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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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698회 작성일 10-08-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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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이란 말 가운데 "상"은 마을 이름이었다. 지금의 중국 하남성 상구시에 해당하며, 마을을 세운 "계"라는 이는 하 왕조 우왕의 치수공사에 공을 세운 탓에 그 땅을 받았다고 한다. 계의 십 대째 후손인 왕 해는 방목을 생업으로 했으나 장사에도 수완이 있었다. 사육하던 소를 밭농사에 이용하는 한편, 달구지를 끌게 하면서 황허 일대에서 물건을 사고 팔았다. 그러나 장사를 하다가 화를 당해 죽었는데 친족들은 삼백 마리 가축을 죽여 장례를 치렀다고 전해진다. 왕 해 생전의 재력이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화이다.
기원전 십육 세기, 왕 해에서 사 대째인 탕이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박(산동성 조현의 남쪽)이라는 곳에 도읍을 정하고 상 왕조를 세웠다. 그 뒤 몇 번의 천도를 거쳐 마지막으로 은(하남성 안양 소둔촌)에 이르렀다. 그래서 상 왕조를 은 왕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영화를 누리던 은이 멸망하고, 주나라가 뒤를 이었다. 주나라를 다스리던 주공 단은 은의 유민들에게 장사를 하도록 권유했다. 이때부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상나라 사람, 곧 "상인"이라고 불렀다. 상인의 유래는 이처럼 오래 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의 문헌이나 자료에는 상인에 대한 기록이나 서술이 적지 않다.
후대 사람들은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범 려를 상인의 시조로 숭상한다. 범 려의 자는 소백이며, 나중에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꾸었고, 도주공이라고도 불린다. 농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했으나 학식을 갖추었고 기품이 있었다고 한다. 범 려와 친구인 문 종은 당시 약소국이었던 월나라 구 천을 같이 찾아가 신하가 되었다. 범 려는 천문지리에서 군사까지 지식이 풍부해 월나라의 국력을 신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자만심이 생긴 월 왕 구 천은 범 려의 만류에도 강대국인 오나라를 공격했다. 결국 구 천은 패하여 포로가 되어 갖은 고초를 당한다. 삼년이 지나 귀국을 허락 받고 "와신상담" 끝에 다시 오나라를 쳐서 멸한다.
그런데 월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인 범 려는 친구인 문 종에게 "토사구팽"을 경계하는 편지를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서 제 나라로 가 치이자피라고 이름을 바꾸고 장사를 시작한다. 몇 년 만에 많은 재산을 가진 부유한 상인이 되었고 나라 안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에 제나라 왕이 재상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하고, 재산을 벗들에게 나눠준 뒤 도읍이란 곳으로 다시 떠났다. 여기서도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장삿술로 억만 금을 벌었고, 가난한 이들과 지인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뒷날 중국 상인들이 범 려를 높이 평가한 까닭은, 장사도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성쇠와 변화를 파악하며 해야 된다는 그이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시장이 번창했을 때 그만 멈출 줄 알아서, 쇠퇴의 국면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시장이 쇠잔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유리한 기회를 만들어, 약세를 강세로 바꾸어야 한다. 범 려는 물가의 등락이 수요와 공급에 있어 잉여와 부족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 장사의 요체는 그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곧 값이 낮을 때는 사고, 값이 높을 때는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여 불위는 범 려와는 달리 야심이 커서 나라까지 사고 팔았던 상인이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진나라 왕의 서자 이 인을 만난 여 불위는, 자신에게 셀 수 없는 이익을 가져다 줄 커다란 장사가 있음을 깨닫는다. 여 불위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하여 볼모로 잡혀 있던 이 인을 진나라 왕으로 만들었고, 자신은 승상의 지위에 오른다. 이 인의 아들이 바로 진시황제였으며 그이를 도와 여 불위는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일개 상인이었던 여 불위가 한 나라, 아니 중국 전체를 상대로 셈을 두었던 것이다.
기원전 십육 세기, 왕 해에서 사 대째인 탕이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박(산동성 조현의 남쪽)이라는 곳에 도읍을 정하고 상 왕조를 세웠다. 그 뒤 몇 번의 천도를 거쳐 마지막으로 은(하남성 안양 소둔촌)에 이르렀다. 그래서 상 왕조를 은 왕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영화를 누리던 은이 멸망하고, 주나라가 뒤를 이었다. 주나라를 다스리던 주공 단은 은의 유민들에게 장사를 하도록 권유했다. 이때부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상나라 사람, 곧 "상인"이라고 불렀다. 상인의 유래는 이처럼 오래 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의 문헌이나 자료에는 상인에 대한 기록이나 서술이 적지 않다.
후대 사람들은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범 려를 상인의 시조로 숭상한다. 범 려의 자는 소백이며, 나중에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꾸었고, 도주공이라고도 불린다. 농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했으나 학식을 갖추었고 기품이 있었다고 한다. 범 려와 친구인 문 종은 당시 약소국이었던 월나라 구 천을 같이 찾아가 신하가 되었다. 범 려는 천문지리에서 군사까지 지식이 풍부해 월나라의 국력을 신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자만심이 생긴 월 왕 구 천은 범 려의 만류에도 강대국인 오나라를 공격했다. 결국 구 천은 패하여 포로가 되어 갖은 고초를 당한다. 삼년이 지나 귀국을 허락 받고 "와신상담" 끝에 다시 오나라를 쳐서 멸한다.
그런데 월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인 범 려는 친구인 문 종에게 "토사구팽"을 경계하는 편지를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서 제 나라로 가 치이자피라고 이름을 바꾸고 장사를 시작한다. 몇 년 만에 많은 재산을 가진 부유한 상인이 되었고 나라 안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에 제나라 왕이 재상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하고, 재산을 벗들에게 나눠준 뒤 도읍이란 곳으로 다시 떠났다. 여기서도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장삿술로 억만 금을 벌었고, 가난한 이들과 지인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뒷날 중국 상인들이 범 려를 높이 평가한 까닭은, 장사도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성쇠와 변화를 파악하며 해야 된다는 그이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시장이 번창했을 때 그만 멈출 줄 알아서, 쇠퇴의 국면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시장이 쇠잔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유리한 기회를 만들어, 약세를 강세로 바꾸어야 한다. 범 려는 물가의 등락이 수요와 공급에 있어 잉여와 부족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 장사의 요체는 그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곧 값이 낮을 때는 사고, 값이 높을 때는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여 불위는 범 려와는 달리 야심이 커서 나라까지 사고 팔았던 상인이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진나라 왕의 서자 이 인을 만난 여 불위는, 자신에게 셀 수 없는 이익을 가져다 줄 커다란 장사가 있음을 깨닫는다. 여 불위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하여 볼모로 잡혀 있던 이 인을 진나라 왕으로 만들었고, 자신은 승상의 지위에 오른다. 이 인의 아들이 바로 진시황제였으며 그이를 도와 여 불위는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일개 상인이었던 여 불위가 한 나라, 아니 중국 전체를 상대로 셈을 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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