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 (Democritos B.C 460 - 360) > 철학 영혼의 돋보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철학 영혼의 돋보기


 

데모크리토스 (Democritos B.C 460 - 360)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320회 작성일 10-08-03 15:16

본문

최초로 원자론을 입안하고 숭배한 자들

현대에 들어오면서 가장 획기적으로 부활한 고대의 학문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고대 원자론으로 19세기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도입되어 완벽하게 부활한 놀라운 이론이 되었다. 이 이론은 레우키포스(Leucippos B.C 440년경)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던 사물의 본성에 관한 하나의 이론이었다. 이 이론의 특성은 엠페도클레스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이루고 있는 재료를 찾아내어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원자와 허공(void)이라는 두 가지 실재물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파르메니데스가 가상적으로 상정했던 비존재(非存在)에 해당하는 진공의 존재를 믿었다는 점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여러 종류의 크기와 모양을 갖고 각 물질은 특성적인 원자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원자의 운동은 무질서한 것이었으나 원자들간의 어떤 특정 조합은 거의 언제나 다른 조합보다 우세하게 일어나야 하는 세계였다. 오늘날의 여러 과학적 견해와 놀랄 만큼 유사한 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이론은 그들에게 주어졌던 탈레스적, 자연과학적 질문에 대응하는 최종의 유물론적 해답이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그들의 원자론은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들의 이론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제시한 철학적 폭풍과 소용돌이가 너무나 거대한 것이었다.

