열해 죽으로 먹었다. 다음에 시루를 이용해 곡물을 알갱이 그대로의 모양으로 쪄서 '지에밥'을 해 먹었다.
이후 철기문화의 보급에 따라 철제가마솥을 이용해 물과 쌀을 솥에 넣어 가열해 밥을 했다. 가마솥 바닥에는 밥알이 뜨거운 상태에서 변해 구수한 맛의 누룽지가 만들어졌다.
숭늉은 건강에도 좋은 음료다. 누룽지에는 전분의 분해과정에서 약간의 단맛이 나는 덱스트란(Dextran) 성분이 만들어지는데 이 성분에 소화율이 높고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는 아미노산, 식이섬유질 등이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누룽지를 '취건반(炊乾飯)'이라 부르며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으로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을 치료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통적인 한국형 식사법에 따르면 숭늉에 밥을 말아 먹거나 식후 솥에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숭늉을 끓여 마시면서 입가심을 했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식사 후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 음식에서 느끼한 맛을 차로 가시게 하는 역할을 한국에서는 숭늉이 했다고 할 수 있다.
전기밥솥의 등장과 함께 숭늉 이용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최근엔 누룽지 기능을 추가시킨 밥솥, 누룽지 제과기, 누룽지 프라이팬까지 등장해 숭늉 음료의 이용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돌솥에 쌀과 보리를 섞어 누룽지를 만든 후 모아서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방앗간에서 빻아 숭늉가루로 만들어 그때그때 끓여 먹기도 한다.
공주대 명예교수·전 한국가정과학회장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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