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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꼭 정의만 승리하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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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아풀 댓글 0건 조회 1,822회 작성일 12-05-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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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변의 법창일화
 
항상 진실과 정의는 승리하는 것인가요? 선인은 흥하고 악인은 망하는 것인가요? 불행히도 세상은 그렇지 않고 흑과 백의 구분도 모호한 회색지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어느 쪽이 거짓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그런 사건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처음 법창일화 시리즈 시작하면서 밝혔듯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배경, 명칭, 내용들은 소송 당사자 보호를 위하여 변경, 각색되었음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저자 주.].
캄튼 지역에 있는 어떤 가게를 팔고 샀습니다. 그런데 판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서 매매대금이 제대로 지불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이 발생하였습니다. 판 사람은 매매 대금을 다 지불 못 받았다, 산 사람은 다 지불했다. 이 상반된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제3자가 들어 보면 가장 간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일 터, 돈을 주었으면 주었을 것이고 안 주었으면 안 주었을 사건. 둘 중의 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아야 하는 사건. 둘 중 한 사람이 거짓말 하는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결론이 둘 중 하나이어야 하는 이 간단한 사건이 재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쟁점은 크게 2가지였는데 서로가 주장하는 매매가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과 총 지불 금액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의뢰인은 가게를 산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총 매매 가격은 9만 달러. 에스크로 서류에는 매매가격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에스크로 를 열기 직전  판 사람이 매매대금 지불에 대한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산 사람의 친구가 총 9만 달러, 장 당 1만 달러로 해서 9장의 수표를 써 주었습니다. 수표는 그 사람의 비즈니스 수표였습니다. 그리고 산 사람이 에스크로 오픈과 동시에 현금으로 2만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2장의 수표를 돌려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산 사람이 또 현금으로 2만 5천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래서 이때까지 총 4만 5천 지불).  그런데 이번엔 수표 회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2만 5천 달러라 수표를 쪼갤 수도 없었고 대신 영수증을 4만 5천 달러로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지불했던 돈 전체에 대한 영수증이었죠. 그리고 나서 또 1만 달러씩 2차례에 걸쳐 합계 2만 달러를 또 지불했습니다(이때까지 총 6만 5천 지불). 그런데 9장의 수표를 주었던 산 사람의 친구는 이러한 지불 사실을 모르고 2만 5천 달러를 또 지불했습니다(이때까지 총 9만 지불이 되었으므로  매매대금 완납). 
이렇게 지불하였을 때 친구는 남은 수표를 모두 돌려 달라고 요구하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산 사람 본인의 2만 달러 지불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친구는 갚아야 할 2만 달러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7장의 수표 중 단지 5장의 수표만 되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매매대금은 완납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게를 판 사람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총 매매 가격이 9만 달러가 아닌, 13만 5천 달러라는 것입니다. 에스크로에 나와 있는 가격은 실제 가격이 아니며 차액은 에스크로 바깥에서 받기로 되어 있었고 그래서 9만 달러 수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 지불된 총액은  처음 4차례 에 걸친 6만 5천 달러가 전부이며, 산 사람이 주장하는  마지막 2만 5천 달러는 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7만 달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 쪽 주장에 다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우선, 부끄러운 일이지만, 에스크로 상에는 실제보다 낮은 매매가격으로 해놓고, 실제 가격과  에스크로 금액과의 차액은 에스크로를 통하지 않고 지불이 되곤하는 것이 한인사회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매가격이 에스크로에 나와있는 그대로이다 라는 것은 신빙성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담보로 수표를 9장을 주었다 하는 주장인데 어차피 에스크로를 통해서 다 결재가 될거면 왜 굳이 담보가 필요하였나 하는 점입니다. 
