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번레이디와 온.오프결합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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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1,226회 작성일 10-10-2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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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우리나라에 바디샵(Body Shop)이 문을 열었다. 환경친화 화장품업체로 유명한 바디샵은 1976년, 영어교사이자 환경운동가인 로딕(59)이라는 여성에 의해 설립됐다. 바디샵은 현재 47개국에 진출해서 1천 7백여 매장이 문을 열었고 연매출만도 1조 2천억원 수준이다. 세전 이익이 29%에 이를만큼 탄탄한 기업이다.
<>반면에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장품업체인 애번(Avon)은 지금 변신을 위한 몸부림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업체는 ‘화장품 아줌마’의 대명사가 된 ‘애번 레이디’ 즉, 방문판매의 효시업체다. 1886년 앨비부인이 ‘리틀닷’이라는 향수세트를 이웃집에 팔면서 시작된 ‘애번 레이디’는 한 때, 전체 매출의 98%를 올릴만큼 막강파워를 자랑했다.
<>그런 와중에 전자상거래(EC)라는 신업태가 등장했다. 업체들은 빠르게 인터넷 비즈니스화에 열을 올렸고 고객들은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빠져 나갔다. 그러나 애번은 ‘애번 레이디’의 힘을 믿고 전자상거래를 경외시 했다. 점차 애번의 매출은 떨어졌고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영화는 99년, 1.5%로 뚝 떨어졌다.
<>지난 79년 귀족보석점인 티파니를 필두로 화학, 제약업체 등을 인수했고 80년대 후반 5억2천만 달러에 달하는 헬스케어 회사를 인수하는등의 무리한 세 불리기로 인해서 빚이 12억달러로 불어나 기업 존폐문제까지 거룬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암웨이의 로버트 배스 에게서 헐값에 회사를 넘기라는 인수제의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결국 오프라인을 고집하던 애번은 1997년 ‘애번닷컴’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한 애번 레이디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세일즈맨들과 보험설계사들이 온라인화를 반대했던 이유와 같다. 이로인해 애번주가는 50% 폭락했고 CEO였던 ‘찰스페린’은 책임지고 사임했다.
<>난파 직전의 애번은 99년 11월, 중국계 2세인 앤드리아 정(Andrea Jung)을 CEO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취임하자마자 정은 지방마다 각각의 이름으로 운영됐던 애번 브랜드를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방문판매에 국한됐던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각 유명쇼핑몰에 애번 상점을 설치해 나갔다. 주고객층을 중년에서 젊은층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반발하는 애번레이디에게는 오프라인 가맹점 오픈권한을 주었고 더불어 아웃렛의 원조인 월마트나 K마트에도 매장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다른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다음이 음미할만 한 대목이다.
<>회사측은 인터넷 환경에 상대적으로 약한 기존의 애번레이디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시도했다. 커미션제도를 신설하고 PC 무상임대 등도 지원했다. 애번 레이디들이 사이트를 통해 오더를 낼 경우, 20~25%의 커미션을 주었고 배달까지 인터넷을 통해서 할 경우, 30~50%의 파격적인 커미션을 제공했다.
<>주문․배달용지를 직접 작성하고 편지나 팩스를 통해 주문을 내고 있던 이들에게 파격적인 커미션은 흥미를 갖기에 충분했다. 이로인해 1만1,800여명이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결과로 발전했다. 회사측은 인터넷을 사용할 경우 기존방식보다 비용이 60% 이상 감소하기 때문에 그만한 커미션을 줘도 수익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조치는 애번레이디 교육에서 엿볼 수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판매를 위한 교육이었으나 이번에는 이들 모두를 뷰티컨설턴트로 재무장하기 위한 교육체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교육을 이수한 이들은 토털패션 코디네이터가 되어 맞춤서비스로 밀착마케팅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애번은 2000년에 20%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작년에는 무려 35%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여줬다. 한 때 50%나 떨어져 나갔던 주가도 다시 23%가 급등했고 순이익도 9%나 더 올랐다. 전형적인 전통기업 의 변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애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인프라로 온라인화했을 경우,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막강한지도 역시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반면에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장품업체인 애번(Avon)은 지금 변신을 위한 몸부림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업체는 ‘화장품 아줌마’의 대명사가 된 ‘애번 레이디’ 즉, 방문판매의 효시업체다. 1886년 앨비부인이 ‘리틀닷’이라는 향수세트를 이웃집에 팔면서 시작된 ‘애번 레이디’는 한 때, 전체 매출의 98%를 올릴만큼 막강파워를 자랑했다.
<>그런 와중에 전자상거래(EC)라는 신업태가 등장했다. 업체들은 빠르게 인터넷 비즈니스화에 열을 올렸고 고객들은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빠져 나갔다. 그러나 애번은 ‘애번 레이디’의 힘을 믿고 전자상거래를 경외시 했다. 점차 애번의 매출은 떨어졌고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영화는 99년, 1.5%로 뚝 떨어졌다.
<>지난 79년 귀족보석점인 티파니를 필두로 화학, 제약업체 등을 인수했고 80년대 후반 5억2천만 달러에 달하는 헬스케어 회사를 인수하는등의 무리한 세 불리기로 인해서 빚이 12억달러로 불어나 기업 존폐문제까지 거룬되기도 했다. 특히 1989년 암웨이의 로버트 배스 에게서 헐값에 회사를 넘기라는 인수제의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결국 오프라인을 고집하던 애번은 1997년 ‘애번닷컴’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한 애번 레이디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세일즈맨들과 보험설계사들이 온라인화를 반대했던 이유와 같다. 이로인해 애번주가는 50% 폭락했고 CEO였던 ‘찰스페린’은 책임지고 사임했다.
<>난파 직전의 애번은 99년 11월, 중국계 2세인 앤드리아 정(Andrea Jung)을 CEO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취임하자마자 정은 지방마다 각각의 이름으로 운영됐던 애번 브랜드를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방문판매에 국한됐던 기존방식에서 벗어나 각 유명쇼핑몰에 애번 상점을 설치해 나갔다. 주고객층을 중년에서 젊은층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반발하는 애번레이디에게는 오프라인 가맹점 오픈권한을 주었고 더불어 아웃렛의 원조인 월마트나 K마트에도 매장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다른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다음이 음미할만 한 대목이다.
<>회사측은 인터넷 환경에 상대적으로 약한 기존의 애번레이디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시도했다. 커미션제도를 신설하고 PC 무상임대 등도 지원했다. 애번 레이디들이 사이트를 통해 오더를 낼 경우, 20~25%의 커미션을 주었고 배달까지 인터넷을 통해서 할 경우, 30~50%의 파격적인 커미션을 제공했다.
<>주문․배달용지를 직접 작성하고 편지나 팩스를 통해 주문을 내고 있던 이들에게 파격적인 커미션은 흥미를 갖기에 충분했다. 이로인해 1만1,800여명이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결과로 발전했다. 회사측은 인터넷을 사용할 경우 기존방식보다 비용이 60% 이상 감소하기 때문에 그만한 커미션을 줘도 수익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조치는 애번레이디 교육에서 엿볼 수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판매를 위한 교육이었으나 이번에는 이들 모두를 뷰티컨설턴트로 재무장하기 위한 교육체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교육을 이수한 이들은 토털패션 코디네이터가 되어 맞춤서비스로 밀착마케팅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애번은 2000년에 20%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작년에는 무려 35%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여줬다. 한 때 50%나 떨어져 나갔던 주가도 다시 23%가 급등했고 순이익도 9%나 더 올랐다. 전형적인 전통기업 의 변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애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인프라로 온라인화했을 경우,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막강한지도 역시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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