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천도(天道)는 완벽할 것을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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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837회 작성일 11-11-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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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事留個有餘不盡的意思
사사류개유여부진적의사
便造物不能忌我 鬼神不能損我
편조물불능기아 귀신불능손아
若業必求滿功必求盈者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不生內變 必召外憂
불생내변 필소외우
사사류개유여부진적의사
便造物不能忌我 鬼神不能損我
편조물불능기아 귀신불능손아
若業必求滿功必求盈者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不生內變 必召外憂
불생내변 필소외우
어느 일에서나 여지(餘地)를 남겨두면 조물주도 나를 미워하지 못할 것이고, 귀신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일에서도 반드시 충만하길 구하고 공로에서도 반드시 가득 차길 구할 경우에는, 안에서 변란(變亂)이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밖에서 우환을 초래한다.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도가사상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도가에서는 허(虛)를 근본으로 삼는데, 가장 큰 것과 작은 것의 경계선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장자는 하박과 북해약의 대화를 빌어서 이러한 사상을 펼치고 있다.
하백이 말했다.
“세상사람들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것은 형체를 찾을 수 없고, 지극히 큰 것은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 말은 진실되고 믿을만한 것입니까?”
북해약이 대답했다.
“무릇 작은 것의 관점에서 큰 것을 보면 전체를 다 볼 수 없고, 또 큰 것의 관점에서 작은 것을 보면 분명하지가 않다. 지극히 작다고 하는 것은 작은 것 중에서도 작은 것이며, 지극히 크다고 하는 것은 큰 것 중에서도 큰 것이다. 따라서 지극히 크다고 하거나 지극히 작다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뿐이니, 이는 형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릇 작다고 하거나 크다고 하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이니, 정말로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만물 중에서 큰 것이고, 뜻이 닿을 수 있는 것은 만물 중에서 지극히 작은 것인데,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뜻으로도 살필 수 없는 것은 지극히 작다거나 지극히 크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인(大人)의 행위는 남을 해치는 짓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덕과 은혜를 쌓지도 않으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문지기나 노예를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재물을 다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양보하는 것을 덕목으로 생각지 않으며, 일을 할 때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을 높게 치지도 않고 탐욕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행위는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괴벽하고 기이한 것을 높게 여기지도 않으며, 자신의 행동은 대중을 따르지만 그렇다고 아첨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세간의 벼슬이나 녹(祿)으로는 그를 고무할 수 없고, 형벌이나 모욕으로도 그를 욕되게 할 수 없다.이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고, 작고 큰 것은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니,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출세할 것을 바라지 않고, 덕이 지극히 높은 사람은 득실을 따지지 않으며, 대인은 자기가 없다’ 이 말이야말로 자기 본분을 지키는 것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하박과 북해약의 대화를 빌어서 이러한 사상을 펼치고 있다.
하백이 말했다.
“세상사람들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것은 형체를 찾을 수 없고, 지극히 큰 것은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 말은 진실되고 믿을만한 것입니까?”
북해약이 대답했다.
“무릇 작은 것의 관점에서 큰 것을 보면 전체를 다 볼 수 없고, 또 큰 것의 관점에서 작은 것을 보면 분명하지가 않다. 지극히 작다고 하는 것은 작은 것 중에서도 작은 것이며, 지극히 크다고 하는 것은 큰 것 중에서도 큰 것이다. 따라서 지극히 크다고 하거나 지극히 작다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뿐이니, 이는 형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릇 작다고 하거나 크다고 하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이니, 정말로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만물 중에서 큰 것이고, 뜻이 닿을 수 있는 것은 만물 중에서 지극히 작은 것인데,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뜻으로도 살필 수 없는 것은 지극히 작다거나 지극히 크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인(大人)의 행위는 남을 해치는 짓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덕과 은혜를 쌓지도 않으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문지기나 노예를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재물을 다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양보하는 것을 덕목으로 생각지 않으며, 일을 할 때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을 높게 치지도 않고 탐욕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행위는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괴벽하고 기이한 것을 높게 여기지도 않으며, 자신의 행동은 대중을 따르지만 그렇다고 아첨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세간의 벼슬이나 녹(祿)으로는 그를 고무할 수 없고, 형벌이나 모욕으로도 그를 욕되게 할 수 없다.이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고, 작고 큰 것은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니, 나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출세할 것을 바라지 않고, 덕이 지극히 높은 사람은 득실을 따지지 않으며, 대인은 자기가 없다’ 이 말이야말로 자기 본분을 지키는 것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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