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지도자들의 장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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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610회 작성일 15-06-2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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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개척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BC 356∼BC 323) 대왕은 33살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병을 얻어 삶을 마쳤다. 그가 숨진 뒤 마케도니아의 장군들은 후계자 지위를 놓고 다툼을 벌였고, 커다란 혼란 속에서 제국은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로 갈라졌다. 지도자의 단명이 국가와 백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예다. 반면 평균 수명이 현재의 4분의 1도 안 되는 과거에도 장수를 누린 역사 속 인물들이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백성과 함께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간 지도자들이 어떤 장수비법을 실천했는지 알아본다.
숙종, 검은콩·검은깨등 ''검은 식품'' 즐겨
▲영조(1694∼1776)=조선 임금 가운데 최장수(82세), 최장기(52년) 재위를 자랑하는 영조. 조선 왕의 평균수명이 47세였으니 2배 가까이 산 셈이다. 영조는 적게 먹는 대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장수했다.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던 그는 하루 다섯 번의 수라 가운데 낮것상(점심)과 밤참을 들지 않았다. 회의 중에도 식사 때면 수라부터 받을 만큼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다른 임금에 비해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더 좋아했고, 술과 여자도 멀리했다.
영조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무쳐 균형있는 영양소를 갖춘 탕평채를 즐겼다.
조선시대 환갑을 넘긴 왕은 영조를 포함해 태조(74), 정종(63), 광해군(67), 숙종(60), 고종(67) 등 모두 6명이다. 이들은 모두 유·소년기가 아닌 성인이 된 뒤 세자에 책봉됐거나 왕위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적당한 운동과 영양 속에서 산 게 장수에 도움이 된 것이다. 왕좌에 오른 뒤에는 수시로 궁궐을 벗어나 피로한 육체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도 특징이다.
허약체질인 정종은 숨지기 2년 전까지 날마다 보행격구(땅에 구멍을 파고 공을 집어넣는 경기)를 즐기며 체력을 다졌고, 숙종은 검은콩과 검은깨, 오골계, 흑염소 등 ‘검은 식품’을 좋아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고종은 맵거나 짠 음식을 멀리하면서 고기보다 채소를 즐겨먹었다.
덩샤오핑, 88세까지 바다수영…냉수마찰도
▲덩샤오핑(1904∼97)과 쑹메이링(1897∼2003)=중국의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은 실권과 복권을 3차례 거듭하는 격랑 속에서도 93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헤엄치기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수영과 산책을 꾸준히 한 그는 88세까지 바다수영을 즐겼고 말년에도 양쯔강을 건널 정도였다. 팔순까지 날마다 냉수마찰을 했으며, 말년에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은 뒤 두유를 풀어 피부에 영양을 공급했다.
그의 음주습관은 혈액순환과 혈당 조절을 도왔다. 식사 때마다 땅콩과 해바라기씨를 안주 삼아 마오타이주나 쌀로 빚은 소흥가반주, 보약 술로 불리는 장수장락주, 고량주 등을 마셨다. 말년에도 소일거리를 찾아 즐겼기 때문에 치매가 오지 않았다. 카드놀이의 하나인 브리지게임을 자주 했고, 축구와 배구 생중계는 빼놓지 않고 봤다. 무협소설과 경극 보기, 당구치기도 오래된 취미였다.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은 106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도가식 생활습관으로 파란만장한 한 세기를 헤쳐나갔다. 75년 남편이 숨지자 미국 뉴욕에 정착한 그는 세상 잡사를 잊고, 심신을 편안히 유지하는 도가철학을 따랐다. 91년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끊어버리고, 날마다 1시간 이상 숲길을 매우 느린 속도로 산책했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위해 서예와 그림 감상·수집을 즐겼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 활기 있는 도시생활도 만끽했다고 한다. 평생 중국 전통 차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도 장수에 도움을 줬다.
처칠, 매일 아침식사후 1시간씩 단잠
▲윈스턴 처칠(1874∼1965)과 존 록펠러(1839∼1937)=윈스 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단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루 갖췄지만 91세까지 살았다. 처칠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시가를 입에서 떼지 않았고, 위스키를 물처럼 마셨다. 또 다혈질 성격 탓에 불끈불끈 화를 잘 냈고 과식하는 버릇 때문에 비만과 혈압에 시달렸다. 운동에도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처칠은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정력적으로 일했다. 70세 가까운 나이에도 하루 16시간 넘게 일했고, 78세에 다시 총리직에 오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의 건강은 언제나 보통사람을 눌렀고 두뇌 회전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처칠의 자신감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곧 장수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 런던이 폐허로 변해가는데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활동에 힘써 뇌의 노화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그만의 독특한 잠자리 습관도 장수에 기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1시간 아침잠을 즐겼고, 오전 11시까지는 침대에서 집무를 봤다. 저녁에는 2시간 동안만 잠을 잤다. 여러 번의 짧은 휴식으로 한밤중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 처칠은 “내 활력의 근원은 아침식사 후 단잠”이라고 말했다.
