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4편 그의 현상학과 인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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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923회 작성일 10-08-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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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위계 질서 속에 무기체 및 동식물과 구별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켰다. 그는 물리학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존재하는 사물들 중에 어떤 것은 본성적으로 존재하며, 어떤 것은 다른 원인들로부터 존재한다. 동물들과 동물의 신체 각 부분들은 '본성적으로' 존재한다. 식물들과 단순 물질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질서 속에는 우선 무엇보다도 단순 물질과 식물 및 동물들이 존재한다. 자연 속에서 그들이 갖는 의미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은 본성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 사물들과 다른 특징을 보여 주는데, 그것들 각각은 자신들의 내부에 운동의 원리와 정지의 원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이 내부의 운동은 사물들의 결정적인 측면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운동을 통해 생성 소멸의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 현상학
어떻게 사물들이 자연 세계 내에 존재하게 되는가의 문제에만 관심을 국한시킬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출발점은 "제 1질료"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 형상과 순수 질료가 분리되어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제 1 질료"는 혼자만으로는 어느 곳에도 존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 1 질료"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변화할 수 있고 다른 실체나 사물로 될 수 있으며 새로운 형상들을 가정할 수 있는 사물들 내의 토대였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든 과정들은 한 형상으로부터 다른 형상에로의 끊임없는 질료의 변형을 내포한다. 조각가가 하나의 상(像)을 조각할 때, 대리석이라는 그의 재료는 이미 어떤 형상을 갖고 있으며, 그는 이제 그것을 변형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세계 내에는 어떠한 원질(原質)들이 존재하며, 사물들은 그것들의 "본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는 이를 "단순 물질들", 즉 공기, 불, 흙, 물이라고 칭했다. 만물은 예외 없이 이 물질들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물질들이 서로 결합될 때, 이 새로운 형상들의 발생은 자연 그 자체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이 물질들은 그들 자신의 내부에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불은 상승하여 공기가 되려 하고 물은 떨어져 흙이 되려 하며 고체는 액체로, 습기는 건기로 된다. 그러므로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이 단순 물질들이 내적 운동의 원리나 다른 사물들의 운동에 의해 사물들로 끊임없이 변형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떤 물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오래되고 신기한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본성을 규명함으로써 무기체로부터 유기체로의 전이(轉移)를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물체들은 근본 입자들의 결합이지만 어떤 것은 생명을 가지며 어떤 것은 가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생명이란 "자생과 성장(상대적인 노쇠)"과 닿아 있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질료 그 자체는 생명의 원리와 무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물질적 실체는 단지 잠재적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질료는 항상 가능태이며, 반면 형상은 현실태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육체는 현실태의 근거인 "형상"으로부터 그것의 생명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다. 그 양자 중 하나가 존재하지 않으면, 양자 모두는 존재할 수 없으며, 파악될 수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과연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가 하는 질문을 전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광택과 그 광택을 내는 물체가 하나인가 하는 질문처럼 전혀 의미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영혼은 "육체의 현실태 가운데 제 1 등급"이다. 한 육체가 "생명적 특성을 가지게"될 때 그 육체의 각 부분도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식물에서 "잎은 과피를 보호하며, 과피는 과실을 보호한다. 한편 식물의 뿌리들은 동물의 입과 마찬가지로 양분을 흡수한다." 영혼은 "한 사물을 정의하여 줄 수 있는 법칙이다." 영혼은 하나의 특수한 육체가 존재할 때 존재한다. 즉 "사물은 그 자체 내에, 그 자체를 운동하게 하며 또한 그 자체를 구속하는 힘을 갖는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결합된 형상과 질료이다. 따라서 "이렇게 볼 때 영혼이 육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적으로 귀결된다." 육체가 없으면 영혼도 존재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이것은 눈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그에게 명료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세 가지 형태들을 구분하였는데, 이는 하나의 물체가 생명을 표현할 수 있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방식들을 나타내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식물의 영혼과 동물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이라 불렀다. 그것들은 어떤 물체의 다양한 행동 능력들을 나타낸다. 식물적 영혼은 단순히 살아 있는 행위이다. 동물적 영혼은 살아 있는 것과 감각하는 것을 동시에 포함한다. 인간의 영혼은 살아 있음과 감각과 사유를 모두 포함한다.
