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어찌하여 자기 성품에 스스로 합하는 것은 생각지 않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643회 작성일 11-11-08 21:15
본문
峨冠大帶之士 一旦睹輕蓑小笠瓢瓢然逸也
아관대대지사 일단도경사소립표표연일야
未必不動基咨蹉 長筵廣席之豪
미필부동기자차 장연광석지호
一旦遇疎簾淨?悠悠焉靜也
일단우소렴정궤유유정야
未必不增其?戀 人奈何驅以火牛
미필부증기권련 인내하구이화우
誘以風馬 而不思自適其性哉
유이풍마 이불사자적기성재
아관대대지사 일단도경사소립표표연일야
未必不動基咨蹉 長筵廣席之豪
미필부동기자차 장연광석지호
一旦遇疎簾淨?悠悠焉靜也
일단우소렴정궤유유정야
未必不增其?戀 人奈何驅以火牛
미필부증기권련 인내하구이화우
誘以風馬 而不思自適其性哉
유이풍마 이불사자적기성재
높은 관(冠)을 쓰고 넓은 띠(帶대)를 두른 선비라도 일단 가벼운 도롱이와 작은 삿갓의 표연한 한적함을 보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고, 넓은 자리를 깔고 앉은 부호라도 일단 성긴 주렴과 깨끗한 책상의 유유자적한 고요함을 만나면 연모의 정(情)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화우(火牛, 전국시대에 제나라 장수 전단이 쇠꼬리에 불을 붙여 연나라 군대를 공격한 데서 비롯 됨)로써 쫓고 풍마(風馬, 암내내는 말)로써 유혹할 줄만 알지, 그 성품에 스스로 합하는 것은 생각지 않는가?
사람들은 어찌하여 화우(火牛, 전국시대에 제나라 장수 전단이 쇠꼬리에 불을 붙여 연나라 군대를 공격한 데서 비롯 됨)로써 쫓고 풍마(風馬, 암내내는 말)로써 유혹할 줄만 알지, 그 성품에 스스로 합하는 것은 생각지 않는가?
도를 따르고 덕을 갖춘 사람은 본성에 맞게 생활하기 때문에 초라한 방에서도 향기가 난다. 『장자』「선성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본래 도는 인의(仁義) 같은 사소한 행실이 아니며, 덕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자그마한 지식이 아니다. 자그마한 지식은 덕을 해치고 사소한 행실은 도를 해치니, 이 때문에 ‘자기를 바로잡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스스로의 온전함을 즐기는 것, 즉 ‘뜻을 얻었다’고 일컫는 것이다. ‘뜻을 얻었다’는 말은 원래 벼슬을 하거나 출세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본래의 즐거움에서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은 벼슬이나 출세를 가리키는 것이니, 벼슬이나 출세가 우리 몸에 있는 것은 자연 그대로의 성명(性命)이 아니라 외적인 사물(벼슬이나 출세 같은 것이 우리 몸에 찾아와 붙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붙어 있는 것은 찾아와도 거절할 수 없고 떠나가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 벼슬이나 출세를 했다고 방종하지 않았고, 곤궁에 처했다고 세속을 따르지도 않았다. 그가 누리는 자연의 즐거움은 벼슬을 하든 곤궁에 처하든 마찬가지였으니, 다만 근심이 없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기 몸에 붙어 있던 영화로움이 떠나가면 즐거워하지 않으니, 이런 것으로 미루어보아 영화를 누릴 때도 그의 마음은 항상 거친 상태였으리라. 그래서 옛말에 ‘외부 사물에 끄달려서 자기를 상실하고, 세속에 휘둘려서 천성을 잃는 사람을 가리켜 본말이 전도된 사람이라 한다’고 한 것이다.
본래 도는 인의(仁義) 같은 사소한 행실이 아니며, 덕은 시시비비를 따지는 자그마한 지식이 아니다. 자그마한 지식은 덕을 해치고 사소한 행실은 도를 해치니, 이 때문에 ‘자기를 바로잡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스스로의 온전함을 즐기는 것, 즉 ‘뜻을 얻었다’고 일컫는 것이다. ‘뜻을 얻었다’는 말은 원래 벼슬을 하거나 출세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본래의 즐거움에서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은 벼슬이나 출세를 가리키는 것이니, 벼슬이나 출세가 우리 몸에 있는 것은 자연 그대로의 성명(性命)이 아니라 외적인 사물(벼슬이나 출세 같은 것이 우리 몸에 찾아와 붙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붙어 있는 것은 찾아와도 거절할 수 없고 떠나가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 벼슬이나 출세를 했다고 방종하지 않았고, 곤궁에 처했다고 세속을 따르지도 않았다. 그가 누리는 자연의 즐거움은 벼슬을 하든 곤궁에 처하든 마찬가지였으니, 다만 근심이 없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기 몸에 붙어 있던 영화로움이 떠나가면 즐거워하지 않으니, 이런 것으로 미루어보아 영화를 누릴 때도 그의 마음은 항상 거친 상태였으리라. 그래서 옛말에 ‘외부 사물에 끄달려서 자기를 상실하고, 세속에 휘둘려서 천성을 잃는 사람을 가리켜 본말이 전도된 사람이라 한다’고 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