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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녀석들


 

부자에 대한 사회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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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725회 작성일 11-04-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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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자에 대한 이미지 변화의 원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음.

첫째, 부의 철학이 없이 부를 맹목적으로 축적하려는 출발이 문제임. 일제시대의 잔재로 남아있던 것들을 남보다 빨리 손아귀에 쥐고는 이것들을 판매하여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있었음. 일제가 남기고 도망간 부동산을 무작위 접수를 하여서 아귀처럼 돈의 더미에 올라선 사람들을 주위에서는 횡재한 떼부자로 간주하였을 것임. 1960년대 이후의 본격적인 산업화시대에 개발되는 지역마다 부동산 값이 폭등하였음. 이때에 가진 땅을 팔아서 챙긴 사람들은 전부 땅투기 부자라고 낙인찍혔음. 또한 그 당시에는 제품공급이 부족한 시대여서 새로 만드는 제품마다 거의 전부 보석만큼 고귀하게 되면서 제조업자들은 대부분이 돈의 홍수를 맡게 되었음. 정부시책에 협조하는 기업체들은 거의 전부 부의 단단한 철로를 달리면서 거부의 길로 들어섰음.

이들은 대부분이 주어진 기회(given opportunity)를 활용한 것뿐이라고 항변할 수는 있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서 좋은 방법으로 부를 이룩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음.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의 제공이 되는 것이 기본적인 경쟁의 출발점임.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하는데, 일부의 선택된 사람들이나 일부의 작위로 조작되어진 그룹에게만 부의 획득가능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임.

올바른 부자철학(philosophy for right affluence)은 부를 획득하려는 목적이 인간세상의 발전을 위한 인류애적인 동기에 근거하여서 새로운 가치창조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창조된 결과를 인류발전에 활용하는 것임. 필자는 수많은 분들이 “올바른 부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질 때 수없이 대답하였던 단어들의 결합을 가지고서 필자 나름의 부자철학의 정의를 내린 것임.

과거의 우리나라 부자들이 부자철학이 없이 그냥 자신의 무사안일과 개인적인 욕구충족의 도구로서 부를 획득하여왔다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들이 과거의 부정적인 부자이미지의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음. 필자가 만나는 부자들 스스로도 “과거의 선대 부자들 중의 상당수가 잘못 행해온 부의 축적과정이 사회에 나쁘게 비추어져 왔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음.

둘째, 부의 축적에는 자신의 노력과 타인들의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에서 또 다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음.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자신에게 향하였을 때 편안한 하루생활을 지낼 수 있는 것임. 부자라고 하여서 그냥 자신이 모든 것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

경상도의 어느 분은 과거에 사람들이 오가는 도로에서는 고무신을 신고 가다가, 사람들이 안다니면 고무신이 닳지 못하게 벗어서는 양손으로 들고 시골길을 걸어 다녔다고 함. 맨발에 가시가 찔리는 아픔을 참으면서 닳을까봐 고무신을 아낀 분은 양식어장을 하면서 교묘하게 저울을 속여 서는 상당한 이득을 남기었다고 함. 떼돈을 벌고 나서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도 사고, 그리고 번 돈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하였다고 함.

그런데 이 분이 돈을 버는 과정에서는 자기의 노력(고무신을 아끼는 것)과 타인들이 솎은 것(저울 조작하여서 폭리를 취한 것)이 공유되어 있음. 자기의 노력이 100%라고 주장할 수는 절대로 없는 것임. 아무리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의 길로 들어서도 타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부자가 될 수 없음. 법으로 정해진 모든 규칙을 지키면서(세금을 완납하고), 모든 가치를 100% 만들고 나도 타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부자가 될 수 없음. 물건을 팔려면 내 물건의 보급에 나서는 도매상이 필요하고, 진열해서 최종판매하는 소매상이 필요하고, 그리고 내 물건을 구입하여가는 소비자가 필요함. 자신이 스스로 모든 돈을 100%내더라도 자신의 물건을 타인들에게 판매하는 한에 있어서는 “획득된 재산(accumulated wealth)”의 상당수는 타인들의 지원으로 형성된 것임.

어느 존경받을 만한 부자는 필자에게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었음. 내가 회사를 창립하여서 수십 년을 키워오면서 나와 같이 동고동락한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우리 사회에서 우리 회사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하여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로 내가 부자의 반열에 들어설 수 없었을 것임. 이 분이 회사의 대주주로만 남으면서 회사의 명예회장 자리까지 반납하고 나서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함. 필자가 설립하신 애지중지하는 회사에 사무실이라도 내시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내가 그리로 가면 내 눈치를 보느라 회사는 잘 안될 것이다. 내가 회사를 완전히 떠나고 나니 회사의 순이익률이 점점 증가하고 더 잘 되더라”고 이야기하였음.

셋째, 우리 사회에 부자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연된 또 다른 원인으로는 부자들이 마무리를 잘못하였다는 것임. 우리의 눈에 비치는 현세와 우리의 눈에 비치어지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내세는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일단은 분리가 되어있는 것으로 우리는 어렴풋이 믿고 있음. 현세의 마지막을 “죽음”이라고 부르고, 내세의 시작을 “사후”라고 부르고 있음. 일단 연결되어 있으나, 분리되어 있는 이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함.

부자들은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더 죽음을 두려워함.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여서 그것이 아까워서 죽기 힘든 것임. 일반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여서 별로 아깝지가 않아서 부자에 비하여서 죽기 쉬운 것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under my current ownership)을 영원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됨. 우리가 보는 현세에 내 것은 거의 없음. 내주머니의 자동차열쇠는 잊어먹지 않는 한만 내 것임. 소주를 몇 병 마시고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다보면 내주머니의 자동차열쇠도 잊어버리게 되고, 술이 어렴풋이 깬 이후에야 자동차열쇠가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인함. 내 가족도 전부 내 것이라고 착각하였다가, 부인과 이혼하고, 큰자녀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뜨고, 다른 자녀들이 결혼해서 브라질이민가 버리면 내 가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함.

인생은 원래가 빈손임. 10억 원도 내 것이 아니고, 100억 원도 내 것이 아니고, 내 것은 어차피 없음. 보유주식의 평가액이 1조 원을 넘어도 막상 눈감으면 다섯 평도 안되는 무덤에 묻힘. 현재 내가 잠시 보유하고 있는 것들은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필요함. 그런데 과거의 부자들은 전부 자기의 보유재산을 전부 자기 것이 라고 철석같이 믿고는 전부 가족에게 넘겨주려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였음. 탈법적 가업승계와 교묘한 상속을 통하여서 국가에 낼 것도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리고, 사회에 내면 바람직한 것도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렸음. 이러한 과정에서 가끔 터져 나오는 불법상속의 비리들이 “부자는 더러운 재산만 지키는 인간”으로 서민들의 눈에 비추어지게 된 것임.

부자에 대한 이미지
부정(과거)

부러움(현재)

존경(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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