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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 두취케와 악셀 슈프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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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3,253회 작성일 10-09-0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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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귀족인 악셀 슈프링거(Axel Springer)는 독일에서 가장 큰 출판왕국을 서방세계의 점령군, 특히 미국의 승인하에 지배했다. 그의 신문들은 미국의 세계정책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타임즈>보다 더 맹종적인 충성심을 보였다. 독일의 산업귀족 대부분은 제3제국의 후원자였다. 과거에 히틀러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그들은 새로운 보호자를 섬기려고 애썼다. 그들의 충성은 그들의 생산품처럼 견고하고 효율적이었다.
<빌트 차이퉁>을 비롯한 슈프링거 소유의 신문들은 신문 사설을 통해 저항하는 학생들에 대한 노여움을 계속 분출했다. 신문들은 루디 두취케가 동독의 앞잡이며 훌륭하고 점잖은 서독 청년들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추악하고 더러운 빨갱이라고 중상모략했다. 이러한 선전은 나치의 쓰레기 같은 신문 <돌격대>의 증오에 가득찬 그리고 선동적인 공격을 떠올리게 했다. 두취케는 '공적(公敵) 1호'로 낙인찍혔다. 슈프링거의 신문에는 이런 표제도 있었다. "더러운 일을 경찰에게만 맡기지 마라."
뮌헨 출신으로 실직 상태의 도장공인 23세의 요제프 바크만(Joseph Bachman)은 매일 이런 신문을 읽었다.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고 좌절해 있던 그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빌트 차이퉁>의 기사를 읽으면서 만족을 얻었다.
루디 두취케는 어린 아들의 약을 짓기 위해 서베를린의 한 약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도시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신좌파와 구우파 사이의 원한에 찬 분노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요제프 바크만은 거리에서 이 학생 지도자에게 다가가 총탄 세 발을 쏘았다. 한 발은 가슴에, 또 한 발은 얼굴에, 마지막 세 번째 총탄은 머리에 박혔다.
두취케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무렵 요제프 바크만이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을 붙잡은 경찰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는 마틴 루터 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산주의자를 미워하기 시작한 뒤로 내내 두취케를 내가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신학도였던 두취케가 동베를린에서 도망나온 망명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총격이 있은 지 몇 시간 안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서베를린의 심장부 코크스트라쎄에 위치한 슈프링거의 신문사로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 건물이야말로 그들의 분노와 슬픔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배포된 한 좌파 리플렛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것은 고립되어 미쳐버린 한 개인의 행동이 아니다. 좌파 반대에 대해 체계적으로 악선전을 펼쳐 온 슈프링거 언론이 한 인간이 이러한 행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풍토를 만든 것이다.

다음날 분노한 학생들의 시위 물결이 독일 전역의 슈프링거 사무실을 공격했다. 서베를린에서는 수천 명이 스크럼을 짜고 20명씩 나란히, 철조망과 육중한 경찰 차단선으로 둘러처진 슈프링거의 빌딩을 향하여 행진했다. 구호가 주변 건물에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루디 두취케. 루디 두취케." "살인마. 슈프링거."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한 쪽으로 몰고 갔다. 시위대가 그 흉칙한 물대포 차량 뒤편으로 몸을 숨길 때까지 물대포는 계속 발사되었다. 그 물대포 차량은 감청색 갑옷을 입은 땅딸막한 괴물 군신 마르스(Mars)를 떠올리게 했다. 체포되어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는 외무장관의 아들인 페터 브란트(Peter Brandt)도 있었다.
뮌헨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용케 슈프링거 신문 빌딩에 난입해서 난동을 부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어느 우익 목사가 집회하는 교회로 행진해 들어가서 마지막 찬송가를 <인터내셔널>가로 바꾸어 버렸다. 빠리와 뉴욕에 있는 슈프링거 빌딩 밖에도 두취케를 지지하는 항의자들이 있었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마틴 루터 킹을 추모하는 거대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집회를 빠져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루디 두취케, 루디 두취케"를 외치며 스트란트 거리를 지나 홀본 서커스 거리에 있는 <데일리 미러>빌딩의 슈프링거 신문 사무소를 향해 스크럼을 짜고 행진했다. 그들은 베트남연대운동과 독일 SDS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경찰은 플래카드와 현수막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리고 동료들의 어깨 위에 올라가 군중을 향해 연설하고 있던 타리크 알리를 체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경찰을 멀리 밀쳐내고, 대표단을 빌딩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느 고민 많던 소유주의 후원을 받던, 동반자적인 <미러mirror>지 기자들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이 사건을 다음날 신문 1면에서 다루겠다고 제안했다.
두취케는 살아났다. 그의 부인 그레첸(Gretchen)은 악셀 슈프링거의 아들한테서 감동적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신문왕의 상속자는 자기 아버지의 정책과 그 신문들의 귀에 거슬리는 논조를 부끄러워했다.
이때부터 그는 두취케와 정기적으로 서신을 교환한다. 두취케는 암살자가 될 뻔한 사람에게 답장을 쓰면서 독일의 사회주의 학생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애쓴다.

*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이런 논조와 분위기의 기사와 사설들, 때로는 객관적인 사실을 수정·편집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보여주는 형태로, 때로는 번연히 일어났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지사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를, 올바른 실천을 몸소 옮기려는 이들에 대해 공공연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언론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입이 부르트도록 외치던 민족도, 조국도 하루아침에 팽개칠 수 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 말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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