   원자론의 철학은 엘레아 학파의 공간부정론(空間否定論)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계획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란 어느 곳에든 있기 때문에 많은 독립된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모든 경우에나 유일자만이 전실재(全實在)였다. 특히 그는 비존재 혹은 빈 공간의 존재성을 부정하였으나, 운동과 변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빈 공간이 존재함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빈 공간은 무(無)와 같은 것이었다.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간이 전실재의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물들에게 분리된 존재의 영역들을 만들어 주는 사물들간의 비존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유일자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이 운동이나 변화의 존재 불가능성을 증명했다고 믿었다. 레우키포스가 그의 새로운 이론을 내세운 것은 우선 엘레아 학파의 공간부정론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우키포스는 공간의 실재(實在)를 인정했고, 공간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일관성 있는 운동 및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존재의 밀집과 희박을 충분히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파르메니데스의 공간의 개념을 복잡하게 했던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따라서 공간 역시 존재한다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반면에 레우키포스의 공간은 어떤 경우에는 빌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찰 수도 있는 저장고와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간을 물질적이라고 가정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일종의 저장고로서의 빈 공간은 사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장소일 수 있었고, 레우키포스에게는 이러한 공간의 특성을 부정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공간의 개념이 없었다면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이론, 즉 만물은 원자들로 구성된다는 그들의 철학은 결코 발화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인정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사물의 본질은 수많은 입자들, 즉 원자(原子)라고 불리우는 단위들로 구성된다. 이들이 모든 원자들에 부여한 특성은, 파르메니데스가 유일자에게 부과했던 특성, 즉 불멸성과 영원성이었다. 파르메니데스가 실재(實在)는 유일자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원자론자들은 이제 무한히 많은 원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각각의 원자들은 충만해 있고, 빈 공간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견실하고 분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 원자들은 공간상에 존재하며 모양과 크기에 있어서도 서로 다르다. 또한 그것들은 매우 작기 때문에 볼 수 없고, 영원하기 때문에 결코 창조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은 단지 두 가지로 구성된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 즉 진공(眞空)으로서의 공간과 원자이다. 원자들은 공간상에서 운동하며, 그 운동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원자론자들은 공간상의 원자들의 운동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원자들의 운동의 기원은 먼지 알갱이들의 운동과 유사한 것으로서, 이들은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이 없을 때조차도 태양 광선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나아간다. 데모크리토스는 절대적인 "상향(上向)"이나 "하향(下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원자들에게 무게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은 원자들의 운동에서 그것들의 기원을 갖는다. 공간상에서 운동하는 원자들은 본래 단일한 개별 단위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것들이 서로 엉키게 되는 경우에 밀집군들, 혹은 아낙사고라스가 말했던 "소용돌이들"을 형성하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이 점에서 원자론자들은, 만물은 수(數)라고 말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와 닮았다. 수와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결합될 수 있는 단위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원자론자들에게 있어 사물이란 단지 다양한 종류의 원자들의 결합이었다. 그러므로 수학적 도형들과 물질의 모양은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이 태초부터 원자들은 공간상에 존재했다. 그러나 각각의 원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유일자처럼 소멸되지 않으면서 계속적인 운동을 한다.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가 말했던 재료들, 즉 물, 불, 공기, 흙은 원자론자들에게는 단지 불변적인 원자들의 밀집군들, 즉 근원적으로는 단일한 원자들의 운동의 산물에 불과했다. 이 네 원소들은 다른 모든 사물들의 근원적 "뿌리들"이 아니라 원자라는 절대적인 근원적 재료의 산물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사물의 본질에 관한 기계론적인 사고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 만물은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원자들의 결합의 산물이었다. 그의 이론에는 "목적"이나 "계획"의 요소들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모든 실재를 원자로 환원시키는 그들의 유물론적 태도는 창조자나 계획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원자들의 기원이나 원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는 신(神)에 대해서조차도 항상 제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영원한 존재를 물질적 원자들에 귀속시킨 것이 적어도 다른 해결보다 적극적이며 만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또 다른 문제, 즉 가치와 윤리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매우 곤란한 경험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만일 전실재(全實在)가 기계적으로 상호 결합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결정해 줄 수 있는 어떤 관점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개인의 활동은 다른 사물들의 운동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행위 자체도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기계론적 견해를 얼마간 이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인간의 행위와 참여를 위한 일련의 고상한 규율들을 권고하여 만물 내의 중용을 생의 최고의 목적, 즉 환희의 상태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설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의 이러한 미묘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 원자론은 대단히 심오한 것이었으므로 비록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오랫동안 망각되었을지라도 다시 주목받지 않을 수 없었고, 중세 이후의 과학에 유용한 모형을 제시해 주었다. 뉴턴(sir. Newton 1642 - 1727)이 유명한 프린키피아(Principia)를 저술했을 때, 그가 비록 독실한 신심을 지니고 있었을지라도 그는 원자론자의 견지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성과 혜성, 달과 바다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우리가 자연의 나머지 현상들을 똑같이 기계적 원리들로부터의 추론을 통해 규명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나는 여러 이유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탐구했다. 즉, 그 원리들은 모두 어떤 힘들에 의존하며 아직도 몇몇 원인들은 규명되지 못하였지만, 이 힘들에 의해 물체들의 입자들은 서로 잡아당겨서 규칙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거나, 서로 밀어내서 움츠러든다." 비록 그는 신(神)이 사물을 작동시킨다고 가정했지만, 그의 자연에 대한 물리학적 분석은 공간상에 움직이는 질료의 기계론적 원리들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정립하였던 원자론은 길고도 험난한 역사를 살아온 역전의 이론이었던 셈이며, 최후의 승리를 위해 비장하게 간직된 비수와 같은 것이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거대한 형이상학에 의해 사멸하였으나 자연에 대한 하나의 견해로서의 운동 중인 물체의 이론으로 16세기에 재생되어, 현대의 양자론(量子論)으로 이어지는 강력하고 세련된 이론으로 각광받는 이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또한 지식의 문제와 인간 행위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사유(思惟)도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원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며 그 지각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하나는 감각지(感覺知)요, 다른 하나는 이성지(理性知)였다. 이 양자는 모두 물질적 현상이면서 눈(目)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그 어떤 사물이나 현상은 그 물체의 원자들의 "영향" 혹은 발산인 것으로서, 이것이 하나의 "상(像)"을 형성한다. 이 원자의 상들은 우리의 감각 기관에 들어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두뇌와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인간의 감각들이 대체로 믿을 만하다고 했던 데 반해, 데모크리토스는 우리가 그것이 존재한다고 지각하는 것 자체를 우리가 실재적으로 지각하는 모든 것이라는 명제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적자(嫡子)의 지식과 서자(庶子)의 지식이라는 두 종류의 지식이 존재하는데, 후자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한 것이며 전자는 이 감각 기관들과 별도로 존재한다."

  자연의 물리적 질서를 탐구 대상으로 삼았던 고대 철학의 초기의 열기는 윤리적, 사회적 관심으로 그 열정을 넘겨주면서 급격한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전환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원자론의 이론은 인간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던 자연철학의 마지막 무대를 데모크리토스라는 인물에게 맡겼던 것이다. 2000년 동안 공연을 중단해야 하는 제작자와 배우의 깊은 휴식을 위하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