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과 운명의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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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806회 작성일 11-04-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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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들에겐 이상할 정도로 우연의 일치점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죽음에 연관된 무서운 우연을 발견할 수 있다. 끝자리 숫자가 '0' 인 해에 선출된 대통령은 반드시 재직 중에 병사하거나 암살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다는 사실만 해도 그렇다. 이름하여 '제로의 저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된다. 그래서 끝자리 숫자가 '0' 인 해의 선거는 20년에 한 번씩 오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당선된 대통령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가 병사하거나 암살당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 1840년, 윌리엄 H. 해리슨, 폐렴으로 사망.
- 1860년, 에이브리험 링컨,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암살.
- 1880년, 제이스 A. 가필드, 워싱턴 역전에서 암살.
- 1900년, 윌리엄 매킨리, 암살.
- 1920년, 워렌 하딩,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살.
- 1940년, 존 F. 케네디, 암살.
이처럼 20년마다 끝자리가 '0' 이 되는 해에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재직 중에 뜻밖의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에 당선되어 마침내 '제로의 저주' 를 깨뜨린 대통령이 있는데, 바로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자신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무사히(?) 은퇴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평탄하지 많은 않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1년 후에 총격을 받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재직 중에 암에 걸리기도 했다. 말년엔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2000년의 선거에 당선된 부시는 어떻게 될까?
운명의 숫자 '3'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세 번째의 미국 대통령답게 '3' 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제퍼슨 가에서 세 명째의 토머스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닌 끝에 윌리엄 앤드메리 대학을 졸업했으며,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버지니아 식민지 대표로 대륙회의에 참가한 그는 33세에 독립 선언서를 기초했으며, 독립선언 기초위원으로 세 번이나 당선되었다. 또한 그는 제 3대 주 프랑스 대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제퍼슨과 3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워싱턴의 내각에서 세 번째로 각료에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철학협회의 제 3대 총재로 취임하기도 했다.
또한 제퍼슨은 세 가지의 예술을 사랑했으며, 세 가지의 이념을 추구했다. 그러나 매사가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3이란 숫자 때문에 눈물을 머금은 일도 있었다. 1796년에 처음으로 대통령 직에 도전을 했었는데 애석하게도 애덤스에게 패해 부통령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과 3표 차이였다. 하지만 18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애덤스를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된다. 그래서 끝자리 숫자가 '0' 인 해의 선거는 20년에 한 번씩 오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당선된 대통령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가 병사하거나 암살당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 1840년, 윌리엄 H. 해리슨, 폐렴으로 사망.
- 1860년, 에이브리험 링컨,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암살.
- 1880년, 제이스 A. 가필드, 워싱턴 역전에서 암살.
- 1900년, 윌리엄 매킨리, 암살.
- 1920년, 워렌 하딩, 샌프란시스코에서 급살.
- 1940년, 존 F. 케네디, 암살.
이처럼 20년마다 끝자리가 '0' 이 되는 해에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재직 중에 뜻밖의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에 당선되어 마침내 '제로의 저주' 를 깨뜨린 대통령이 있는데, 바로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자신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무사히(?) 은퇴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평탄하지 많은 않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1년 후에 총격을 받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재직 중에 암에 걸리기도 했다. 말년엔 치매로 세상을 떠났다. 2000년의 선거에 당선된 부시는 어떻게 될까?
운명의 숫자 '3'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세 번째의 미국 대통령답게 '3' 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제퍼슨 가에서 세 명째의 토머스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닌 끝에 윌리엄 앤드메리 대학을 졸업했으며,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버지니아 식민지 대표로 대륙회의에 참가한 그는 33세에 독립 선언서를 기초했으며, 독립선언 기초위원으로 세 번이나 당선되었다. 또한 그는 제 3대 주 프랑스 대사로 3년간 근무했다. 제퍼슨과 3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워싱턴의 내각에서 세 번째로 각료에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철학협회의 제 3대 총재로 취임하기도 했다.
또한 제퍼슨은 세 가지의 예술을 사랑했으며, 세 가지의 이념을 추구했다. 그러나 매사가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3이란 숫자 때문에 눈물을 머금은 일도 있었다. 1796년에 처음으로 대통령 직에 도전을 했었는데 애석하게도 애덤스에게 패해 부통령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과 3표 차이였다. 하지만 18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애덤스를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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