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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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82회 작성일 10-08-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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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에 40~50대의 중년층이 대거 일터에서 내몰리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과거에는 정년퇴직을 하고 몇 년을 소일하다가 인생의 종말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50대는 청년이고, 40대는 사춘기 청소년이며, 30대는 초등학생과 같다. 조기 은퇴는 가정은 물론 국가 경제로서도 큰 손실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어깨가 축 처진 채 빈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족들 눈치나 살피며 사는 삶은 너무 불행하다.
바쁘기만 한 청장년층과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방황하는 중노년층 사이에 불균형과 비효율을 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 은퇴하지 않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 몸담던 직장을 그만 두더라도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노력과 인식전환이 우선이지만 조기은퇴자들을 돕기 위한 사회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히브리어에는 ‘우연(偶然)’과 ‘은퇴(隱退)’라는 단어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원인과 결과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숨쉬고,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은퇴’라는 개념도 없다.
유명한 랍비 다이엘 라핀은 『선한 부자를 위한 돈버는 10계명』이라는 책에서 유태인에게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은퇴를 터부시 해온 데 있다고 지적한다. 에덴동산을 돌보는 일을 맡은 아담에게는 나이 제한이 없었다. 건강과 수명이 허락할 때까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은퇴는커녕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업무 지식이 풍부해지고 인맥이 넓어지며, 역경에 강해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땀을 흘리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까닭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 자체에 돈 버는 것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일은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므로 인간에게 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퇴를 당연하게 여기면 단지 먹고 살기위해 마지못해 일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무의식적으로라도 몇 년 후에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활동이 위축되고, 매년 한 해 한 해를 넘기는 데 급급해진다. 일종의 정신적 악성바이러스를 몸에 두고 있는 꼴이다.
100미터 육상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야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결승선을 달려가야 할 거리의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골프도 임팩트에서만 끝나면 방향도 거리도 엉망이 된다. 공을 친 이후의 팔로우(follow) 스윙이 중요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끝나는 시점을 생각하지 말고 시간이 다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질주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인생 70부터’란 말도 옛말이다. 팔순(八旬)이 넘어서도 쌩쌩하게 사회 각 분야를 주름잡는다. 미국의 ‘가장 힘 있는 80세 이상’ 80명을 선정해온 웹진 슬레이트가 2009년에 명단을 공개했다. 미국의 방송 ․ 출판업계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여성 앵커 바버라 월터스, ‘메모리칩 능력은 약2년마다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 인텔창업자, 미국에서만 1억부 이상의 책을 판매한 추리작가 메리 히긴스 클라크,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이다.
‘인생 백년 사계절’이라는 얘기가 있다.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까지가 ‘겨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70세 노인은 단풍이 아름다운 만추(晩秋)쯤 되는 것이오, 80세 노인은 이제 막 초겨울에 접어든 셈이다. 서양에서는 65세에서 75세까지를 ‘young old’또는 ‘active retirement(활동적 은퇴기)’라고 부른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아직도 사회활동을 하기에 충분한 연령이라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100세가 넘는 할머니 투포환 선수가 활약하고 있다. 96세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타계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다. 페루의 민속사를 읽고 있으면서, 아직도 공부하시냐고 묻는 젊은이에게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세계 최고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쉬면 늙는다(If I rest, I rust)’라며 바쁜 마음(busy mind)이야말로 건강한 마음(healthy mind)이라며 젊음을 과시했다. 항상 젊은이의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이 젊음과 장수의 비결이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인생에서 3번의 정년을 맞는다. 제1의 정년은 타인이 정년을 결정하는 ‘고용정년’이고, 제2의 정년은 자신이 정하는 ‘일의 정년’이며, 제3의 정년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떠나는 ‘인생정년’이다.
선진국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후반 인생설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한다.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자산운용 설계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인생설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년 후 30년 이상의 기간을 좀 더 돈을 벌기 위한 인생으로 살 것인지,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환원적인 인생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이 2가지를 병행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은행 고위간부가 자신이 근무하던 은행 점포에서 경비원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눈높이를 낮추어 재취업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눈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막일을 하는 ‘젊잖은’ 분들도 적지 않다.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체면 때문에 놀고, 일이 힘들어서 놀고...한국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노는 사람’이 유독 많다.
노후를 돈으로만 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후자금을 모으는 데만 연연하면 가족간 인정이 메마르고 사회가 각박해진다. 힘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지, 어느 순간 은퇴를 가정해 목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노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30대부터 가위눌린 듯 쫓기는 삶을 살면 그건 순전히 자기 손해다. 젊어서부터 해야 할 일은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자기계발이다. 투기성 재테크에 연연하기 보다는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인생을 올바로 살아가는 지혜다. 열심히 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법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50세를 전후로 해 제 1의 인생(번식기)의 직업에서 은퇴하고 다시 제2의 인생(번식후기)으로 뛰어들 것을 제안한다. 그는 ‘두 인생 체제(two-lives system)에서는 제1의 인생에서 갖고 있던 직업을 제2의 인생으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당하게 제2의 인생을 위한 직업에 뛰어들자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도 좋고, 급속도로 늙어가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획일적인 노후를 보내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후반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를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는 자세다. 흔히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여행 그 자체만 못할 때가 있다. 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흥미진진한 인생이라는 여행을 중도에서 끝내려 하는가. 은퇴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늘 기대를 갖고 여행을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삶이란 우리의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존 호머 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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