감각적인 영혼은 동물의 수준에서 발견된다. 그것의 주요 특성은, "질료"를 통하지 않고 사물들의 성질들과 "형상들"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더 낮은 단계의 식물적 영혼은 이와 대조적으로 단순히 "질료"의 형태를 취하기만 할 뿐 자신의 "형상"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촉각 같은 기초 감관은 모든 물체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어떤 것들을 감지할 수 있다. 다른 감각들의 경우도 "감각의 감관은 각자 관련된 한 가지씩의 대상을 가지며 따라서 무슨 색과 무슨 소리가 존재하는가를 파악할 수는 없어도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데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각적인 영혼은 단지 질료는 알지 못한 채 형상에만 열중한다. 예를 들면, "타고 있는 촛불의 모양은 금이나 쇠 없이도 반지의 모양을 취하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감관도 칠해진 색이나, 풍기는 맛이나, 들리는 소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의 경우에 무엇이 실체인지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에 대한 특수한 해석에 의해 감각적 영혼이 감각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감각 기관들은 다양한 형상들을 감각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감관은 어떠한 성질과 잠재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예를 들면 눈동자에는 푸르게, 혹은 검게 될 수 있는 가능태를 지닌 물질이 포함되며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대상이 감각될 때 그 물질은 실제로 푸르게, 혹은 검게 된다는 것이다. 눈동자의 이러한 중립적 물질은 잠재적으로 모든 색들과 모든 모양들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의 다른 감관들도 다른 성질들과 관련하여 유사한 가능태들을 소유한다. 더욱이 오관은 감각 내용들이 생겨나는 하나의 단일한 대상이나 세계를 반영하면서 그들의 정보를 하나의 결합된 전체로 결합시키는 방식을 갖는다. 물론 오류도 가능하다. 어떤 것이 딱딱해 보이지만 부드럽게 느껴지는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또한 우리가 감각한 성질들은,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더 이상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을 경우에도 계속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현상을 "기억"과 상상의 견지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회상하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는 감각과 기억이 결코 임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실재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재생산해 주는 행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과 상상의 능력으로부터 결국 영혼의 최상의 형식인 인간의 영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2) 인간의 이성(理性)
인간이 영혼은 보다 낮은 형식의 영혼들, 다시 말해 식물적인 영혼과 감각적인 영혼을 결합시키며 이들 영혼 이외에 이성적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석하였다. 이성적 영혼은 과학적 사유의 힘을 갖는다. "이성"은 사물들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분석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사물들간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성적 영혼은 과학적 사유 이외에도 "심사숙고"하는 능력을 갖는다. 여기서 정신은 어떠한 진리가 사물들의 본성에 존재하는가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위한 지침들도 발견한다.
여기서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란 육체를 결정해 주는 형상인 엔텔레키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육체가 없다면 영혼은 존재할 수도, 자신의 기능을 수행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플라톤의 입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그는 육체를 영혼의 무덤이라고 하였다.) 견해임에 틀림없고, 그만큼 날카롭게 대립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육체와 영혼이 함께 하나의 실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식이나 학식을 영혼이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회상의 과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더욱이 플라톤이 개인의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했던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를 밀접히 관련시키면서 육체가 죽으면 그것을 조직하는 원리인 영혼도 함께 소멸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정신은 백지 상태로 출발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감각적 영혼과 마찬가지로 가능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눈은 하나의 빨간 대상을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빨간 대상과 직면할 때에만 그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성적 영혼은 사물의 참된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은 단지 잠재적으로만 그 본성에 대한 지식을 가지므로 그것은 그것의 결론들로부터 추론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사유는 하나의 가능태이지 연속적인 현실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지만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현실적으로" 아는 것과 "잠재적으로" 아는 것 사이의 중간자이다. 진리는 인간의 이성에 결코 연속적으로 현현(顯現)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식의 연속성은 무엇에 의해 암시될 수 있을까? 진리의 연속성을 암시해 주는 것은 세계의 연속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이 소유하는 잠재적 지식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하며 연속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동자(動者)를 세계의 영혼(nous)이며 세계의 지적 원리라고 주장했었다. {De Anima}에서 그는 "능동적 지성"에 관해 언급하면서 "영혼은 한 순간에는 작용하면서 다른 순간에는 작용하지 않는 일이 결코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그는 개인의 지성과 "능동적 지성"을 구분한다. 전자는 간헐적으로 인식하는 지성이며 후자는 개인과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따라서 영원한 지성이다. 만일 이 지성이 순수하게 능동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결코 가능태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능동적 지성은 부동의 동자와 동일하다. 부동의 동자의 판명한 행동은 순수 행위이며, 순수 행위는 전실재에 관한 진리와 완전히 조화된 정신의 활동이다. 만물의 구조로서 간주된 형상들의 전체계는, 세계의 영혼, 부동의 동자, 능동적 지성에 대한 연속적인 지식을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지성이야말로 불변적인다. 따라서 수동적이며 잠재적인 인간의 지성은 어떠한 진리에 대해서 인간적 지성이 인식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능동적 지성을 지닐 뿐이다. 인간이 죽을 때도 죽지 않는 것은 능동적 지성에 속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인간"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인간 개인의 영혼은 그것의 질료인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 순수한 것만이 영원하다. 따라서 가능태와 혼합된 인간의 실체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간결하고 단순한 것이 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이것으로 서양철학사 아리스토텔레스 4편 그의 현상학과 인간의 영혼에 관한 부분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철학과 삶] 게시판의 디자인을 바꾸고 서양철학사와 철학적 논제를 손보면서 왜 이 곳에 내가 애착하는가를 생각하였다. 원래 간단하게 기술할 생각이었던 서양철학사를 보다 깊게 정리하면서 시간이 매우 지체하는 것도 그 애착 가운데 하나의 편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나에게 할당된 시간 가운데 서양철학사에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다룰 생각이다. 제트오디오를 실행시켜놓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예전에 어떤 기억들과 관련된,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CCR의 I put a spell on you이라는 음악도 그 중 하나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서양철학사는 [철학과 삶]의 주요 부분이 될 것이고, 그만큼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참여하는 가운데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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