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나날이 더함을 구하는 자는 삶을 속박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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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927회 작성일 11-11-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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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減省一分 便超脫一分
인생감성일분 편초탈일분
如交遊減 便免紛擾 言語減 便寡愆尤
여교유감 편면분요 언어감 편과건우
思慮減 則精神不耗 聰明減 則混沌可完
사려감 즉정신불모 총명감 즉혼돈가완
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 眞桎梏此生哉
피불구일감이구일증자 진질곡차생재
인생감성일분 편초탈일분
如交遊減 便免紛擾 言語減 便寡愆尤
여교유감 편면분요 언어감 편과건우
思慮減 則精神不耗 聰明減 則混沌可完
사려감 즉정신불모 총명감 즉혼돈가완
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 眞桎梏此生哉
피불구일감이구일증자 진질곡차생재
인간의 삶에서 한 푼(一分)을 줄이면 문득 한 푼을 초탈하나니, 가령 교유(交遊)를 줄이면 문득 시끄러움을 면하고, 말을 줄이면 문득 허물이 적어지고, 사려를 줄이면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을 줄이면 혼돈이 완연해진다. 나날이 줄이는 걸 구하지 않고, 나날이 더함을 구하는 자는 참으로 생(生)을 속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뭔가를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성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은 본래 온전한데도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로 인해 훼손을 당하고 있다. 『장자』「대종사편」에서는 자연을 상징하는 혼돈(混沌)에게 인위적으로 눈, 귀, 코, 입 등의 일곱 구멍을 뚫었더니 혼돈이 죽고 말았다는 우화를 통해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 때문이다. 탐욕은 자연의 도를 따르는 자족심(自足心)을 해치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으니, 노자는 『도덕경』제46장에서 탐욕과 만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사람마다 만족할 줄 알아서 국가간에 전쟁이 없다. 따라서 전쟁에 쓰이는 준마를 논밭으로 돌려서 경작하는 데 이용한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사람마다 탐욕이 들끓어서 국가간에 전쟁이 빈번히 일어난다.
따라서 집에 있는 말을 전쟁에 내보낼 뿐 아니라 새끼밴 암컷까지 징발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 할 정도다. 이를 보건대, 화(禍)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허물은 탐욕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을 아는 만족이야말로 영원한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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