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제대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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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11-05-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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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요.”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달인’에 나온 유행어 중 하나다. 짤막한 말이지만 그 말이 바로 정답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학식이 깊더라도 직접 경험해본 사람과 견줄 경우 그에 못 미치게 마련인 것. 가족치료전문가인 이화자 소장의 말이 설득력 있고 마음에 와 닿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혼한 지 33년째인 그녀 또한 시어머니, 남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다. 결혼할 당시 그녀가 남편(아하가족성장연구소 김온양 대표)보다 모든 조건이 우위에 있었다고 한다. 김온양 대표의 집안은 원래 학교 재단 이사장, 언론사 사장, 국회의원 출마 등을 지낸 명망가였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세가 기운 상태였던 것.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시집올 생각을 했니’라면서 시어머니는 저를 신데렐라 맞이하듯 하셨어요. 그런데 딱 2년 가더라고요. 당시 제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집안 경제를 책임졌는데, 고맙게 여기시면서도 아들이 저한테 치인다는 생각이 드셨나봐요.”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안방에 펴놓은 이부자리에 들어가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어떤 부모는 버릇없이 어른이 눕기도 전에 잠자리를 흐트러놓았다고 꾸중하고 또 어떤 부모는 추울까봐 미리 자리 데워놓았다며 칭찬해주듯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서로 상반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이화자 소장이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시어머니에게는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유약성이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듯하면서도 시어머니 앞에서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고 어느 한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는데, 저는 심신이 힘들 때마다 남편을 원망했어요. 이후 분가를 하고, 남편 사업이 번창하면서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죠. 실상은 시어머니와 저는 체면에 걸려 서로 착한 시어머니 착한 며느리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것에 불과했어요. 남편 사업을 도우며 늘 함께 다녀서 주위에서 ‘본드 부부’라고 불렀지만 우리 부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집에 오면 어느 한 쪽에서 늘 다투고 있더라고요.”
내 인생은 내가 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정에 충실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남편에 대한 막연한 원망이 있었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 불거지게 마련. 결혼한 지 12년 만에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녀에게 우울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그녀를 보고 남편은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제안했다. 미리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그 지역에서 최고급 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에게는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규모 없이 돈을 쓰는 남편으로 밖에 안 비쳤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이다. 이화자 소장은 현실적이고, 감정을 감추지 않는 솔직한 성격인 반면 글쓰기를 즐기고, 클래식 음악에 해박한 김온양 대표는 감성적이며 생각을 모두 말로 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런 그가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서울 도착 2시간여 전에, 푸른 상공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이혼 요구를 20번 가까이 한 것 아느냐? 지금도 이혼을 원한다면 서울 도착해서 그렇게 해도 좋다. 결혼 10년 넘게 당신을 관찰해보니 당신은 남편 30점, 자신 70점을 주면서 살더라.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내가 70점이고 당신이 30점이라고 말이다. 당신이 배우지 못한 나를, 가난한 나를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당신한테 무시받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부부 상담 치료를 받게 되었고 영국 런던 바이블 칼리지 부부센터로 유학을 다녀온 뒤 가족성장연구소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가 그녀에게 “부부는 거의 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이러하다. 이혼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고, 어떤 부부든 결혼 후 6년이 지나면 정서적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불화나 갈등이라는 것은 관계학상에서의 질병과 같아서 신체적으로 감기에 걸리고 위궤양이 생기면 병원에 가듯이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단,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금물. 주관적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 판단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리모델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무엇보다 그 시기가 중요하다. 헐거워진 수도관 나사를 곧바로 조이면 간단하게 수습이 되지만 방치했다가는 수도관이 터져서 바닥 공사까지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후에 치료를 하면 그만큼 관계 회복을 하기 어렵다. “원만한 가정을 만들려면 피해 의식을 갖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주도권을 가진 채 한 공간에서 각각 코칭센터 대표와 가족연구소 대표로 일하며 따로 또 같이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시집올 생각을 했니’라면서 시어머니는 저를 신데렐라 맞이하듯 하셨어요. 그런데 딱 2년 가더라고요. 당시 제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집안 경제를 책임졌는데, 고맙게 여기시면서도 아들이 저한테 치인다는 생각이 드셨나봐요.”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안방에 펴놓은 이부자리에 들어가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어떤 부모는 버릇없이 어른이 눕기도 전에 잠자리를 흐트러놓았다고 꾸중하고 또 어떤 부모는 추울까봐 미리 자리 데워놓았다며 칭찬해주듯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서로 상반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이화자 소장이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시어머니에게는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유약성이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듯하면서도 시어머니 앞에서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고 어느 한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는데, 저는 심신이 힘들 때마다 남편을 원망했어요. 이후 분가를 하고, 남편 사업이 번창하면서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죠. 실상은 시어머니와 저는 체면에 걸려 서로 착한 시어머니 착한 며느리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것에 불과했어요. 남편 사업을 도우며 늘 함께 다녀서 주위에서 ‘본드 부부’라고 불렀지만 우리 부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집에 오면 어느 한 쪽에서 늘 다투고 있더라고요.”
내 인생은 내가 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정에 충실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남편에 대한 막연한 원망이 있었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젠가 불거지게 마련. 결혼한 지 12년 만에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녀에게 우울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그녀를 보고 남편은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제안했다. 미리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그 지역에서 최고급 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에게는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규모 없이 돈을 쓰는 남편으로 밖에 안 비쳤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이다. 이화자 소장은 현실적이고, 감정을 감추지 않는 솔직한 성격인 반면 글쓰기를 즐기고, 클래식 음악에 해박한 김온양 대표는 감성적이며 생각을 모두 말로 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런 그가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서울 도착 2시간여 전에, 푸른 상공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이혼 요구를 20번 가까이 한 것 아느냐? 지금도 이혼을 원한다면 서울 도착해서 그렇게 해도 좋다. 결혼 10년 넘게 당신을 관찰해보니 당신은 남편 30점, 자신 70점을 주면서 살더라.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내가 70점이고 당신이 30점이라고 말이다. 당신이 배우지 못한 나를, 가난한 나를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당신한테 무시받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함께 부부 상담 치료를 받게 되었고 영국 런던 바이블 칼리지 부부센터로 유학을 다녀온 뒤 가족성장연구소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가 그녀에게 “부부는 거의 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이러하다. 이혼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고, 어떤 부부든 결혼 후 6년이 지나면 정서적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불화나 갈등이라는 것은 관계학상에서의 질병과 같아서 신체적으로 감기에 걸리고 위궤양이 생기면 병원에 가듯이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단,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금물. 주관적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 판단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리모델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무엇보다 그 시기가 중요하다. 헐거워진 수도관 나사를 곧바로 조이면 간단하게 수습이 되지만 방치했다가는 수도관이 터져서 바닥 공사까지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후에 치료를 하면 그만큼 관계 회복을 하기 어렵다. “원만한 가정을 만들려면 피해 의식을 갖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주도권을 가진 채 한 공간에서 각각 코칭센터 대표와 가족연구소 대표로 일하며 따로 또 같이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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