98살까지 산 미국의 ‘석유왕’ 존 록펠러도 날마다 낮 12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즐겼고, 이 시간에는 대통령도 통화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숙종, 검은콩·검은깨등 ''검은 식품'' 즐겨
▲영조(1694∼1776)=조선 임금 가운데 최장수(82세), 최장기(52년) 재위를 자랑하는 영조. 조선 왕의 평균수명이 47세였으니 2배 가까이 산 셈이다. 영조는 적게 먹는 대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장수했다.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던 그는 하루 다섯 번의 수라 가운데 낮것상(점심)과 밤참을 들지 않았다. 회의 중에도 식사 때면 수라부터 받을 만큼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다른 임금에 비해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더 좋아했고, 술과 여자도 멀리했다.
영조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무쳐 균형있는 영양소를 갖춘 탕평채를 즐겼다.
조선시대 환갑을 넘긴 왕은 영조를 포함해 태조(74), 정종(63), 광해군(67), 숙종(60), 고종(67) 등 모두 6명이다. 이들은 모두 유·소년기가 아닌 성인이 된 뒤 세자에 책봉됐거나 왕위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적당한 운동과 영양 속에서 산 게 장수에 도움이 된 것이다. 왕좌에 오른 뒤에는 수시로 궁궐을 벗어나 피로한 육체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도 특징이다.
허약체질인 정종은 숨지기 2년 전까지 날마다 보행격구(땅에 구멍을 파고 공을 집어넣는 경기)를 즐기며 체력을 다졌고, 숙종은 검은콩과 검은깨, 오골계, 흑염소 등 ‘검은 식품’을 좋아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고종은 맵거나 짠 음식을 멀리하면서 고기보다 채소를 즐겨먹었다.
덩샤오핑, 88세까지 바다수영…냉수마찰도
▲덩샤오핑(1904∼97)과 쑹메이링(1897∼2003)=중국의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은 실권과 복권을 3차례 거듭하는 격랑 속에서도 93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헤엄치기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수영과 산책을 꾸준히 한 그는 88세까지 바다수영을 즐겼고 말년에도 양쯔강을 건널 정도였다. 팔순까지 날마다 냉수마찰을 했으며, 말년에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은 뒤 두유를 풀어 피부에 영양을 공급했다.
그의 음주습관은 혈액순환과 혈당 조절을 도왔다. 식사 때마다 땅콩과 해바라기씨를 안주 삼아 마오타이주나 쌀로 빚은 소흥가반주, 보약 술로 불리는 장수장락주, 고량주 등을 마셨다. 말년에도 소일거리를 찾아 즐겼기 때문에 치매가 오지 않았다. 카드놀이의 하나인 브리지게임을 자주 했고, 축구와 배구 생중계는 빼놓지 않고 봤다. 무협소설과 경극 보기, 당구치기도 오래된 취미였다.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은 106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도가식 생활습관으로 파란만장한 한 세기를 헤쳐나갔다. 75년 남편이 숨지자 미국 뉴욕에 정착한 그는 세상 잡사를 잊고, 심신을 편안히 유지하는 도가철학을 따랐다. 91년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끊어버리고, 날마다 1시간 이상 숲길을 매우 느린 속도로 산책했다고 한다.
정신건강을 위해 서예와 그림 감상·수집을 즐겼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 활기 있는 도시생활도 만끽했다고 한다. 평생 중국 전통 차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도 장수에 도움을 줬다.
처칠, 매일 아침식사후 1시간씩 단잠
▲윈스턴 처칠(1874∼1965)과 존 록펠러(1839∼1937)=윈스 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단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루 갖췄지만 91세까지 살았다. 처칠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시가를 입에서 떼지 않았고, 위스키를 물처럼 마셨다. 또 다혈질 성격 탓에 불끈불끈 화를 잘 냈고 과식하는 버릇 때문에 비만과 혈압에 시달렸다. 운동에도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처칠은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정력적으로 일했다. 70세 가까운 나이에도 하루 16시간 넘게 일했고, 78세에 다시 총리직에 오르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의 건강은 언제나 보통사람을 눌렀고 두뇌 회전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처칠의 자신감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곧 장수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 런던이 폐허로 변해가는데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활동에 힘써 뇌의 노화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그만의 독특한 잠자리 습관도 장수에 기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1시간 아침잠을 즐겼고, 오전 11시까지는 침대에서 집무를 봤다. 저녁에는 2시간 동안만 잠을 잤다. 여러 번의 짧은 휴식으로 한밤중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 처칠은 “내 활력의 근원은 아침식사 후 단잠”이라고 말했다.
98살까지 산 미국의 ‘석유왕’ 존 록펠러도 날마다 낮 12시부터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즐겼고, 이 시간에는 대통령도 통화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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