 에스크로 여는 시점이나 수표 건네 준 시점이 별로 멀지 않은데 굳이 그렇게 해야 했을까요? 또 다른 미심쩍은 점은 2만 달러면 작은 돈이 아닌데 친구들끼리 확인도 않고 지불해 버렸다 하는 점입니다.  수표 회수를 요구하지 않았다도 의문스런 점입니다. 딱 금액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2장이라도 돌려 받았어야지요.  
그리고 또 하나 산 사람에게서 어떤 서류를 가져 오라고 요청하였더니 그런 서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언하면 처벌받겠다는 서면 선서하에 그런 서류는 없다고 해서 서류 제출에 대한 답변서를 상대방에게 제출했습니다. 그랬는데 막상 재판이 시작되니 그 서류를 들고 왔습니다. 이제 그 서류를 제출하면 거짓말했음을 자인하는 것이고  또한 왜 그 서류가 그전에는 제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곤혹스런 일이 생기므로 차라리 가져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재판 도중 내 옆에 앉아서 판사가 보라고 그 서류를 세워서 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서류를 빼앗고 싶었고 기가 막히고 화가 났지만 재판 도중에 그 서류를 뺏을 수도 없고 해서 짐짓 모르는 척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판사가  이 사람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의 신빙성에 또 한번 의문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판 사람은 판 사람대로 문제가 있었으니 지불을 요구한 시기가 증언할 때마다 달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증언 내용에 있어서도 계속 오락가락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지불 못 받았다는 금액조차 틀려서, 그의 변호사가 “내 의뢰인은 이렇게 주장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금액이 맞습니다” 라는 실소를 금치 못하는 우스꽝스런 변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락가락하고 부정확한 증언은 제 의뢰인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충분한 질문도 못하고,  서둘러 끝을 내어야 했습니다. 자세히 질문을 했다가는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들어서였습니다. 영어도 잘 하고 젊어서 소위 star witness 일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그 동안 제가 시킨 증언 준비는 어디로 다 내어다 버렸는지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기억 안 나는 것으로 일관하니 도저히 제대로 제가 생각한 재판 계획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같으면 그러한 증언의 일관성이 없으면 공격을 해서 많은 것을 얻어 내었을텐데 상대방 변호사가 의외로 쉽게 짧게 넘어 가더군요. 다행히 이 의뢰인의 증언 전에,  돈을 대납해 준 그의 친구가 저의 걱정과는 달리 비교적 또렷하게 증언을 해 주어서 이 친구의 증언에만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판사는 3일 간에 걸친 재판 종결 후 바로 판결을 주었는데 에스크로는 계약서로는 너무 엉성하고 양 당사자 자신이 내용도 모르고 안 지킨 부분도 많아 서면 계약으로 인정 못한다 (변호사가 만든 서류도 아니고 에스크로 회사에서 적당히 그 전에 써 왔던 것 베껴서 한 것이었는데 판사는 너무나 여기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서면으로 매매가격이 9만 달러로 되어 있으므로 9만 달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다른 증거를 배척해야 한다는 산 사람의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 들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판 사람의 증언이 너무나 일관성이 없고, 7만 달러나 되는 돈인데도 지불 요구를 2년 정도나 지난 시점에서 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물론 판 사람은 일관되게 일찍부터 구두로 지불 요구를 했다라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를 제기한 원고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있는데 이의 입증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원고 (판 사람) 패소, 피고 (산 사람)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 승소 판결이므로 피고 측 변호사 비를 원고가 지불하라는 내용을 저는 판사에게 신청하여 판결문에 추가시켰습니다.
정황상 판 사람의 주장이 맞을 것 같았고,  제 의뢰인의 증언이 오락가락해서 패소에 대한 우려가 컸었는데 변호사 비까지 받아 내며 이겨서 기분이 좋긴 했지만, 또 한편으론 과연 저의 의뢰인이 옳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오늘까지도 마음 한 구석엔 찜찜하게 남아 있습니다.  정의와 진실이 꼭 승리한다고 말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 사는 인간의 삶.  그래서 더 더욱 고달픈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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