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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대학 중퇴… 스티브 잡스 ‘한국과 다른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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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834회 작성일 15-06-0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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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비주류인 스티브 잡스가 정보기술(IT) 시장의 마법사로 올라선 것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잡스는 좋은 집안, 좋은 학벌이 있어야만 가능한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잡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집안·학벌을 가리지 않고, 실패에 관대한 미국 사회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이 큰 몫을 했다.
잡스는 대학원생 신분으로 동거 중이던 시리아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가에서 아랍계인 아버지를 반대하면서 잡스는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된다. 이들 부부는 그에게 스티브 폴 잡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잡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학교 수업을 자주 빼먹었고, 담임 선생님은 잡스를 학교에 나오게 하느라 사탕과 돈을 쥐여주며 달래야 했다.
잡스의 학교 성적은 시원찮았다. 하지만 유달리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용 전기용품세트를 얻게 된 것이 배경이었다. 잡스는 방과후 수업을 통해 IT업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는 휴렛패커드사에서 개설한 방과후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에 대한 지식과 흥미를 키웠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이때 만났다.
잡스는 방과후 수업에서 쌓은 지식과 휴렛패커드사의 인턴 경험을 인정받아 1972년 오리건주 리드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양부모가 비싼 학비를 힘들게 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1학기만 다니고 대학을 중퇴한다.
대학을 중단한 뒤 잡스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그는 "콜라병을 모아 팔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아랍계 사원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11㎞ 이상을 걸어다니기도 했다.
컴퓨터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있던 잡스는 1974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컴퓨터 관련 사교클럽에 나가게 된다. 이곳에서 과거에 만난 적이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더욱 깊이 알게 됐고, 워즈니악이 개발한 '애플1'을 갖고 애플사를 공동 창업했다.
잡스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이른바 '스펙' 중 단 한 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학도 한 학기만 다녀 학벌도 사실상 고졸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 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일화는 잡스의 상징이다.
실패에 관대하고 도전과 창업을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미국 사회의 문화가 없었다면 잡스 신화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잡스의 성공 스토리를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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