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새가 노래하고 꽃이 피는 것이 實相(실상)의 드러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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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2,742회 작성일 11-11-0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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髮落齒疎(발락치소) 任幻形之彫謝(임환형지조사) 鳥吟花笑(조음화소) 識自性之眞如(식자성지진여)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아가 듬성듬성해지니 이는 허깨비 같은 형체를 시듦과 쇠퇴함에 맡긴 것이며, 새가 노래하고 꽃이 웃으니 이는 자기 성품의 진여(眞如)를 알아챈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죽으니, 이는 세상 만물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의 모습 자체가, 즉 새가 노래하고 꽃이 피는 것이 그대로 불변의 실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도 없다. 대립되는 이 면과 저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립되는 이 면에서만 보면 저 면을 볼 수 없으므로, 대립되는 저 면에서도 봐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정확해진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생겨나고, 이것은 저것에서 비롯된다’ 고 말하는 것이다. 사물의 두가지 면인 이것과 저것은 함께 생기며 서로 의존한다.
생(生)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생이 있는 것이다. 또 ‘돤다’가 있으면 ‘ 안 된다’가 있고, ‘안 된다’가 있으면 ‘된다’가 있다. ‘옳다’에 의거하면 ‘옳지 않다’에 의거하는 것이고, ‘옳지 않다’에 의거하면 ‘옳다’에 의거하는 것이다. 금방 긍정했다면 곧 부정하는 것이고, 금방 부정했다면 곧 긍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므로,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절대적인 자연의 도에 비추어본다. 이 도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저것도 하나의 시비(是非)고 이것도 하나의 시비니, 그렇다면 과연 저것과 이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과 이것이 없는 것인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을 없앤 것을 도추(道樞, 동의 중추)라고 한다. 중추이기 때문에 원의 중심에 있으면서 무궁한 변화에 응할 수 있는 것이다. 옳다는 것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며, 옳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다. 그래서 시비를 가리는 것을 ‘밝은 지혜로 비추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도 없다. 대립되는 이 면과 저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립되는 이 면에서만 보면 저 면을 볼 수 없으므로, 대립되는 저 면에서도 봐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정확해진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생겨나고, 이것은 저것에서 비롯된다’ 고 말하는 것이다. 사물의 두가지 면인 이것과 저것은 함께 생기며 서로 의존한다.
생(生)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생이 있는 것이다. 또 ‘돤다’가 있으면 ‘ 안 된다’가 있고, ‘안 된다’가 있으면 ‘된다’가 있다. ‘옳다’에 의거하면 ‘옳지 않다’에 의거하는 것이고, ‘옳지 않다’에 의거하면 ‘옳다’에 의거하는 것이다. 금방 긍정했다면 곧 부정하는 것이고, 금방 부정했다면 곧 긍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므로,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절대적인 자연의 도에 비추어본다. 이 도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저것도 하나의 시비(是非)고 이것도 하나의 시비니, 그렇다면 과연 저것과 이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과 이것이 없는 것인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을 없앤 것을 도추(道樞, 동의 중추)라고 한다. 중추이기 때문에 원의 중심에 있으면서 무궁한 변화에 응할 수 있는 것이다. 옳다는 것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며, 옳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무궁한 변화이다. 그래서 시비를 가리는 것을 ‘밝은 지혜로 비추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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