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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100일간 '관세음보살'을 100만 번 외는 정진을 시작한 부산 삼광사 불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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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남인도에 '장나'라는 장자에게 조리와 속리라는 두 아이가 있었다. 두 아이는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에 의해 무인도에 버려졌다. 이들은 슬픔과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굶주린 채 숨을 거두게 된다. 숨지기 직전 동생은 어린 나이에 죽게 되는 기막힌 운명을 한탄한다. 말 없이 듣고 있던 형이 부드러운 말로 아우를 위로한다. "속리야, 이제 우리는 목숨이 다 된 것 같다. 살려 해도 살 수 없는 우리 신세가 가련하구나.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와 같은 신세를 가진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부모 형제를 잃고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사람, 벗이 그리워 애통해 하는 사람, 풍랑에 휩싸여 고생하는 사람, 부처님을 만나지 못해 해탈을 얻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알맞은 몸을 나누어서 구제해주도록 하자." 두 형제는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찢어진 옷에 자신들의 서원을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죽는다.
'관음본원경'에 담긴 관세음보살의 전생 이야기다. 형이 관세음보살이 되고 동생은 대세지보살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관세음보살은 누구보다 고통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손과 눈이 1000개다. 중생들의 고통을 두루 살피고 어루만져주기 위해서다.
바로 이 관세음보살을 주인공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담고 있는 경전이 천수경(千手經)이다. 천수경의 본래 이름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이다. 우리나라 불자라면 거의 모든 이들이 외울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는 경이다. 현재 모든 법회나 의식에서 일상적으로 독송되는 천수경은 외우기 좋도록 재구성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에 있는 원래의 천수경은 그 양이 훨씬 많다. 본래의 천수경에서 관세음보살이 모든 존재에게 안락과 평안을 주기 위해 설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의식을 행할 때 독송하기에 적합하도록 귀의 찬탄 참회 발원 등의 내용을 담아 재구성하고 재편집한 것이다.
천수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묘장구대다리니'는 진언이라고 하는데 진언은 고통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암호와도 같은 것이다. 암호는 해독이 어렵다. 흔히 번역을 하지 않고 독송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암호는 암호를 알고 있는 이들끼리는 아무런 설명 없이 통하듯 고통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는 틀림없는 효력이 있기 마련이다. 천수경을 외움으로써 생기는 효능에 대한 믿음은 천수경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상적으로 독송되는 경으로 자리 잡게 했다. 부처님은 삶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인간사이고 보면,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고해에서 빠져나오길 염원하는 천수경이 널리 독경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를 일이다.
천수경이 유독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결국 시대가 바라는 종교의 역할과 마주친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종교는 그 행복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서 힘든 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주려는 관세음보살의 자심(慈心)과 고통을 함께 공감하며, 그 고통을 없애주려는 관세음보살의 비심(悲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성이요, 실천윤리다. 즉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를 통하여 바람직한 삶을 제시해 주는 경전이다. 결국 천수경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가진 단 두 개의 손 중 하나라도 내밀어 다른 이의 고통을 어루만질 때 완성된다.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심장처럼 뛰고 있는 천수경이 이 땅, 이 시대에 더욱 소중한 이유다.
정해학당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