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자연이란 책을 읽고 자연이란 거문고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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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865회 작성일 11-11-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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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解讀有字書 不解讀無字書
인해독유자서 불해독무자서
知彈有鉉琴 不知彈無鉉琴
지탄유현금 부지탄무현금
以跡用 不以神用 何以得琴書之趣
이적용 불이신용 하이득금서지취
인해독유자서 불해독무자서
知彈有鉉琴 不知彈無鉉琴
지탄유현금 부지탄무현금
以跡用 不以神用 何以得琴書之趣
이적용 불이신용 하이득금서지취
사람들은 모두 글자 있는 책은 해독할 줄 알아도 글자 없는 책은 해독하지 못하며, 줄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아도 줄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자취만 갖고 쓸 뿐이지 신(神)을 쓸 줄 모르니, 어떻게 금서(琴書)의 참맛을 얻겠는가.
세속의 사람들은 모두 유(有), 즉 실재의 그림자인 자취를 이용하는 데는 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참다운 정신은 알지 못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데, 이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무(無)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글자 있는 책이 아니라 글자 없는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줄 있는 거문고가 아니라 줄 없는 거문고를 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 무를 이용하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제11장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바퀴 통에 30개의 바퀴살이 둥글게 꽂혀 있지만, 그 바퀴 통 한복판의 비어 있는 무에 의해서 수레가 굴러간다.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의 비어 있는 무(無)에 그 그릇의 쓰임새가 있다. 문이나 창을 내서 방을 만들지만, 그 방의 비어 있는 공간(無)에 방의 쓰임새가 있다.
그러므로 ‘유의 유익함’이란 ‘무의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속의 사람들은 모두 유(有), 즉 실재의 그림자인 자취를 이용하는 데는 능하다. 그러나 그들은 참다운 정신은 알지 못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데, 이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무(無)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글자 있는 책이 아니라 글자 없는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줄 있는 거문고가 아니라 줄 없는 거문고를 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 무를 이용하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제11장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바퀴 통에 30개의 바퀴살이 둥글게 꽂혀 있지만, 그 바퀴 통 한복판의 비어 있는 무에 의해서 수레가 굴러간다.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의 비어 있는 무(無)에 그 그릇의 쓰임새가 있다. 문이나 창을 내서 방을 만들지만, 그 방의 비어 있는 공간(無)에 방의 쓰임새가 있다.
그러므로 ‘유의 유익함’이란 ‘무의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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