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욕망을 따라도 괴로움이고 욕망을 끊어도 괴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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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738회 작성일 11-11-08 14:50
본문
眞空不空執相非眞 破相亦非眞
진공불공집상비진 파상역비진
問世尊如何發付 在世出世
문세존여하발부 재세출세
徇欲是苦 節欲亦是苦 廳吾?善自修持
순욕시고 절욕역시고 청오제선자수지
진공불공집상비진 파상역비진
問世尊如何發付 在世出世
문세존여하발부 재세출세
徇欲是苦 節欲亦是苦 廳吾?善自修持
순욕시고 절욕역시고 청오제선자수지
(역문)
‘진공(眞空)’은 공이 아니니, 모습에 집착하는 것도 참이 아니고 모습을 타파하는 것도 참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세간에 처하든 출세간에 처하든 욕망을 따르는 것도 괴로움이고 욕망을 끊는 것도 괴로움이다”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서 스스로 닦으리라.
‘진공(眞空)’은 공이 아니니, 모습에 집착하는 것도 참이 아니고 모습을 타파하는 것도 참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세간에 처하든 출세간에 처하든 욕망을 따르는 것도 괴로움이고 욕망을 끊는 것도 괴로움이다”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뜻을 받들어서 스스로 닦으리라.
(도해)
여기서는 잠시 불교의 도리는 제쳐놓고 도가의 출세간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장자』「천하편」에서는 장자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황홀하고 적막하여 형체가 없고, 사물에 따라 변화함으로써 일정함이 없다. 그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명하지 않고, 천지와 함께하는지 혹은 신명과 함께 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득하여 어디든 가고 황홀하여 어디든 적합하며, 만물은 온통 망라하면서도 귀착하는 것이 없다.
고대의 도술(道術)에도 이런 면이 있었기에 장자는 이 사실을 알고 기뻐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말, 황당한 말, 밑도 끝도 없는 말로써 이것들에 대해 언급했다. 때때로 제멋대로 하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융통성 없으면서도 자기 주장만 고집하지 않는다. 천하가 몽땅 침체에 빠져 혼탁하기 때문에 올바른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치언(?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으로 변화에 순응하고, 중언(重言, 사람들이 존중하는 옛 말)으로 진리를 삼았으며, 우언(寓言, 다른 것을 빌어서 비유하는 말)으로 자신의 생각을 폈다. 그래서 홀로 천지의 정신과 왕래하면서도 만물에 대해 오만하지 않으며, 시비를 가려서 꾸짖기보다는 세속의 처소에 따라 함께하였다.
그의 글은 특이하긴 하지만 융통성이 있어서 남의 마음을 해치지 않으며, 그의 말은 들쭉날쭉하지만 익살맞고 괴상하여 볼 만했다. 그 이유는 자기 속이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로는 조물주와 함께 노닐며, 아래로는 생사(生死)를 벗어나고 시종(始終)을 모르는 자와 벗을 했다.
그는 근본인 도에 대해서는 드넓게 확 트였고 깊숙이 들어가서 뻗어 나갔으며, 도의 종지(宗旨)에 관해서는 그에 어울리고 접합하여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지의 변화에 응해서 사물을 해석할 때는 그의 이치가 고갈되지 않았고, 말을 대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글은 깊고 아득했으므로 능히 다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잠시 불교의 도리는 제쳐놓고 도가의 출세간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장자』「천하편」에서는 장자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황홀하고 적막하여 형체가 없고, 사물에 따라 변화함으로써 일정함이 없다. 그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명하지 않고, 천지와 함께하는지 혹은 신명과 함께 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득하여 어디든 가고 황홀하여 어디든 적합하며, 만물은 온통 망라하면서도 귀착하는 것이 없다.
고대의 도술(道術)에도 이런 면이 있었기에 장자는 이 사실을 알고 기뻐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말, 황당한 말, 밑도 끝도 없는 말로써 이것들에 대해 언급했다. 때때로 제멋대로 하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융통성 없으면서도 자기 주장만 고집하지 않는다. 천하가 몽땅 침체에 빠져 혼탁하기 때문에 올바른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치언(?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으로 변화에 순응하고, 중언(重言, 사람들이 존중하는 옛 말)으로 진리를 삼았으며, 우언(寓言, 다른 것을 빌어서 비유하는 말)으로 자신의 생각을 폈다. 그래서 홀로 천지의 정신과 왕래하면서도 만물에 대해 오만하지 않으며, 시비를 가려서 꾸짖기보다는 세속의 처소에 따라 함께하였다.
그의 글은 특이하긴 하지만 융통성이 있어서 남의 마음을 해치지 않으며, 그의 말은 들쭉날쭉하지만 익살맞고 괴상하여 볼 만했다. 그 이유는 자기 속이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로는 조물주와 함께 노닐며, 아래로는 생사(生死)를 벗어나고 시종(始終)을 모르는 자와 벗을 했다.
그는 근본인 도에 대해서는 드넓게 확 트였고 깊숙이 들어가서 뻗어 나갔으며, 도의 종지(宗旨)에 관해서는 그에 어울리고 접합하여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지의 변화에 응해서 사물을 해석할 때는 그의 이치가 고갈되지 않았고, 말을 대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글은 깊고 아득했으므로 능히 다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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