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스터 시의원에 출마하는 제니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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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ngeliya 댓글 0건 조회 2,298회 작성일 15-11-04 10:10본문
‘새 얼굴, 신선한 아이디어’ 제니 정
1977년 생 제니 정은 밝고 쾌활한 첫인상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 할 일꾼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20년 이상 클로스터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 곳에서 18년 동안 운영하며 블루클린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고, 또 같은 한인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고, 현재는 어머니처럼 자영업을 하는 중소 상인을 위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처음 제니씨의 가족이 클로스터에 정착 할 당시만 해도 지역에 사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현재 클로스터 시의 전체 인구 중 30%가 한국계 미국인 이지만, 정작 한인을 위한 시의 일꾼으로 한인 시의원은 커녕 한인 경찰조차 단 한 명도 없다.
위급상황시 상황에서 911이나 경찰을 부르면 통역을 하기 위해 시에서는 인근의 한인 목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받는 처지라고 한다. 제니씨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장사를 도우면서 주위의 한인의 비즈니스가 침체되는 것이 안타까왔고, 타운의 여러 혜택과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입법기구인 시의회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변의 조언자들로 부터 이 지역의 젊고 새로운 일꾼이 필요하다며 출마를 권유 받았을때 선뜻 수락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다정한 이웃으로 사랑받는 지역주민의 명소로 어머니가 꾸려오신 아이스크림 가게와 어린시절의 추억을 아들 레무스에게도 물려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홈 타운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결심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가게를 닫기로 했을때 손님에게 안내문을 붙여 문닫는 소식을 알렸더니, 몇몇 단골 학생들은 울면서 서운해 하며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기념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실제로 제니씨가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운동을 할때 예전 단골고객들이 제일 반갑게 환영하며 열열하게 지지를 해주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한다. 비지니스를 하면서 지역의 사랑방 역할과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한 보람으로 제니씨의 선거 운동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선행이 곧 선업이 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 제니씨가 아들 레무스를 임신 6개월만에 낳아, 많은 사람과 함께 가슴 졸이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너무도 작고 연약한 아기였던 레무스는 인큐베이터에서 몇 달간 지내야 했었다. 그랬던 아기가 2013년 내셔널 지오그라픽 잡지에 표지모델로 나올만큼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다. 현재 4살이 된 레무스는 어린이 모델로서 유명한 의류회사 갭, 그리고 타겟 등의 모델로 활약하며 ‘가족 중 게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제니씨의 남편 역시 뉴욕시의 중소 사업가를 위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가족이 모두 낙천적이고 밝아서, 만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힘든시기를 사랑과 희망으로 이겨낸 제니 정의 아들 레무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표지모델을 했다(좌)
일진행 보살은 한국에서는 불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어머니 일진행 보살님은 1977년 제니를 임신한 채 당시 시카고에 살던 오빠의 초청으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했다. 제니씨가 아직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때 다시 뉴욕으로 이사 와서 잠시 플러싱과 브롱스에서 살다가 클로스터에 ‘Yogurt Lovers’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인수하고 지역의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웃이 되었다. 약 18년 전 갑작스럽게 남편과 사별하고 처음으로 원각사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불교와의 인연의 시작었다. 당시에 법안스님이 계셨고, 그 후 길상스님, 혜각스님 등을 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게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정작 절에는 일년에 한 두번 정도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집 가까이에 보리사가 생기면서 더 자주 절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백림사는 3년 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어떤 분의 49재 초재와 다음날에도 또 다른 제사가 겹쳐 당시 공양주이던 최보살이 도움을 청하였다고 한다. 일진행 보살은 별 생각 없이 다만 손이 모자라는 제사 준비를 도우면서 그렇게 백림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가게가 있던 상가 플라자가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비즈니스를 접게되었는데, 아예 백림사에 공양주로 들어와서 살면 어떻겠냐는 제의에 작년 9월부터 백림사 절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미산스님은 현재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소임을 보고있는데, 스님의 속가 누나가 바로 제니씨이다. 스님은 하와이 무량사에서 2년 간 생활을 하고 한국의 노휴스님을 은사스님으로 출가해 송광사에서 강원생활을 4년간 하고 작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미산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무량사에 머물고 있을 2008년 까지만 해도 불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마침 주지였던 도현스님이 한 달간 절을 비우게 되었고, 한 달간 천수경을 염불하라며 도현스님으로 부터 목탁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혜성스님은 제니 정의 한인 정치의 참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앞으로 더 많은 한인 정치가가 배출되고 또 많은 한인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소통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만 한다고 강조 하셨다. “미국은 한국의 영원한 우방입니다. 지금 많은 한인이 미국 사회에 정착해서 잘 살고 있는데, 지속적인 고국의 발전,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미국의 주류에서, 워싱턴 정계에서 한국과 한인을 위해, 또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일하고, 그런 젊은 정치인을 서포트 해야 합니다.”라고 혜성스님은 말한다. 제니 정의 출사표는 결코 만만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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