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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중인 스님들의 모습. 유마 거사는 '유마경'에서 "마땅히 지금 그대가 있는 바로 그곳이 불도를 성취할 수 있는 곳이다"를 말한다. 국제신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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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누구를 위한 가르침일까? 출가 수행승들만을 위한 것일까? 불교가 생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보편적 가르침이라면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가난하든, 부유하든, 남자든, 여자든, 출가를 했든, 안 했든 깨닫지 못한 이상은 모두 삶과 죽음을 윤회하고 있는 중생들이며, 이들이 곧 불교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 머리를 깎고 정좌하고 있는 것이 불교라는 인식은 지금도 말끔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많은 출가수행자들 스스로가 세속을 멀리하고 깊은 산속을 찾아 정좌하고 있는 것만을 수행으로 삼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수행상에 대한 집착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1세기경에 나타난 유마경(維摩經)에도 이러한 수행상을 꼬집는 장면이 나오니 말이다. 제자품에서 사리불은 사람이 없는 조용한 숲을 찾아 선정에 들어가고자 한다. 유마 거사는 그러한 사리불을 향해 꾸짖는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이여! 그대가 하고 있는 선수행은 바르지 못한 방법이오. 그대 마음속에 이미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이오. 그대가 닦아야 할 것은 그대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분별의식이지 번잡한 환경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중략) 마땅히 지금 그대가 있는 바로 그곳이 불도를 성취할 수 있는 선경 아닌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유마 거사의 말은 지금에 듣는다고 해도 전혀 시대와 동떨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그만큼 유마경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집착, 편견, 그릇된 상, 분별 등을 유마 거사와 부처님의 출자제자의 대화형식을 빌어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부드럽게 감싸는 것만이 자비는 아니다. 유마경은 신랄하고 냉정하게 꾸짖는 가운데 자비심이 흘러넘치는 경전이다.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 거사는 거사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재가수행자였지만 대승불교의 교리에 정통하고 선을 실천하여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유마를 재가불교운동의 선구자로, 유마경을 재가불교운동의 대표경전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유마경은 재가니, 출가니 하는 분별상을 걷어내고 출가와 수행의 참뜻을 편 경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마음을 바르게 쓰는 것이 도닦는 곳이다(直心 是道場)"이라는 유마경의 말씀과 같이 누구나, 어디서나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그것이 곧 출가요, 수행이라는 가르침은 바깥을 탓하고, 바깥 경계에 혹해서 살며, 내면을 등한시하는 모두를 향한 꾸짖음인 것이다. 14품으로 구성된 유마경 속에서 사리불 목건련 가섭 나후라 등 부처님의 제자들이 유마 거사에게 가차 없이 비판받고 있다. 출가 재가를 떠나 비판하고 그 비판을 수용하는 열린 담론으로 불교의 참 정신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중생이 아프면 나도 또한 아프다." 이 말은 유마경을 대표하는 말처럼 돼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마 거사가 병이 나서 부처님 출가 제자들이 병문안을 가게 된 것이 유마경 탄생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마 거사의 병은 비록 중생의 아픔을 대신한 것이었지만 그 병을 인연하여 지금까지도 유효한 약방문이 설해졌고, 어리석음에서 오는 중생의 병을 치유하고 있으니 '이유 있는 병'이라 하겠다.
유마경의 절정은 '불이(不二)법문'이다. 모든 생명이, 모든 존재가 궁극적인 입장에서는 절대 평등하기에 너와 나의 차별이 없고, 남녀의 차별이 없고, 승속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이법문의 입장에서 보면 중생도 없고, 나도 없지만 언어를 빌려 표현하자니 그렇다는 말이다.
유마 거사는 문수보살이 보살행을 하는 선수행자가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물어오자 아무 대답 없이 묵묵히 있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이 유마묵언이야 말로 진리의 참모습이며, 불이의 궁극이라 할 것이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유마의 침묵에 담긴 쟁쟁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와 나의 분별은 무너지고 고통은 나누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어 두 배가 되는 청정한 국토가 열릴 것이다. 유마는 바로 그런 세상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