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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혼의 돋보기


 

고대철학 요강(要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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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92회 작성일 10-08-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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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 1 -

   역사에는 다수의 거대문명이 형성되어 번영했거나 사멸해 갔다. 인간이 건설했던 많은 문명 중에 장구한 생존경쟁을 뚫고 살아 남은 문명은 많지 않으며, 또한 역사를 선도했거나 선도할 수 있었던 문명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역사의 전면에 뛰어들 수 없었다. 서구 문명을 낳았던 그리스, 로마 문명은 여타의 다른 문명과는 다른 무엇이 그들의 역사의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이 오늘의 서구 문명, 즉 우리가 참여와 실천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 문명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구 문명에 의해 찬탈된, 혹은 사멸해 가거나 오염되어 가는 우리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비통해 하고 원한과 분노의 감정으로 서구 문명을 증오하기에 앞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 속에 그러한 다른 무엇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탐구해야 하며, 그것을 이해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지닌, 또는 제 3 세계가 지닌 결함에 대해 직시, 또는 내성(內省 : introspection)할 수 있는 것이다.

   거대문명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집약된 사회 노동력이나 정교한 명령전달 체계 및 정치 경제적 체제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그 하드웨어는 그 문명의 생존력을 보증해 주는 장치가 아니라 단지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기질을 표출하는 하나의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사멸해버린 문명을 통해, 혹은 그 문화의 퇴적층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잉카, 마야문명은 그 놀라운 의학적 기술과 천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교한 도시계획 및 현란하고도 완전한 종교적 시스템을 지녔음에도 철저히 파괴되어 송두리째 지질학적 암석 속에 파묻히고 말았으며, 아프리카 평원의 혈흔 속에는 그들이 이룩했던 다채롭고 활기찼던 유적과 추억이 화석화된 채 죽음처럼 잠들어 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문화나 지식의 집적, 또는 산업 및 경제 시스템과 그 운영 기술이 서구 문명에 비해 뒤떨어졌다거나 저열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 다수의 문명이 역사를 뚫고 역사를 선도하는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멸해갔을까? 왜 서구의 문명이 다른 많은 문명을 제치고 압도하여 여타의 문명을 지배하며 - 거의 착취에 가까운 -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명패(名牌)를 걸어둘 수 있었을까? 이러한 물음은 역사학자의 질문이 아니라 제 3 세계의 모든 지식인이 품고 있어야 하는 분노와 원한의 정서이기도 하다.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리고 그 단순한 점 하나로 말미암아 세계사는 그들의 무대가 되었으며, 지상의 거의 모든 가치, 모든 지식, 모든 행위가 그들에게 종속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풍부하고 질 좋은 노동력이나 경제적 번영, 엄청난 지식의 집적도, 고도한 종교 및 창조적인 상상력과 찬란한 문화적 양식 따위는 어느 문명에나 존재했으며, 대개의 문명을 건축했고 담당했던 이들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경이로운 능력과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멸의 역사를 써 내려간 거의 모든 문명은 오늘의 우리가 말하는 철학을 양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철학다운 철학을 생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철학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다만 그 삶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학은 다른 많은 이름으로 불리우기 전에 사회적으로 통용 가능한 언어를 통해 검증 가능한 영역, 또는 입증할 수 있는 논제를 다루는 방식에 의해서만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신비로운, 입증 불가능한 언어에 의해 양산되는 논제는 생존의 지혜이거나 종교적 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원리와 법칙 및 그 근원적 존재에 대한 숙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통용 가능한 언어를 통해 입증 가능한 사실과 현상만을 다루려는 철학적 태도는 그리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전논리적 표상에 압도되어 있는 집단에서 생겨나기 힘든 것이다.


      테마 2 -

  고대철학의 탄생은 기원전 585년 경 밀레토스(Miletos)라는 이오니아 서쪽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 항구에서 여러 가지 성향과 지적 호기심을 모색하고 있던 몇 사람에 의해 태어났다. 그들은 진보적 성향의 사회운동으로서, 또는 당시에 지배적 위치에서 이미 몰락하고 있던 호머의 신(神)들에 대한 반올림프스주의로서 활동하였고 그와 같은 행위는 당시의 지식계층에게 대단한 반향과 미묘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한 사회적으로 통용 가능한 언어를 통하여 입증 가능한 현상 및 사실을 입증 가능한 방식에 의해 설명하려는 노력은 이미 기원전 8 세기경의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神統記)에 의해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 그는 신과 운명에 관한 일반적 표상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올림프스의 신격(神格)에 도덕적 일관성을 적용하였으며, 사물의 본성 속에 있는 일정한 요소와 우주의 도덕적 법칙의 비인간적 작용에 관한 균형을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 우주, 또는 자연이란 하나의 도덕적 질서였으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통제하는 어떤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합목적적인 능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유포시켰다.

  밀레토스의 학자들은 자연과 우주에 관한 전통적인 신화학(神話學)의 해석으로부터 독립된 사유 행위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그들은 "사물이란 실재로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물의 변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용 가능한 언어를 통하여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사회적 운동으로부터 철학(philosophy 지혜를 사랑함)이 생겨났고, 그 철학적 운동에 의해 거의 모든 학문이 체계적인 논리와 이성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사회적 운동은 호머의 신(神)들에 대한 대안(代案)이었던 동시에 그들의 세계와 문명의 새로운 입안(立案)이 되기도 하였다. 비록 세계와 현상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는 그들의 지적 탐구가 고대철학의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하나의 종교적 행위의 일부이거나 그와 결부된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통용 가능한 언어를 통한 입증 가능한 사실과 현상을 다루려는 새로운 경향, 즉 어떤 문제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방식, 즉 논리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방식은 그러나 그러한 기능이 지닌 탁월함 때문에 사회적이며 현실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바에 더욱 유용하였으며 널리 범람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무렵 현실 지향적 가치와 부(富)와 명예에 집착하는 지식인을 규탄하는 도시의 외침이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현명한 인간이라는 신탁(信託)을 받은 바 있는 이 사람은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던 철학적 방향을 부(富)와 명예와 이익과 세속적 목적으로부터, 세속적 향유와 물질주의로부터, 인간 바로 그 자신의 문제로 돌려놓기 위해 최후의 독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올바른 철학, 올바른 행위를 정의하려는 노구(老軀)의 노력이 되었다.

  그러한 소크라테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하다는 말 이외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두 거장은 온 힘을 다해 인간 중심적 세계를 구축하였고, 그러한 사고작용이 파도와 같이 일어나 그리스의 정신세계를 거의 완전하게 압도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추구하였던 인간 중심의 가치, 인간에게 정의가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노력은 거의 필연적으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좌표에 의해 또는 그러한 진행에 따라 스토아 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행복과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로마 철학의 표제를 휩쓸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각과 문화적 풍토 속에 유대의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던 나사렛 예수는 인간 구원의 논제를 최극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생애를 다해 붙잡으려 노력했고, 그와 같은 노력은 이 후의 천년왕국의 모든 가치와 행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모든 삶의 매뉴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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