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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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651회 작성일 10-08-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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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노년의 삶이 고단한 곳은 없는 것 같다. 노후에 믿을 것은 연금뿐인데 이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빈곤하고 병든 노후생활은 고통이다. ‘죽음이 곧 축복’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남극에서 겨울을 나는 유일한 새인 황제펭귄은 짝짓기 시기인 겨울이 올 무렵, 신기하게도 조상 대대로 새 생명을 탄생시켜온 ‘오모크’라는 신비한 장소를 찾아간다. 이들은 1부 1처로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후 암컷이 먹이를 찾으러 바다로 떠나고 나면 수컷의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된다. 영하 20도가 넘고 시속 200킬로미터의 강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수컷은 알을 품은 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돌부처처럼 서서 2개월을 버텨야 한다. 보온을 위해 수천 마리의 펭귄이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조금씩 빙빙 도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자칫 쓰러지면 알을 품은 채 곧바로 얼어 죽는다.
아무리 본능이라지만 황제펭귄의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눈물겹다. 알이 부화되면 어미는 바다에서 돌아와 새끼를 키우고, 지친 아비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먹이를 찾으러 바다로 떠난다. 수컷 펭귄은 새끼를 부화하는 3개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몸무게가 40%가량 감소한다. 수컷이 바다에 나가 체력을 회복하는 사이 돌아온 어미 펭귄은 그동안 먹은 음식을 토해내 새끼에게 먹인다. 새끼가 완전히 독립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수컷과 암컷은 동시에 먹이를 찾으러 바다에 나갈 수 있다.
이 땅에서 부모 노릇하기란 황제 펭귄 못지않게 힘들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민간 교육비 지출 1위다.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봐도 사교육비 부담이 이렇게 무거운 나라는 없다. 영어 몰입교육 바람으로 외로운 ‘기러기 아빠’가 늘고 있다. 빚까지 내가며 교육비를 해외로 송금하는 그들의 노후생활은 과연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풍요로운 노후생활의 가장 큰 적(敵)은 불행하게도 ‘자식’이다. 과다한 교육비 지출은 자신의 노후자금을 선인출하는 거다. 미래에 쓸 돈을 빌려 지금 써버리는 격이다.
늙어서 자식 얼굴이라도 자주 보려면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세계 27개국 중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와 만나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인구학회 조사). 소득과 대면 접촉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회귀계수는 0.729인데, 회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크다는 뜻이다. 또한 부모의 소득이 1% 늘어나면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날 확률이 2.07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반면 OECD 회원국 중 14개국은 되레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와의 대면 접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에 늙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돈 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따로 사는 부모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는 횟수’는 27%로 세계 27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갑자기 큰 돈이 필요할 때 찾는 사람’은 51.9%가 ‘가족 및 친족’을 꼽았다. 이는 27개국 평균인 41%보다 높은 수치다. 이제 ‘효(孝)’는 낯선 단어처럼 들린다.
부모를 외면하는 젊은이의 행위는 자식들을 ‘왕자’ ‘공주’로 키운 부모에게 책임이 크다. 자식 키울 때 자식비위 맞추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부모는 결국 자식들의 하인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자랄 때 부모 공양법을 모르고 대접받는 법만 배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어찌 부모 공양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나친 교육열은 부메랑이 되어 부모의 등을 찍는 비수가 될지 모른다.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효자’란 말이 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맞는 얘기다. 공부 잘해서 출세한 자식이나 돈 많이 번 부자 자식, 재산 많이 물려받은 자식이 부모를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가문의 영광이며 우리 집 기둥’이라면서 모든 것을 다바쳐 뒷바라지 하지만 그 ‘기둥’이 부모에게 등을 돌린다.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형제 중 상대적으로 푸대접 받고 자란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는 부모에게 더 극진하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수발을 드는 자식은 대부분 자랄 때 ‘못난 자식’인 경우가 많다.
안락한 노후생활의 최대 변수는 자식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원한 2인자로 유명한 정치인 K씨와 경제부총리로 이름을 날렸던 N씨와 C씨는 아들의 사업실패로 말년이 곤궁하다는 풍문이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으니 사업자금을 대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훌륭한 부모는 대개 차가운 리더십의 소유자들이다.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을 낙점한 데 있다. 장남과 차남보다 총명한 셋째를 후계자로 정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조선조 최고의 성군이 탄생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반석에 오른 것은 훌륭한 재목(세종)을 알아본 아버지 태종의 식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완벽한 준비로 삼성그룹을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넘겨줘 세계적 그룹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대신 다른 형제는 과감하게 도태시켜 그룹의 대권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부모들은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자식 해외유학 보내느라 훗날 남는 것 없이 빈손이라면 스스로 자식에게 큰 죄를 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노후에 자신을 홀대하는 자식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어야 이미 때는 늦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선진국에서는 아무리 재벌가 자녀라고해도 대학부터 자립을 모색한다. 스스로 벌어서 공부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한국의 부모들은 어떤가.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기 시작해 해외유학을 보내주지 않으면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학생 자식을 위해 수강신청을 대신 해주는가 하면 교수에게 찾아가 학점을 애걸하기도 한다. 분에 넘치게 호텔에서 자식 결혼식을 올려주고, 집까지 사주려고 한다. 빚내서 자식 사업 뒷돈을 대주고, 부모가 사는 집을 담보로 보증까지 서준다. 세계 어느나라를 봐도 이렇게까지 ‘과잉친절’을 베푸는 부모는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봉’취급받는 것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사랑과 헌신에도 일정한 절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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