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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8000억 기부한 ‘구두쇠’ … 이 종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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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1,478회 작성일 14-03-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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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거(인터뷰) 안 해. 미안하네만, 헛걸음했네.”14038496.html?ctg=1200&cloc=joongang|home|newslist10

회장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하자마자 싸늘한 말이 툭 날아왔다. 회사 간부들을 통해 사전에 약속된 인터뷰였다. 정확하게 보고가 안 된 걸까. 아니면 무심코 수락했다가 생각이 바뀐 것일까.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왕 왔으니 잠깐 앉아보소.”

본관(本貫)이 어디인지 등 면접 시험 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공손한 태도로 답하고 나니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궁금한 게 뭐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관정(冠廷) 이종환(91)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과의 대화는 저녁식사 자리로 옮겨가며 3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35㎡(약 10평) 규모의 회장실에는 책상이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이 명예회장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해 경영권을 물려받은 장남 이석준 회장의 것이다. 창업주를 위한 별도의 공간은 없었다. 10년 이상 된 듯한 스타일의 재킷, 주로 기념품용으로 쓰이는 염가형 금색 시계. ‘구두쇠 회장’다운 모습이었다. 저녁 장소도 그가 단골로 다니는 중식당(중화요리집이 아닌 보통 중국집)이었다.

그는 연도와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아흔을 넘긴 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했다. 남의 말을 듣는 데만 좀 어려움이 있었다(그는 1987년 정보기관에 끌려가 폭행을 당한 뒤부터 보청기를 써왔다). 대화 도중 북한에 대한 지원 계획, 10여 년 전 북한 고위층을 만난 일 등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3년 뒤, 5년 뒤의 계획도 밝혔다.

-재산의 약 95%인 8000억원 상당의 현금과 부동산을 장학재단에 내놓으셨는데, 좀 아깝다거나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배석한 며느리 양문희 삼영산업 사장을 잠시 바라본 뒤) 너희 심정을 내가 모르겠나. 그래도 안 돼. 너희 나이도 이제 50, 60인데 돈 남겨준다고 새로운 사업 할 수 있겠나. 내가 다 먹고살 만큼은 남겨줬다. (장학재단에) 300억원 정도 더 내놓으려고 요즘 열심히 돈 모으고 있어.”

-최근에는 서울대에 도서관 신축 기금으로 600억원을 기부하셨는데, 서울대 오연천 총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약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웃으며) 그래서 내가 지금 돈이 없어. 이왕 짓는 것 잘 지으라고 외국에 사람 보내서 (도서관들을) 보고 오게도 했지. 새 도서관 자리나 모양도 내가 결정한 거야. 돈 내는 사람이 제일 많이 생각하지 않겠나.”

-의대생이나 법대생에게는 장학금 안 주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러시는 건가요.
“나라의 생산, 먹고살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자연과학이 우선이지. 앞으로는 좀 변화가 있겠지.”(‘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장학금의 약 80%는 기초과학 전공 학생에게 지급된다.)

이어 이 명예회장은 묻지도 않은 명예박사 학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서울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00억원 기부의 대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것(명예박사 학위)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한참 생각해봤어. 그런데 ‘내 나름대로 이 나라에 공헌한 게 몇 가지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

그는 1970년대 의류 포장용 비닐을 만들어 수출 산업에 기여한 일, 송전탑에 쓰이는 애자의 국산화에 성공한 일, 전선 사업에 뛰어들어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케이블을 싸게 납품한 일 등을 조목조목 기억해내며 설명했다. 이때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그것들 말고도 나라에 기여하신 일이 많지 않습니까.
“맞다. 또 있다. 내가 북한을 도우려고 애써 왔어. 15년 전에 의류 제품 포장비닐 만드는 설비를 주려고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북한 사람들 만났지. 장성택도 만났고. 기계를 주려고 했는데 전기가 문제가 있는 거야. 그래서 발전기까지 주려고 했는데 기름도 없다고 해서 10년을 끌다가 포기했지. 그때 북한에서 나를 초청했는데, 김일성도 아니고 그 아들 만나러 뭐 하러 가. 안 가겠다고 했지. 요즘 그 일(설비 기부)을 다시 하려고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어.”

-절약을 위해 자장면을 자주 드시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거 (언론이 만든) 거짓말이야. 자장면 잘 안 먹어. 음식은 영양가 따져 좋은 것 먹어. 나도 호텔에 가 먹을 때도 많아.”(중식당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 명예회장이 자장면이나 우동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5년 전까지는 비행기 이코노미석만 타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엔 호주나 유럽처럼 아주 멀리 갈 때는 비즈니스석도 타요. 중국이나 일본처럼 가까운 데 갈 때는 이코노미석으로 가지만.”(그는 부하들이 비즈니스석을 권유하면 ‘거기 앉아 가면 더 빨리 가나’라며 핀잔을 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이거 다 내 이야. 아직 하나도 상하지 않았어. 무릎도 안 아프고, 고혈압 같은 노인병도 없어. 몇 년 전 감기에 자주 걸려 병원에 입원하곤 했는데, 그때 의사가 비타민 C(제제)를 먹으라 해서 그걸 꾸준히 먹고 있어. 최근 서너 해 동안에는 감기 한 번도 안 걸렸어.”

-2년 전에 한국 최고령 홀인원 기록을 세워 보도까지 됐습니다. 요즘도 골프 하시나요.
“며칠 전 제주도에 가서(제주도에는 그가 장학재단에 기부한 제주 크라운CC가 있다) 3일 내리 쳤어. 요즘엔 드라이버 거리가 줄어 180야드 정도 나가. 타수는 내 나이 정도 돼. ‘에이지 히터’(18홀 기준으로 총타수가 나이만큼 되는 고령 골퍼)인 거지.”

회사 직원들에 따르면 그는 크라운CC에서 주로 회원 전용인 정규 코스가 아닌 9홀짜리 퍼블릭 코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전액 장학재단으로 가는 골프장 수익이 줄어들 것을 고려한 일이다.

-교육재단 규모를 얼마나 키우실 건가요.
“내가 5년만 더 살 수 있으면 1조원까지는 무난하게 만들 것 같아. 지금 여러 곳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해서 가치를 높이고 있어. 내가 살아 있어야 빨리 될 텐데….”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때 ‘관정 크라운상’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노벨상 상금이 대략 120만 달러(약 12억8000만원)더라고. 우리도 인문학, 자연과학, 실용학문 세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사람을 골라 비슷한 액수의 상금을 주는 상을 만들 생각이야. 지역은 동아시아에 국한해서. 결국 한·중·일 세 나라에서 수상자가 나오게 되겠지. 2017년께에는 시작하려 하는데, 아직 준비 단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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